우리 집.가족이야기

청산도 여행기 2탄(귀가길 미황사 관람기 3월4일)

문수산 아래 2018. 5. 6. 21:45

*1박2일 청산도 여행 귀가길에 달마산 미황사를 관람하고 왔어요.

위치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미황사길 164


* 달마산
달마산은 해남군에서도 남단에 치우쳐 긴 암릉으로 솟은 산이다. 두륜산과 대둔산을 거쳐 완도로 연결되는 13번 국도가 지나는 닭골재에 이른 산백은 둔덕 같은 산릉을 넘어서면서 암릉으로 급격히 모습을 바꾼다. 이 암릉은 봉화대가 있는 달마산 정상(불썬봉)을 거쳐 도솔봉(421m)까지 약8㎞에 거쳐 그 기세를 전혀 사그러트리지 않으며 이어진 다음 땅끝 (한반도 육지부 최남단)에 솟은 사자봉(155m)에서야 갈무리하는 것이다. 달마산을 병풍 삼아 서록에 자리잡은 미황사는 이 산과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다. 신라 경덕왕 8년(749)인도에서 경전과 불상을 실은 돌배가 사자포구(지금의 갈두상)에 닿자 의조 스님이 100명 향도와 함께 쇠등에 그것을 싣고 가다가 소가 한번 크게 울면서 누운 자리에 통교사를 짓고, 다시 소가 멈춘 곳에 미황사를 일구었다고 한다. 어여쁜 소가 점지해준 절인 동시에 경전을 봉안한 산이라는 뜻이다.



*미황사 일주문.

*일주문 통과 바위를 바치고 있는 모습이???

*일주문 통과 언덕을 오르고....

*천왕문 통과경내 진입...

*달마산 등산로 안내도

 10년전인가 집사람과 송추에서 도솔암까지 종주를 한기억이 나네요.

*이날은 지독한 안개로 달마산은 그림자도 보지못해 무척 아쉬움...

*두번째 석축계단위에는 찻집이 있네요.

*자하루를 통과 대웅보전 앞마당.

*달마대사.

*미황사 대웅보전

 미황사는 신라 경덕왕8년 (749년)에 창건되었다.

 사적비(1692년)에 따르면 서역 우전국왕의 인도로 경전과 불상이 가득한 배

 가 땅끝에 도착하였는데,의조화상과 향도100여명이 그 배를 맞이하여 지금

 의 자리에 절을 세웠다.

 창건 이후 미황사는 조선중기 까지 12암자를 거느린 대찰의 모습을 갖추고

 번성하였다.그러나 정유재란(1597년)을 격으며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어

 1601년에 중창하였고,2008년에 삼창하였다.

 대웅보전은 미황사의 중심 전각이다.한 가운데에는 석가모니 불,좌우에는

 아미타불,약사여래불이 모셔져 있다.

 1598년에 중창하였고,1660년,1754년,1982년,2007년에 거듭 중수 하였다.

 내부의 대들보와 천장은 산스크리트어 문자와 천불도로 장엄되어 있는데

 그 아름다움이 인도의 아잔타 석굴 벽화 중국 둥황막고굴의 천불벽화에 비견

 되어 지기도 한다.

 

*응진당

 미황사 뒤편에 병풍처럼 둘러선 달마산은 그 빼어난 아름다움 때문에 남도의금강산이라고도 불린다.

 달마대사가 중국의 선을 전하고,해동의 달마산에 늘 머물러 있다고 하여 달

 마산이라 이름지어졌다.고려시대의 기록에 따르면 송나라의 높은 관리들이

 찾아와 달마산을 찬탄하고 예경하였다고 전해진다.

 응진당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 신통력이 뛰어난 16분의 아라한들

 을 모신 전각이다.응진은 참다운 존재의 실상을 환희 깨닫고 해탈에 이른 이

 들을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 "아라한"의 한자어다.

 정유재란때 소실되었다가 대웅전과 함께 여러차례 중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내부 벽면에는 수목으로 그려진 나한 벽화가 있는데 선의 경지를 보여

 주는 유려한 선맛느오 이름이 높다.

*돌담위의 소품들.

*당간지주.

*종각

*점심공양의 메뉴.

*대웅보전 앞에서.

*점심을 공양으로 해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