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둘레길

지리산둘레길 7코스(성심원~운리)13.4km

문수산 아래 2024. 2. 21. 11:40

 

*언    제 = 2023년 10월 25일 . 맑음 . 화요일 . 10~20도

*누 구 와 = 찰떡 부부

*코스=심원 – 아침재(2.3km) – 웅석봉하부헬기장(2.5km) – 점촌마을(6.4km) – 탑동마을(1.5km) – 운리마을(0.7km)

 

*이번주도 어김없이 우리 부부는 울산에서 지리산 둘레길7코스 걷기를 위해 새벽에 출발한다.

 울산에서 2시간30분 네비 안내를 받으면서 10월의 끝자락 지리산 가을을 즐기기 위해 기대를

 안고 출발지 성심원앞에 10시도착 그런데 변수 새벽에 집사람의 신발을 한쪽만 두개를 가지고 왔다

 황당하다 급히 차를 돌려 산청읍으로 신발 구하려 간다 급하게 1회용 운동화 구매 다시 출발지

 성심원 12시 출발한다.

 가끔 이런일이 자주 발생한다 나이 탓인가?????

 

경상남도 산청군 산청읍 내리마을 성심원과 단성면 운리를 잇는 13.4km의 지리산둘레길. 이 구간은 웅석봉 턱밑인 800고지까지 올라가야하는 힘든 오르막과 탑동마을로 가는 긴 내리막 임도를 품고 있다. 풍현마을과 어천마을을 이어주는 아침재, 웅석봉에서 흘러 경호강에 오르는 어천계곡, 길에서 내려다 보이는 청계저수지가 아름답다. 단속사터였던 탑동마을에서 동서삼층석탑과 당간지주 그리고 산청 삼매 중 하나인 정당매를 만나 역사와 걷는 길이다.

*1박2일의 첫날 신발 사건으로 출발시간이 2시간 지연 12시에 7코스 출발합니다.

*오늘도 우리 부부는 지리산 둘레길위에 발자욱을 남겨 봅니다.

1. 성심원
성심원은 1959년 프란치스꼬 수도회의 일원인 작은형제회 소속으로 한국에 선교사로 파견된 꼬스탄죠쥬뽀니 신부에 의해 설립되었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모범에 따라 소외된 이웃인 한센인들을 받아들여 보호와 치료에 헌신하였다. 지금은 중증장애인을 포함한 복지시설로 운영되고 있다. 아직도 사회적 차별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현실에서 열린 시설로의 변화를 위해 지리산둘레길이 지나면서 공간을 개방하였지만, 현재는 이곳을 통과하진 않는다. 성심원 내에 있던 지리산둘레길 산청센터는 자리를 옮겼고, 성심원 앞 옛 나루터를 지나 길은 이어진다.

*성심원에서 경호강을따라 시원한 숲길을 진행합니다.

*잠시 후 만나는 옛 경호강 나루터 흔적.

*성심원 경호강 나루터 이야기.

*성심원 나루터를 지나 경호강따라 가다 이어지는 길은 우측 산으로 방향을 바꾼다.

2. 어천마을
어천마을은 산청군 단성면과 산청읍의 경계에 있는 경호강변의 마을이다. 예전에 어리내라 하고 우천(愚川)으로 부르다가 어천(漁川)이 되었다. 피서지로도 꽤 알려진 어천계곡이 마을을 지나는데, 지금은 작은 마을 전체가 별장과 펜션으로 변신을 거듭해 예전의 오지마을 모습은 거의 사라진 셈이다. 마을 앞 경호강은 지금은 다소 탁해지고 낚시보다는 래프팅이 먼저 떠오르는 지역이지만, 예전에는 쏘가리나 꺽지가 많이 잡히는 낚시 명소였다고 한다.
 

*어천 갈림길에서 직진한다.

*인도길따라 경사도가 있는 오르막을 한없이 올라간다 힘든 코스다.

*한참을 가다 고개들어 올려다 본 지리산 자락의 가을색.

*진행길에 가끔씩 보여지는 지리산 자락의 마을모습.

*오르막 끝에서 만나는 고개 여기가 무슨 고개인가??

*여기는 아침재 ......

3. 아침재
성심원에서 오르막 임도를 한참 오르면 산청읍 내리의 아침재가 나온다. 어천마을을 경유하는 순환구간과 성심원-운리구간이 만나는 곳. 아침재는 풍현마을과 어천마을 사이의 고갯길로 참나무숲과 솔숲, 히어리 군락지를 지난다. 히어리는 이름이 외래어 같지만 순 우리말이며(이름의 유래는 명확하지 않다) 지리산 곳곳에서 봄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우리나라 특산종이다.
 

