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 여행 7일째 융 프라우(3,454m) 산악열차 등정
*호텔 조식후 인터라켄으로 이동중 일출의 멋진 풍경
*일출의 장관
*차창 밖으로 비치는 일출의 장관
*브리엔즈 호수와 한적한 촌락의 모습
*호수가의 조용한 아침 맞이
*일출이 시작되고 있네요
*인터라켄역에 도착
알프스 산맥의 봉우리인 아이거, 융프라우, 묀히로 둘러싸여 있는 인터라켄은 베르너 오버란트 지역의 중심 도시다. 인터라켄이라는 지명은 ‘호수와 호수 사이’라는 뜻으로, 서역의 툰 호수와 동역의 브리엔츠 호수 사이에 있다. 스위스 여행에서 단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알프스인데, 유럽에서 가장 높은 전망대가 있는 융프라우요흐를 비롯하여 실트호른, 라우터부룬넨, 그린델발트, 뮈렌 등을 올라가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도시이다. 크지 않은 소박한 도시이지만 자연 경관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석회 성분이 많아 유난히 푸른빛을 띠는 호수와 웅장한 설산, 푸른 하늘을 마음껏 감상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거나 각종 레포츠를 즐기기에도 좋은 곳이다.
*인터라켄역을 배경으로
인터라켄은 스위스 베른 주에 위치한 도시로, 면적은 4.3㎢, 높이는 568m, 인구는 5,429명(2010년 기준), 인구 밀도는 1,234명/㎢이다. 도시 이름은 독일어로 "호수(laken) 사이(Inter)"를 뜻한다.서쪽에 있는 브리엔츠 호와 동쪽에 있는 툰 호 사이에 위치한 도시이며 시내에는 아레 강이 흐른다. 융프라우 산 등산의 거점이기 때문에 많은 관광객들이 몰린다. 융프라우산에는 인터라켄 동역을 거쳐 올라간다.
*역의 기차를 배경으로...
*융 프라우 전망대의 기상 관측소
*가로등 중간에 조성된 화분
*옛날의 증기 기관차로 운행모습 사진
*인터라켄역에서 바라본 설산의 모습
*융 프라우를 등지고 있는 인터라켄의 모습
*산악 열차를 기다리면서 바라본 촌락
*우리가 그림으로 보던 스위스의 모습이죠
*역에서 바라본 설산의 모습도...
*산악열차 출발역 주변의 모습
*기다리면서 설산을 배경으로..
*역 주변의 경치를 배경으로..
*막간을 이용해서...
*스위스의 모습 어때요 한폭의 그림이지...
*이제 산악열차는 출발하고 차창으로 비친 풍경
*풍경
*풍경
*풍경들
*고도가 높아지면서 설산의 모습
*설산의 모습
*고도가 2,865m지점
*전망대에서 바라본 설산의 모습
*융 프라우 전망대에서 설산을 배경으로
*뒤로 알레취빙하가 보이네요
*알레취 빙하의 끝없은 질주
*융 프라우(3,454m)에서 바라본 만년설과 빙하의 모습
*빙하길이가 27km에 이르는 알프스 초대 길이의 알레취 빙하 랍니다
*빙하 계곡을 배경으로
*전망대에서 바라본 주위의 모습
*전망대에서 설산을 배경으로....
*얼음동굴 입구에서....
*얼음동굴 할아버지와 함께
*얼음동굴 입구에서 나무조각 사슴과
*얼음동굴에서....
*얼음동굴 조각상앞에서....
*얼음굴에서..
*얼음동굴에서...
*얼음동굴에서....
*융 프라우 전망대좌측의 뮌히봉4,107m
*전망대에서 설산을 배경으로...
*융 프라우 전망대에서 뮌히봉을 배경으로.
*여행자의 로망인 런던,파리에 이어 누구나 유럽 여행 중에 꼭 한번쯤은 들려
봤은 직한 단골 방문지이며,또 귀에 박힐 정도로 익숙해진 곳이다.
사실 융 프라우는 알려진 겉모습보다는 더 옹골지고 매혹 적이다,'신이 빚어
낸 알프스의 보석'이라는 칭송을 받는데는 숨겨진 이유가 있다.
