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파랑길 걷기

남파랑길 83코스(강진목리교~도암농협)18.0km

문수산 아래 2021. 5. 29. 15:25

*제 목 : 남파랑길 83코스 (목리교 서쪽~도암농협) 18,0km

*일 자 : 2021년 5월 04일 (화요일) 흐리고 비.기온 10도~18도

*누구와 : 찰떡부부

*코 스 :목리교 서쪽~남포마을~백련사~다산초당~석문공원~석문공원 구름다리~도암농협(6시간40분소요)

 

*이제 남파랑길 걷기도 막바지로 달려가고 있네요 이번이 83~84코스 여기까지 우리부부는 열심히

 달려왔다.이번이 83.84코스 걷기를 위해 울산에서 4시간을 달려 출발점 강진 목리교 서쪽에 도착

 걷기를 준비한다 .오늘의 날씨가 금방이라도 비가 올것같다. 예보에도 오후에 비가 온다는 예보로 우산을

 준비하고 배낭커버를 준비한다.

 

*83코스 안내판은 82코스 마무리 지점 목리교 건너기 직전에 세원져 있다.

*목리교 입구에서 83코스 인증샷.

*83코스 시작은 목리교 건너 좌측으로 생태공원 방향으로 진행.

*83코스 시작점은 목리교 건너 다리 끝지점에 메달려 있다.

*83코스 시작점에서 좌측으로 강진만 갈대숲 생태공원 방향으로 진행.

*강진만 생태공원 우측둑방길로 진행.

*둑길에서 내려다 본 어느집의 아름다운 정원 모습.

*진행길 둑방길에서 바라 본 강진 시가지쪽의 모습.

*강진만 갈대숲 홍보판.

*진행길에서 좌측 갈대숲으로 진행.

*강진만 생태공원 탐방로 안내판.

*강진만 갈대숲이 푸릇푸릇 색을 입이고 있네요.

*생태공원 탐방로 중간중간에 이런 휴식 공간이 많이 있어요.

*갈대숲 탐방로 데크길이 너무너무 아름다워요.

*황금색 갈대와 푸른새싹과 어울림이 조화를 이루어 주네요.

*하늘에는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것 같은 날씨에 그래도 우리는 여유로운 걷기를 계속한다.

*강진만 건너편에는 82코스때 같이한 오리 조형물이 보이네요.

*갈대숲 탐방로에서 다시 둑방길로 나와 진행.

*진행길 휴계소에 이런 멋진 글귀가 "너와 함께한 모든 날이 좋았다"

*강진땅에서 흔적을 남기고 갑니다.

*갈대숲으로 탐방로 산책로.

*갈대숲 사이로 갯벌이 입을 벌리고 있어요.

*여기서 부터는 전라도 천년 가로수길 입니다.

*이길을 따라 가면 가우도 해창 가는 길.

*이제는 빗방울이 떨어지고 바람이 심하게 불어 배낭 커버를 하고 우산으로 걷기를 계속한다.

*둑방길 끝에서 도로와 합류 좌측으로 진행.

*걷기 길은 도로에서 좌측 모텔뒤로 해변가 진행.

*다시 도로와 합류.

*그래도 도로와 인도가 구분이 되어있어 걷기에는 안전하다.

*진행길 삼거리에서 우측 방향으로 진행.

*만덕포도농원에서 우측으로 진행.

*진행길 우측으로 어느집 담벼락에 철쭉꽃이 만발했네요.

*이제 비바람이 더욱 세차게 내린다.신발과 바지가 벌써 젖은 느낌이 온다 걷고 있는 이길이 다산 정약용 남도 유배길

 과 같이 가요.

*들판에는 이비가 모내기에 도움이 될것 같아요.

*옥수수가 제법 키를 키우고 있어요.

*도로를 따라 백련사 가는 길.

*인적과 차량통행이 전혀 없은 조용한 도로를 우산쓴 두사람이 걸어가고 있어요.

*백련사 주차장 도착 길은 관광 안내소 우측으로 진행.

 

*주차장에서 백련사 올라 가는 길 양쪽으로 동백나무들로 빽빽하다.

