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랑길(1,800km)

서해랑길 101코스 (곤릉버스정류장~외포리 선착장)13.4km

문수산 아래 2023. 12. 18. 16:11

*언제=2023년07월06일요일맑음 18~27도

*누구와 = 임무용,최현숙(부부)

*코  스 =곤릉버스정류장~강화가릉~정제두묘~건평항~외포 (소요시간=4시간30분시간)

 

*어제 밤은 초지대교 건너 인삼 백화점 옆 소공원에서 캠핑카 편안한 숙박을 하고 아침을

 일찍 해결하고 어제에 이어 전등사 입구 07시 도착 2일차 걷기를 시작 합니다.

 이번 일정 1박2일 개 코스를 걷기 계획을 하고 어제의 일정 계획되로 마무리 오늘 최대한

 일찍 마칠것을 다짐하며 출발합니다 .마치고 울산까지6시간을 달려야 하니까....

코스개요

 -곳곳에 숨어있는 고려시대의 역사 문화를 찾으며 강화의 마을과 논밭을 거니는 코스.

관광포인트

 -고려 원종의 왕비인 순경태후의 묘'강화 가릉'

 -불음도,아차도,주문도행 선박이 운행되는 '외포항'

여행자 정보

 -시점=강화군 양도면 길정리 공릉버스정류장

 교통편) 강화여객자동차터미널 정류장에서 간선 48번 승차'공릉버스정류장에서 하차

 종점=강화군 내가면 외포리 강화 파출소

 -외포항에서는 해산물과 젓갈을 판매하고 있으며 젓갈 수산시장이 있음

 

 

*아침 07시에 100코스 전등사 입구에서 출발 09시45분에 100코스 종점 곤릉버스정류장 도착.

 인증샷 곧 바로 101코스 출발합니다.

*101코스 출발 안내판.

*2일차 일정을 시작합니다.

*101코스 출발 포장로따라 마을 방향으로 진행.

*잠시 후 갈림길에서 좌측 '예쁜마을 '방향으로 진행.

*마을길따라 진행.

*마을을 벗어나 진행 좌측 데크길따라 진행.

*숲길진행 진강산 방향으로 호젓한 산길 진행.

*여기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가면 강화 석릉으로 가는길 갔다 다시 여기로 원점으로 .....

*강화석릉 50m 실제 거리는 한200m는 더가야 할거리 아닌가???/

*강화 석릉 입구.

*강화 석릉의 모습.

강화 석릉

Seongneung Royal Tomb, Ganghwa , 江華 碩陵
시대문화재 지정건립시기성격유형크기면적소재지분야
고려 후기
사적 제369호
1237년(고종 24)
능, 왕릉
유적
가로 20.5m, 세로 31m
793㎡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도면 길정리 산182번지
역사/고려시대사

요약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도면에 있는 고려후기 제21대 희종의 능. 왕릉. 사적.

개설

강화 석릉은 고려가 몽골의 침입에 대항하여 개경에서 강화도로 천도한 시기인 강도(江都) 시기(1232~1270년)에 조성된 왕릉 중 하나이다. 강화 석릉 외에도 이 시기에 강화 곤릉(坤陵), 강화 가릉(嘉陵), 강화 홍릉(洪陵) 등의 왕릉이 조성되어 현존하고 있다.

역사적 변천

고려시대 강화에 석릉이 조성된 이후 조선시대를 거쳐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조선 현종 때 강화유수 조복양(趙復陽)이 찾아내어 다시 봉분한 바 있으며, 관리 소홀로 봉분이 붕괴되고 주변 석물들이 없어진 것을 1974년에 보수, 정비하였다. 2001년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 조사 사업을 시행한 이후, 현재의 모습으로 재정비되었다. 사적으로 지정될 당시의 문화재명은 곤릉(1992년 3월 10일 지정)이었는데, 2011년 강화 곤릉(7월 28일 고시)으로 변경되었다.