*아침재에서 내려다 본 지리산 자락의 시골마을.

*119농원에서 좌측으로 내려감.

*웅석사앞 통과.

*웅석사 지나 만나는 골짝기에서 좌측으로 진행.

*골짝기의 작은 하천을 건너 진행.

*걷기중 지리산 가을 풍경을 만끽 할수 있어어 너무 좋았어요.

*산길을 걸어면서 바라 본 지리산 능선의 가을빛깔 한순간에 피로를 날려 주네요.

*우리의 마음을 아는지 곳곳에서 가을을 느끼게 하네요.

*막바지 나무 계단을 올라 갑니다.

*웅석봉 하부헬기장 도착 여기서 잠시 쉬어 갑니다.

4. 웅석봉 하부헬기장
웅석봉은 산청읍 내리에 자리 잡고 있는 1,099m의 높은 산이며 지라산의 끝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웅석봉은 곰이 떨어져 죽었다는 전설이 전해질 만큼 경사가 심하고 험하다. 하지만 곳곳에서 만나는 이름 없는 폭포와 아기자기한 소(물웅덩이)는 험난함을 잊게 한다. 지리산둘레길은 웅석봉 정상을 오르진 않으나, 지리산둘레길 최고의 된비알을 참을성 있게 올라야 하는 난이도 상의 구간이다. 가빠진 숨이 턱에 차오를 무렵 고갯마루에 올라선다. 해발 약 800m의 웅석봉 하부헬기장이다. 곰바우산 꼭대기를 눈앞에 둔 지점에서 지리산둘레길은 왼쪽으로 꺾인다. 여기부턴 임도를 따라 걷는 내리막길이다. ‘달뜨기 능선’(지리산 치밭목 쪽에서 쳐다보면 달이 뜨는 능선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웅석봉에서 감투봉까지의 능선을 일컫는다.)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 웅석봉 능선을 바라보며 내려간다.
 

*웅석봉 하부헬기장에서 휴식 후 우리는 임도길따라 우측으로 진행.

*이게 무슨 꽃인지 길가에 많이 보입니다.

*진행길에서 잠시 포토타임.

*임도길은 웅석봉 산허리를 돌아 이어집니다.

*웅석봉의 지리산 둘레길 단풍으로 길손 맞이를 하네요 너무나 아름다운 동행입니다.

*임도길따라 더디어 차단시설이 있는지점도착.

*지리산 성불성사입구 도착.

*임도길위에 만나는 마을길 도착.

5. 점촌마을
헬기장에서 임도를 따라 내려오는 길에 점촌마을을 만난다. 점촌은 쇠를 녹여 농기구를 만들던 점이 있었다 하여 점촌이라 불렸다. 내려갈수록 멀리 있던 청계저수지가 가까이 다가온다. 깊은 골에 맑은 물이 고인 산중호수다. 지리산 끝자락인 웅석봉 아래에 자리 잡은 청계계곡은 많은 이들이 찾는 휴양지다. 청계저수지가 생기면서 점촌마을이 수몰되고, 저수지 주변에 전원주택과 펜션들이 지어졌다.
 

*이제 포장로따라 내려갑니다.

*발아래에 탑동마을에서 저녁연기가 피어 오르고 있네요.

*임도길끝 마을입구에 웅석봉군립공원안내도.

*아주 오랜만에 보는 맨드라미꽃의 모습 반갑다.

*정당매에 관한 누각.

위치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호암로673번길 12-1 (단성면) 부근

경남 산청군 단성면 운리, 지리산 줄기가 힘차께 뻗어 내려오다가 멈춘 옥녀봉 아래 남향으로 자리한 단속사 절터에는 동.서의 삼층석탑과 주춧돌이 어지러이 놓인 가운데 매화나무 고목이 한 그루 서 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의 매화나무로서는 수령이 가장 오래된 정당매(政堂梅)이다.

인재 강희안(1419~1464)의《양화소록(養花小錄에)》에 보면 우리 선조 통정공께서 소년시절에 지리산 단속사에서 글공부를 하실 때에 손수 매화 한 그루를 뜰 앞에 심어놓고, 시 한 수를 읊었다고 씌여 있다. 여기서 인재가 말하는 선조는 고려 말기의 문신인 통정(通亭) 강회백(1357~1402)으로 우왕2년(1376)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점점 높아져서 정당문학(政堂文學, 중서성과 문하성의 종2품 벼슬)겸 대사헌에 이르렀다. 공양왕 4년(1392) 정몽주가 살해된 뒤 진양에 유배되었다가 조선 건국 후 태조 7년(1398) 동북면 도순문사(都巡問使)가 되었다. 그는 경남 산청 출신으로 강희안의 조부가 되며 통정이 소년시절 정당매를 심고 시를 읊었다.