융 프라우의 높이는 4,158m다.아이거,묀히와 더불어 융 프라우 지역의 3대
봉우리 중 최고형님 뻘이지만,이름에 담긴 뜻은 아이러니하게도 '젊은 처녀'
다.그러나 수줍은 처녀 처럼 그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는 날은 그리 많지
않다.산 밑 인터라켄의 날씨가 화창하더라도 융 프라우는 그름에 만년설로
덮인 알몸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경우가 다 반사다.
빼어난 알프스의 고봉들이 즐비한 가운데 융 프라우는 알프스 최초로(2001
년)유네스코 세계 자연 유산으로 지정됐다.
융 프라우와 더불어 산줄기 사이로 뻗은 알레치 빙하도 유산에 속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변화무상한 날씨가 등재 이유 중 하나라는 점인데,유네
스코 목록을 뒤져보면 빼어난 산세, 빙하와 함께 끊임없이 계속되는 날씨 변
화를 등재 사유로 적고 있다.
유럽정상에 사람들이 느긋하게 머물며 날씨와 산세를 더불어 음미하는 데는 이런 사연이 있 사람들이 다.
산 위의 날씨가 시시각각 변하는 게 융프라우의 매력이라는 것이다. 3,000 m가 넘는 고지에는 천문대와 연구소도 들어섰다.
물론 유네스코는 융프라우가 유럽의 예술, 문학, 등반, 여행에 큰 몫을 하고 있다는 점을 빼놓지 않고 높이 사고 있다
융프라우가 친숙한 것은 역과 산악열차 때문이다. 암벽을 뚫고 1912년부터운행되기 시작한 산악열차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역(3,454m)인 융프라우요흐까지 이어 진다.
덕분에 힘 안 들이고도 정상근처까지 오르는 호사가 가능해졌다. 역전 우체국도, 컵라면도 덤으로 유럽 최고가 됐다.
산악열차는2012년이면 100주년을 맞는
산세를 제대로 감상하는 포인트는 플라토 전망대나 빙하지대로 이어지는 역 뒷문이다.
밖으로 나서면 융프라우와 22km 뻗은 알레치 빙하가 코앞에 펼쳐진다. 알레치 빙하는 유럽 최장 길이로 독일의 흑림지대까지 뻗어 있다.
서 있는 발아래에는 한 여름에도 만년설이다
만년설을 밟으며 빙하 트레킹(도보 여행)을 즐기는 게 융프라우 감상의 ‘첫 번째 숨겨진 속살’이다. 트레킹은 묀히산장까지 이어지는데 두세 시간이면 왕복이 가능하다.
걷다 보면 융프라우의 3대 봉우리가 ‘3D 파노라마 영화’처럼 장면을 바꾼다. 산장에서 맛보는 뚝배기 커피(주인장은 마운틴 커피라 부른다)는 감칠맛
이다.
*갑자기 헬기가 내린다 설경과 색이 어울린다.
*부상자가 있는지 급이 이륙한다.
뭔히봉을 배경으로
*나도 흔적을 남겨요
*만년설로 피라밋이 생겼네요
*많은 인파로 붐비네요
*융 프라우(4,158m)정상은 우리는 갈수 없고, 이곳은 융 프라우(3,482m)
입니다.융 프라우는 독일말로 "젊은 처녀"를 뜻하는데,융 프라우요흐는
"젊은 처녀의 어깨"정도 되겠지요.
열차로 올라갈수 있는 높이로는 세계 초대의 높이죠.
이 높이에서도 일년중 맑은 날이 50~70일사이 정도라고 하니 그래도 우리
는 100%는 아니지만 이정도의 조망 좋응 편이지.
*뮌히봉 4,107m
*빙하를 배경으로
*하산을 위해 열차를 기다리며
*중간 역에서 내려 일정구간 트레킹으로 하산해요.바라본 융 프라우
*여기서 하차 걸어서 내려가요.
*역에서 산악 열차를 배경으로
*야생화가 천지를 이루고 있어요.
*아름다운 융 프라우
*야생화의 모습
*여름에는 소들이 2000m이상의 고산지대에서 풀을 먹고 가을에 하산을 한다
네요.
*그래서 그런지 지천에 소똥 냄새로 향기가 별로....
*고산지대의 젖소와 만년설의 조화인가 그런데로 아름답네요
*배경이 멋지네요
*바흐알프 호수가 보이네요
*야생화의 천국
*알프스 야생화 밭에서
*트레킹 코스가 잘되어 있네요
*이기둥이 융 프라우에서 사망한 사람수 만큼 세워져 있다네요
*트레킹으로 내려 오면서 바라본 모습
*내려 오면서 뒤돌아 바라본 융 프라우의 모습
*트레킹 코스도 넘 아름다운 코스네요.
