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갈맷길 걷기

갈맷길 5-1코스(낙동강하구둑~가덕도 천가교)22km

문수산 아래 2017. 8. 24. 23:50

*날  자 : 2017년 08월 20일(일요일). 흐리고비.23~31도

*누구와 : 두팀 부부(4명)

*코 스 :낙동강하구둑~명지오션센터~신호대교~신항~천가교(22km)6시간

 

*한여름의 폭염과 하기휴가등으로 한달여만에 갈맷길 걷기를 위해 출발점 하구둑으로 출발 오늘도 간간이 비가 내린다.

 

 

 

*하구언둑입구에서 갈맷길5-1구간을 출발합니다.

 

*좌측 하구둑을 건너갑니다.

 

*웅장한 모습을 들어내고 있네요.


[정의]
부산광역시 사하구 하단동과 강서구 명지동 사이를 잇는 낙동강 하구의 방조제.


[개설]
낙동강 하구둑은 낙동강의 하구를 가로막은 둑으로 1983년 9월에 착공하여 1987년 11월에 준공된 콘크리트 중력댐이다. 시공은 현대건설이 맡았고, 총 공사비는 1896억 원이 들어갔다. 안정적 용수 확보 등 순기능도 있었지만, 동양 최대의 철새 도래지인 낙동강 하구의 환경 파괴를 가져오고 수질이 악화되는 등의 역기능도 나타났다.


[건립 경위]
낙동강 하구 개발을 추진해온 정부는 1974~1977년 사이 낙동강 하구둑 건설 타당성 조사를 했고, 1980년 말 낙동강 하구둑 실시 설계를 거쳐 1983년 4월 23일 착공하였다. 당시 중동 지역의 경기가 퇴조해 국내의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가 필요한 것도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1981년 3월 환경 영향 평가 제도가 도입됐으며 낙동강 하구언 공사에 처음 적용되었다. 정부가 내세운 낙동강 하구둑 건설의 주목적은 염해 방지와 연간 6억 4800만 톤에 이르는 용수 확보였다. 당시 낙동강 하구는 썰물 때 바닷물이 상류 약 21㎞에 지점에 있는 물금 취수장까지 치고 올라가 부산 시민의 취수를 위협했고, 김해 평야의 안정적 농업용수 취수에도 영향을 주었다.


[변천]
낙동강 하구둑의 골격은 준공 때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다만, 만성적인 체증을 빚어온 하구둑 도로는 2~3차로가 넓어졌다. 낙동강 하구둑 공사의 여파로 낙동강 하구의 문화재 보호 구역 약 248㎢ 중 을숙도 지역 13㎢가 현상 변경되고, 동편 사하 지역의 갯벌 198만㎢가 문화재 보호 구역에서 해제되었다.

공사 시작 전부터 야기된 환경 공방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정부 측은 낙동강 하구둑으로 인해 안정적 용수 공급과 매립지 활용 등 경제적 효과를 내세우면서 환경 파괴가 크지 않다고 보는 반면, 환경 단체들은 낙동강 하구의 철새 도래지가 크게 훼손되었고 기수역이 교란되어 많은 생물종이 사라졌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논란 속에서 정부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의 일환으로 낙동강 배수 능력 확충을 위해 을숙도 서편에 길이 305.6m, 대형 수문 5개를 갖는 제2 하구둑을 건설하고 있다.


[구성]
낙동강 하구둑은 주 수문 6문과 조절 수문 4문, 우안 배수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 수문 하나의 길이는 47.5m, 높이 9.2m이고, 조절 수문은 길이 47.5m, 높이 8.3m이다. 하구둑의 총길이는 1,890m이다. 수문부에는 또 어선의 통행을 위한 운하식으로 된 폭 50m의 갑문 1개와 어도 2개소가 설치되어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저멀리 을숙도대교도 보이네요.

 

*여기는 을숙도입니다.

 

 

명칭 유래

새가 많이 살고 물이 맑은 섬이라는 뜻에서 을숙도라는 이름이 붙었다.


자연환경

을숙도의 면적은 0.08㎢이고, 낙동강 하구로 향하여 길게 뻗어 있는 을숙도는 중앙부가 넓고 북단과 남단부가 뾰족하게 튀어나와 있다.

