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랑길(1,800km)

서해랑길 28코스(증도면사무소~관광안내소)16KM

문수산 아래 2022. 4. 22. 16:17

*언   제 = 04월 14일 목요일 흐림 종일 7~15도

*누구와 = 임무용,최현숙(부부)

*코   스 = 증도면사무소~썬코스트 리조트~신안해저유물발굴 기념비~증도 관광안내소 16km(7시간55분소요)

              (고사리 채취 관계로 2시간이상 지체됨)

*어제밤은 슬로시티센터 주차장에서 편안한 하루밤을 보내고 아침을 간단히 해결하고 어제 추가 걷기로

 상정봉에서 내려와 도로와 합류 우측진행 최가네 식당앞에서 오늘의 일정을 시작합니다.

 어제 상정봉 주변에서 고사리 채취 10Kg 이상 능선 주변에 고사리 엄청 많아요.

 

코스개요

- 공해없는 자연을 인정받아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에 지정된 슬로시티 증로를 걷는 코스

관광포인트

- 약 28,000여 점에 달하는 해저유물이 발굴된 곳으로 이를 기념하는 '신안해저유물발굴기념비'
- 바다가 검푸른색을 띄고 있어 이름붙여진 '검산항'

여행자 정보

- 시점: 신안군 증도면 증동리 증도면사무소
교통편) 지도여객자동차터미널에서 330-1, 334 농어촌버스 승차 '증도면사무소'정류장 하차
- 종점: 신안군 증도면 증동리 증도관광안내소

 

*첫날 27코스 오후 4시50분에 마치고 내일을 위해 1시간정도 28코스를 더걷기로 하고 시작점 증도면사무소

 앞에서 인증샷하고 출발합니다.

*첫날 27코스 종일 비가 오다 말고 계속해 걷기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무사히 주어진 코스 마치고 이어 28코스 시작합니다.

*28코스 시작점에서 무탈하게 완주를 기원합니다.

*시작점에서 증도면사무소 왼쪽 담장을 끼고 좌측골목으로 진행.

인구면적행정구역소재지사이트

1,451 (2022)
40.03㎢
14개리 16개반
전라남도 신안군
http://www.shinan.go.kr/home/www/about/village_info/village_info_03/page.wscms

요약 전라남도 신안군 북부 해상에 있는 면. 증도·병풍도·소악도 등 여러 섬으로 이루어졌으며, 대부분이 100m 이하의 낮은 구릉지를 이루고 있다. 방축리 앞바다에서는 중국 송·원 시대의 침몰된 배와 유물이 발견된 바 있으며, 일대가 신안 해저유물 매장해역으로 지정되었다.

대한민국 전라남도 신안군 북부 해상에 있는 면. 증도·병풍도·소악도 등 여러 섬으로 이루어졌으며, 대부분이 100m 이하의 낮은 구릉지를 이루고 있다. 쌀·보리 외에 태양초와 마늘, 양파가 많이 생산된다. 해안에서는 각종 어류가 어획되며, 김 양식과 천일제염이 이루어진다.

방축리 앞바다에서는 중국 송·원 시대의 침몰된 배와 유물이 발견된 바 있으며, 일대가 신안 해저유물 매장해역(사적 제274호)으로 지정되었다. 증도대교의 개통 이후 사옥도-송도를 거쳐 육로를 통해 지도읍과 연결되었다. 행정구역은 증동리·방축리·대초리·우전리·병풍리 등 5개리가 있다(법정리 기준, 행정리 기준 14개리). 면사무소 소재지는 증도면 문준경길 188이다. 면적 40.03㎢, 인구 1,451(2022).

증도의 갯벌

삐비꽃이 만개한 증도의 갯벌

*면사무소옆 골목길로 경사도가 있는 오르막을 오릅니다.

*오르막 언덕길에서 내려다 본 증도면 소재지의 모습.

*걷기길은 산길로 연결.

*능선에 대규모 시설물이 있네요 물탱크인지.....

*한반도 전망대 도착.

*전망대에서 발견한 서해랑길28코스 패널.

*전망대에서 바라 본 증도면의 전경 흐린날씨탓에 희미한 주위의 모습.

*여기서 일출 구경도 좋을것 같은데......

*전망대에서 우측으로 능선따라 진행.

*상정봉도착 주위에 고사리가 너무많아 한참을 여기서 작업을 하고 갑니다 10kg정도 꺽어는것 같아요.

*고사리 작업 하느라 시간이 오후7시가 되어 빨리 산을 내려갑니다.

*산에서 내려와 도로와 합류 우측으로 진행 최가네 식당앞에서 오늘일정을 마무리 합니다.

*어제밤을 슬로시티센터 주차장에서 밤을 보내고 2일차 걷기 일정을 오전 8시10분에 최가네식당 앞에서

 2일차 일정을 시작합니다.(출발 1.5km지점)

*도로따라 진행 우측으로 증도 슬로시티 건물보며 지나갑니다.

