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파랑길 걷기

남파랑길 29코스(남망산 조각공원~무전동해변)17.6km

문수산 아래 2020. 8. 17. 16:35

*제 목 : 남파랑길 29코스 (남망산 조각공원~무전동해변)17.6km

*일 자 : 2020년 08월15일 (토요일) 맑음.기온 29도~33도

*누구와 : 찰떡부부

*코 스 : 남망산 조각공원~동피랑.서피랑~해저터널~평림항~무전해변공원(17.6km:6시간20분)

 

*그동안 장마로 20여일을 쉬고 주말인 오늘 우리부부는 울산을 떠나 29코스 출발지 무전동해변으로

 2시간을 달려 29코스 도착지에 주차를 하고 택시로 출발지 남망산 조각공원입구에서 오늘의 일정을

 시작합니다.통영의 일기예보가 최고기온이 29도 울산보다 시원할것으로 생각하고 29코스를 시작

 했는데 기온이 울산이나 통영이나 별반차이가 없다.출발부터 온 몸이 땀으로 오늘 고생좀 할것같다.

 29코스가 70%이상 도로변으로 걸어야 하므로 무척힘든 여정이 였다.

 쉬엄쉬엄 휴식시간 2시간 정도에 카페에서 팥빙수 타임도 갖고 29코스 완료 했어요.

 

*출발점 남망산 공원입구에서 10시25분에 출발합니다.

*창원출입국.외국인사무소 통여 출장소앞을 통과.

*여기 강원수산에서 우측으로 진행 동피랑 가는길.

*동피랑 올라가는 골목길.

*동피랑 가는길에 담벼락에 씌어진 한려해상국립공원 글씨.

*동피랑 느린 우체통 이쁘요.

*동피랑 벽화마을 안내판.

요약 통영시 정량동에 있는 벽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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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피랑은 ‘동쪽’과 ‘비랑’이라는 말이 합쳐져서 생긴 이름이다. 비랑은 비탈의 통영 사투리이다. 통영 시가지 동쪽에 동호동과 정량동, 태평동의 경계를 이루는 이루는 산의 바위 피랑지대에서 유래한 토박이 지명이다. 옛 통영성의 동포루가 산 정상에 설치되어 있었던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푸른 통영21 추진협의회는 2007년 10월 도시재생의 색다른 시선 ‘통영의 망루 동피랑의 재발견’이라는 사업을 시행했다. 이는 통영시가 동포루 복원과 공원 조성 목적으로 마을을 철거하려고 하자, 공공미술을 통한 마을 살리기 사업이었다. 마을 곳곳에 그려진 그림들과 강구안 바다 풍경 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통영시의 명소가 되었다. 2008민관포럼 최우수상, 2008전국 마을만들기 대회 우수상 등을 받았다.

동피랑

울긋 불긋한 벽화마을

*드라마 촬영지 안내판.

*통영항 전경

요약 경상남도 통영시에 있는 항구

개설

통영항은 1963년 9월에 개항하여 주로 수산물의 수출입을 담당하고 있는 국제무역항이다. 한려수도의 비경을 간직한 한국의 나폴리로 불리기도 한다.

형성 및 변천

1906년 민간사업으로 해안 9,256.24㎡를 매립함으로써 건설이 시작되었다. 1940년부터는 일본 군항으로 탈바꿈되었으며, 이후 충무항으로 불리다가 1995년 시·군통합으로 다시 통영항으로 바뀌었다.

1963년 9월 25일 개항장이 되었는데, 임진왜란 당시의 사적과 유물이 보전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한려해상국립공원의 동쪽 중심지로서 관광항구의 기능도 하고 있다. 1962년 이후 방파제 축조와 선착장이 설치되었다. 통영항은 부산·여수·사천·마산·진해·거제 등과 그 밖에 인근 도서지방을 연결하는 해상교통의 중심지로서 일반 여객선 ·쾌속선 등이 정기 및 부정기적으로 운항되고 있다.

현황

2009년 현재 주요 항만시설은 안벽 1,337m, 방파제 1,637m, 잔교 12기, 물양장 3,312m 등이 있다. 선박접안능력은 모두 8척으로, 6천톤급 1척과 1천톤급 7척이다. 연간하역능력은 29만 6천톤이다.

