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갈맷길 걷기

부산 갈맷길4-2코스(감천항~다대포 몰운대)12.5km

문수산 아래 2017. 3. 28. 22:05



*날  자 : 2017년 03월 25일(토요일). 맑음.5~15도

*누구와 : 두팀 부부(4명)

*코 스 :감천항~두송반도전망대~다대포~몰운대(12.5km)4시간50분


*주말을 맞이하여 갈맷길 4-2코스를 걷기위해 울산에서 부산 감천항

 부두까지 1시간을 달려 도착 시원한 봄바람을 맞으며 갈맷길을 시작합니다.



*감천항에서 4-2코스를 시작합니다.

*감천항의 부두길을 걸어가요.

*하늘에는 금방이라도 비가올것같은 날씨네요.

*부두길을 따라 두송반도까지 가요.

*감천항 부두에는 고철을 많이 취급하는지 많이 눈에 띄네요.

*감천항 부두를 뒤로하고 두송반도로 향하고 있어요

*도로 한복판에 마을의 수호신인 성황당이 자리하고 있네요.

*길을 건너 두송반도 전망대를 향하여 ....

*벌써 길가의 벗나무에는 꽃이 한두송이씩 피어나네요.

*두송반도 가기위해 언덕에서 바라본 감천항의 모습.

 
부산광역시 사하구 감천동에 있는 항구.


[개설]
감천항은 북항, 남항, 다대항, 부산 신항과 함께 부산항을 구성한다. 부산항은 1876년(고종 13) 2월 인천항, 원산항에 앞서 최초의 근대 무역항으로 개항되었다. 1898년 부산해관 부지 매축 공사 및 확장 공사가 그 시작이나 당시에는 상업 항구로의 시설은 갖추지 못하였다.


[건립 경위]
부산항의 물동량 증가로 인하여 고철, 양곡, 시멘트 등 전용 부두의 필요성이 제기됨에 따라 1978년 북항의 보조항으로서 감천항 개발 기본 계획이 수립되었다. 예산의 부족으로 감천항 개발 기본 계획은 미루어졌으나, 부산항의 시설 부족으로 인하여 민간 기업을 참여시켜 공사를 착공하였다. 감천항 개발 사업은 1979~1999년간 정부 1,340억 원, 민간 1,610억 원 총 2,950억 원을 들여 추진되어, 중앙 부두와 관공선 부두, 감천 제7 부두는 1990년부터 운영되기 시작하였고, 감천 제1, 제2, 제3, 제5, 제6 부두와 다대 부두는 1995년부터 운영되었으며, 감천 제4 부두는 2008년에 완공되어 운영되고 있다.


[구성]
감천항은 일반 부두로는 감천 제1~7 부두, 관공선 부두, 다대 부두가 있다. 2013년 3월 기준으로 감천 제1 부두는 길이 831m에 전면 수심 5.5~8m이며 접안 능력은 8,000톤 급 1척, 6,000톤 급 1척과 5,000톤 급 1척, 3,000톤 급 1척, 2,000톤 급 3척이다. 감천 제2 부두는 길이 1,062m에 전면 수심 9~11m이며 접안 능력은 2만 톤 급 2척, 1만 톤 급 2척이다. 감천 제3 부두는 길이 1,055m에 전면 수심 9~11m이며 접안 능력은 1만 톤 급 1척, 5,000톤 급 4척, 1,000톤 급 4척이다.

감천 제4 부두는 길이 500m에 전면 수심 7.5m이며 접안 능력은 5,000톤 급 3척이다. 감천 제5 부두는 길이 802m에 전면 수심 6~8m이며 접안 능력은 1만 톤 급 2척, 5,000톤 급 4척이다. 감천 제6 부두는 길이 590m에 전면 수심 8~13m이며, 접안 능력은 3만 톤 급 2척, 2만 톤 급 1척, 1만 톤 급 1척, 5,000톤 급 2척이다. 감천 제7 부두는 길이 600m에 전면 수심 13m이며 접안 능력은 5만 톤 급 2척이다.

