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재미난 이야기..

방랑시인 김삿갓에 얽힌 이야기

문수산 아래 2010. 7. 2. 13:04

   영월 김삿갓의묘 /사진

  

             

書堂乃早知     (서당내조지 요)  서당은 내가 이미 가보아서 알고있는데
             房中皆尊物     (방중개존물 이다)  서당 방안에 있는 사람들은 지체높은체 하드라
生徒諸未十     (생도제미십 인데)  생도들은 모두합처도 열명도 못되고
             先生來不謁     (선생내불알 이다)  훈장은 그래도 아직도 나를 찾아오지 않는구나


 

자신을 푸대접하는 훈장에게 한방 먹인 시로 발음대로 하면 성적 비하의 욕설이면서도 

뜻으로 풀면 결코 욕이아닌 정말 기가 막힌  대단한 오언절구 한시입니다

 

내용은

추운 겨울날 김삿갓(김병연)이 서당에 찾아가 훈장에게 하룻밤

재워주기를 청하나 김삿갓인줄 알아보지 못하고 걸인으로 오인하고

야박하게 거절하자 인정없는 훈장을 욕한 시입니다.

 

훈장은 술에는 밑 빠진 독이나 다름없었다.

어쩌면 자기가 좋아했다는 절세미인을 잊지 못하는

괴로움을 지금까지도 술로 달래 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선비로서의 긍지만은 대단하여 취중에도 김삿갓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몇 번이고 되 뇌이고 있었다.

 

자네가 시조박이나 짖는다고 철없이 거들먹거려대기는 하네만

내가 보기엔 아직도 口尙乳臭야. 암 구상유취구 말구.

선비다운 점이라고는 찾아 볼 수도 없는 주제에 오만하기 그지없는 자세로

횡설수설하는 바람에 밤새도록 잠을 설치고 말았다. 

김삿갓이 날이 밝자마자 붓을 들어.............

 

訓戒訓長

이란 제목으로 호되게 꾸짖는 시 한수를 써갈겨놓고, 온다간다

소리도 없이 서당을 빠져 나와 묵묵히 이슬 길을 걸어가고 있는 김삿갓의 마음은

서글프기 하고 통쾌하기도 했다.

 

化外頑氓怪習餘  두메산골 괴팍스러운 훈장은

文章大家不平噓  문장대가를 알아보지도 못하네

?盃測海難爲水  종지 같은 술잔으로 바닷물을 어찌 되며

牛耳頌經豈悟書  쇠귀에 경 읽기니 무엇을 깨달으랴

 

含黍山間奸鼠爾  그대는 기장이나 갉아 먹는 산골 쥐요

凌雲筆下躍龍余  나는 붓으로 구름을 일으키는 뛰는 용이로다.

罪當笞死姑舍已  백 번 죽어 마땅한 네 죄를 잠시 용서하노니

敢向尊前語詰?  어른 앞에서 행여 까불지 말지니라.

蘭皐平生詩 난고 평생시 (난고=김삿갓의 호)

鳥巢獸穴皆有居   顧我平生獨自傷      
조소수혈개유거   고아평생독자상

새도 둥지가 있고 짐승도 굴이 있건만
내 평생을 돌아보니 너무나 가슴 아파라.

芒鞋竹杖路千里   水性雲心家四方      
망혜죽장로천리   수성운심가사방

짚신에 대지팡이로 천 리 길 다니며
물처럼 구름처럼 사방을 내 집으로 여겼지.

尤人不可怨天難   歲暮悲懷餘寸腸      
우인불가원천난   세모비회여촌장

남을 탓할 수도 없고 하늘을 원망할 수도 없어
섣달 그믐엔 서글픈 마음이 가슴에 넘쳤지.

初年自謂得樂地   漢北知吾生長鄕      
초년자위득락지   한북지오생장향

초년엔 즐거운 세상 만났다 생각하고
한양이 내 생장한 고향인 줄 알았지.

簪纓先世富貴人   花柳長安名勝庄      
잠영선세부귀인   화류장안명승장

집안은 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렸고
꽃 피는 장안 명승지에 집이 있었지.


 

隣人也賀弄璋慶   早晩前期冠蓋場      
인인야하농장경   조만전기관개장

이웃 사람들이 아들 낳았다 축하하고
조만간 출세하기를 기대했었지.

髮毛稍長命漸奇   灰劫殘門飜海桑      
발모초장명점기   회겁잔문번해상

머리가 차츰 자라며 팔자가 기박해져
뽕나무밭이 변해 바다가 되더니,

依無親戚世情薄   哭盡爺孃家事荒      
의무친척세정박   곡진야양가사황

의지할 친척도 없이 세상 인심 박해지고
부모 상까지 마치자 집안이 쓸쓸해졌네.