정기 여객선 항로는 통영∼욕지 구간을 포함하여 5개가 개설되어 있으며, 낙도 보조항로는 통영∼매물도 항로를 포함하여 3개 항로가 개설되어 있다.

2009년의 전체 입출항 선박은 4,978척이며 총톤수는 389만 9,310톤에 달한다. 그 가운데 외항선은 1,084척에 169만 5,003톤이고, 내항선은 3,894척에 220만 4,307톤이다. 외항선의 입항 척수는 522척이고 총톤수는 22만 1,179톤이며, 일본을 제외한 동아시아에서 입항한 선박이 204척에 13만 6,250톤으로 가장 비중이 크다. 그 다음은 대양주에서 입항한 선박이 17척에 4만 2,914톤, 일본에서 입항한 선박이 301척에 4만 2,015톤 등이다.

외항선의 출항선은 562척이고 총톤수는 147만 3,824톤이며, 동남아시아로 출항한 선박이 25척에 62만 8,327톤으로 가장 많다. 그 다음은 일본을 제외한 동아시아로 출항한 선박이 244척에 54만 8,536톤, 대양주로 출항한 선박이 13척에 21만 8,620톤, 일본으로 출항한 선박이 278척에 4만 7,270톤 등이다.

2009년의 입출항 화물물동량 처리실적은 모두 53만 5,976톤으로 입항 물동량이 53만 5,938톤이고 출항 물동량은 38톤이다. 품목별 화물은 철강 및 관련부품이 34만 8,689톤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그 뒤를 이어 광석 및 생산물 6만 7,313톤, 어페류 및 갑각류 등이 6만 6,721톤 등이다.

2009년에 연안으로 입출항한 입항 척수는 모두 1,945척이고 입항 톤수는 111만 4,677톤이다. 출항 척수는 1,949척이고 출항 톤수는 108만 9,630톤이다. 한편 연안 입항화물은 44만 4,866톤이고 연안 출항화물은 2만 4,154톤이다.

 

*동피랑 전망대에서 통영항을 뒤로하고.

*동피랑 전망대에서.

*1872년도 통영고지도의 모습.

*동피루에서.

*천사의 날개.

*동피랑 골목길의 호돌이 벽화그림.

*통영 삼도수군통제영 가는길.

*망일루 삼도수군통제영의 정문역활을 항문.

 

*남파랑길은 망일루 구경 후 이골목으로 진행 합니다.

*이제부터 통영 삼군통제영을 구경 후 도로로 진행.

*도로변의 통영 목공소 옛그림이 그려지네요.

*통영 충열사의 정문.

소재지지역

경상남도 통영시 여황로 251(명정동)
통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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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사는 충무공 이순신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으로 임진왜란이 끝난 8년 후인 1606년(선조 39) 제7대 수군통제사 이운룡각주1) 이 이순신 장군의 충절과 위훈을 기리기 위해 어명을 받아 건립한 사당이다.

충렬사(忠烈祠) 현판은 현종 임금이 1663년에 내린 사액 현판으로 문정공 송준길이 글씨를 썼다. 1670년에 제51대 수군통제사 김경이 동재와 서재를 지었고, 1681년에는 제60대 수군통제사 민섬이 충렬묘비(忠烈廟碑)를 세웠다.

충렬묘비는 각 면이 평평하게 손질된 길쭉하고 네모진 형태이다. 비문은 1614년 좌의정 이항복이 지었던 여수 ‘이충무공 대첩비’의 비문을 그대로 옮겨 온 것이다.

1695년(숙종 21)에 수군통제사 최숙이 경충재를 증축하여 서당을 개설하고 지방민의 자제들을 교육했으며, 같은 해 최숙의 뒤를 이은 통제사 김중기가 숭무당을 창건하고 장교 3인을 차출하여 사무 · 관리를 담당하도록 하는 한편 통영시 산양읍에 소재하는 연대도를 사패지로 받아 전답을 마련하여 사당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1795년 정조 임금이 충무공전서(忠武公全書)를 발간하게 하고 어제(御製) 제문을 하사했으며, 1840년에는 이충무공의 8대손 이승권 제172대 수군통제사가 강한루와 영모문을 세웠다.