관공선 부두는 길이 831m에 전면 수심 7.5m이며 접안 능력은 1,000톤 급 1척이다. 다대 부두는 길이 390m에 전면 수심 7.5m이며 접안 능력은 5,000톤 급 2척이다. 감천 중앙 부두는 부산항 TOC[Terminal Operation Company, 부두 운영 회사] 부두로, 동진에서 운영하고 있다. 부두 길이는 942m에 전면 수심은 6~12m로 잡화 328만 5,000톤의 하역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접안 능력은 3만 톤 급 2척, 5,000톤 급 1척, 3,000톤 급 1척, 1,000톤 급 1척이다.


[현황]
감천항은 현재 부산 신항 건립 이후 급속한 물동량 감소를 보이고 있으며, 특히 컨테이너 처리량이 급감하고 있다. 2007년 57만 4775TEU[Twenty-foot Equivalent Uunit, 20피트 길이의 컨테이너 크기를 부르는 단위]에서 2008년 55만 6108TEU로, 2009년 4만 2987TEU, 2010년 1,186TEU, 2011년 187TEU, 2012년 468TEU로 급감하였다.

감천항에는 항만 기능 강화를 위하여 외곽에 동 방파제와 서 방파제가 조성되어 있다. 양쪽 방파제 안쪽으로 매립된 호안을 따라서는 선박 수리 및 조선소, 컨테이너 야적장, 냉동 및 냉장창고와 수산 가공 업체 등이 자리하고 있다. 물류 창고 및 공장 설비가 자리한 감천항에는 입구 쪽의 양쪽 방파제가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낚시터이다. 수심과 조류가 원활하여 고급 어종이 풍부하다고 잘 알려져 있다.

또한 감천항 입구 두도의 비탈 사면에서 8000만 년 전 백악기 시대의 공룡 유골이 발굴되었으며, 국가 지질 공원으로 지정된 지역이기도 하다. 동쪽으로는 송도와 암남 공원이 자리하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다대포와 이어져 있어 항만 기능 외에도 복합적인 문화 공간으로 활용 가치가 높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부두가라 그런지 냉동창고가 많이 눈에띄네요.

*감천항의 전경

*두송반도 가는길.

*두송반도 시작 지점이네요.

*해안길 두송반도 안내도.


 [정의]
부산광역시 사하구 다대동에 있는 반도.


[명칭 유래]
두송 반도(頭松半島)는 반도의 끝자락에 두송산(頭松山)이 자리하고 있어 붙은 이름으로 추정된다.


[자연 환경]
두송 반도는 감천만(甘川灣)과 다대만(多大灣) 사이에 돌출한 지형으로, 길이는 약 3㎞이고 폭은 평균 0.7㎞이다. 가파른 사면과 암석 해안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승학산(乘鶴山)에서 이어진 봉화산(烽火山)[150m]이 반도의 북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봉화산에서 이어진 산줄기가 반도의 끝자락에 자리한 두송산[95m]까지 남남동으로 뻗어 있다.

봉화산에서 두송산까지 이어진 산지는 송림으로 덮여 있으며, 특히 두송 반도 남단에 자리한 두송산은 구릉에 가까운 산이나 사면이 급하고 짙은 송림으로 덮여 있어 사람의 왕래가 쉽지 않다. 특히 두송산은 다대포의 자연 방파제로서 동남풍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다대포항을 드나드는 선박의 자연 표지로 이용되기도 한다. 두송 반도 주변 바다에는 몰운도, 쥐섬, 모자섬, 망사섬, 아들섬, 거북섬 등의 크고 작은 섬들이 있다.