동백나무는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 중국 등의 따뜻한 지방에 분포하여, 우리나라에서는 남쪽 해안이나 섬에서 자란다. 꽃은 이른 봄에 피는데, 매우 아름다우며 꽃이 피는 시기에 따라 춘백, 추백, 동백으로 부른다. 백련사의 동백림은 강진의 백련사 부근에 있는데 동백나무 1,500여 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으며, 이밖에 굴참나무, 비자나무, 후박나무, 푸조나무 등도 군데군데 자라고 있다. 동백나무의 높이는 평균 7m쯤 되고, 동백꽃이 필 무렵이면 매우 아름다워 이 지역의 명소로 알려져 있다. 동백림의 유래에 관하여 정확히 알려진 것은 없으나, 정약용 선생의 유배지인 다산초당이 가까이 있고, 이곳에서 다도(茶道)연구를 했던 것으로 미루어 이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또한 그가 백련사를 왕래할 때 그도 이 동백나무 숲을 즐겨 감상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주차장에서 동백나무숲길을 지나 경내로 들어가기 위해 해탈문을 통과.

*해탈문을 지나 돌계단을 지나 경내로 진입.

*백련사 대웅보전앞의 모습.

*백련사 대웅보전의 웅장한 모습.

*백련사.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만덕산(萬德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무염국사가 창건한 사찰.

목차접기

  1. 내용

내용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大興寺)의 말사이다. 백련사에 대한 사적은 1432년(세종 13) 윤회(尹淮)가 저술한 『팔도지리지(八道地理志)』와 정약용(丁若鏞)의 『만덕사지(萬德寺誌)』 등에 나타나 있다.

만덕산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만덕사(萬德寺)라고도 하였다. 이 절은 839년(문성왕 1) 무염(無染)이 창건하였으며, 중요한 수도도량으로 면모를 달리한 것은 1211년(희종 7) 요세(了世)가 크게 중창한 뒤부터이다.

요세는 천태종계(天台宗系)의 승려로서 고승 지눌(知訥)과 깊은 친분 속에서 지눌과 함께 송광사에 머물다가, 1208년에 천태종의 묘의(妙義)를 얻었고, 강진에 살고 있던 최표(崔彪)와 최홍(崔弘)·이인천(李仁闡) 등의 권유로 만덕산에 자리를 잡고 그의 제자 원영(元營)으로 하여금 가람 80칸을 짓게 하였다.

이 역사(役事)는 1211년부터 1232년(고종 19)까지 21년 만에 완공되었으며, 당시 목백(牧伯)이 지극한 정성으로 재물을 보시(布施)하였다고 한다. 절이 완공되자 요세는 보현도량(普賢道場)을 개설하고 실천 중심의 수행인들을 모아 결사(結社)를 맺었다. 이것이 송광사를 중심으로 한 수선사(修禪社)와 쌍벽을 이루었던 백련사결사(白蓮社結社)이다.

그 뒤 이 절에서는 120년 동안을 이어 고려의 8국사(國師)를 배출하였다. 고려 말에는 강진지방이 세 차례의 왜구침입을 받았을 때 이 절도 함께 폐허화되었다. 조선 세종 때에는 효령대군(孝寧大君)의 보호를 받아 주지 행호(行乎)가 불타버린 가람을 복원하였다. 그 뒤 효종 때 3차 중수를 하였으며, 그때 탑과 사적비(事蹟碑)를 세웠다.

조계종이 송광사를 중심으로 하여 종세(宗勢)를 키우고 있을 때, 이 절은 천태사상에 입각한 결사도량(結社道場)을 개설하여 침체한 불교중흥을 꾀한 중심지 구실을 하였다. 그러나 외세의 잦은 침입으로 인해 많은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절 주위에 성을 쌓았는데, 이 성을 행호토성(行乎土城)이라고 한다. 현재의 절 또한 그때 쌓은 토성으로 둘러싸여 있는 특이한 모습이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시왕전(十王殿)·나한전(羅漢殿)·만경루(萬景樓)·칠성각·요사채 등의 건물이 있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으로써 각 추녀마다 네 개의 활주(活柱)를 세워 건물을 받치고 있으며, 전면 두 개의 주두(柱頭)는 용두(龍頭)로 장식한 다포집 건물이다. 대웅전 안에는 석가모니불이 봉안되어 있다. 또한 만경루는 규모가 큰 누각으로 강진만 일대의 바다를 환히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그 밖의 사중유적(寺中遺蹟)으로는 만덕산 백련사사적비와 원묘국사중진탑(圓妙國師中眞塔)이 있다. 사적비의 거북은 앉은 키가 높은 편이고 용의 눈이 험상궂게 생긴 귀부(龜趺) 위에 비신(碑身)이 있으며, 그 위에 옥개석(屋蓋石) 모양을 한 가첨석(加檐石)이 놓여 있다. 중진탑은 방형의 지대석(地臺石)인 위에 연화문(蓮花文)의 중대석(中臺石)이 있으며, 상대석에도 무늬가 있으나 잘 보이지 않는다.

