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길

평화의 길 12코스(숭의전지~군남홍수조절)16.2km

문수산 아래 2024. 11. 25. 18:41

 

*일    시 = 2024년11월20일 수요일,맑음,-3~10도

*누 구 와 = 임무용.최현숙 부부

*코    스 = 숭의전지~연천당포성~동이리주상절리~임진교~군남홍수조절지(소요시간 =4시간30분)

 

*이번주 원정2일차 숭의전지 주차장에서 하루밤을 보내고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08시30분에 

 평화의길 12코스 군남홍수조절지까지 걷기를 시작합니다.임진강을따라 걷는 12코스 사미천의 징검다리와

 강변의 갈대와 억새 정말 볼거리 풍성한 코스가 기다리고 있어요.

 

코스개요

 -숭의전지에서 군남홍수조절지(두루미테마파크)로 이어지는 구간이다

 -임진강과 한탄강이 만나는 합수머리,두루미 서식지 등 DMZ 생태개를 엿볼 수 있는 길이다.

 -임진강 주상절리 등 지질학적 가치가 뛰어난 풍경이 가득한 코스다.

관광포인트

 -아로마 허브 체험 프로그램을 비롯해 다양한 즐길 거리를 갖춘 테마공원,허브빌리지

 -임진강 본류의 홍수 조절능력 확보를 위해 건립된 단일목적댐 군남홍수조절지 

 -두루미 대체 서식지를 조성해 DMZ일대의 생태계를 관찰하고 보호하는 공간,두루미테마파크

 -27만 년 전 화산 폭발로 만들어진 철원평강용암지의 일부를 엿볼 수 있는 임진강 주상절리

여행정보(주의사항)

 -약 500m의 갓길 있는 왕복 2차로의 교량을 건너야 하는 구간이 있어 여행객들의 주의가 필요하다.

 -우천시 통행불가 지역이 있으므로 우회로를 이용해야 한다.

 

임진강

臨津江더덜나루, 더덜매, 이진매

 


 함경남도 덕원군마식령 산맥에서 발원하여 황해북도 판문군과 경기도 파주시 사이에서 한강으로 유입되어 황해로 흘러드는 강.

명칭 유래

옛날에는 더덜나루(다달나루)라 하였는데, 한자로 표기하면서 임진강이라 하였다. 임진강의 ‘임(臨)’은 ‘더덜’ 즉 ‘다닫다’라는 뜻이며 ‘진(津)’은 ‘나루’라는 뜻이다. 그밖에 ‘이진매’ 즉 ‘더덜매’(언덕 밑으로 흐르는 강)이라고도 하였다.

자연환경

임진강의 길이는 254㎞이고 유역 면적은 8,118㎢로서 북한에서 9번째로 넓은 유역 면적을 갖고 있으며, 한강의 제1지류이다. 전체 유역 면적 중 남한 지역이 약 3,008㎢, 북한지역이 5,108.8㎢를 차지하고 있다. 강원도 북부를 흐르면서 고미탄천(古味呑川)과 평안천(平安川)을 합류하고, 경기도 연천에서 철원·평강 등을 흘러온 한탄강(漢灘江)과 합류한다. 고랑포를 지나 문산 일대의 저평지를 흐르는 문산천과 합치고 하구에서 한강과 합류하여 황해로 흘러든다.

국토가 분단되기 이전까지는 고랑포까지 배가 다녔고 소형 선박은 안협(安峽)까지 운항할 수 있었다. 강의 중상류 지역은 경기도의 동북단으로 황해도·강원도 등과 인접하며, 동쪽으로는 광주산맥의 지맥이 뻗어 지장봉(地藏峰, 877m)·보개산(寶蓋山, 724m)·향로봉 등 일련의 험준한 산이 있다.

추가령구조곡을 사이에 두고 마식령산맥과 마주하며 그 지구대를 임진강이 남쪽으로 흐르다가 차탄천(車灘川)·한탄강 등을 합치면서 적성 부근에서 유로를 서남쪽으로 바꾼다. 용암대지 주변의 지형은 화산암류와 편마암 및 변성암 계통이 주를 이룬다.