*진행길에 도로 건너편에 희망민박 끝지점 도로에서 왼쪽길로 진행.

*희망민박 옆으로 진행 해안가 도착 우측으로 진행.

*아침의 해안가 쉼 호흡을 하고 갑니다.

*마을앞에서 좌측으로 진행.

*해안가 끝지점에서 오른쪽 포장로따라 진행.

*해안가에서 포장로따라 올라온 썬코스트 리조트앞으로 진행.

*리조트 건물지나 해안가따라 진행.

*해안가에 그네가 조금은 .......

*리조트 진입로따라 진행 도로와 합류 좌측으로 도로따라 진행.(출발3.2km 지점)

*한적한 도로따라 진행.

*이쁜 펜션들이 많이 보이네요.

*검생이의 달 무엇인가????

 신안해저 유물 발견을 계기로 벌어지는 보물 소등 이야기 KBS미니시리즈 "검생이의달"1975년 어부 최형근(윤문)

 에 의해 최초로 발견되어 신고 함으로써 도덕도 앞바다 해저유물이 세산에 알려지게 되었다.

 부친   최형근의 업적을 기억 하고자 함.

*진행길 우측으로 깨끗한 펜션들이 많이 보이네요.

*진행길 도로에서 내려다 본 해안가의 모습 여름에는 .........

*여기도 대규모 개발사업이 진행 중이네요 개발이 능사가 아닌되.....

*도로따라 진행.

*건너편에 이쁜 카페인가 배모양의 건물.

*진행길 도로에서 좌측으로 신안해저유물발굴기념비가 있어요 잠깐 들어가 구경하고 나옵니다.

대성격유형제작시기분야

고려
해저유물, 자기, 목선, 목패
유물
1323년(난파 시점)
역사/선사문화

요약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면 도덕도(道德島) 북방 2㎞의 해저에서 인양된 유물.

개설

1976년 봄에 이 해역에서 조업 중이던 어선의 그물에 걸려 수점의 중국 도자기가 인양된 것이 계기가 되어 조사에 착수하게 되었다.

그 해 10∼11월에 걸쳐 실시된 제1·2차의 예비적인 조사에서 약 5,000점의 송·원대 도자기들이 발굴됨으로써 국내외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게 되었으며 본격적인 발굴계획이 추진되었다.

1977년 5월문화공보부에 의해 발굴조사단이 조직되고, 해군으로부터 51전대 소속의 함정과 해저구조대요원들로 구성된 지원단이 참가해 합동으로 유물의 인양과 해저 유적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었다. 매년 여름에 2개월 내지 4개월에 걸친 발굴이 연차적으로 계속되었다.

1982년부터는 이 유물들을 적재해온 운송선의 잔존 선체에 대한 해체인양이 병행되었다. 다음해 10월에 마지막으로 선저의 용골이 인양되었으며, 1984년 주변 해역에 대한 2차례의 추가 조사를 거쳐 9년간 11차에 걸친 발굴조사는 일단락을 보게 되었다.

내용

1) 수중발굴

그 동안에 인양된 유물의 총수는 2만 3502점(동전 제외)에 달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 도자기가 90%를 차지하고 있다. 이 유물들은 수심 20m의 해저에서 인양되었다. 이 해역은 간만의 차가 심해 항상 4∼5노트의 조류가 흐르고 있기 때문에 작업은 정조시(停潮時)의 30∼40분간에 불과한 짧은 시간을 이용해야만 하였다.

또한 수중와도(水中渦度)가 높아 시계(視界) 영(零)이라는 악조건 하에서 손으로 더듬어서 발굴을 실시하게 되었다. 여기에서는 한 변이 2m인 정방형을 단위구획으로 한 철제틀을 유적의 상면에 가설해 이른바 방격(方格, grids)조사법을 도입해서 고고학적인 방법을 최대한으로 살린 수중발굴을 행하게 되었다.

그 결과, 이곳에는 1척의 운송선이 해저면 하에 매몰된 상태로 잔존해 있었으며, 그것은 길이 약 34m, 너비 11m 정도의 목선임이 판명되었다.

2) 유물의 출토 형태

유물들은 선체의 내부와 외부에 걸쳐 발견되었다. 선체 내부에 적재된 도자기들은 크기가 70㎝×70㎝×50㎝ 정도의 목제상자에 수십 개 또는 수백 개씩 정연하게 담겨서 선창에 격납되어 있었다.

한편, 목선의 갑판 이상은 이미 완전히 부식되어 그 형태를 잃고 있었다. 조사가 진행됨에 따라 이 목선의 선창은 격벽(隔壁)에 의해 8∼9개로 구분되어 있고, 선저(船底)부분에는 막대한 양의 동전과 자단목(紫壇木) 등이 적재되어 있는 사실도 밝혀지게 되었다.