조선시대 후기인 1868년 대원군이 전국에 서원철폐령을 내릴 때에도 통영 충렬사는 보존하도록 했다.

ⓒ 한국학술정보 | CC BY-NC-ND

충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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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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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이순신 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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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충렬사는 사당을 비롯하여 동재, 서재, 경충재, 숭무당, 비각, 전시관, 강한루 등 건물 17동과 5개의 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충렬사는 충무공을 비롯한 휘하 장병의 위령을 위해 매년 음력 2월과 8월 중정일(中丁日)에 제사를 드리고 있다. 충무공 탄신일인 4월 28일에는 탄신기념제, 그리고 한산대첩축제, 고유제를 전통 제례의식으로 봉행한다.

일제강점기인 1919년부터 관청의 지원이 중단되자 지방주민들이 뜻을 모아 ‘충렬사 영구보존회’를 조직하여 향사 및 관리를 해 왔으며, 1951년에는 ‘재단법인 통영충렬사’를 설립하여 관리해 오고 있다.

충렬사는 1973년 6월 11일 사적 제236호로 지정되었다.

 

*충렬사앞의 조형물 특이하죠.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 누가 제일 예쁘니???

*서피랑 추억의 청춘상회.

*서피랑 99계단.

*현재는 서피랑공원길 알바 중.

*서피랑 출발점.

*서피랑공원 가는길 알바 후 바로 길을 찾아 작품전시전 앞에서,,,

*어느집의 정원에 있는 석고 인형의 모습.

*여기는 서피랑 터널 여기서 오른쪽으로 진행.

*서피랑 공원 안내도.

*서피랑공원의 서피루.

*서피루에서 바라 본 남망산의 통영예술회관의 모습.

*서피루에서 바라 본 통영항의 모습.

*서피루에서 바라 본 통영항과 건너 미륵산의 모습.

*서피랑길을 내려 오면서 바라 본 통영항의 모습.

*통영항을 배경으로....

*서피랑공원의 통영항을 시로표현.

*서피랑공원 입구를 떠나면서.

*짜투리 언덕에 사슴 두마리.

*통영 서호시장앞 통과.

*여기는 통영시립 박물관,

*윤이상 기념관 앞에서.

출생사망국적

1917. 9. 17, 경남 산청
1995. 11. 3, 독일 베를린
한국/독일

요약 작곡가. 경남 산청에서 태어나 통영에서 자랐다. 1959년 발표한 <피아노를 위한 5개의 소품>과 <7개의 악기를 위한 음악>으로 세계 음악계에서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1967년의 동베를린 간첩단사건으로 인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국제적 항의와 독일정부의 도움으로 인해 석방될 수 있었다. <유동의 꿈>, <나비의 미망인>, <요정의 사랑>, <심청> 등의 오페라 외에도 다수의 교향곡·관현악곡·협주곡·실내악곡을 썼다. 그의 작품은 동양의 정신이 충만한 독특한 색채의 선율로 현대음악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그는 생전에 '현존하는 현대음악의 5대 거장'으로 손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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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생애
    1. 초년기
    2. 청년기
    3. 유학 시절
    4. 동베를린 간첩단사건
    5. 서독으로의 귀화
    6. 말년
  2. 주요 작품 및 평가

윤이상(尹伊桑) 흉상

경남 통영에 있는 윤이상 기념관에 윤이상(尹伊桑) 흉상이 전시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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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초년기

한국 태생의 작곡가. 시인 윤기현의 3대 독자로 경상남도 산청에서 태어나 어린시절을 통영에서 보냈다. 음악공부를 반대하는 아버지를 피해 17세에 일본으로 유학, 오사카[大阪] 음악원에서 첼로·음악이론·작곡 등을 배웠다.