이들 하천이 합류된 유역에는 비교적 비옥한 평지를 많이 만들어서 쌀·밀·조·옥수수·고추·잎담배 등의 생산이 많다. 하류 유역에는 파주시·장단군 등이 있으며 한강과 함께 넓은 경기평야를 형성한다.

임진강의 상류는 소나무, 참나무를 기본으로 한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임진강의 연평균 흐름양은 266㎥/s이며 유출률은 33ℓ/(s·㎢), 연유출높이는 1,031㎜, 연유출계수는 0.7, 연증발량은 452㎜이다. 연평균 강수량이 1,483㎜로서 강수량이 많은 지대이다.

최근에는 북한에서 식량부족을 메우기 위해 옥수수를 재배하는 밭을 만들고 땔감을 위한 삼림벌채를 하여 토사가 하천으로 유입되어 토양의 유실량이 많아졌다.

형성 및 변천

임진강 유역에서 용암은 플라이스토세 중기의 종식 무렵 분출했을 가능성이 크며, 용암층 위로는 플라이스토세 후기에 들어와 2만여 년 전 무렵까지 계속된 퇴적운동으로 오늘날과 같은 퇴적층이 만들어졌다고 해석되는 연구가 있다.

그리고 임진강 하류인 파주시 문산읍 장산리 일대에 한탄강과 임진강 유역에 용암대지가 만들어지기 전에 형성된 하천퇴적층 내에서 구석기 유물이 발견되고 있다. 이 유물은 용암대지 말단부보다 하류에 위치하며 이 유물이 발견되는 퇴적층이 용암대지가 만들어지기 이전에 쌓인 것이라는 단서가 된다는 연구가 나오고 있다. 이 하안단구와 용암대지 아래에 있는 백양리층 사이의 층서관계는 불확실하나 앞으로의 구석기 연구에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예로부터 임진강 유역은 고구려·백제·신라 3국의 국경이 되어 역사적인 격전지이기도 하였다. 삼국 시대에는 임진강을 칠중하(七重河)라 하였고 연천군에는 고구려 칠중현의 치소인 칠중성(七重城)이 있었다. 고구려의 광개토왕은 이 강에서 백제군을 대파시킨 일이 있고, 신라진흥왕은 이 강의 남쪽을 점령하여 고구려와 경계한 적이 있었다.

신라가 당나라와 더불어 고구려를 정복하였을 때에는 칠중성(積城 : 지금의 파주시 적성면)부근에서 이 강을 건너 평양으로 진격한 일이 있다.

현황

강 하류 쪽의 파주시 중심지인 금촌은 토지가 비옥할 뿐 아니라 농산물이 풍부하고 소하천들이 많이 발달하여 있어 소규모의 주운(舟運 : 배로 화물을 나름)도 행하여진다. 문산읍은 경의선의 종점이며 판문점이 있어 남북 분단의 상징이며 군사상의 요충지가 되고 있다.

봉서산(鳳棲山, 216m)은 임진왜란 때 권율(權慄)이 산정에 산성을 쌓아 역사적으로 알려졌다. 문산 서북쪽의 임진진(臨津鎭)은 수도 서울을 방위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연천군 전곡읍에서 중요한 지류인 한탄강과 합류하여 서쪽으로 흐르는데, 그 전곡읍 전곡리에서는 구석기 시대의 유물이 발굴되어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임진강 유역의 연천군은 본래 38선 이북이 되어 군정법령 제22호에 따라 38선 이남에 남은 지역을 파주군(현재 파주시)으로 편입시켰다가 1954년 10월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따라 대체로 지금과 같은 행정구역을 갖추게 되었다.

장단군의 고랑포는 편리한 주운 때문에 물산의 집산지가 되던 곳이다. 장단의 임진강변에 있는 장단석벽(長湍石壁)은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하여 예로부터 시인묵객이 많이 찾던 곳이다.