[현황]
두송 반도는 부산광역시 사하구 다대 2동에 속하며, 동쪽 해안으로는 감천항이 조성되어 있고 감천항로가 통과하며, 서쪽으로는 다대항이 있다. 다대 반도 북서쪽으로는 다대 4지구 아파트 등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어 있으며, 두송중학교·다송중학교·다선초등학교 등이 자리하고 있고, 다대포 통일 아시아드 공원도 조성되어 있다. 두송 반도로 연결되는 대중교통은 불편한 편으로, 시내버스와 마을버스를 이용하면 두송 반도 입구에 하차할 수 있다.

두송 반도 서쪽 해안의 숲길을 따라 두송 반도의 끝자락까지 다대항을 바라보며 걷는 해안 길은 도보로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해안으로 내려오는 계단도 잘 정비된 상태이며, 동쪽 해안을 따라 연결된 도로에서는 감천항의 모습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두송 반도에는 원양 어선 기지, 원목·컨테이너 부두, 수리 조선소가 있다.

두송 반도는 산지와 해안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두송만취(頭松晩翠)[두송산 위에 걸린 비취빛 저녁 하늘의 아름다움을 뜻함]라 하여 예로부터 다대 팔경(多大八景)의 하나로 칭해졌다. 두송 반도의 끝자락에 자리한 두송산은 조선 시대에는 몰운산(沒雲山), 금티산과 함께 병선을 만드는 재료를 조달하기 위해 나무의 벌채를 금지한 바 있는 경상 좌우영 관할의 봉산(封山)으로 지정된 군사상 중요한 산이었으며, 현재도 중요 시설들이 자리하고 있다. 해안 갯바위와 방파제에는 주말이면 많은 낚시꾼들이 모여든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두송반도 해안 둘레길의 벗나무길...

*길은 좋은되 사람들이 별로 없네요.

*두송반도에서 바라본 감천항의 모습.

*두송반도 산책로 안내도.

*두송반도 끝지점에 갈맷길 4-2코스의 중간 스템프 찍는 곳이 있네요.

*두송반도 끝지점의 모습.

*두송반도 갈맷길 안내도.

*복사꽃 아래에서 인증샷.

*좋은 배경을 등뒤로하고 우리도 흔적을....

*저멀리 오늘의 종착지 다대포 몰운대가 보이네요.

*대선조선 도크에는 두척의 배가 건조되고 있네요.

*산에는 진달래가 우리를 반기고 있네요.

*두송반도를 뒤로하고 해안도로로 내려가면서 개나리가 만발...

*몰운대5.5km 남았네요.

*두송반도 둘레길에서 내려온지점.

*갈맷길 4코스 안내도 앞에서...

*여기는 부산 국가지질공원이라네요.

*해안가에 체육시설을 많은 분들이 이용하고 있네요.

*조용한 해안가의 모습.

*신우 농수산이라는 건물을 통과...

*해안가를 벗어나 앞에 보이는 도로에서 좌회전 진행.

*더디어 다대포 해변공원 도착.

*저 보이는 건물이 다대포 해변공원 관리센터네요.

*요런 이쁜 갈매기 비상의 조형물이 눈길을 끄네요.

*앞에 보이는 곳이 몰운대 가는길.

*여기가 몰운대 입구.


 [정의]
부산광역시 사하구 다대동에 있는 명승지.


[개설]
몰운대(沒雲臺)의 남쪽 끝은 파도의 침식에 의해 형성된 해식동(海蝕洞)이 발달되어 있고, 배후인 육지 쪽에는 수려한 모래 해안인 다대포 해수욕장이 있다. 몰운대는 예로부터 우거진 숲과 기암괴석, 출렁거리는 파도와 수려한 모래밭 등 빼어난 경승지로 이름나 있을 뿐 아니라, 갖가지 모양의 크고 작은 무인도가 몰운대 주위에 산재해 있어 풍경이 한층 더 돋보인다.


[명칭 유래]
몰운대는 낙동강 하구에 안개와 구름이 끼는 날에는 섬 전체가 안개와 구름 속에 잠겨 보이지 않는다는 데서 유래하였다고 전한다. 몰운대의 지형은 학이 날아가는 형상을 하고 있다.