청년기

1937년 통영으로 돌아온 그는 화양학원의 교사로 있으면서 오페라와 작곡을 독학했으며, 첫 동요집 <목동의 노래>를 발표했다. 1939년에는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이케노우치 토모지로우[池內友次郞]에게서 대위법을 배웠다. 이후 제2차 세계 대전 발발하자 한국으로 돌아왔다. 8·15해방 후에는 부산시립고아원의 소장이 되어 전쟁고아들을 보살피기도 했다.

1948년 통영여자고등학교에서 음악교사로 있었고 1953년 서울에 있는 여러 대학에서 강사로 있으며 작곡과 음악이론을 가르쳤다. 이즈음 가곡과 실내악 등의 작품과 평론을 활발하게 발표했다. 1956년에는 <현악4중주 1번>과 <피아노 트리오>로 서울시 문화상을 받았는데, 이 수상을 계기로 선진 작곡기법과 음악이론을 배우기 위해 1956년 유럽으로 떠났다.

유학 시절

이후 프랑스국립고등음악원에서 P. 르벨과 T. 오벵, 서베를린음악대학에서 R. 슈바르츠 쉴링, J. 루퍼, B. 블라허에게서 음악이론과 작곡기법을 배웠다. 1959년 네덜란드 빌토벤에서 <피아노를 위한 5개의 소품>이, 다름슈타트 음악제에서 <7개의 악기를 위한 음악>이 초연되어 열광적인 호응을 얻음으로써 그의 이름이 세계 음악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1960년 서독 프라이부르크에서 중국·한국의 궁중음악에 대한 라디오 방송을 했고 1962년에는 관현악곡 <바라(婆羅)>가 베를린 라디오 방송관현악단에 의해 초연되었다. 1963년 북한을 방문했고 1965년 서독 하노버에서 <오 연꽃 속의 진주여!>를 초연했다.

동베를린 간첩단사건

그러나 1967년, 1963년 예술적 영감을 얻기 위해 방북했던 일이 중앙정보부에 포착되었고, 한국 중앙정보부는 그를 임의동행 형식으로 체포해 서울로 송환했다(→동베를린 간첩단사건). 이후 유럽으로 건너간 다른 유학생들과 함께 간첩으로 사형을 선고 받았다. 1968, 1969년의 2번에 걸쳐 10년이 감형되었다가 동료음악가·교수들의 국제적 항의와 독일정부의 도움으로 석방되었다. 감옥에서도 오페라 <나비의 미망인>(1967)을 작곡하고 그밖에 <율>·<영상> 등을 작곡했다.

서독으로의 귀화

1969년 2월 대통령 특사로 석방된 그는 서독으로 건너가 하노버음악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했으며, 2년 뒤인 1971년부터가족들과 함께 서독에 귀화했다. 1971년 뮌헨 올림픽의 문화행사로 위촉받아 작곡한 오페라 <심청>은 그에게 세계적인 작곡가라는 명성을 안겨주었다. 1977년에는 모교인 서베를린예술대학에 정교수로 임명되었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의 소식을 접한 그는 이듬해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관현악 작품 <광주여 영원히>를 발표했다.

말년

1988년에는 일본 도쿄에서 민족합동음악축전을 제의했는데, 2년 뒤 1990년 10월 북한을 방문해 분단 이후 최초로 범민족통일음악회를 주도해 남북한 문화교류의 첫장을 열었다. 늘 고국을 그리워했던 그는 복권이 이루어진 1994년 9월, 서울·광주·부산에서 개최된 '윤이상음악제'와 '한국창작오페라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고국을 방문하려 했으나 정부와의 갈등으로 끝내 귀국하지 못했다. 1995년 11월 지병인 당뇨병, 기관지천식, 신부전증이 악화되어 결국 그리던 고향땅을 밟지 못한 채 베를린에서 숨을 거두었다.