북단에는 좁은 수로를 사이에 두고 일웅도(日雄島)가 있으며, 남단에는 크고 작은 모래톱인 사주(砂洲)가 형성되어 있다. 미세한 토사로 이루어졌으며, 해발 1m 이하의 평지로 수로가 미로처럼 뻗어 있고, 이 수로를 따라 높이 2∼3m의 갈대가 생육한다.

동양 제1의 철새도래지로 잘 알려졌으며, 천연기념물 제179호로 지정된 낙동강하류철새도래지에 속한다. 특히, 겨울철 철새가 군무를 이루며 비상하는 모습은 일대장관이다. 철새는 총 138종에 10만여 마리이다.

이 중에 천연기념물인 황새·저어새·재두루미·느시 등 희귀종도 있으며, 오리과에 속하는 것이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 갈매기과·농병아리과·아비과·매과·수리과·멧과 등도 개체수가 많은 편이다. 철새의 대부분은 겨울새이나 여름철에 찾아드는 여름새와 봄·가을철 잠시 쉬다가 떠나는 나그네새도 있다.


형성 및 변천

낙동강 하구를 잇는 하중도(河中島)로 낙동강이 운반해 온 토사의 퇴적에 의하여 형성된 모래섬이다. 낙동강사주 말단은 크게 하중도군과 사주군으로 구분된다. 상류 쪽은 하중도군이, 말단부는 주로 사주군으로 구성되어 잇다. 이들 사이에는 갯벌이 분포한다. 사주 말단의 미지형 배열은 하구 부근에 운반된 토사가 연안류와 조류의 영향으로 퇴적되어 ‘수중사주→사주→하중도→전면→신사주→합성→하중도’의 과정을 거치면서 발달된 결과이다.

원래 이곳에는 400여 명의 주민이 파를 비롯한 각종 채소와 땅콩을 재배하고 있었다. 그러나 1987년 4월 을숙도를 동서로 횡단하는 낙동강하구둑이 완공되면서 육지로 이주하였고, 섬 자체도 하구둑 건설로 수몰 또는 육지화되면서 옛 모습이 사라져 버렸다.

1916년경 을숙도가 지도상에 처음 나타난다. 1978년 2월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김해군에서 부산시로 편입되었고 1983년 12월 15일 강서구 대저2동에서 사하구 하단동으로 편입되었다.


현황

갈대와 수초가 무성하고 어패류가 풍부하여 한때는 동양 최대 철새도래지였다. 1987년 하굿둑 건설 이후 낙동강 하구역 일대는 매우 빠른 지형·수문·생물 등 자연환경에 변화가 나타났다.

2005년에 철새 도래지인 을숙도 일원의 낙동강 하구를 보전하고, 을숙도의 불법 경작지를 복원하여 생태공원으로 조성하고자 을숙도 인공 습지 생태계 즉, 을숙도 생태공원이 조성되었다. 생태공원 조성 후 갈대가 급속하게 확산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고, 갈대의 확산은 육역화를 초래하여 습지 생태계를 훼손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을숙도의 남단에는 특정 폐기물 처리를 위한 부두 시설이 축조되어 있고, 철새 탐방을 위한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낙동강 하굿둑이 지나는 을숙도와는 달리 남단의 경우는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고 있어서 인위적인 토지이용과 인공시설물이 거의 없는 상태로 습지환경을 유지하고 있다.

을숙도 상단부에는 주차장, 문화화관, 자동차 전용극장, 야외공연장, 인라인스케이트장, 간이 축구장, 휴게소 등 각종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다. 또한 을숙도 조각공원에 세계 여러 나라의 작품 20여 점을 전시하고 있어,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곳 중 하나이다.

 

*을숙도 갑문도 보이네요.

*하구둑을 지나 대로변을 따라 육교도 있고 지나는 우측으로 전망대도....

 

*벗나무 가로수길을 따라가요.

 

*건너편에는 부산현대미술관이 자리하고 있네요.

 

*명호교를 건너갑니다.

 

*저멀리 명지신도시가 보이네요.

 

*명호교 전망대에서 면지신도시를 배경으로 인증샷.

 

*명지 신도시해안선이 뻗어있어요.

 

*을숙도소개 안내판.