통정집에 기록된 또 하나의 시는 그가 46세로 일생을 마치기 전에 손수 심은 정당매를 찾아와 읊은 시로써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커다란 감동과 감회를 느끼게 한다. 단속사의 스님들이 공의 재덕(才德)을 생각하고 깨끗한 풍채와 고매한 품격을 사모하여 그 매화를 보면 곧 공을 본 듯 하였다. 해마다 흙으로 뿌리를 다져주고 북돋아 기르기를 때를 맞춰 알맞게 하였다. 그 가지의 모양이 가까스로 굽고 또 푸른 이끼가 나무줄기를 감싼 것이 《매보(梅譜)》에서 말한 고매(古梅)와 다름이 없으니 참으로 영남의 한 고물이라 하겠다. 이로부터 영남에 나랏일로 오는 사람들이 이 고을에 오면 누구든지 단속사를 찾아서 그 매화를 감상하고 우리 선조의 시운에 맞춰 시를 써서 문 위에 걸어놓곤 하였다. 이와 같이 단속사의 스님들은 이 매화나무를 극진히 보살피게 되었고, 통정공의 후손들과 영남에 내려오게 된 관리들이 정당매를 찾게 되었다.

이 매화나무의 나이는 통정공이 소년시절 단속사에서 글을 읽을 때 심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그가 이 절에서 공부한 시기를 20세 이전의 등과하기 전으로 본다면 대체로 1376년 이전에 식재된 것으로 볼 수 있어 그 수령은 630년이 넘었을 것으로 본다. 현재 정당매는 높이 8m에 둘레가 1.5m로서 근간에서 4본의 지간이 생겨 위로 혹은 옆으로 뻗었다. 꽃의 색깔은 백색이며 홑꽃이다. 3월 20일 전후이면 어김없이 꽃망울을 터뜨려 맑은 향기를 퍼뜨린다. 후손들은 이 정당매를 기념하기 위하여 비각을 짓고 비를 세웠다. 매각(梅閣)은 1915년에 매비의 건립과 함께 건립된 것으로 ‘정당매각(政堂梅閣)'이란 넉자로 된 현판이 걸려 있으며, 비각 안에는 매각을 세운 연유를 기록한 ‘정당매각기(政堂梅閣記)'와 통정공의 매화원운(梅花原韻)의 시와 후손들의 시 여러 편이 걸려 있다. 현재 이 정당매는 1982년 11월 10일자로 경상남도의 도나무(고유번호 12~41호)로서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단속사지 동.서 삼층석탑

단속사지 동.서 삼층석탑 전경.

단속사 옛터의 금당터 앞에는 동서로 두 탑이 서 있는데, 그중 동쪽에 세워진 것이 이 탑으로, 2단의 기단에 3층의 탑신을 올린 전형적인 신라시대 석탑의 모습이다. 기단의 아래층은 [ㄴ]자 모양의 돌을 이용해 바닥돌과 동시에 만들어졌다. 그 위로 기단을 한 층 더 올린 후 몸돌과 지붕돌을 교대로 쌓아 탑신을 올려놓았다. 꼭대기에는 네모난 받침돌 위로 머리장식의 일부가 남아있다. 전체적으로 상·하의 비례가 적당하고, 위로 오를수록 탑신의 크기가 균형을 이루도록 구성되어 있어 그 모습이 아름답게 보인다. 함께 세워져 있는 서탑과 비교할 때 그 규모와 수법이 거의 동일하여 같은 시대의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쌍탑의 배치와 더불어 주목되는 작품으로 통일신라 후기의 조성 기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단속사지에는 신라시대의 유명한 화가 솔거가 그린 유마상이 있었다고 전하는데, 지금은 알 수가 없으며, 동 삼층석탑은 신라 중기 이후의 전형적인 신라 양식을 갖추고 있다. 특히 기단부가 상·하 2층이며, 하층의 탱주가 2주이고, 상층의 탱주가 1주인 점은 신라 중대 이후의 석탑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단속사지를 지나 도로와 합류 탑동 버스 정류장에서 우측으로 도로따라 진행.

*탑동마을 입구에 있는 이정목.

*도로따라 진행 운리마을에 있는 '다물평생교육원' 지금은 폐원된 건물이네요.

*오늘의 코스 7코스는 웅석봉 산허리를 돌고돌아 운리마을 도착 거리보다 시간이 많이 걸림 웅석봉 헬기장까지 

 오르막 구간이 길어 조금 난이도가 있는 구간입니다. 소요시간=5시간

 이렇게 지리산 둘레길 7코스 완보를 신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