하류 쪽에는 동파적벽(東坡赤壁)이 있으며 화장사·심복사·경순왕릉 등의 유적이 있다. 강의 중상류 지역은 6·25의 격전지로 많은 유적이 파괴되었으나, 보개산·문인폭(文人瀑)·연취암(蓮醉巖)·용추(龍楸)·문인석(文人石) 등의 명승고적이 도처에 많이 남아 있다. 또한, 강의 곳곳에는 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고 판문점과 임진각은 남북 분단의 상징적인 곳이 되었다.

북한은 2009년 9월 6일 사전 예고 없이 임진강 상류의 황강댐에서 물을 방류했다. 당시 무인자동경보시스템도 작동하지 않아서, 임진강에서 야영하거나 낚시하던 6명이 급류에 휩쓸려 숨진 사건이 있었다.

*경기둘레길,평화누리길 안내판에 평화의 길 QR코드 인증 2일차 일정 시작합니다.

*연천의 아침은 울산과 비교 불가 이렇게 추울 수가 손끝이 시리네요.

*둘레길 안내판옆에는 연천군 관광지 안내도.

*주차장에서 오른쪽 오르막길따라 올라 갑니다.

*여러 가지의 둘레길 표시가 각자의 길을 안내 하네요.

*작은 언덕위에 숭의전이 자리하고 있네요.

*숭의전앞에서 바라 본 전체의 모습 우리는 열려있는 문을 통해 들어가 봅니다.

 

연천 숭의전지

漣川 崇義殿址
시대유형분야
조선 전기
유적
예술·체육/건축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에 있는 조선전기 고려 태조 등을 제향하던 사당터. 사적.

내용

고려 태조를 비롯한 7왕의 신위(神位)를 봉안하여 제사지내던 곳이다. 1399년(정종 1)에 창건된 뒤, 1452년(문종 2)에 숭의전이라고 이름 붙였으며, 고려 왕족의 후손들이 관리하도록 하였다. 종3품인 사(使)를 비롯하여 종4품의 수(守), 종6품 감(監), 종9품 여릉참봉(麗陵參奉) 등의 관리를 두었다.

조선시대에는 역대 왕조의 시조를 모신 사당을 지어 제사를 지냈다. 평양의 숭령전(崇靈殿)은 단군과 고구려 시조 동명왕을 모셨고, 평양의 숭인전(崇仁殿)은 기자(箕子)를 모셨다. 경주의 숭덕전(崇德殿)은 신라의 시조를 모셨고, 충청남도 직산의 숭렬전(崇烈殿)은 백제의 온조왕을 모셨으며, 숭의전에는 고려 태조 및 혜종·정종·광종·경종·목종·현종을 제사지냈다.

임진강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정전(正殿)·후신청(後臣廳)·전사청(典祀廳)·남문(南門)·협문(夾門)·곳간(庫間)·수복사(守僕舍) 등이 남쪽을 바라보며 배치되었다. 하지만 6·25전쟁 때 모두 불에 타 없어졌고, 최근에 정전과 함께 위패를 모신 이안청(移安廳), 공신의 위패를 모신 배신청(陪臣廳), 삼문만을 원래의 위치에 복원하였다.

 

숭의전지(崇義殿址)는 조선시대에 전조(前朝)인 고려시대의 왕들과 공신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받들게 했던 숭의전이 있던 자리이다. 이곳은 원래 고려 태조 왕 건(王 建)의 원찰이었던 앙암사(仰巖寺)가 있었던 곳으로 1397년(태조 6)에는 고려 태조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을 건립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지금 숭의전의 시초이다. 사당 건립 이후 1399년(정종 1년)에는 왕명에 의해 고려 태조를 비롯하여 혜종(惠宗), 성종(成宗), 현종(顯宗), 문종(文宗), 원종(충경왕, 元宗), 충렬왕(忠烈王), 공민왕(恭愍王) 등 고려 8왕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이후 1425년(세종 7)에 이르러 조선의 종묘에는 5왕(五王)을 제사하는데 고려조의 사당에 8왕을 제사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하여 태조, 현종, 문종, 원종 등의 4왕만을 봉향토록 하였다.