 

*날씨가 흐려 조금은 걷기가 좋아요.

 

*해안선의 모습.

 

*안개속에 을숙도대교 하부를 지나가고 있어요.

 

 

*오전 간식타임.

 

*저멀리 가덕도연대봉이 보이기 시작하네요.

 

*해안가에는 새로운 아파트단지들이 많이 있네요.

 

*깨끗하게 정리된 해안선을 따라 가덕신항을 향하여 걷기.

 

*여기가 옛날에는 부산에서 유명한 명지염전이 있던자리.

 

 

[정의]

부산광역시 강서구 명지동 명지도(鳴旨島)에 있던 염전.

[개설]

옛날에는 소금이 화력(火力)으로 끓여서 생산하는 자염(煮鹽)이었으므로 무엇보다 많은 땔감이 필요하였다. 명지도에는 땔감으로 사용되는 갈대가 곳곳에 널려 있었다. 낙동강 하구에 위치한 명지 염전에서는 생산한 소금을 배에 실어 낙동강을 따라 영남 지방의 곳곳에 운반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이점 때문에 소금 상인들은 명지 염전의 소금을 낙동강 상류로 운반하여 상당한 이득을 남길 수 있었다. 정약용(丁若鏞)은 『경세유표(經世遺表)』에서 “명지도의 소금 이득이 나라 안에서 제일”이라고 하였다. 명지도에는 제염업이 크게 발전하여 해안가에 수많은 염전이 분포되어 있었다. 지금도 명지도에서는 문초시 염전, 홍처사 염전, 박진사 염전 등 염전과 관련된 지명이 전해지고 있다.

구한 말
명지도의 동쪽과 서쪽, 남쪽 해안가에 골고루 염전이 분포되어 있었다. 구한말에 발간된 『염업 조사(鹽業調査)』에는 “명지면의 염전 수는 총 37개이며, 염전 면적은 82.86정(町), 생산량은 37,287석(石)”으로 기록하였다. 명지면에서 염전이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는 자연 마을은 동리[9개]이고, 두 번째가 평성[7개], 그 다음이 진목[6개]이다. 염전 면적으로 볼 때는 18.34정을 보유하고 있는 평성이 제일 크고, 다음이 15.73정의 동리이다. 염전의 평균 면적은 2.24정이며, 1정당 생산량은 약 450석이다.

[변천]

낙동강 하구의 명지도에서 언제부터 소금이 생산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조선 시대부터는 본격적으로 소금이 생산된 것으로 보인다. 1731년(영조 7) 삼남 지방에 흉년이 들자 진곡을 확보하기 위한 명목으로 명지도에서 제염 사업을 벌이자는 논의가 박문수(朴文秀)에 의해 시작되었다. 영조(英祖)는 공염(公鹽) 제조가 영구적이 아니라 흉년에 대비한 일시적 시책이라는 점 때문에 찬성하였다. 1733년(영조9) 12월 박문수는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명지도 공염장에서 소금 2만 석을 제조하였다.

진곡의 충당 방식은 염민(鹽民)들에게 쌀 1석을 나누어 주고 소금 2석을 받아 다시 쌀 2석으로 교환하는 방식이었다. 이를 통해 조선 정부가 상당히 많은 이윤을 남기고 재정 확보를 할 수 있게 되자, 처음 취지와 달리 공염 제도를 계속 시행하였다. 1745년(영조 21) 명지도의 공염을 관장하는 산산창(蒜山倉)이 설치되었고, 김해부에서 공염장의 운영을 맡게 되면서 점차 본래의 목적이 퇴색되고 관의 운영 재원으로 변질되었다. 명지도 염민들의 반발이 계속되는 등 말썽이 끊이지 않자, 전 경상 감사였던 김로경(金魯敬)의 제안으로 1819년(순조 19) 명지도의 공염장이 폐지되었다.

공염장이 폐지된 이후에도
명지 염전은 영남의 대표적 소금 산지로서 역할을 계속 하였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명지 염전의 상당수가 사라졌다. 명지 염전은 해안가를 따라서 분포되어 있었는데, 1933년 시작된 제방 공사로 인하여 많은 염전이 없어졌다. 명지 염전은 1950년대까지 자염(煮鹽)을 생산하다가 태풍 사라호의 피해를 입어 1960년대에는 생산이 중단되었다.

