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랑길(1,800km)

서해랑길 64-2지선코스(부석버스정류장~해미읍성)22.7km

문수산 아래 2022. 12. 27. 22:14

*언   제 = 12월 21일 수요일 흐리고 비 1~7도

*누구와 = 임무용,최현숙(부부)

*코  스 = 부석버스정류장~모월저수지~부석사~동사~해미순교성지~해미읍성22.7km(6시간15분소요)

 

*어제 지선1코스 일찍 끝났어 시간이 남아 지선2코스 10km 더걷기를 한관계로 오늘은 12.7km남았다.

 그래서 아침을 여유있게 먹고 천천히 지선2코스 걷기를 시작합니다.

 어제밤을 창리항 주차장에서 편안한 밤을 보내고 지선2코스 출발지 이동 비가 내리는 속에서 우산을

 쓰고 우중걷기를 시작합니다. 길에는 눈이 비에 녹아 신발에 출발과 동시에 눈물로 질척하다

 그래도 기온이 포근해 3시간을 젖은 신발로 완보를 했네요.

 

 코스개요

 -호젖한 산사에서 마음의 안식을 느낄 수 있는 코스

 -조선시대 지방읍성의 모습과 수많은 희생을 치른 천주교 박해의 역사를 만날 수 있는 코스

관광포인트

 -신라시대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사찰 `부석사`

 -천주교 박해로 처형된 순교자들을 기리는 성지로 기념관과 성당이 있는 `해미순교성지`

 -조선 읍성의 형태와 당시의 관사등이 잘 보존되어 있는 `해미읍성`

여행자 정보

 -시점 = 서산시 부석면 취평리 부석버스정류장

 교통편) 서산공용버스터미널정류장에서 610,660번 버스이용,부석버스정류장에서 하차

 -종점 = 서산시 해미읍 읍내리 해미읍성

 -해미읍성 운영시간 06시~19시 (3월~10월은 21시까지 운영)

 

*첫날 지선1코스 오후2시30분에 끝이나 추가로 지선2코스 걷기를 이어갑니다.

*내일 일찍 마치기 위해 첫날 계속이어걷기 시작합니다.

*부석버스정류장에서 곧바로 우측 부석사방향으로 진행.

*취평2리 회관앞 통과.

*도비산방향의 도로가 눈으로 빙판길이 되었네요 상당히 미끄러워 진행에 힘이 드네요.

*계속 도로따라 부석사 방향으로 도비산 고개길 진행.

*현재 우리 부부는 서해랑길 지선2코스 걷기를 진행중 입니다.

*현재 진행길 모습 입니다.

*좌측 언덕위해 케페와 식당이 영업을 하고 있네요.

*잠시 후 도비산 주차장 도착.

 "태종대왕 도비산 강무 기념비

 조선조 제3대 태종대왕이 셋째아들인 충녕대군 후일 제4대 세종대왕을 대동하고 1416년 2월16일에

 7,000여명의 군사와 함께 이곳 도비산을 직접 방문하여 사냥몰이를 하였던 곳이다.

 이 사냥몰이는 단순한 사냥몰이가 아니라 조선시대 임금이 참여하는 군사훈련의 일종으로 강무라고 부른다.

 서산지역에서 이곳 도비산을 택한 이유로는 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 부석면 창리 지역에 왜구의 침입이 잦았으므로

 도비산에 올라 이를 살피기위한 일 이었을 것으로 판단되며

 이때 해미읍성의 축조를 구상하여 다음해인 1417년부터1421년까지 해미읍성을 축조하게 돠고,덕산에 잇던 충청

 병마절도사영을 해미읍성으로 옮기는 등 충청 서해안 방어를 위한 큰 역사가 이루어 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우리 고장이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국방의 역활을 담당 하였던 지역으로 대왕께서 친이 궁중을 떠나 장기간 지방

 에 머물며 지방을 샅샅이 돌아본 일은 매우 드문 일이라 할 수 있다.

  *태종대왕 = (1367~1422)=조선3대왕(1400~1418)이며 이름은 방원 자는 유덕,태조의 다섯째 아들임.