1451년(문종 1)에는 전대의 왕조를 예우하여 숭의전이라 이름 짓고 고려 4왕과 더불어 고려조의 충신 16명(복지겸;卜智謙, 홍 유;洪 儒, 신숭겸;申崇謙, 유금필;庾黔弼, 배현경;裵玄慶, 서 희;徐 凞, 강감찬;姜邯贊, 윤 관;尹 瓘, 김부식;金富軾, 김취려;金就礪, 조 충;趙 冲, 김방경;金方慶, 안 우;安 祐, 이방실;李芳實, 김득배;金得培, 정몽주;鄭夢周) 등을 배향토록 하였다. 1452년(문종 2)에는 고려 현종의 먼 후손을 공주에서 찾아서 순례(循禮)라는 이름을 내린 후 부사(副使)를 삼아 그 제사를 받들게 하고 토지와 노비를 내렸다. 숭의전은 조선시대 1605년(선조 38), 1727년(영조 3), 1789년(정조 13), 1868년(고종 5), 1908년(순종 2) 등 총 5차례에 걸쳐 개수(改修)와 중수(重修)를 반복하였다. 그러다가 한국전쟁 중에 전소하였으며, 이를 1972년에 사적으로 지정하고 다음해에 재건하게 되었다.

현재 재건된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숭의전(崇義殿, 4왕의 위패를 모신 곳)을 비롯하여 배신청(陪臣廳, 고려 16공신의 위패를 모신 곳), 이안청(移安廳, 위패를 잠시 모셔 두는 곳), 전사청(典祀廳, 제례 때 사용할 제수를 준비 하는 곳), 앙암재(仰巖齋, 제례 때 사용하는 향, 축, 폐등을 보관하고 제사에 참여하는 제관들이 제례준비를 하며 머무는 곳) 등 5동의 부속건물과 내신문(內神門), 외신문(外神門), 협문(夾門) 3동, 운조문(雲鳥門) 등 6개의 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부속건물들은 모두 돌담장으로 둘러져 내부가 잘 보이지 않으며 앙암재와 전사청은 각각 별도로 독립된 구조를 갖추고 있다. 마전군 읍지(麻田郡 邑誌)에 의하면 1899년 당시 숭의전은 지금 재건된 것보다 규모가 더 컸음을 알 수 있다. 즉, 당시는 18칸 규모의 정전과 배신청, 이안청, 향배청, 전사청, 주방 등의 건물과 2개의 문이 있었다.

*숭의전앞에는 600년을 지켜 온 느티나무가 넘넘한 자태를 보여 주네요.

*숭의전앞에서 바라 본 임진강의 모습.

*숭의전을 지나 여기서 부터는 임진 적벽길 입구에 도착.

*평화의 길12~13코스 교착지점에서 인증샷.

*연천의 아침이 이렇게 추울수가 ......

*언덕에서 바라 본 임진강의 모습 .

*산길을 돌아 도착한 전망대 좌.우로 막힘 없이 보여 주네요.

 "잠두 썩은 소의 전설"

 이곳의 지형이 임진강 건너편에서 바라보면 마치 누워있는 누에의 머리처럼 보인다 하여 잠두봉이라고

 부른다.잠두봉에는 숭의전의 건물과 관련된 썩은소의 전설이 전해온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하자 고려 왕족의 왕씨들은 큰위기에 빠지게 되었다.이에 뜻있는

 왕씨 몇 사람이 태조 왕건의 신위를 안전하게 보호하고자 돌로 배를 만들어 싣고 예성강 입구에서 바다로 띄워 보냈다.

 바다로 나간 돌배는 임진강을 거슬러 황해도 안악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강을 따라 내려오기 시작하였다.