[위치]

명지 염전명지도의 해안가를 따라서 해척 마을, 평성 마을, 중신 마을, 하신 마을, 진목 마을, 중리 마을, 조동 마을, 동리 마을, 조서 마을, 진동 마을 등에 분포되어 있었다.

[의의와 평가]

명지 염전은 영남의 대표적 염전으로 경상도 주민들은 대부분 명지 염전에서 생산된 소금을 이용하였다. 조선 정부가 진곡(賑穀)을 확보할 명목으로 명지도에 공염장을 설치한 것은 낙동강으로 소금을 운반하고 판매하여 많은 이득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낙동강철새도래지 안내판.

 

*저멀리 신호대교가 보이네요.

 [정의]
부산광역시 강서구 신호동에서 명지동을 연결하는 다리.


[명칭 유래]
신호 대교는 신호도와 연결되는 다리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제원]
신호 대교는 길이 840m, 폭 36m의 다리로, 양측에 3.5m의 보도가 있어 유효 폭이 29m인 상·하행선 각 4차선의 다리이다. 다리의 높이는 15m로 아치와 강상형 합성교 구조이며 총 건설비는 410억 원이 들어갔다.


[건립 경위]
신호 대교는 사하구에서 명지 주거 단지와 신호 일반 산업 단지로의 접근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건립되었다.


[변천]
신호 대교는 1995년 4월 19일 착공하여 1997년 12월 31일 완공되었다.


[현황]
신호 대교는 을숙도 대교에서 명지 주거 단지와 신호 일반 산업 단지를 거쳐 부산 신항까지 연결되는 부산광역시 외부 순환 도로에 속하는 구간이다. 신호 대교는 르노삼성 대로와 연결되는데, 2012년 기준으로 06:00~20:00의 교통량은 5만 6817대이다. 명지동에서 녹산 공단 방면으로는 07:00~08:00의 집중률이 19.00%이며, 녹산 공단에서 명지동 방면으로는 17:00~18:00의 집중률 14.10%이다. 14:00 이전에는 명지동에서 녹산 공단 방면으로, 이후에는 녹산 공단에서 명지동 방면으로의 교통량이 많다. 전체 교통량 중 승용차 구성비는 64.36%이며, 소형 화물차는 14.95%, 중형 화물차는 7.10% 등으로 화물 차량의 비율이 높게 나타난다.

 

*신호대교건너 언덕에 무화과가 익어가네요.

 

*신호대교를 건너면 르노삼성자동차공장이 있어요.

 

*물빠진 갯벌에는 사람들이 뭘줍고 있네요.

 

*신호항으로 진입.

 

*신호항의 모습.

 

*5-1갈맷길 중간지점 스템프 찍는곳.

 

*종합안내판을 배경으로....

 

*인증샷.

 

*도로에서 바라본 신호항의 모습.

 

*해안선옹벽에 새겨진 갈맷길 방향표지.

 

*신가덕대교가 보이네요.

 

*부산가덕신항의 모습.

 

*신항 철고가 앞에 있네요.

 

*녹송3호교를 건너면서 다리위의 꽃을 배경삼아.

 

*다리건너면 좌측에 노동자동산이.....

 

*앞에 보이는 건물이 부산항만홍보관 건물이네요.

 

*가덕신항 입구의 모습.

 

*가덕도를 향하여 눌차교를 건너가고 있습니다.

 

*중간에 포토죤도 있네요.

 

*여기가 오늘의 종착지 5-1구간 종점입니다.

 

*국제해양관광도시 가덕도 소개비.

*더운날씨와 흐린날이지만 습도가 높아 22km긴거리 우리팀 고생했어요.

 

                    *3-2:구간 누계거리:126.2km+22km=148.2km

                    *3-2:구간 누계시간:55시간55분+6시간=57시간55분

                    *3-2:구간 집에서 이동거리:70.3km

                          432.2km+70.3km=502.5km

                   *3-2*구간 경비누계 : 택시: 15.000원,주차료:1.200원,점심:106.000원

                     지출계:122.200원

                 

                      종합:864,900원+122,200원=987,100원.....잔금:312,9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