[자연 환경]
몰운대는 16세기까지만 해도 몰운도(沒雲島)로 불리던 섬이었으나, 낙동강에서 내려오는 토사의 퇴적으로 다대포와 연결된 전형적인 육계도(陸繫島)[목섬]이다. 몰운대에서 낙동강 칠백 리 물길을 따라 흘러내린 모래와 흙으로 강과 바다 사이에 형성된 삼각주인 대마등과 장자도, 그리고 부산의 제일 끝에 해당하는 남형제도와 북형제도, 나무섬 등 아름다운 자연 경관이 바라보인다. 몰운대는 부드럽고 아기자기하여 여성적인 느낌이 강하게 느껴지며, 해안 자갈 마당과 어우러진 해안선은 부드럽고 완만한 편이다.

몰운대의 빼어난 자연 경관은 다대 팔경(多大八景) 중 제1 경인 ‘몰운관해(沒雲觀海)’로 몰운대에서 바라보는 바다의 아름다운 경관을 말한다. 또 하나의 제1 경은 ‘화손낙조(花孫落照)’로 몰운대 동쪽 끝자락 화손대(花孫臺)에 깔려 드는 저녁노을의 빼어난 아름다운 경치이다. 지금도 개발되지 않은 순수한 자연의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이곳은 군사 작전 지역으로 민간인의 출입이 금지되었다가, 1997년 이후 출입이 허용되었다. 맑은 날이면 수평선 저 멀리 대마도가 보인다.

몰운대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동래부사 이춘원(李春元)의 시가 『동래부지(東萊府誌, 1740)』 제영잡저(題詠雜著)조에 전한다. 그 내용을 보면, “호탕한 바람과 파도는 천만 리에 펼쳐 있고/ 흰 구름이 하늘을 덮으니 외로운 몰운대는 사라지고/ 동쪽 하늘 둥근 아침 해는/ 늘 선인(仙人)이 학을 타고 오는 것만 같구나[浩蕩風濤千萬里 白雲天半沒孤臺 扶桑曉日車輪赤 常見仙人駕鶴來]”라고 하였다. 또한 통신사(通信使) 조엄(趙儼)은 『해사 일기(海擄日記)』[1763]에서 해운대와 몰운대의 경치를 비교한 뒤, “몰운대는 신라 이전에는 조그마한 섬으로 고요하고 조용한 가운데 아름답고 아리따운 여자가 꽃 속에서 치장을 한 것 같다”라며 절경에 감탄하였다 한다.

1740년(영조 16) 편찬된 『동래부지』 고적조에 “몰운대는 다대포 남쪽 1리에 있다”라고 하였다. 진재(眞宰) 김윤겸(金允謙)[1711~1775]이 1770년(영조 46) 소촌도 찰방(召村道察訪)에 임용되어 진주를 중심으로 한 인근을 유람하고 그린 『진재 김윤겸필 영남기행화첩(眞宰金允謙筆嶺南紀行畵帖)』[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56호]에 실려 있는 몰운대 그림은 당시 실제 경치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역사 자료이다.


[현황]
몰운대에는 다대포 객사(多大浦客舍)[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3호]와 임진왜란 당시 부산포 해전(釜山浦海戰)에서 선봉에 서서 끝까지 싸우다가 순절한 녹도 만호 정운(鄭雲) 장군을 기리는 정운 순의비(鄭雲殉義碑)[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20호]가 세워져 있다. 소재지 주소는 부산광역시 사하구 다대동 산144번지 일원이며, 1972년 6월 26일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27호로 지정되었다. 면적은 약 49만 2300㎡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입구의 조형물.

*갈맷길 4코스 안내도.

*갈맷길 4-2코스 완주 도보인증대가 입구에 있네요.

*몰운대 둘레길 가는길에 돌아본 다대포 일원의 모습.

*몰운대 둘레길 가는길.

*몰운대 시비도 있네요.

*몰운대 객사의 모습.

