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남파랑길 27코스 (청마 기념관~신촌마을)10.3km
*일 자 : 2020년 07월17일 (금요일) 맑음.기온 25도~27도
*누구와 : 찰떡부부
*코 스 : 청마기념관~둔덕기성~임도~오랑마을~거재대교~신촌마을(10.3km:4시간30분)
*이번주는 계속 비가 오락가락 했어 금요일인 오늘 남파랑길27코스를 걷기위해 8시 울산출발 10시30분
도착지 신촌마을에 주차를하고 택시로 청마 기념관 도착 10시50분에 27코스 출발한다.
오늘 코스가 10.3km 비교적 짧은 관계로 가볍게 출발한다.
*남파랑길 27코스 출발합니다(10시50분)
*청마 유치환시인 기념관앞의 청마 우체통.
*청마 기념관의 모습.
청마시초
다른 표기 언어 靑馬詩鈔
근대 |
유치환(1908~1967) |
15×22(cm) |
청색지사, 1939. |
125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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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환(柳致環)의 호는 청마(靑馬)이고, 경남 통영에서 출생하여 통영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도일(渡日)하여 토요야마(豊山) 중학에 입학하였으나 4학년 때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귀국하였다. 1927년 동래고보를 졸업하였으며, 1928년 연희 전문 본과 1년을 다니다 중퇴하였다. 1931년 12월 《문예월간》 2호에 시 「정적(靜寂)」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다. 이후 《조광》 ・ 《신동아》 ・ 《조선문단》 등에 작품들을 발표하였으며, 부산에서 장응두(張應斗) ・ 박영포(朴永浦) 등과 함께 동인지 《생리(生理)》를 주재하였다.
1939년 김소운의 도움으로 제1시집 『청마시초』를 청색지사에서 발간하였다. 일제 말기에는 가족을 데리고 북만주(北滿洲) 빈강성(濱江省)으로 이주하였으며, 이 시기에 「절명지」, 「내 너를 내세우노니」, 「광야에 와서」, 「수(首)」 등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해방 직전 귀국한 유치환은 해방이 되자 청년문학가협회에 가담하여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한편, 제2시집 『생명의 서』(1947), 제3시집 『울릉도』(1948), 제4시집 『청령일기』(1949) 등을 간행하였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그는 ‘문총구국대’의 부산지 대장으로 직접 종군(從軍)하였으며, 종군 체험을 쓴 시집 『보병과 더불어』(1951)를 발간하였다.
이후에도 유치환은 『청마시집』(1954), 『제9시집』(1957), 『유치환시선』(1958),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1960), 『미루나무와 남풍』(1964)등의 시집과 ‘수상록’ 제하의 『예루살렘의 닭』(1953) 등을 출간하였다. 시선집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1965), 자작시 해설집인 『구름에 그린다』(1959), 수필집 『동방의 느티』(1959), 『나는 고독하지 않다』(1962) 등도 그가 남긴 저작이다.
유치환은 1930년대 시단에서 ‘인생파’ 또는 ‘생명파’ 시인으로 분류되었으며, 그의 시는 삶에 대한 회한과 자학으로 가득 차 있다. 인간 존재에 대한 고독과 허무 의식, 그것에 맞서고자 하는 치열한 생명 의식은 청마 시를 가로지르는 정신의 한 단면이라 할 수 있다.
『청마시초(靑馬詩鈔)』는 유치환의 첫 시집으로 청색지사에서 1939년 12월 20일 초판 발행되었다. 유치환의 「서(序)」와 55편의 시를 Ⅰ, Ⅱ, Ⅲ부로 나누어 배치하였다. Ⅰ부에는 「박쥐」, 「깃발」, 「그리움」, 「수선화」, 「일월(日月)」, 「지연(紙鳶)」 등 24편을, Ⅱ부에는 「죽(竹)」, 「정적(靜寂)」, 「청조(靑鳥)여」 등 21편을, Ⅲ부에는 「고향」, 「원수」 등 10편을 수록하였다.
청마시초 표지, 초판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 국립중앙도서관 | 저작권자의 허가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Ⅰ부 첫머리에 실린 「박쥐」는 유치환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것으로, 유치환의 시적 지향점을 잘 보여 준다. ‘땅’과 ‘낮’이 현실적 삶의 공간이자 시간이라면 박쥐는 그것을 피해 하늘과 땅 사이의 중간자적 공간인 ‘지붕’ 밑에 숨어 있는 어정쩡한 존재이다. 이 시에서 박쥐는 날개를 가지고 ‘이상(理想)’을 향해 몸부림치는, 즉 ‘달빛 푸른 밤’에 홀로 서러운 춤을 출 수밖에 없는 비극적인 존재로 인식된다.