 동이리의 한 절벽에 이르자 이 배는 더 이상 나아가지 않고 멈추었는데 왕씨 후손들은 배를 쇠로 난든 닻줄에 메달아 놓고

 주위에서 왕의 신위를 모실만한 장소를 찾다 날이 저물어 잠이 들었다.아침이 되어 일어나 보니 배는 사라지고

 배를 묶어 두었던 쇠닻줄은 모두 썩어 없어져 버렸다.크게 놀란 왕씨 후손들은 잃어버린 돌배를 애타게 찾으며

 강을 따라 내려오다 누에머리 절벽 아래에 붙어 움직이지않은 돌배를 발견하게 되엇다.하늘의 뜻이라 여긴 왕씨

 후손들은 절벽 위에 사당을 짓고 태조의 신위를 모신 후 숭의전이라이름하기로 하였다.지금도 날씨가 청명한

 날에는 가라앉은 돌배가 물속에 비쳐 보인다고 한다.

전망대를 뒤돌아 나와 계단을따라 올라간다 낙엽이 있어 미끄러워 조심해야 합니다.

*경사 구간의 계단을 아침부터 숨쉬기 운동을 하게 하네요.

*진행길에 만나는 절에서 좌측으로 내려갑니다.처음에는 이런곳에 민가가 했는데 여기가 종교시설이 였네요.

*내려오면 만나는 도로 여기서 도로건너 우측으로 진행.

*인도길따라 오르막구간 올라가요.

*여기서 부터는 도로에 인도가 없어 상당히 위험합니다 .조심조심 진행해야 합니다.

*고개마루에서 내려오면 도로 우측으로 인도길 진행 바닥에 은행나무잎이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네요.

*진행길 도로가에 인도가 없는 구간이 많이 있어 위험 하네요 여기 아미교 구간도 조심구간입니다.

*교차로구역 도착 우리는 우측으로 진행.

*사거리에서 우측으로 임진강 주상절리 방향으로 진행.

*전시 도로차단벽이 약간의 느낌이 오네요.

*당포성입구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면서 직진 합니다.

*잠시 후 동이리 종점 버스정류장앞 통과 여기도 부대가 있네요.

*도로따라 진행 차량 통행은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가끔 대형트럭에 마음을 졸이게 되네요.

*도로 진행방향 안내판.

*도로 커브 구간에서 좌측 임진강주상절리관광센터 신축현장 간판따라 가면됩니다.

*군데군데 도로 공사구간이 많이 보이네요.

*도로따라 진행 주상절리관광센터 공사형장도착.

*임진강도착 좌측으로 강변따라 진행.

*건너편으로 임진강을 가로지르는 임진교의 모습.

*여기는 건너편 절벽이 임진강 주상절리 입니다.

임진강 주상절리 (한탄강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위치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 동이리

임진강과 한탄강이 만나는 합수머리(도감포)에서부터 북쪽으로 임진강을 거슬러 마치 병풍을 쳐 놓은 것 같은 아름다운 수직의 주상절리가 수 킬로미터에 걸쳐 발달해 있는 국내에서도 유일한 곳이다. 북한 평강군 오리산과 680m 고지에서 분출한 용암은 옛 한탄강의 낮은 대지를 메우며 철원-포천-연천 일대에 넓은 용암대지를 형성하였고 임진강을 만나 임진강 상류 쪽으로 역류하면서 현무암층을 만들었습니다. 화산활동이 끝난 후 용암대지가 강의 침식을 받게 되자 강을 따라 기하학적인 형태의 현무암 주상절리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리는 암석의 표면에 발달하는 좁은 틈(혹은 금)을 말하는데 침식을 받게 되면 이 틈이 벌어지면서 암석이 쪼개지게 된다. 주상절리는 긴 통모양의 절리를 일컫는 말로 대개 현무암에서 가장 잘 발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무암은 용암이 굳을 때 발생하는 수축작용으로 인해 중심점을 따라 사각 혹은 육각형 모양으로 수직의 절리가 발달하게 되는데, 침식을 받게 되면 육각형 모양의 돌기둥이 떨어져 나가면서 아름다운 주상절리 절벽이 만들어지게 된다. 가을이면 주상절리의 절벽이 담쟁이와 돌단풍이 물들고 석양빛에 더욱 붉게 보여 적벽이라 부르기도 한다.