내용

희종은 신종(神宗)의 아들로 어머니는 정선태후 김씨(靖宣太后 金氏)이며, 부인은 성평왕후 임씨(成平王后 任氏)이다. 왕위에 오른 희종은 1211년(희종 7) 최충헌을 제거하려다 실패하여 왕의 자리에서 쫓겨나 강화 교동으로 갔다. 1237년(고종 24) 8월 법천정사(法天精舍)에서 훙어하여 낙진궁(樂眞宮)으로 옮겨졌으며, 10월 덕정산(德政山) 남쪽에 장례를 지내고 석릉이라 하였다.

고려는 몽골군의 침입으로 1232년(고종 19) 개경에서 강화로 수도를 옮겨 1270년(원종 11) 환도하였기에, 희종의 능은 개경이 아닌 강화에 안치된 것으로 보인다.

특징

강화 석릉의 능역은 가로 20.5m, 세로 31m의 규모로 이루어졌다. 고려시대 왕릉의 제도에 따라 묘역에 5단으로 단이 구획되어 있다. 봉분은 지름 4m, 높이 1.8m 규모이다. 가로 3.3m, 세로 2.2m, 높이 2.3m 규모의 석실이 존재하는데, 석실 내에 부장대는 없고, 내부에 벽화도 없다.

2001년 발굴조사를 통하여 석인상, 능비석, 표석 등의 석물이 확인되었고, 청자류, 청자편, 철제 및 동제 금속류, 금박편, 동전편 등이 발굴되었다.

한편 조사지역인 석릉 주변으로 동쪽 능선과 북쪽, 남쪽 경사면을 중심으로 120여 기 이상의 고려시대 고분군이 확인된다.

의의와 평가

북 분단의 현실에서 고려시대 왕실의 묘제에 대하여 직접 접할 수 있는 남한 내 문화유산으로 의미가 있다. 최근 인천광역시에서는 강화 석릉을 포함한 강화 소재 고려 왕릉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석릉 주변의 모습.

*다시 원점으로 우리는 서해랑길따라 진행.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강화나들길과 함께진행.

*출입금지 팻말이 있는 곳 그러나 철문 옆으로 공간이 있어 지나갈수 있다.

*숲길진행 주위에 기도원이 있다는 팻말이 보입니다.

*산중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내려감.

*계명 수련원 방향 반대 방향으로 직진 진행.

*강화 가릉의 모습.

강화 가릉

Gareung Royal Tomb, Ganghwa , 江華 嘉陵
시대문화재 지정건립시기성격유형크기면적소재지분야
고려 후기
사적 제370호
1244년(고종 31)
능, 왕비릉
유적
가로 11m, 세로 14m
2,656㎡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도면 능내리 산16-2번지
역사/고려시대사

요약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도면에 있는 고려후기 제24대 원종의 왕비 순경태후 김씨의 능. 왕비릉. 사적.

 

 

개설

강화 가릉은 고려가 몽골의 침입에 대항하여 개경에서 강화도로 천도한 시기인 강도(江都) 시기(1232~1270년)에 조성된 왕릉 중 하나이다. 강화 가릉 외에도 이 시기에 강화 석릉(碩陵), 강화 곤릉(坤陵), 강화 홍릉(洪陵) 등의 왕릉이 조성되어 현존하고 있다.

역사적 변천

고려시대 강화에 가릉이 조성된 이후 조선시대를 거쳐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관리 소홀로 봉분이 붕괴되고 주변 석물들이 없어진 것을 1974년에 보수, 정비하였다. 2004년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 조사 사업을 시행한 이후, 현재의 모습으로 재정비되었다. 1992년 사적으로 지정될 당시의 문화재명은 가릉이었는데, 2011년 강화 가릉(7월 28일 고시)으로 변경되었다.