  *세종대왕=(1397~1450)=조선4대왕(1418~1450)이며 이름은 도,자는 원정,태종의 세째 아들임.

*도비산 부석사 일주문.

*뒤돌아 본 부석면 들판의 모습.

*산에는 눈이 엄청 많이 내렸네요.

*부석사 도착.

*부석사 금강문.

*눈으로 무장한 서산부석사 돌담의 모습.

*부석사 경내의 모습.

부석사

浮石寺

 

요약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취평리 도비산(島飛山)에 있는 절.

내용

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인 수덕사(修德寺)의 말사이다. 창건에는 여러 가지 이설(異說)이 있다.

첫째는 677년(문무왕 17)에 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는 설이다. 의상이 이 절을 창건할 때에 도둑의 무리들이 몇 번이나 달려들어 허물어버리자, 선묘(善妙)의 화신(化身)인 용(龍)이 크게 노하여 큰 바위를 공중에 띄워 빙글빙글 돌리면서 금시라도 떨어뜨릴 기세를 보였다. 도둑들은 혼비백산하였고, 절을 창건한 뒤 선묘의 호법(護法)을 기념하기 위하여 부석사라 하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이 설화는 경상북도 영주의 부석사에 얽힌 설화이므로 의상의 창건 또한 신빙성이 없다. 현재 절 앞 10㎞ 지점의 바다에 부석섬이 있고 이 절이 있는 산 이름을 섬이 날았다는 뜻에서 도비산이라 한 것이 모두 이 설화와 관련된 것이다.

또 다른 설에는 고려 말의 충신 유금헌(柳琴軒)이 망국의 한을 품고 물러나 이곳에다 별당을 지어 독서삼매로써 소일하였는데, 그가 죽자 승려 적감(赤感)이 별당을 사찰로 변조하였고 사찰명도 바다 가운데 있는 바위섬이 마치 뜬 것같이 보이므로 부석사라 하였다고 한다.

두 가지 창건설 중 후자가 다소 신빙성이 있다. 창건 이후 조선 초기에 무학(無學)이 중건하였고 근대에는 만공(滿空)이 주석하면서 선풍을 떨치기도 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전을 비롯하여 심검당(尋劍堂)과 요사채, 산신각 등이 있으며 극락전 앞에는 안양루(安養樓)가 있는데 서해를 향하고 있다. 심검당 앞에 있는 부석약수는 유명하다. 극락전 내에 봉안되어 있었던 아미타삼존불은 상호가 빼어난 수작이었으나 1980년에 도난당하였다.

현재 일본 쓰시마 관음사(觀音寺)에 있는 금동관음보살상은 1330년(충혜왕 17)에 이 절에서 조성하여 봉안한 것인데, 고려 말에 왜구에게 약탈되었던 듯하다.

 

서산부석사금동보살좌상

瑞山浮石寺金銅菩薩坐像

요약 고려말의 금동관음보살좌상.

높이 50.5㎝. 일본 쓰시마 섬[對馬島]도요타마무라오츠나[豊玉村小網]의 관음사 소장. 복장품 조사를 통해 1330년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부석사에서 현세에 재난을 없애고 복을 누리며 내세에 아미타정토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30여 명의 발원에 의해 주존불로 조성되었음이 밝혀졌다.

대좌와 광배를 잃었으나 불신의 상태가 양호한 편이며, 길상좌에 수인은 하품중생인을 취하고 있다.

보관이 없어져 높이 틀어올린 보발이 보이며 풍만한 얼굴에는 미소를 머금고 있다. 보살상이면서 불의를 입고 있는 것이 특이하며 고려 후기에 유행한 불상 형식의 특징인 띠매듭이나 금구장식도 표현되어 있다. 화려한 목걸이와 두 무릎에 보이는 영락장식에 의해 보살상임을 알 수 있는데 이는 당시 보살상들의 일반적인 특징이다. 연대가 확실한 고려 후기의 보살상 중 가장 이른 예로, 장곡사금동약사불좌상(1346) 또는 문수사 금동아미타불좌상(1346)과 같은 양식 계열에 속한다.