*임진강변을따라 올라가다 여기서 우측으로 내려갑니다.

*강변입구에 우천시 출입통제 한다는 문구만 있고 우회로에 대한 자세한 안내가 없어 우천시.....

*진행길에 건너편의 적벽을 바라 보면서 상류로 올라 갑니다.

 "임진강 주상절리

 임진강 주상절리는 한탄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합수머리에서 임진강 상류 쪽에 위치한다. 한탄강 지질공원의

 가장 큰 특징인 현무암 주상절리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으로 높이 25m,길이 2km에걸쳐 자연병풍처럼 펼쳐져

 있어 장관을 이룬다.또한 예로부터 가을이면 돌단풍이 주상절리 절벽을 붉게 물들여 "임진적벽"이라 더불어 다양한

 모양의 주상절리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주상절리란 기둥모양의 암석이 촘촘히 서 잇는 것처럼 보이는 모양을 말한다.뜨거운 용암이 지표면을 따라 흐르며 점차     식는 과정에서 수축하며 규칙적인 틈이 생겨나는데 이 틈을 절리라고 한다.이 절리를 따라 비나 눈 등 수분이 스며들어

 얼고 녹기를 반복하면서 침식과 풍화가 계속되면 결국 절리를 따라 현무암 덩어리가 하나 둘씩 떨어져 나가 높이가 다른

 돌기둥이 생긴다.

*건너편의 주상절리를 바라 보면서 임진강을 거슬러 올라간다 길은 걷기에 이상적인 조건으로 ...

*2km의 임진적벽길을 여기서 끝내고 강변에서 둑방으로 진행.

*평화누리길 스토리텔링 주상절리와 함께.

*임진강 적벽길을 지나 지금부터는 둑방길 진행 시원하게 뜨인 임진강을 바라 보면서 진행하는 걷기여행.

*둑방길에 만나는 우정교 건너 둑방길 계속진행.

 " 소우물다리 우정리"

 본래 마전면 동면의 지역으로,임진강 옆에 큰 우물인 "소우물"이 있어 우정리라 하였다.

 옛날에는 이 벌판이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었으나,수리 시설이 없어서 논으로 활용도 못하고

 너무 질어서 밭으로도 사용하지 못하는 쓸모 없는 땅이였다.그래서 그저 소나 매놓은 정도였다.

 벌판 한 모퉁이에는 분수처럼 솟아  오르는 큰 우물 하나가 있어어 "분수정"이라고 불렀다.

 넓은 벌판은 모든 소들이 분수정에 모여 물을 먹었다데 유래하여 이 벌판을 순수한 우리말로는 

 "소물개"라고도 불렀다.소가 많았다고 하여 소 우자와 분수정의 정자를 합하여 지금의 우정리로

 일컬어지게 되었다.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연천군 마산면에 편입되었으나,1945년 8.15

 광복이 되면서 3.8선 북쪽에 위치하여 공산 치하에놓였다가 .6.25가 끝난 후인 1954년11눵17일

 "수복지구 임시 행정조치법"에 의거 행정권이 수복되어 오늘에 이른다.

 현재 1개의 행정리,6개반,1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 여기는 마산면 우정리 우정교

*끝이 안보이는 둑방길 진행 가끔 지역주민이 둑방길 걷기를 하는 분들이 보이네요.

*진행길 좌측으로 잘 꾸며진 공원이 있어 나중에 보니까 여기가 캠핑장 이네요.

*캠핑장 입구의 멋진 가로수길 가을을 멋지게 보여 주네요.

*진행길 둑방에서 잠시 후 저다리를 건너 갑니다.

*다리를 건너갑니다.

*다리를 건너 좌측으로 다시 둑방길 진행.

*이 지역 방문을 환영하는 문구.

*둑방길은 아스팔트 포장으로 깔끔하게 단장 봄이면 둑방길이 벗꽃으로 .....

*군남배수펌프장앞 통과.

*임진강을 사랑합니다.

*임진강은 억새와 갈대의 황금색으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네요.