 

다대포 몰운대와 객사

◈ 사하구 다대동 산144번지

◈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호 (1972. 6. 26 지정)

◈ 몰운대 명칭 시도 기념물 27호

 몰운대(沒雲臺)는 낙동강 하구의 최남쪽 바다와 맞 닿는곳에 자리잡고 있다

16세기 까지는 몰운대라는 섬이 있으서나 그후 낙동 강에서 내려 오는 흙과 모래가 쌓여

다대포와 연결 되어 육지가 되었다고 한다 

이 지역은 지형상 안개와 구름이 자주 끼여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안개와 구름에 잠겨서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몰운대(沒雲臺)라는 이름이 생겨나게 되었다. 

몰운대에는 문화재로 지정된 정운공(鄭雲公) 순의비(殉義碑)와 다대포(多大浦) 객사(客舍)

가 있으며, 해안변의 기암괴석(奇岩怪石)과해안변의 상록활엽수림(常綠 葉樹林)은 다대팔경(多大八景) 중 가장 아름다운 경승지(景勝地)이다. 

객사(客舍)란 조선시대 지방 관아건물의 하나로 수령이 초하루와 보름에 대궐을 향하여 망배(望拜)를 드리던 곳이며, 또 사신의 숙소로 이용 되기도 하였다.

다대포를 비롯한 남해안은 옛부터 왜구들의 침략이 심하였던 곳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세종 때 3포의 개항이 있게 되자 그곳의 방어는 중요시되어 부산포·제포에 첨절제사영을 두고 경상좌도에는 부산포영 아래에 다대포 등 10포에 만호영을 두었다.

이 때 영은 장림포에 있었으나, 언제 다대포에 옮겼는지는 불분명하다.

명종 이후 수군제의 변경에 따라 진(鎭)·보제(堡制)가 실시되고 부산포와 다대포는 중요시되어 진이 되었으며, 종전의 좌도의 대부분의 만호영은 보가 되었다.

임진왜란 이후 다시 군제의 변혁으로 다대진은 부산진·두모포진·개운포진·포이포진·서생포진·서평포진과 함께 경상조도의 7진의 하나가 되었다.

다대진은 부산진과 함께 다른 진보다 중시되어 2배의 병선을 보유하였을 뿐만 아니라 다대진첨사는 북경의 만포진첨사와 같이 정3품 당상관이 높은 벼슬이 주어졌으니 이 진의 중요성을 알 수가 있다.

다대포 객사는 언제 창건되었는지 알 수가 없으나, 

현재의 것은 1825년(순조 25)에 중수한 것이다.

원래 첨사영이 있었던 현 다대초등학교 구내에 있던 것을 1970년 몰운대의 현재의 자리에 원형 그대로 이전 복원되었다.

건물은 정문 5칸 팔작 홑처마지붕, 안두리기둥을 배치하여 절단된 대량을 받치고 있다

*몰운대 유원지 안내도.

*몰운대 앞의 등대섬.

*몰운대 자갈마당.

*몰운대 해안가의 모습.

*오늘의 종착지 몰운대에서 완주 기념으로...

*오늘도 무사히 4-2코를 완주 했어요.

*여기가 몰운대 끝지점과 낙동정맥의 마지막지점.

*길이 이쁘게 조성되어 있어요.

*몰운대 끝지점을 돌아나와 화손대 방향으로 진행.

*여기서 화손대 가는 삼거리 지점과 운동시설이 있는 곳.

*다대포 몰운대 둘레길 곳곳에 이런 휴게시설이 잘되어 있네요.


*오늘의 코스를 5시간에 걸처 마무리하고 횟집에서 점심겸 뒷풀이 모습.


*3-2:구간 누계거리:102.9km+12.5km=115.4km

*3-2:구간 누계시간:42시간35분+4시간40분=47시간15분

*3-2:구간 집에서 이동거리:70.3km

             432.2km+70.3km=502.5km

*3-2*구간 경비누계 : 택시: 7,100원,저녁:113,000원               

        종합:679,000원+120,100원=799,100원.....잔금:200,9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