*세계각국의 관광객으로 항상 붐비는 곳이라네요
*산중의 호수가 그림처럼 보이네요
*바흐알프 호수를 배경으로...
*바흐알프의 산중호수
*호수를 배경으로
*다른 방향으로 호수를 배경으로 ....
*우리 부부의 한장면
*다른 방향으로
*주변을 배경으로
*융 프라우 정상을 배경으로
*바흐알프 호수의 전경
*운행중인 산악열차의 모습
*바흐알프 호수에 비친 알프스의 산모습
*바흐알프 호수와 야생화.산 그림자 어때요.
*보이는 중간역에서 다시 열차로 하산해요
*올려다본 융 프라우 정상의 모습 잘있거라 언제 또 볼려나.
*산악 열차를 타고 인터라켄역으로 ....
*스위스는 중립국으로서 전쟁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을 지켜 왔지만, 과거 생활고에 시달리던 시절에는 높은 임금 때문에 용병으로 지원하는 국민이 많았다. 이 사자상은 1792년 프랑스 혁명 당시 전사한 스위스 용병 786명을 기리기 위해 제작된 위령비이다. 덴마크 출신 조각가였던 토르발센의 작품으로, 프랑스 왕조 부르봉 왕가의 문장이었던 흰 백합이 그려진 방패 위에 부러진 창을 맞고 쓰러져 있는 사자의 용맹스러움이 묘사되어 있다. 자연석인 거대한 바위 중간을 쪼아서 사자를 조각한 모습에 관광객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1821년 덴마크의 조각가 베르텔 토르트발젠(1770~1844)이 기획하고 루카스 아혼(1789~1856)이 1824년 완성한 작품으로 스위스 루체른에 세워졌으며 1792년 8월 10일 봉기 당시 튈르리 궁을 지키다가 단 한명도 남김없이 전사한 786명의 스위스 근위대를 기리는 조각이다. 사진으로 보면 그리 커 보이지 않지만 저래봬도 길이 10m, 높이 6m에 달하는 대형 조각. 실제 크기가 얼마나 큰지 실감할 수 있는 사진. 처음 사진과 함께 보면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
사자는 죽어간 스위스 용병들을 상징하며 심장이 찔렸음에도 부르봉 왕조의 백합 문양이 새겨진 방패를 지키고 있는 것은 왕실에 충성스런 용병들의 모습을 찬양하는 것이라 한다. 사자상 위에는 "HELVETIORUM FIDEI AC VIRTUTI"라는 라틴어 명문이 새겨져 있으며 그 의미는 "헬베티아(스위스)의 충성심과 용감함"이라는 뜻이라 한다.
당시 분노한 수만의 파리 군중들이 튈르리 궁으로 진격하던 시점에서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를 지키던 프랑스군 근위대마저 몽땅 도망간 상황이었지만 루이 16세가 고용했던 스위스 용병들은 단 한명도 이탈하지 않고 혁명군에 맞서 왕을 지키다 전멸했다. 고용주인 루이 16세가 "그대들은 이만 철수해도 좋다"라고 이야기했음에도 이들은 끝까지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죽는 순간까지 루이 16세를 지켰다.
사실 혁명 정부와 군중들도 굳이 외국인 용병인 이들을 죽일 의향은 없어서 조용히 떠나면 그냥 보내줄 생각이었기에 루이 16세의 뜻대로 따랐으면 살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해산하지 않은 이유는 이후 죽은 병사의 품에서 발견된 유서에서 나왔는데, 만일 그들의 신의를 저버리고 도망친다면 이후 그들의 후손들 역시 신의를 잃어 용병으로서 일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2]스위스 용병의 신의에 대해 이야기할 때 사코 디 로마 때 전멸한 스위스 근위대의 이야기와 함께 자주 언급되는 일화.