 

*부석사 입구 화장실 지나 우측 산길로 진입 잠시 후 다시 좌측 계단으로 진행.

*계단을 올라가면 능선에 도착 멋진 고사목.

*부석사에서 도비산넘어 동사 가는길에 눈으로 걷기가 매우 힘드네요.

*조심조심 도비산 고개를 넘어가요.

*더디어 능선에 도착.

*길은 눈으로 덮혀 보이지 않고 어렵게 전진을 이어갑니다.

*고개를 넘어 앞에는 시원스럽게 펼쳐진 서산간척지의 모습 장관입니다.

*동사와 부석사 가는길 방향표지판.

*조그만 암자 조용합니다 여기가 동사 경내의 모습.

*동사를 뒤로하고 눈길의 임도를따라 내려갑니다.

*임도 하산길에 여기 곡각지점에서 좌측 오솔길 산길로 방향전환.

*대규모 묘지앞 진행.

*전망대도착 서산간척지가 눈앞에.....

*서산간척지가 끝없이 펼쳐진 모습 .

*전망대에서 잠시 쉬었다 갑니다.

*전망대에서 바라 본 간척지의 모습.

*전망대에서 내려와 좌측으로 임도따라 진행.

*임도길에서 바라 본 부석면의 황금들판에 하얀눈이 도배를 했네요.

*오랜만에 눈길을 마음것 걸었습니다.

*임도길에서 마을로 내려갑니다.

*여기 마을길에는 제설작업으로 말끔히 치워 졌네요.

*마을앞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진행.

*부석면 산동1리 버스정류장앞 통과.

*도로입구 갈림길에서 우측농로길 진행.

*서산시 지역에 특산물이 한과가 유명하네요.

*산동리 버스정류장앞에서 우측도로따라 진행.

*우측도로따라 조금진행 후 도로건너 좌측 모월저수지 방향으로 진행.

*도로에서 좌측 농로길따라 모월저수지 방향으로 진행

*농로길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진행.

*진행길 좌측 논에는 갈매기 무리가 힘차게 비상을 하네요.

*다시 만나는 서해랑길 방향표지판앞에서 좌측으로 진행.

*다시 농로길끝에서 우측으로 하천따라 진행.

*농로길 진행 끝이 안보임.

*다리를 건너와 좌측으로 하천변따라 진행.

*길은 눈이 녹아 발목까지 질벅거린다.

*하천변 둑방길따라 계속진행.

*비는 계속내리고 길은 눈이 녹아 억망이다.

*하천따라 진행 안개가 자욱하게 주위를 가두고 있네요.

*전방에 초소가 보이는 방향으로 직진진행.

*서산20전투비행단 철망따라 진행 전투기 엔진 소리가 무척 시끄럽네요.

*종점까지 5.1km 지점.

*갈림길에서 좌측 작은다리 건너 농로길 진행.

*농로길 진행 보이는 것은 들판뿐.

*농로길끝에서 좌측으로 진행.

*다시 하천둑방길 진행

*농로길에서 둑방길진행 공사구간 지나 직진.

*하천따라 한참을 진행.

*다시 만나는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꺽어 다리위 진행.

*하천의 잠수교 건너 우측으로 진행.

*하천 잠수교건너 우측 둑방길 진행.

*다시 만나는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잠수교 건넘.

*잠수교건너 좌측 산책로따라 진행.

*강변로 산책길따라 진행.

*눈으로 걷기가 매우 힘이드네요 신발에는 오래전부터 물이 들어와 감각이 없다.

*해미성지도착.