*현재 여기는 북삼교 부근을 진행.

*강변의 북삼교 다리밑을 통과 진행.

*황금 물결 바람이 불면 이리저리 갈대가 춤을 추네요.

*저 멀리 12코스 종점 군남홍수조절지가 보이네요 .아직도 2km 전방.

*현재 지나는 곳이 선곡리.

*군남홍수조절지의 모습 웅장합니다.

군남홍수조절지 또는 군남댐는 한탄강 합류점 약 12km 상류의 임진강 본류에 위치한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건설된 홍수조절 전용 단일목적댐이다. 2006년 10월 착공되어 2010년 6월 30일 완공되었다.[1] 콘크리트 중력댐으로 댐 규모는 높이 26m, 길이 658m, 총저수량 7,160만t이다.

역사

임진강 유역은 1996년부터 1998년까지 연속적인 게릴라성 집중호우로 유역 내의 경기도 파주시, 양주시, 동두천시, 포천시, 연천군과 강원도 철원군 일대에 사망 및 실종 116명, 이재민 3만 1439명, 재산피해 9,006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수해가 발생했다. 2002년 3월 건설교통부는 2008년까지 총 1조 6180억원을 투자하는 ‘임진강수계 수해방지 종합대책’을 최종 확정하였으며, 대책으로 군남홍수조절지, 한탄강댐, 천변저류지 등을 건설하여 홍수량을 조절하고 배수펌프장을 신설하여 홍수피해를 경감하는 계획이었다.

군남댐 공사가 진행중이던 2009년 9월 북한이 황강댐 물을 무단 방류해 경기도 연천에서 6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2] 그 여파로 당초 2011년 8월 완공시기를 1년 앞당겨서 2010년 6월말에 준공했다.

*군남홍수조절지 여유부지에 두루미테마파크를 만들어 놓았네요.

1. 소개

연천 두루미테마파크는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두루미를 관찰하며 힐링할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이곳은 두루미의 생태를 경험하고 자연 속에서 온전히 쉴 수 있는 특별한 장소로, 많은 이들의 귀중한 추억을 쌓을 수 있는 곳입니다.



2. 두루미 관찰 시간

두루미는 주로 아침이나 저녁 시간대에 활발하게 활동합니다. 특히 새벽이나 일몰 시간에 두루미들이 더 많이 나타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두루미를 가장 잘 관찰할 수 있는 시간은 일출이나 일몰 시간으로, 이 때가 가장 활동적이고 두루미들의 모습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때입니다.



3. 관찰 포인트

두루미테마파크 내에는 다양한 관찰 포인트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주로 숲 속이나 강가, 들판 등 자연 환경에서 두루미를 관찰할 수 있는 곳이 마련되어 있으며, 이곳들에서는 두루미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두루미는 보통 나무 위나 고사리 숲 등에서 먹이를 찾거나 뛰어 놀며 시간을 보내는데, 이러한 모습들을 특히 일출이나 일몰 시간대에 관찰할 수 있습니다.



4. 준비물

두루미테마파크를 방문할 때는 두루미를 관찰하기 위한 적절한 준비물이 필요합니다. 적절한 의상과 신발로 자연 속에서 편안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필요하다면 적당한 양의 물과 간식을 챙기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카메라나 망원경을 준비하여 두루미의 아름다운 모습을 놓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5. 결론

연천 두루미테마파크는 두루미를 관찰하며 자연을 경험할 수 있는 소중한 장소입니다. 두루미 관찰은 일출이나 일몰 시간대에 특히 좋으며, 적절한 준비를 통해 더욱 특별한 경험을 쌓을 수 있습니다.

*여기는 두루미에 대한 자세한 내용과 우리가 몰랐던 여러가지를 엿 볼 수 있는 두루미테마파크...

*군남홍수조절지와 두루미테마파크 주차장을 조금 도로따라 올라오면 12코스 종점과 13코스 시작지점과 QR 코드

 를 만날수 있는 곳입니다.

 오늘도 2일차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점심을 먹고 울산으로 달려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