이 침몰선에서 인양된 방대한 양의 물품들은 무역을 목적으로 한 상품들이었다. 목제상자 속에서 발견된 도자기들은 10개 또는 20개씩 신품을 끈으로 묶어서 포장되어 있었다.

완전한 상태로 인양된 상자의 하나에는 후추〔胡椒〕열매가 가득 담겨져 있었다. 상자의 외면에는 소유주를 쉽게 구분할 수 있도록 부호와 번호 등을 먹으로 기입해놓은 것으로 보아, 복수의 하주(荷主)가 있었던 것이 분명하였다.

3) 목선의 항해 목적

이 무역선이 항행목적지로 일본을 향하고 있었던 것은 거의 틀림없다. 그 시대에 한국에서는 우수한 고려청자를 제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다량의 중국도자기를 수입할 필요가 없었다. 당시 중국으로부터 일본에 수입된 중요 품목이 도자기와 동전이었다는 사실은 일본의 문헌에 구체적으로 기록되고 있다.

한편, 출항지로서는 인양된 동추(銅錘)의 하나에 경원로(慶元路)라는 지명이 새겨진 것이 발견됨으로써 오늘날 저장성(浙江省)의 닝보(寧波)를 출발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4) 목선의 구조

이 무역선은 중국에서 건조된 선박임이 판명되었다. 이 목선은 조선기술상 이미 용골(龍骨)과 격벽과 같은 뛰어난 구조가 나타나 있을 뿐만 아니라, 외판(外板)의 연결방법으로는 이른바 클링커식이 고안되어 있다. 이 클링커식의 조선법에 대해서는 종래 외국학계에서는 북부유럽의 바이킹들이 건조한 선박 외에는 볼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해왔다.

이러한 선구적인 조선기술의 활용으로 미뤄볼 때, 이 무역선의 중국건조설은 매우 근거 있는 것으로 믿어져왔다. 그 주장은 발굴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 인양된 용골재(龍骨材)에서 보수공(保壽孔)과 그 속에서 중국동전이 발견됨으로써 확정적인 것이 되었다.

5) 선원의 구성

이 무역선이 중국에서 건조된 선박임은 틀림없겠으나, 승선한 선원단의 구성은 단순하지 않았던 것 같다. 선원들의 소지품으로서는 중국식의 취사도구 외에 고려에서 사용하던 수저도 발견되었다.

또한 일본사람들만이 사용하는 목제신발과 일본장기의 말 등이 인양되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은 이 무역선이 한·중·일 3국 출신의 선원들에 의해 항해되고 있었음을 추측하게 하는 것이다.

6) 목간(하찰 목간)

1982년부터 선저부(船底部)에 적재된 동전들을 흡인호스로 인양했을 때 적지 않은 수의 소형 목패가 함께 인양되었다. 이것들에는 유물의 수량과 구입한 시기를 나타낸 것으로 생각되는 날짜, 소유주의 이름, 그 아래에 수결(手決)이 먹으로 쓰여져 있었다. 그 중에서 강사(綱司)라는 이름을 적은 목패가 가장 많았다. 이 이름은 중세의 중국에서 선단주와 선장을 겸한 인물에 대한 호칭으로 사용된 강수(綱首)라는 이름을 연상케 한다.

그 밖에 약간의 승려들의 이름과 함께 일반인의 이름으로서는 대개가 일본사람으로 생각되는 이름들이 발견되었다. 인명 외에 동복사(東福寺)라는 절 이름을 나타낸 것이 10여 개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 목패의 내용에 대해서는 앞으로 세밀한 검토가 필요하겠으나, 이 무역선의 하주들 중에는 일본사람들이 상당수 관련되었던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강사라는 이름은 한국의 문헌에서는 절에서 관리직을 맡고 있는 승려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사용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7) 연대

이 무역선의 시기에 대해 발굴조사단은 1310∼1330년대에 걸친 동안에 난파하였다는 견해를 주장해왔다. 그 상한연대에 대한 근거로서는 인양된 유물들 중에서 발견된 원나라의 화폐인 지원통보(至元通寶, 1310년 주조)를 들 수 있다.

한편, 하한연대에 대해서는 막대한 도자기들 중에 아직 청화백자(靑花白磁)가 출현하지 않고 있다는 미술사적 사실을 중요시하고 있다. 동양도자사에 대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청화백자의 제작은 원나라에서 1330년대에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무역선의 연대에 대해서는 중국학자들로부터 1350년대설이 제기된 바 있다. 그러나 다행히도 동전들과 함께 인양된 목패들 중에 원나라의 지치(至治) 3년(1323)의 묵서명(墨書銘)이 있는 것이 2점 발견됨으로써 난파연대에 대한 문제는 해결을 볼 수 있게 되었다.