해미순교성지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해미순교성지종파위치 국가소속 관구소속 교구소재지설립일웹사이트
 
로마 가톨릭교회
 대한민국
서울관구
천주교 대전교구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성지1로 13
2003년 6월 17일
http://www.haemi.or.kr/
 
해미순교성지 전경
 
노천 성당과 해미 순교탑

해미순교성지(海美殉敎聖地, 영어: Haemi Martyrdom holy ground)는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성지1로 13에 위치한 한국 로마 가톨릭교회 순교 성지이다. 성지가 위치한 일대는 '여숫골'이라고도 불린다. 1866년 병인박해 때 해미진영(海美鎭營)은 천주교도 색출과 처벌의 임무를 맡고 있었기 때문에 충청도와 경기도 평택에 이르는 해미현 관아 관할지역에서 붙잡힌 천주교도들은 해미읍성으로 끌려왔는데, 1872년까지 6년간 이어진 박해기간 동안에 붙잡힌 천주교 신자 약 1,000명 이상이 이곳에서 잔인하게 처형 또는 생매장 되었다.

1935년 서산성당 범바로(P, Barraux) 신부가 순교자들의 유해중 일부를 발굴해냄으로써 관군에 의해 집단 학살이 자행되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발굴된 유해는 상홍리공소에 임시 안장되었다가 1995년에 이곳으로 다시 옮겨져와 보존 중이다. 성지 조성은 천주교 신자들 대상으로 홍보, 모금 활동을 벌여 부지를 확보하고 건립을 시작해 2003년 6월 17일 완료하였다.

2014년 로마 교황청은 해미 순교자 3명을 가톨릭교회 공적 공경 대상인 복자로 추대하였다. 같은 해 8월에 교황 프란치스코가 복자로 추대된 순교자들의 시복식을 위해 대한민국을 방문하였을 때 해미순교 성지도 직접 방문하였다.

 

*해미순교성지를 오른쪽으로 두고 둑방길 진행.

해미순교성지(여숫골)

위치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성지1로 13 (해미면)

1866년(조선 고종 3) 병인박해(丙寅迫害) 이후 1882년(고종 19) 사이에 진행된 천주교 박해 때 충청도 각 고을에서 붙잡혀온 천주교 신자 1000여 명이 생매장당한 곳이다. 당시 천주교 신자들을 해미읍성 서문 밖의 돌다리에서 자리개질 등으로 처형하였는데, 숫자가 너무 많자 해미천에 큰 구덩이를 파고 모두 생매장하였다고 전한다. 당시 죽음을 앞둔 천주교 신자들이 '예수 마리아'를 부르며 기도를 하였는데, 마을 주민들이 이 소리를 '여수머리'로 잘못 알아들어 이곳을 '여숫골'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신자들을 묶어 물속 둠벙에 빠뜨려 생매장을 시켰던 진둠벙과 해미천 옆에 생매장당한 이름 없는 순교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높이 16m의 '해미순교탑', 무명순교자의 묘, 유해발굴지에 조성된 노천성당, 서문 밖 순교지에 있던 자리개돌 원석이 보존되어 있다. 해미순교성지 인근에는 내포 지방에서 해미로 넘어가는 순교자 압송로였던 한티 고개가 있다. 고갯길에 있는 십자가의 길은 정상에 1처가 시작되어 해미 방면으로 14처가 설치되어 있다.

*서산시 관광홍보 안내판.

*해미수교성지앞에서 좌측 다리건너 진행.

*다리위에서 바라 본 해미순교성지의 모습.

*다리건너 우측으로 진행.

*우측 포장로따라 진행.

8다시 만나는 교차로에서 좌측으로 읍성까지 해미읍 시가지 진행.

*해미읍성 진남관앞 도착.

해미읍성

海美邑城

요약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소재한 조선시대의 읍성.

해미읍성의 정문 진남문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있는 해미읍성의 정문. 해미읍성의 관아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문루 형식에 팔작지붕을 얹었다. 성문은 아치 모양의 홍예문이며 옹성이 없다. 진남문은 해미읍성의 세 관아문 중 유일하게 본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해미읍성의 동문 잠양루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있는 해미읍성의 동문. 해미읍성의 관아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문루 형식에 팔작지붕을 얹었다. 성문은 아치 모양의 홍예문이며 옹성이 없다. 잠양루는 화재로 등으로 소실되었다가 1974년에 복원되었다.

