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풍경들

신불산의 가을아침

문수산 아래 2010. 9. 28. 04:53

2010. 9. 24. 금. 맑음(옮겨옴)

비박으로 지낸 밤은 무척 길었다.
살포시 잠이 들었다 싶으면 바람소리와 밝은 달빛이 번갈아 잠을 깨웠다.
올려다 보는 하늘은 여전하다.
옅은 조각구름이 깃털처럼 경쾌하게 달려가고 별들은 밝은 달빛에 가리워 있는듯 없었고, 없는듯 깜박거렸다.

한기가 제법 스며들었지만 성능좋은 에어메트와 침낭을 준비한 덕분에 견딜만 했다.
다만 한가지 어설프게 덮은 비닐 사이로 내려앉은 이슬 때문에 침낭이 축축히 젖어드는 것이 문제였다.

한가지 특별한 경험은 야간산행을 하는 발자국 소리가 그렇게 크게 울리는 줄 처음 알았다.
밤에는 야생동물들도  잠을 잘 수 있도록 야간산행을 금지하는 국립공원의 조치를 이해할만한 체험이었다.

대략 1시간 주기로 잠깐씩 깨었다 잠들기를 반복하는 비몽사몽의 연속이었다.
더디 흐르는듯한 시간이었지만 어김없이 새벽을 맞았다.
05시 일어나서 짐정리를 하고, 뜨겁게 물을 끓여서 간단하게나마 아침요기까지 해결했다.그리고는 두루 전망을 볼 수 있는 자리로 이동했다.

<06:03>
영남알프스에서 가장 높은 산은 가지산(1,240m)이지만 1천미터 이상의 고산 봉우리를 두루 한 눈에 두루 보기 좋은 산은 신불산(1,159m)이다.
그러나 아침풍경을 보기 위해서 신불산 정상으로 가지 않고, 간 밤에 어둠내린 간월재와 시내방향 야경을 동시에 보았던 무명봉을 먼저 찾았다.
이번 나홀로 비박산행의 가장 큰 목적지는 간월재였기 때문이다.
어둠이 가시면서 영남알프스 산군이 위용을 드러내고 발 아래 간월재는 아직 적막감에 싸여있다.

  

 

 

<06:10>
날이 밝아오는 것에 비례하여 달빛은 사위어 간다.
1년 중에서 가장 밝은 빛을 발할 것이라는 임무를 영남알프스에서는 완벽하게 수행한 것이다.

 

산 아래로 운해가 깔리는 장관이 연출됐으면 하는 혹시나 하는 기대는 그냥 역시나 하는 실망으로 끝났다.
대신에 멀리 낙동강이 지나는 밀양쪽과 운문댐이 있는 청도방향, 그리고 문수산 못미쳐 대암댐 부근에 얼마간의 운해가 깔려있다.

 

<06:20>
아쉽게도 동해안에 검게 띠를 두르고 있던 구름 때문에 장엄한 일출은 볼 수 없었다.
대신에 해와 더불어 함께 솟아 오른 구름띠 덕분에 일출 직후의 빛내림을 볼 수 있어서 아쉬움을 달랜다.
문수산 아래 대암댐 위로 하얗게 물안개가 피어오른 것이 보인다.
이 아침에 문수산에 오른 부지런한 사람들은 대암댐을 덮은 멋진 운해를 볼 수 있었을 것이다.

 

 

<06:23>
아직 아침 햇볕을 받지 못한 재약산의 사자봉-수미봉 두 봉우리는 어두컴컴하다.
몰론 달 모습이 보다 선명하도록 노출을 좀 어둡게 찍은 탓이기도 하다.

  

<06:33>
파래소폭포 갈림길 쪽에서 아침 햇살에 역광으로 비친 신불산 정상부다.

 

아침 햇살이 막 닿기 시작한 영축산과 그 아래 억새평원이다.

 

 

"신불산에 불이 났어요"
신불산에 강림한 빛내림으로 불게 타는 듯한  하늘빛

 

<06:45>
신불산 정상에서 영축산으로 이어지는 낙동정맥 마루금
신불산에서 영축산에 이르는 등산로는 억새장관이 온통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양념처럼 피어있는 구절초꽃이 아침이슬 머금은 청초한 모습으로 산객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아침햇살을 역광으로 받은 신불산 공룡능선

 

신불산 정상에서 영축산을 향해 신불재로 내려서는 길

 

<06:52>
일출을 못 본 아쉬움에 대한 보상인가, 빛내림과 물안개가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간월재 쪽 무명봉에서 아득하게 그 존재만 보였던 대암댐쪽 물안개가 골짜기를 따라 이리저리 퍼지면서 아침햇살을 받고있다.

 

<07:12>
그리고 흩어지는 물안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범위를 점차 넓혀가면서 작은 동산들과 더불어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일출을 가로막았던 심술궂은 구름도 지금은 빛내림을 연출하는 축복으로 바뀌었다.

  

 

신불재를 통과하는 바람을 견디느라 몸을 반쯤 눕인 억새가 함께 연출하는 풍경

 

그에 반해 순광으로 선명하게 드러나는 밀양쪽 방향
억새 뒤편으로 재약산에서 이어지는 재약봉 향로산 백마산 향로봉이 밀양댐 상류에 가서 닻을 내린다.
골짜기 사이로 조금 보이는 하얀 안개를 통해서 밀양댐 주변과 낙동강 물줄기를 따라서도 운해가 연출되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신불재에 내려서기 직전에 바라다 본, 영축산에서 시살등으로 이어지는 영축지맥 마루금

 

신불재에서의 마지막 퍼포먼스
가을철 맑은날 아침안개의 속절없음은 화무십일홍에 비할 바도 아니어서 불과 한 두 시간의 생명력을 지닐 뿐이다.
퍼지는 햇살에 비례해서 물안개가 흩어지고 증발하는 것도 순식간이다.

 

<07:24>
신불재에 내려섰다.
신불재에서 파래소폭포 아래쪽 골짜기로 흘러 내리는 골짜기가 넉넉한 품으로 펼쳐진다.

 

신불산에서 신불재로 내려서는 계단길

 

<07:30>
신불재에서 영축산을 향해 오르면서 이제는 신불산을 건너다 본다.
억새바다 너머로 신불산 공룡능선이 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