終南曉鍾一納履   風土東邦心細量      
종남효종일납리   풍토동방심세양

남산 새벽 종소리 들으며 신끈을 맨 뒤에
동방 풍토를 돌아다니며 시름으로 가득 찼네.

心猶異域首丘狐   勢亦窮途觸藩羊      
심유이역수구호   세역궁도촉번양

마음은 아직 타향에서 고향 그리는 여우 같건만
울타리에 뿔 박은 양처럼 형세가 궁박해졌네.

南州從古過客多   轉蓬浮萍經幾霜      
남주종고과객다   전봉부평경기상

남녘 지방은 옛부터 나그네가 많았다지만
부평초처럼 떠도는 신세가 몇 년이나 되었던가.

搖頭行勢豈本習     口圖生惟所長      
요두행세기본습     구도생유소장

머리 굽실거리는 행세가 어찌 내 본래 버릇이랴만
입 놀리며 살 길 찾는 솜씨만 가득 늘었네.


 

光陰漸向此中失   三角靑山何渺茫      
광음점향차중실   삼각청산하묘망

이 가운데 세월을 차츰 잊어 버려
삼각산 푸른 모습이 아득하기만 해라.
 
江山乞號慣千門   風月行裝空一囊      
강산걸호관천문   풍월행장공일낭

강산 떠돌며 구걸한 집이 천만이나 되었건만
풍월시인 행장은 빈 자루 하나뿐일세


千金之子萬石君   厚薄家風均試嘗      
천금지자만석군   후박가풍균시상

천금 자제와 만석군 부자
후하고 박한 가풍을 고루 맛보았지.

 

.
身窮每遇俗眼白   歲去偏傷빈髮蒼     

신궁매우속안백    세거편상빈발창

신세가 궁박해져 늘 백안시 당하고
흐르는 세월속에 머리만 희었도다

歸兮亦難佇亦難   幾日彷徨中路傍      
귀혜역난저역난   기일방황중로방

돌아갈래도 어렵지만 그만둘래도 어려워
노상에서 방황하기 몇 날 몇 해이던고...

 

김삿갓은 안동김씨로서 본명은 병연(炳淵)이요 호는 난고(蘭皐)인데

그가 다섯 살 때 그의 조부 김익순(金益淳)이 평안도 선천부사로 있을 때

서북인을 등용하지 않았던 조정에 불만을 품은 홍경래가 난 을 일으켜

선천 가산군을 수중에 장악하려하자 정시 가산 군수는 끝내 저항하다가 홍경래의 손에 죽었으나,

선천부사 김익순은 홍경래에게 항복하였던 것이 화근이 되어

김익순은 처형되고 그의 부친 김안근도 배소에서 죽었다.

병연이 연루를 피하기 위하여 김익순의 하인이었던 김성수에 의해 그의 고향인

황해도 곡산에서 은신하여 자랐던 것이다.

 

김익순의 죄는 본인에 국한하게 되자 그의 형제는 어머니에게로 돌아왔고

그 모친은 세상에 떳떳이 살수 없으므로 산골을 찾아 이천, 가평, 평창 등지를 전전하다가

영월 삼옥리에 와서 살게 되었다.

당시 영월은 도호부였으므로 동헌에서 백일장을 보게 되었고, 김병연은 이에 응시하게 되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시제(時題)가 「정시 가산군수의 충성스럽게 죽은 것을 논하고

김익순에 죄를 규탄하라」는 것이었다.

할아버지의 사연을 모르고 자란 김병연은 정군수를 예찬하고 김익순의 죄를 호되게 나무라는

글을 써서 장원을 하였다.

장원한 뒤 모친의 말에 의해서 김익순은 바로 자기 자신의 조부임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난 후 삼옥리에서 살 수 없어서

충청도 의풍 가는 길목인 지금의 하동면 와석리 어둔의 무인촌에 정착하게 되었으며,

조상을 지탄한 죄책감과 운명에 대한 회의로 삿갓을 쓰고 방랑길에 나섰던 것이다.

전국을 방랑하면서 유명한 많은 시를 지었으며 57세때 전라도 동복에서 객사한 것을

둘째 아들 익균이 자기 동네인 지금의 하동면 와석리 노루목에다 장사 지냈던 것이다.

그 후 120년이 지남에 따라 세상에서 잊혀져 가던 것을...........

1982년 10월 17일 향토사학자 정암 박영국 옹 이 이를 찾아내서 세상에 알리게 되었다.

이응수 선생은 김삿갓의 시문은 세계수준이라고 주장하였고, 일본 러시아에서도

김삿갓의 시가 크게 인기가 있다고 1985년 11월 13일자 동아일보에서 보도하였다.

이러한 사실들은 김삿갓이 세계적인 시인임을 뒷받침하는 것이며

김삿갓의 유일한 유적지인 영월에서는

[시선 김삿갓 유적 보전위원회]를 구성하고, 유적 보전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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