숙명적 현실과 이상 사이에 고뇌하는 시적 자아의 모습은 「깃발」이나 「지연(紙鳶)」에서도 선명하게 나타난다. 이상을 향해 비상하고자 하나 숙명적 한계로 인해 도달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한 인식은 결국 환멸과 허무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허무의 극복과 강렬한 생명 의지가 유치환 초기 시의 주 특징이라 한다면 『청마시초』에 수록된 「일월」은 그것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시라 할 수 있다. 유치환은 이 시에서 ‘나의 생명’과 ‘생명에 속한 것’에 대한 강한 열애(熱愛)와 그것을 거부하는 ‘원수’에 대한 강한 증오를 드러내 보인다.
인간 본연이 가지고 있는 허무와 고독,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치열한 생명 의지와 갈등은 제2시집인 『생명의 서』(1947)에까지 이어진다. “시인이 되기 전에 한 사람이 되리라”는 결의와 “푸른 하늘”과 “굳고 깨끗한 마음”(유치환, 「서」)에 대한 강렬한 지향은 그의 초기 시의 원동력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청마시초』는 판권지에 의하면 1939년 12월 15일 인쇄되어, 1939년 12월 20일 발행된 것으로 되어 있다. 편집 겸 발행인은 구본웅(具本雄)이고 인쇄인도 구본웅이다. 인쇄소는 창문(彰文)인쇄주식회사이며, 발행소는 청색지사(靑色紙社)이다. 창문인쇄주식회사는 화가 구본웅의 아버지가 경영하던 인쇄소였다.
장정은 구본웅이 하였다. 표지를 감싸는 자켓이 있었으나 대구문학관 소장의 『청마시초』를 보면 일부의 흔적만 남아 있다. 구본웅이 남긴 자켓 디자인의 전모를 볼 수 없어 안타깝다. 한지 재질의 붉은색 하드커버 표지 위에 힘 있고 굵은 흰색 세로글씨로 ‘靑馬詩鈔’란 시집명을 표기하였다.(박용찬)
*청마 유치환시인의 생가.
시대출생사망경력유형직업대표작성별분야본관
근대 |
1908년 |
1967년 |
부산남여자상업고등학교 교장 |
인물 |
시인 |
깃발, 그리움, 절도, 수, 울릉도, 청마시집, 제7시집, 구름에 그린다 |
남 |
문학/현대문학 |
진주(晉州) |
요약 일제강점기 「깃발」, 「그리움」, 「일월」 등을 저술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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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
본관은 진주(晉州). 호는 청마(靑馬). 경상남도 통영 출신. 유준수(柳焌秀)의 8남매 중 둘째 아들이며, 극작가 유치진(柳致眞)의 동생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1세까지 외가에서 한문을 배웠다. 1922년 통영보통학교 4년을 마치고, 일본 도요야마중학교[豊山中學校]에 입학하였다. 이 무렵 형 치진이 중심이 된 동인지 『토성(土聲)』에 시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가세가 기울어 4학년 때 귀국, 1926년 동래고등보통학교에 편입하여 졸업하고, 이듬해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였으나 퇴폐적인 분위기에 불만을 품고 1년 만에 중퇴하였다. 당시 시단을 풍미하던 일본의 무정부주의자들과 정지용(鄭芝溶)의 시에 감동하여, 형 치진과 함께 회람잡지 『소제부(掃除夫)』를 만들어 시를 발표하였다. 1931년 『문예월간(文藝月刊)』에 시 「정적(靜寂)」을 발표하여 문단에 등단하였다.
그 뒤 잡다한 직업을 전전하다가 1937년부산에서 문예동인지 『생리(生理)』를 주재하여 5집까지 간행하고, 1939년 첫 시집 『청마시초(靑馬詩抄)』를 발간하였다. 여기에 초기의 대표작인 「깃발」·「그리움」·「일월」 등 55편이 수록되었다. 1940년 가족을 거느리고 만주 연수현(煙首縣)으로 이주하여, 농장 관리인 등에 종사하면서 5년여에 걸쳐 온갖 고생을 맛보고, 광복 직전에 귀국하였다.