숫적으로 압도적인 데다 대포까지 끌고 온 군중들이 당연히 이기고 루이 16세를 끌어냈지만, 이 과정에서 용병들이 단 한명도 항복을 하지 않고 싸운 탓에 엄청난 수의 인명피해를 내야 했다. 루이 16세를 지키기 위해 정말 단 한명도 항복하지 않고 죽었으며 이 과정에서 군중들도 수백여명이 죽어나갔기에 말 그대로 궁전 일대가 피로 물들었을 정도. 이후 죽은 군중의 유족들이 몰려와 죽은 용병의 시신을 난도질하고 옷을 벗겨 거리에 매달고 반토막내기도 하고 신체부위를 잘라내서 거리에 매달아둘 정도였다. 나폴레옹이 회고하길, 당시 여자들이 스위스 근위대의 성기를 잘라 매달았기에 기분이 매우 불쾌했다고 한다. 해서 이러한 혁명의 광기들이 나폴레옹이 혁명에 질리게 만든 계기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추측도 있다.
그러나 이후에도 스위스 용병들이 다른 선택을 하는 일은 없었다. 나폴레옹과 계약을 갱신한 스위스 용병들은 7,000명이 700명으로 줄어드는 순간까지도 전장을 이탈하지 않고, 나폴레옹이 철군한 뒤에야 함께 스위스로 돌아왔다. 나폴레옹을 배신하는 순간 받을 보복도 보복이지만, 전장을 이탈하는 순간 자손들은 용병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현실이 아닌 전설이 된 것은 스위스가 용병업 및 자국민의 타국 군대 입대를 아예 금지한 뒤의 일이다.
사자는 자신의 갈기를 깎아지른 절벽 아래의 은신처에 드리웠다. 그는 절벽의 살아있는 돌에서 깎아낸 사자이기 때문이다. 사자의 크기는 웅장했고, 그 자세는 고귀했다. 그 어깨에는 부러진 창이 꽂혀 있는채, 사자는 고개를 숙이고서 그 앞발로 프랑스의 백합을 지키고 있었다. 절벽에 드리운 덩쿨은 바람을 따라 흔들리고, 절벽 위에서 맑은 샘물이 흐르다 저 아래 연못으로 떨어저내렸다. 수련이 핀 연못의 부드러운 표면 위로 사자의 모습이 비쳤다.
그 주변에는 녹음이 우거졌다. 이 곳은 소음과 복잡함과 혼란에서 떨어져 차분한 숲의 구석에서 보호받고 있다. 이 사자가 죽어갈 곳으로는 예쁘장한 철제 난간을 쳐둔 소란스러운 광장의 화강암 받침대가 아니라 이곳이 걸맞았다. 루체른의 사자는 어디에 있던 인상적일 것이다. 하지만 이곳만큼 그의 모습이 인상적일 곳도 없으리라.
*루체론의 상징인 카펠교의 주변모습
*카펠교 주변의 유로 퍼포먼스를 하는 사람들
*
유럽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긴 목조 다리로, 1333년에 호수로 잠입하는 적들을 감시하기 위해 지어졌으며 전체 길이가 204m이다. 17세기에 다리 천장에 루체른의 역사와 수호 성인을 그려 넣은 111개의 판화 그림이 유명했지만 1993년 대형 화재로 인해 대부분 소실되었고, 다리는 다음 해에 대부분 복구되었지만 판화 그림은 25개 정도만 복구되었다. 다리 위의 팔럽각형 탑은 높이 34m의 ‘물의 탑’으로 원래는 망을 보기 위한 탑으로 지어졌지만 나중에는 고문실과 감옥, 보물실과 기록 보관실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기념품을 판매하는 기념품 가게로 운영되고 있다.
*카펠교 상판의 모습
*다리 난간에 장식된 꽃들의 모습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바라본 모습
*카펠교를 배경으로
*카펠교의 전망대 옛날에는 감옥으로 사용
*루체론 역사의 모습
루체론(독일어:Luzem,프랑스어:Luceme 뤼세론)은 스위스 중부 루체론주에
있는 도시이다.루체론주의 주돋이다.
루체론호의 서안에 면하며,로이스강이 시내를 흐른다.8세기 수도원과 대성
당이 건립되었고,알프스산맥을 넘는교통로의 요지로 발달하였다.스위스 가
입후 카톨릭중심지였으며,1873년까지 교황대사가 이 도시에 주재하였다.
알프스산맥의 유명한 필라투스산 기슭에 위치하여,알프스 산맥과 루체론호
의 경치를 감상할수 있는 유명한 관광지이다.성당과 박물관을 비롯한 옛
물도많이 남아 있다.
*루체론 호수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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