고복형(鼓腹形)의 옥신(屋身)에는 두 줄의 주렴문이 조각되어 있고, 옥개석의 낙수면은 완만하며, 상륜부에는 노반(露盤)·복발(覆鉢)·보주(寶珠) 등이 있다. 이 밖에도 절 주위에는 천연기념물 제151호로 지정된 백련사의 동백림과 정약용이 신유사옥 때 강진으로 귀양와서 조선의 실학을 집대성하고 차를 끊여 마시던 다산초당(茶山草堂)이 있다.

『동국여지승람』에서는 백련사를 가리켜 ‘남쪽바다에 임해 있고 골짜기 가득히 송백이 울창하여 동백 또한 곁들여서 수목이 싱싱하게 푸른 모습이 사계절을 통해 한결같은 절경’이라고 한만큼, 주위의 경관 또한 아름답다.

*백련사 곳곳을 둘러보고 갑니다.

*대웅보전앞의 초팔일 연등이 불자들을 기다리고 있어요.

*비가 내리는 산사 백련사를 둘러보고 다음 코스 다산초당 방향으로 진행.

*다산초당 가는 길의 야생 차밭.

*만덕산 등산로를 따라 다산초당 가는 길.

*고개마루 도착 여기서 깃대봉 등산로 안내판.

만덕산 숲탐방로 안내판.

*만덕산 등사로를 따라 다산초당 도착 보이는 정자가 천일각.

 천일각이라는 이름은 하늘 끝 한 모퉁이 라는 뜻의 천애일각을 줄인 말이다.다산의 유배시절에는 없던 건물인데,

 돌아가신 정조대왕과 흑산도에서 유배 중인 형님 정약전이 그리울 때면 이 언덕에 서서 강진만을 바라보며 스산한

 마음을 달랬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1975년 강진군에서 새로 세웠다.동암에서 천일각에 이르기 전 왼편으로 나 있는

 길은 백련사로 가는 길이다.유배생활 동안 벗이자 스승이요 제자였던 혜장선사와 다산을 이어주는 통로였다.

 800여 미터 길에는 야생차 군락과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동백숲을 만날 수 있다.

*천일각을 지나 동암건물 도착.

 송풍루라고도 불리는 동암은 다산이 저술에 필요한 2천여 권의 책을 갖추고 기거하여 손님을 맞았던 곳이다.

 다산은 초당에 잇는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이곳에 머물며 집필에 몰두했으며, 목민관이 지녀야 할 정신과 실천

 방법을 적은 (목민심서)도 이곳에서 완성했다.1976년 서엄과 함께 다시 세웠는데, 현판 중 보정산방은 추사의

 친필을 모각한 것이고 다산동암은 다산의 글씨를 집자한 것이다.

*다산초당 마당에는 작은 연못이 있다(지석가산).

 연못 가운데 돌을 쌓아 만든 산이다.다산은 원래있던 연못을 크게 넓히고 바닷가의 돌을 주워 조그마한 돌을 쌓아

 석가산이라 하였다. 다산은 잉어를 키웠는데, 유배생활에서 풀려난 후 제자들에게 보낸 서신에서 잉어의 안부를

 물을 만큼 귀히 여겼다. 다산은 잉어를 보고날씨를 알아내었다고 한다.

*다산초당의 모습.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만덕산(萬德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무염국사가 창건한 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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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내용

내용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大興寺)의 말사이다. 백련사에 대한 사적은 1432년(세종 13) 윤회(尹淮)가 저술한 『팔도지리지(八道地理志)』와 정약용(丁若鏞)의 『만덕사지(萬德寺誌)』 등에 나타나 있다.