이때 만주의 황량한 광야를 배경으로 한 허무 의식과 가열한 생의 의지를 쓴 시 「절도(絶島)」·「수(首)」·「절명지(絶命地)」 등이 제2시집 『생명의 서』에 수록되었다. 광복 후에는 청년문학가협회 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민족문학 운동을 전개하였고, 6·25전쟁 중에는 문총구국대(文總救國隊)의 일원으로 보병 3사단에 종군하기도 하였다.
『보병과 더불어』는 이 무렵의 시집이다. 1953년부터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이 후에는 줄곧 교직으로 일관하였다. 안의중학교(安義中學校) 교장을 시작으로 하여 경주고등학교 등 여러 학교를 거쳐 부산남여자상업고등학교 교장으로 재직 중 교통사고로 작고하였다.
40여 년에 걸친 그의 시작은 한결같이 남성적 어조로 일관하여 생활과 자연, 애련과 의지 등을 노래하고 있다. 그의 시세계를 ‘생명에의 의지’, ‘허무의 의지’, ‘비정의 철학’, ‘신채호적(申采浩的)인 선비기질의 시인’으로 평가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생명의 긍정에서 서정주(徐廷柱)와 함께 이른바 ‘생명파 시인’으로 출발한 그의 시는 범신론적 자연애로 통하는 열애가 그 바탕을 이룬다.
그리고 그 바탕 위에서 한편으로는 동양적인 허정(虛靜)·무위(無爲)의 세계를 추구하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허무를 강인한 원시적 의지로 초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시에 허무 의지의 극치인 ‘바위’와 고고함의 상징인 ‘나무’가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묘지는 부산광역시 서구 하단동에 있으며, 그의 시비는 경주 불국사, 부산 에덴공원, 통영남망공원(南望公園) 등에 세워졌다. 2000년 2월에는 경상남도 통영시 망일1길(정량동)에 청마문학관이 개관되었다.
시집으로는 『울릉도』·『청령일기(蜻蛉日記)』·『청마시집』·『제9시집』·『유치환선집』·『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미루나무와 남풍』·『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등이 있다. 수상록으로는 『예루살렘의 닭』과 2권의 수필집, 자작시 해설집 『구름에 그린다』 등이 있다.
*27코스 출발점의 방하마을 노거수(350년 수령).
*출발 하면서 뒤돌아 본 방하마을.
*방하마을 입구의 모습.
입구를 통과 도로를 건너 직진이요.
*청마 탄생지를 다시한번 그려봅니다.
*둔덕기성 가는길,
*삼거리에서 우측임도로 진입 2.3km 지점.(11시20분)
*이런 오름길을 2km 이상 올라함.
*이제 950m남았어요 오늘도 무지무지 더워요.
*그래도 가끔식 그늘을 만들어 주네요 다행입니다.
*거제 둔덕기성 도착:7세기 신라시대 출조.
*거제둔덕기성 종합안내도.
*둔덕기성 성곽위에서 바라 본 성곽의 모습.
*성곽위에서 인증샷.
*지나온 길이 발아래 펼쳐지네요.
*성곽 안쪽의 모습.
*성내 건축물이 있던자리.
*둔덕기성 집수지.
*고려시절 건축지.
*서쪽의 출입문.
*성곽 전망대에서 바라 본 거제.통영앞바다의 모습.
*성곽위에서 통영 앞바다를 배경으로.
*통영 해안가의 모습.
*성곽에 않아 잠시.....
*날씨가 좋아 멀리까지 보이네요.
*허물어진 성곽의 모습.
*둔덕기성의 동문.
*둔덕기성을 보고 다시 임도로 진행
우리는 여기서 나타나는 갈림길에서 위쪽임도로 가야하는데 무심히 아래임도로 진행 가도가도 안내표시가 없어
아차 잘못왔구나 했지만 진행이 많이 된 관계로 가보자 하고 임도 끝까지 내려와 보니 다행이 위로가나 아래임도로
가나 오랑마을에 갔은 곳으로 도착 다행이 별일 없이 길합류.
*임도길에 편백숲도 지나고.
*길가에 핀 월추리꽃의 밝은 모습.
*산속의 오랑저수지 모습.
*제법 큰 저수지이네요.
*한낮의 데이트 물가에서 다정한 모습.
*오랑마을 앞에도 성곽이 있어요.
*여기 도로가에 거제 관광안내소가 있네요.
*여기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가면 신거제대교 아래로 가면 우리가 건너야 하는 거제대교로 가요.