내용

순경태후 김씨의 본관은 경주(慶州)로, 고려 고종의 총애를 받았던 장익공(莊翼公) 김약선(金若先)의 딸이다. 고려 무신정권기 집권자 중 한 명인 최우(崔瑀)의 외손녀이기도 하다. 원종이 태자가 되기 이전 입궐하여 경목현비(敬穆賢妃)로 책봉되었다. 1235년(고종 22)에 원종이 태자가 되자 태자비가 되었으며, 1236년(고종 23) 충렬왕(忠烈王)을 낳고, 1244년(고종 31) 훙서하였다. 원종이 왕위에 올라 1262년(원종 3)에 추봉(追封)하여 정순왕후(靜順王后)로 삼았고, 아들 충렬왕이 즉위하여 1274년(충렬왕 즉위년) 12월에 순경태후로 추존(追尊)하였다. 1310년(충선왕 2) 원(元) 무종(武宗)이 제서(制書)를 내려 고려 왕비로 추봉하였다.

고려는 몽골군의 침입으로 1232년(고종 19) 개경에서 강화로 수도를 옮겨 1270년(원종 11)에 환도하였기에, 순경태후의 능은 개경이 아닌 강화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강화 가릉은 강화 진강산에서 남으로 뻗어내린 능선상에 위치한다.

특징

강화 가릉은 개경의 왕릉과 비교할 때 형식상 뚜렷한 차이를 보이지 않으나 규모가 작은 편이다. 능역은 가로 11m, 세로 14m의 규모로 이루어졌다. 고려시대 왕릉의 제도에 따라 묘역에 단이 구획되어 있는데, 강화 가릉의 경우 3단으로 이루어졌다. 봉분은 지름 7.6m, 높이 2.5m 규모다. 가로 2.55m, 세로 1.68m, 높이 1.78m 규모의 석실이 존재하는데, 석실 내에 부장대는 없고, 벽화의 흔적이 존재하지만 형태를 알아볼 수는 없다.

봉분 북동쪽과 북서쪽 모서리에 석수(石獸)가 있으며, 석실 전면에 석인상이 석실을 중심으로 동서로 마주 보고 있다. 봉분 서편에는 하대석 및 옥개석, 동자주가 진열되어 당시 능역에 배치된 석물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남북 분단의 현실에서 고려시대 왕실의 묘제에 대하여 직접 접할 수 있는 남한 내 문화유산으로 의미가 있다. 최근 인천광역시에서는 강화 가릉을 포함한 강화 소재 고려 왕릉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강화 능내리 석실분.

강화 능내리 석실분

江華陵內里石室墳
 
시대문화재 지정건립시기성격유형면적소재지분야
고려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28호
고려후기(1232∼1270)
돌방무덤, 석실분
유적
1기, 2,340.9㎡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도면 능내리 16-1
역사/선사문화

요약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도면에 있는 고려후기 장방형으로 축조된 돌방무덤. 석실분.

내용

1995년 3월 2일 인천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석실분은 고려시대의 것으로서 석실 내부는 화강암을 잘 다듬어 축조하였다. 석실의 크기는 남북 장축 방향 260㎝, 너비 196㎝의 장방형으로 축조되어 있다.

고려시대 지배계층의 무덤으로 알려진 이 고분은 과거 도굴로 인하여 석실이 노출되어 있어 보존·정비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됨에 따라 이를 위한 발굴을 2006년 말에서 2007년 초에 이르기까지 실시하게 되었다. 석실 내에는 유물 파편만 출토되었지만 봉분구조물과 석실, 건물지가 양호하게 남아 있어 고려시대 지배계급 묘제의 전형을 보여주는 사례로 확인되었다.

석실은 4m 범위의 풍화암반층을 파낸 후 잘 다듬어진 화강암으로 길이 2.6×1.9×2.1m 규모로 축조한 후, 천장은 3×1.1m 크기의 판석 3매로 덮고 입구는 2m 크기의 화강암 판재로 폐쇄한 구조이다. 시신을 안치하는 석실 내부 바닥 중앙에는 2.2×1.1m 크기의 석제관대를 설치하고 내부에 회를 채워 넣었다.