사적 제116호. 해미는 1414년(태종 14)에 충청도 덕산으로부터 충청도병마절도사영이 옮겨온 곳으로, 충청도병마절도사영이 청주로 이전한 1651년(효종 2)까지 군사적 거점이 되었던 곳이다. 해미읍성은 1491년(성종 22)에 축조되어 서해안 방어를 맡았던 곳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성의 둘레가 3,172척, 높이가 15척, 성 안에는 3개의 유물과 군창이 설치되어 있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영조 때 편찬된 〈여지도서〉에 의하면 성의 둘레가 6,630척으로 보로 계산하면 2,219보가 되고 높이는 13척, 치성은 382첩으로 되어 있으며, 사방에 문이 있다고 했다. 이 기록을 통하여 볼 때 해미읍성의 규모가 훨씬 확대되었음을 알 수 있다.

1960년에 이 성을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읍성의 표본으로 삼아 사적으로 지정하고 보수공사를 하는 한편, 성 안팎에 무질서하게 자리잡은 민가를 철거·이전시키고 종합적인 보존계획을 세웠다. 1974년에 동문·서문이 복원되었으며 1981년에는 성 안의 일부를 발굴한 결과 관아 터가 확인되었다.

*진남관입구에서 우측으로 성벽따라 진행.

서산 해미읍성

위치문화재 지정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남문2로 143
사적 제116호(1963년 1월 21일 지정)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읍성이다. 읍성이란 읍을 둘러싸고 세운 평지성으로 해미읍성 외에 고창읍성, 낙안읍성 등이 유명하다. 해미읍성은 조선 성종 22년, 1491년에 완성한 석성이다. 둘레는 약 1.8km, 높이 5m, 총면적 196,381m²(6만여 평)의 거대한 성으로 동,남,서의 세 문루가 있다. 최근 복원 및 정화사업을 벌여 옛 모습을 되찾아 사적공원으로 조성되었으며, 조선말 천주교도들의 순교 성지로도 유명하다. 천주교 박해 당시 관아가 있던 해미읍성으로 충청도 각 지역에서 수많은 신자가 잡혀와 고문받고 죽음을 당했으며, 특히 1866년 박해때에는 1천여 명이 이 곳에서 처형됐다고 한다.

성내 광장에는 대원군 집정 당시 체포된 천주교도들이 갇혀 있던 감옥터와 나뭇가지에 매달려 모진 고문을 당했던 노거수 회화나무가 서 있다. 바로 성문밖 도로변에는 회화나무에 매달려 고문을 받으면서도 굴하지 않은 신도들을 돌 위에 태질해 살해했던 자리개돌이 있어 천주교도들의 순례지가 되고 있다. 성벽 주위에는 탱자나무를 심어 적병을 막는데 이용하였다고 하나,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 호야나무(회화나무)
감옥 입구에 서 있는 300년 된 나무로, 이 나무의 가지에 신자들이 머리채를 묶어 매달아 고문하였었고, 그 흔적으로 철사줄이 박혀있다.

*눈내린 해미읍성의 모습.

*지선2코스 종점 해미읍성 도착 .(소요시간 = 6시간15분)

 오늘은 무척힘든 여기 해미읍성에서 마무리 합니다.

 어제는 많은 눈으로 오늘은 시작과 함께 우산을 쓰고 비를 맞으며 질벅거리는 길을 종일 걸었네요.

 그래도 무탈하게 또 한코스를 지우고 갑니다.

 

*출발.도착 차량 주행거리 =울산~창리포구=367km                     

*누적 주행거리 =18,208km

*1차 통행료 = 17,600원

*누적 통행료 = 878,200원

*출발.도착 차량 주행거리 =석포리~울산 = 400km

*누적 주행거리 =18,641km

*2차 통행료 = 17,600원

*누적 통행료 = 895,700,원

*기타경비 = 1)차량회수 1일차석포리 ~창리포구  = 31,500원

                   2)차량회수 2일차 해미읍성 ~석포리 =40,000원

                   3)1일차 저녁 손가정 창리점=42,000원

                   4) 당진 휴계소 간식 = 7,000원

*누적합산=3,945,20원+120,500원=4,065,820원

*64-2코스 거리 =997+ 22.7km = 1.019.7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