1976∼1982년에 이르는 6년 동안에 인양된 유물의 내용은 [표]와 같다.

[표]신안해저유물 발굴현황

靑磁白磁黑釉雜釉白濁釉金屬石材기타제1차제2차제3차제4차
구분 연도 종 류 별
1976.10.26∼11. 2 52 20 2 23 - - - 15 112
1976.11. 9∼12. 1 1,201 421 54 9 18 12   169 1,884
1977. 6.27∼ 7.31 1,900 1,866 56 604 74 264 4 138 4,906
1978. 6.15∼ 8.15 2,787 1,289 96 623 63 86 11 91 5,046

[표] 에는 동전과 자단목의 수량이 포함되지 않았다. 동전은 약 28톤(800점)에 이르며, 자단목은 약 8톤(1,017개)에 달한다.

그 중에는 한·신·당·북송·남송·요·금·서하·원의 각 시대에 주조된 50여 종의 화폐들이 포함되어 있다. 1만 6000여 점에 달하는 도자기들은 송·원대에 제작된 중국도자기들이며, 단지 7점의 고려청자가 발견되었을 뿐이다.

이들 해저유물에 대해서는 앞으로 진행될 조직적인 연구가 기대된다. 한편, 잔존선체는 과학적인 보존처리를 거쳐 현재 목포시에 있는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에 복원 전시중이다.

*신안해저유물 발굴해역부표설치.

*해저유물발견장소 부표모습.

*신안해저유물발굴기념비 구경하고 다시 도로로 복귀 계속했어 도로따라 진행.(출발5.3km 지점)

*한적한 이런곳에 모래 해변이 보이네요.

*한여름의 휴양지로 좋을것 같네요 그런데 편의시설이 전무 .(출발 8km지점)

*진행길 우측으로 시가있는 공원이 관리가 좀 부족하네요.

*진행길의 산벗꽃이 만개 보기 좋아요.

*해안 임도길지나 다시 방조제입구 도착 걷기길은 직진으로 농로길 사이로.

*농로길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진행 양옆으로 새우양식장 사이로 끝까지 진행.(출발 9.6km지점)

*양쪽으로 늘어선 새우양식장의 모습.

*그런데 앞으로 방조제 공사가 끝나면 조금전 임도길에서 내려와 방조제입구에서 앞에 보이는 방조제길로 건너오면 

 될것 같네요.

*포장로따라 계속진행.(출발11.4km지점)

*아스팔트 포장로따라 끝까지 진행.

*포장로 끝에서 좌측으로 진행 창고앞까진행.

*어울림.

*창고앞 길에서 우측 창고방향으로 진행 창고지나 임도길 진입 우측으로 계속진행.

*현재 우리는 서해랑길28코스 걷는 중.

*임도길따라 한참을 진행.

*임도길에서 바라 본 주위의 모습 산벗꽃이 많이 보이네요 산 꽃으로.......

*임도길 정상에서 반대편으로 내려가는 중 .

*가파른 임도길 끝에는 다시 양식장 건물이 보이네요.

*임도길 하산 앞에 보이는 하우스앞 포장로따라 진행.

*다음 갈림길에서 좌측 산밑으로 진행.(출발 13.7km지점)

*해안길 진행.

*저멀리 증도대교가 보이네요 여기서 보니까 멋진 그림이 형성되네요.

*꺽어지는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진행.

*농로길 한참을 진행 끝에는 오늘의 종점 관광안내소가 기다리고 있어요.

*다시 도로와 합류 좌측으로 증도대교 방향으로 진행.

*28코스 종점 관광안내소입구 도착 29코스 시작점 인증샷.(7시간55분 소요)

 오늘도 어제에 이어 임도길에서 고사리 수확 하느라 시간이 많이 지체 되었네요.

 오늘도 고사리 10kg정도는 꺽었네요 고사리 지천에 깔려 있어요. 2시간30분정도 작업 했는데 두사람이 한배낭씩

 꺽었어요. 

 

 

*출발.도착 차량 주행거리 =증도 최가네 식당앞~울산=400km  (시내운행포함)                            

*누적 주행거리 =8,968km

*1차 통행료 = 17,300원

*누적 통행료 = 398,600원

*기타경비 = 1)차량회수 1일차 지도대교최가네식당앞~태평염전=8,640원

                 2)차량회수 2일차 관광안내소~최가네식당앞 =5,600원

                 3)고속도로휴계소 호두과자.커피=9,000원

                 4)첫날저녁 농협마트 삼겹살 부식 = 21,000원

                 5)둘째날 그랜드 가든 냉면 =20,000원

*누적합산=1,408,310+64,240=1,472,550원

*28코스 거리 =16 km    .누적거리 = 437.7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