주요 작품 및 평가

작품으로는 네편의 오페라 <유동의 꿈>(1965), <나비의 미망인>(1967), <요정의 사랑>(1969), <심청>(1971)와 피아노를 위한 <다섯 개의 소품>(1958), 플루트를 위한 5개의 <연습곡>(1974) 등의 독주, 교향시 <광주여 영원히>(1981)과 <교향곡 제1~4번>(1982~85), 성악곡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1986) 등 다수의 협주곡과 실내악곡이 있다. 그의 음악세계는 동양적 직관과 서양적 분석, 한국의 전통음악과 서양음악의 기법이 변증법적 긴장관계로 만나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유럽의 평론가들로부터 '20세기의 중요한 작곡가 56인', '유럽에 현존하는 5대 작곡가', 독일 자아브뤼겐 방송이 선정한 '20세기 100년간 통틀어 가장 중요한 작곡가 30인'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힌 바 있다.

*윤이상 기념관앞 공연장에서.

 

*통영 해저터널 입구의 모습.

시대문화재 지정성격유형면적소재지분야

근대
등록문화재 제201호
터널
지명
길이 461m, 너비 5m, 높이 3.5m
경상남도 통영시 당동, 경상남도 통영시 미수동
경제·산업/교통

요약 경상남도 통영시 당동과 미수동 사이에 있는 해저터널.

목차접기

  1. 내용

내용

길이 461m, 너비 5m, 높이 3.5m. 통영반도 끝의 통영일대의 해안선은 출입이 복잡한 위에 섬이 많은 다도해를 이루고 있다.

통영반도와 미륵도(彌勒島) 사이는 ‘판데목’이라고 부르는 좁은 해협인데, 그 해협을 건너 미륵도로 가기 위해 메웠다가 다시 파내어 운하를 만들고 그 밑을 파내어 당시에는 동양 최초이고, 우리 나라에서 오직 하나인 해저터널을 만들었다.

이 공사는 1927년 5월에 시공하여 1932년 12월까지 5년 동안 걸린 대공사였다. 인마(人馬)와 차량이 통행할 수 있었고 관광성(觀光性)이 높아 한때 통영지방의 명물로서 유명하였다. 이 터널은 만들어진 지 오래되었고 낡은 공법(工法)으로 만들어진 관계로 바닷물이 스며드는 등 노후화되어 있다.

그리하여 1967년 해상에 운하교(運河橋)인 충무교가 완성된 뒤로는 차량의 통과가 금지되었다. 통영일대의 많은 사적과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일부로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통영의 둘레길 토영 이야기길 출발점.

*해안가의 피아노 조형물 포토죤.

**미륵도와 연결하는 통영대교의 (뒤쪽다리) 모습.

경상남도 통영시 미수해안로 53-1 (미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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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운하위에 당동~보디섬~미수동을 잇는 총연장 591m, 폭 20m의 통영대교는 상판 아치구간에 경관조명을 설치하여 밤이면 온화하고 푸근한 푸른 조명을 발산한다. 이 조명이 수면에 투영되면 럭비공 형태의 무수한 투영상이 만들어져 이 일대가 새로운 야간 관광 명소이자 낭만적인 산책로로 각광받고 있다.

*여기서 오른쪽 골목길로 진행.

*경상대학교 해양과학대학 개교 100주년 기념.

*경상대학교 해양과학대학 정문.

*해양과학대학을 지나 약간의 오르막을 오르고 있어요.

*인평동 앞바다의 모습 잔잔한 바다의 모습 아름다워요.

*평림동 앞바다의 조용한 포구의 모습.

*명정동 부근의 조그만한 섬 .

*남파랑길29코스 안내판 .

*오늘은 폭염속에 도로로 많이 걷다보니 무척힘든 걷기가 되고 있어요.

*평화로운 해안선의 모습.

*통영 실내체육관의 모습.

 

*이제 저멀리 무전동 해안이 보이기 시작해요.

*날씨가 너무더워 카페에서 팥빙수 한그릇 하면서 쉬었다 갑니다.

*더디어 무전동 해안도착.

*무더위와 싸우며 더디어 목적지 무전동해안 29코스 종착점 도착(6시간20분).

 

*남파랑길 누적거리 : 446.1km + 17.6km = 463.7km

*거 리 : 울산~남망산 조각공원 = 왕복290km 누적5,375km+290km = 5,665km

*경 비 : 통행료= 통행료 29.000원+택시11.000원+점심14,000원+팥빙수14,000원 = 68,000원

*누적 지출경비 : 849,300원 + 68,000원 =917.3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