석실상부 봉분에는 호석(추정 12각형) 및 그 외부에 돌린 난간과 난간지대석, 그리고 동북과 서북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석수(동물상) 2기가 확인되었다. 석실 남편에는 제사를 지내기 위한 건물터가, 그 아래로는 길이 27m 규모의 축대가 남아 있다. 또한 석실 정중앙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네 방향에서 진단구(제사용 매납유물)로 판단되는 도기항아리가 출토된 바, 이 시기 왕릉급 고분에서 처음 발견되는 사례로 진단구와 토기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석실내 출토유물로는 청자편, 각종 금은제장식 파편, 유리그릇편·구슬류, 상부통보(祥符通寶, 송(宋) 진종(眞宗) 1008∼1016 제작) 1점, 은제못, 금박장식 관재 등 소량이지만 다양하게 출토되었다. 특히 봉황머리를 나타낸 은제장식편의 경우 문양이 있는 곳에만 도금처리하여 장식적 효과가 뛰어나도록 한 것이 특징적이다.

의의와 평가

강화능내리석실분 발굴조사는 고려 강도시대(江都時代, 1232∼1270) 왕릉인 석릉(碩陵: 희종 1237년 몰), 가릉(嘉陵: 원종비 순경태후 1244년 몰), 곤릉(坤陵: 강종비 원덕태후 1239년 몰)에 이은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네 번째 왕릉급 조사였다. 이 발굴조사를 통해 봉분을 구성하는 난간과 지대석의 구조 및 석수의 위치가 드러났고, 석실의 입구부와 묘도(墓道)에 대한 구조 및 축조방법을 명확하게 파악하는 성과를 거뒀다. 따라서 향후 고려시대 묘제연구 및 복원·정비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할 것으로 판단된다.

*숲에서 마을길로 하산.

*포장로와 합류 우측으로 길따라 진행.

*마을길 진행.

*능내리 큰나무(노거수) 마을의 수호신.

*잠시 후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진행.

*직진 농로길따라 진행.

*한적한 숲길진행.

*희미한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내려감.

 

*강화금식기도원앞 진행.

*기도원입구에서 도로따라 내려가지 말고 지금 정면에 우측으로 산으로 올라감.

*산길 진행에서 언덕을 내려와 도로오 합류.

*도로따라 한참을 진행.

*그늘이 있는 숲길 진행.

*자전거탄 풍경 펜션의 안내문.

*하우스가 있는 농로길따라 진행 우측으로.....

 

*양지마을 회관앞 통과.

*마을길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진행.

*해안가 도로따라 한참을 갑니다 여기는 시인 '천상병 귀천공원'앞 통과

*7월말의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면서 도로의 열기 장난이 아닙니다 정말 힘들어요 

 이런 길을 1시간을 가야 하다니 정말 대단합니다.

*도로따라 진행 외포리 입구 진행.

*외포리 해변가 도착 .

*외포리 식당가의 모습 규모가 크네요.

*이번 1박2일 일정 외포리에서 마무리 합니다

 7월말 한여름의 햇볕을 온 몸으로 받으면서 힘겨운 여정 무사히 마무리 합니다

 이제 긴여정의 끝이 다음번에 졸업을 합니다

 대단한 여정 이제 막바지.......

 

*출발.도착 차량 주행거리 =울산~가현산입구=425km                     

*누적 주행거리 =30,698km

*1차 통행료 = 22,500원

*누적 통행료 = 1,384,000원

*101코스 거리 = 1,535.9km+ 13.4km = 1,549.3km   

*출발.도착 차량 주행거리 =전등사입구~울산 = 450km

*누적 주행거리 =31,148km

*2차 통행료 = 20,100원

*누적 통행료 = 1,404,100원

*기타경비 = 1)차량회수 1일차 가현산입구~전등사입구=23,000원

                   2)차량회수 2일차 전등사입구~외포리=15,500원

                   3)1일차 점심 특허손짜장면=18,000원

                   4)1일차 저녁 대복 복전문점=162,000원

                   5) 간식 =29,200원

*누적합산=5,686,488원+247,700원=5,934,188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