만덕산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만덕사(萬德寺)라고도 하였다. 이 절은 839년(문성왕 1) 무염(無染)이 창건하였으며, 중요한 수도도량으로 면모를 달리한 것은 1211년(희종 7) 요세(了世)가 크게 중창한 뒤부터이다.

요세는 천태종계(天台宗系)의 승려로서 고승 지눌(知訥)과 깊은 친분 속에서 지눌과 함께 송광사에 머물다가, 1208년에 천태종의 묘의(妙義)를 얻었고, 강진에 살고 있던 최표(崔彪)와 최홍(崔弘)·이인천(李仁闡) 등의 권유로 만덕산에 자리를 잡고 그의 제자 원영(元營)으로 하여금 가람 80칸을 짓게 하였다.

이 역사(役事)는 1211년부터 1232년(고종 19)까지 21년 만에 완공되었으며, 당시 목백(牧伯)이 지극한 정성으로 재물을 보시(布施)하였다고 한다. 절이 완공되자 요세는 보현도량(普賢道場)을 개설하고 실천 중심의 수행인들을 모아 결사(結社)를 맺었다. 이것이 송광사를 중심으로 한 수선사(修禪社)와 쌍벽을 이루었던 백련사결사(白蓮社結社)이다.

그 뒤 이 절에서는 120년 동안을 이어 고려의 8국사(國師)를 배출하였다. 고려 말에는 강진지방이 세 차례의 왜구침입을 받았을 때 이 절도 함께 폐허화되었다. 조선 세종 때에는 효령대군(孝寧大君)의 보호를 받아 주지 행호(行乎)가 불타버린 가람을 복원하였다. 그 뒤 효종 때 3차 중수를 하였으며, 그때 탑과 사적비(事蹟碑)를 세웠다.

조계종이 송광사를 중심으로 하여 종세(宗勢)를 키우고 있을 때, 이 절은 천태사상에 입각한 결사도량(結社道場)을 개설하여 침체한 불교중흥을 꾀한 중심지 구실을 하였다. 그러나 외세의 잦은 침입으로 인해 많은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절 주위에 성을 쌓았는데, 이 성을 행호토성(行乎土城)이라고 한다. 현재의 절 또한 그때 쌓은 토성으로 둘러싸여 있는 특이한 모습이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시왕전(十王殿)·나한전(羅漢殿)·만경루(萬景樓)·칠성각·요사채 등의 건물이 있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으로써 각 추녀마다 네 개의 활주(活柱)를 세워 건물을 받치고 있으며, 전면 두 개의 주두(柱頭)는 용두(龍頭)로 장식한 다포집 건물이다. 대웅전 안에는 석가모니불이 봉안되어 있다. 또한 만경루는 규모가 큰 누각으로 강진만 일대의 바다를 환히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그 밖의 사중유적(寺中遺蹟)으로는 만덕산 백련사사적비와 원묘국사중진탑(圓妙國師中眞塔)이 있다. 사적비의 거북은 앉은 키가 높은 편이고 용의 눈이 험상궂게 생긴 귀부(龜趺) 위에 비신(碑身)이 있으며, 그 위에 옥개석(屋蓋石) 모양을 한 가첨석(加檐石)이 놓여 있다. 중진탑은 방형의 지대석(地臺石)인 위에 연화문(蓮花文)의 중대석(中臺石)이 있으며, 상대석에도 무늬가 있으나 잘 보이지 않는다.

고복형(鼓腹形)의 옥신(屋身)에는 두 줄의 주렴문이 조각되어 있고, 옥개석의 낙수면은 완만하며, 상륜부에는 노반(露盤)·복발(覆鉢)·보주(寶珠) 등이 있다. 이 밖에도 절 주위에는 천연기념물 제151호로 지정된 백련사의 동백림과 정약용이 신유사옥 때 강진으로 귀양와서 조선의 실학을 집대성하고 차를 끊여 마시던 다산초당(茶山草堂)이 있다.