*신거제대교 건너서 거제도 진입할때는 수협앞으로 진행 시계방향으로 거제도 한바퀴돌아
오늘 더디어 거제도를 탈출합니다.
*신거제대교의 모습.
경상남도 거제시 사등면 덕호리와 경상남도 통영시 용남면 장평리를 잇는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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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대교
왕복 4차선 규모인 '신 거제대교'(오른쪽)
ⓒ 연합뉴스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길이 940m, 폭 20m의 왕복 4차선으로 1992년 10월에 착공하여 1999년 4월 개통하였다. 강바닥판 박스 거더교와 강합성 박스 거더교 공법이 적용되었고, 10개의 경간이 있으며, 최대경간장은 130m에 달한다. 포항-마산-고성-통영-거제를 잇는 국도 14호선이 지나는 길이다. 1971년 준공된 거제대교가 증가된 교통량을 감당하지 못하면서 바로 옆에 건설된 신거제대교는 거제의 관문이 되었고, 옛 거제대교는 보조교량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2008년 거제시는 관광객 유치를 위해 신거제대교 입구 국도변 콘크리트 옹벽을 이미지 타일벽화로 단장하였다.
*오량 초등학교앞 통과중.
*거제대교의 모습.
경상남도 거제시 사등면 덕호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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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는 제주도 다음으로 큰 섬이다. 대전~통영간 고속도로가 거제대교로 이어지며 내륙에 한발 더 가까워진 육지같은 섬이다. 거제대교는1965년 5월에 착공하여 1971년 4월에 준공한 거제대교는 길이740m, 폭 10m 규모로 현대건설에서 시공하였다. 거제대교 개통으로 거제도는 육지와 연결되었으며, 거제 조선공업의 견인차 역할을 담당하였다. 지금은 많은 교통량으로 새로운 거제대교가 길이 940m, 폭 20m 규모로서 1992년 10월에 착공하여 1999년 4월 22일 개통하여 거제의 명물로 각광받고 있다. 700리 긴 해안선에 60개의 부속 섬을 거느리고 있다. 따라서 해안과 섬 안 곳곳에 숨겨진 비경들이 많고, 이들을 요약해 거제 33경을 엮어내기도 한다.
그 가운데 거제대교는 물론 이름난 거제 해금강, 구조라해수욕장, 학동몽돌해수욕장, 구천계곡, 외도 등이 대표적인 명소로 꼽힌다. 이들 중 어느 곳이든 거제대교를 거치지 않는 곳이 없다. 또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은 역시 섬의 끝자락을 장식하는 거제 해금강이다. 거제대교를 건너 우측 거제만 해안을 타고, 덕호-둔덕-서정-율포를 거쳐 해안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고, 사곡삼거리나 신현읍에서 구천골, 학동을 거쳐 직선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또 되돌아 나갈때는 섬의 동해안을 따라 학동과 장승포, 옥포, 신현읍을 차례로 지나 거제대교에 이르면 섬을 한 바퀴 일주하게 된다. 거제섬의 동남쪽 갈곶리에 있는 돌섬들을 통털어 해금강이라 부른다. 해금강에는 십자동굴, 촛대바위, 사자암 등 빼어난 절경이 바다 위로 솟아올라 유람선을 타고 다니며 구경한다. 맑은 바다와 이암괴석, 풍성한 어패류들이 섬 드라이브의 벗이 되어준다.
*거제대교에서 바라 본 신거제대교의 모습.
*대교 인도가 많이 좁아요 조심하세요.
*대교에서 바라 본 통영앞바다의 모습.
*오늘의 종착지 28코스 출발지.
*오늘도 더운데 수고 많이 했어요.
*이제 거제도를 끝내고 다시 통영도착 벌써 3/1걷기 성공.
*여기서 보는 신거제대교의 모습이 최고.
오늘은 시간적 여유가 있어 통영의 맛집 전통꼬마김밥의 원조 원조 엄마손 충무김밥집으로 출발.
통영 중앙시장옆에 도착 2인분 먹고 3인분 포장 울산으로 출발합니다.
*남파랑길 누적거리 : 422km + 10.3km = 432.3km
*거 리 : 울산~신촌마을 = 왕복280km 누적4.775km+280km = 5,055km
*경 비 : 통행료= 통행료 20,000원+택시17.000원+김밥35,000 = 72,000원
*누적 지출경비 : 744,800원 + 72,000원 =816,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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