『동국여지승람』에서는 백련사를 가리켜 ‘남쪽바다에 임해 있고 골짜기 가득히 송백이 울창하여 동백 또한 곁들여서 수목이 싱싱하게 푸른 모습이 사계절을 통해 한결같은 절경’이라고 한만큼, 주위의 경관 또한 아름답다.

*이곳은 다산 선생이 초당에서 양성한 18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윤종진 선생을 모신 묘소이다.

 선생의 자는 금계,호는 순암이며,부친은 강진읍내에서다산을 모셔온 윤규로이다.다산 선생께서는 다산 초당으로

 거처를 옮겨 삶의 터전을 새롭게 함은 물론 제자들을 문답식으로 지도하고 목민심서,경세유표,흠흠심서 등 600여

 권의 저서를 남겼는데 당시 저술은18인의 제자들의 역활이 컸다.다산은 몸이 약하고 체구가 작은 순암을 위해 순암호기를 직접 써 주면서 호연지기를 키우게 했다.다산이 유배에서 풀려나 고향인 남양주로 돌아가게 되자 순암은 18인의

 제자들과 함께 다신계를 조직해 평생동안 차를 만들어 보냈으며,이 차는 금릉다산향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졌다.

 그는 1867년에 진사가 되었고,1866년 병인양요 때와 1869년에 국가가 위기에 처하자 의병을 모아참여하였으며

 추사 김정희,백파 신헌구와 교유하였다.문집으로는 순암총서를 남겼다.

 배위 광주 있와 함께 묻혀 있으며, 현재의 비문은 1914년 성균관박사 이금이 썼다.

 

*다산초당에서 백련사 가는 길 안내판.

다산초당에서 내려와 마을길 따라 조금 후 우측으로 진행.

*바리게이트 앞에서 우측으로 진행.

*보기 좋게 정비돤 산길을 따라 진행.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진행.

*앞의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진행.

*매점마을 이정표 따라 진행.

*매점마을 도착 마을길 따라 진행.

*세차게 내리는 비를 이곳 정자에서 잠시 피해 휴식을 가지고 다시 출발.

*매점마을을 지나 석문구름다리 방향으로 진행.

*석문구름다리 가는길에 간벌로 시원합니다.

*이 산중에도 태양광 패널이 엄청나네요.

*이미 바지와 신발은 비에 젖어 발은 물기에 질퍽거리네요.

*오늘 첫째날 일정은 여기 석문구름다리 주차장에서 끝을 내고 우리는 택시를 콜 출발지 차를 횟수해 여기

 석문구름다리 주차장에서 하루밤을 보낸다.

*밤새 내리던 비는 새벽에 그치고 우리는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석문구름다리 방향으로 진행.

*어제 젖은 신발은 밤새 뽀송하게 말라 새신과 새옷을 입고 신고 산뜻하게 2일째 걷기를 출발합니다.

*어제의 이어 석문구름다리를 건너기 위해 하천을 건너 산길을 오릅니다.

*석문구름다리도착 건너기전 기념사진.

*석문구름다리 인증샷.

*석문구름다리 건너면서 주위를 배경으로 .....

*룰루날라 구름다리 통과 중.

*구름다리에서 바라 본 다리 아래의 모습.

*석문구름다리 건너쪽에서 .....

*석문구름다리 건너편에서 바라 본 구름다리의 모습.

*석문구름다리 전체의 모습.

*진행 길에서 뒤돌아 본 모습.

*주변의 기암들의 모습.

*석문구름다리가 주변과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네요.

*석문구름다리를 떠나 도로와 합류 좌측으로 진행.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진행.

*농로길 따라 진행.

*도암 중학교 정문앞 통과.

*깔끔하게 정비된 하천의 모습 .

*83코스 종점 도암농협 도착.

 어제는 하루종일 비와의 싸움에 83코스 무척 힘들게 마무리 합니다.

*강진 84코스 안내판 앞에서 83코스 마무리하고 계속 이어 갑니다.

 

*남파랑길 누적거리 : 1,184.8km + 14.5km = 1,199.3km

*거 리 : 울산~목리교= 편도289km 누적16,649km+289km = 16,938km

*경 비 : 통행료= 통행료 14,100원 +택시 28,000 + = 42,100원

*누적 지출경비 : 2,817,410원 + 42,100원 =2,859,51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