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 알프스 둘레길 1코스를 가다.
*날 자 : 2017년 11월18일 토요일
*날 씨 : 맑음 . -2~7도.
*코 스 : 양산 통도사~방기 알바위~삼성 SDI~가천마을 회관~가천 저수지
자수정 동굴나라~백암산~작천정 14.5km (4시간 45분소요)
*그동안 타지방의 둘레길을 걷고 완주하면서 정작 내가 사는 이곳의 명품 둘
레길 영남알프스 한바퀴 도는 국제신문에서 개척한 20코스 348km의 멋진
영남알프스 둘레길을 이번에 집사람과 함께 걷기를 시작합니다 .
*
- 국제신문
- 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 2011-09-01 19:09
8개월 만에 완료된 영남알프스 둘레길 개척 작업은 영남알프스의 지평을 한 차원 넓히는 계기가 됐다. 사진은 제18코스 구간 중 가산마을로 향하는 개척단원들의 모습이다. |
- 총길이 348㎞… 지리산 둘레길과 규모 면에서 엇비슷
- 부산 울산 경남 주민 접근성 높고 숨은 비경도 즐비
- 전국 둘레꾼 불러모을 명품 트레일 완성 과제로 남아
그런데 그 둘레길을 걷는다는 것은 등산을 하면서 걷는 것과는 또 다른 매력을 가져다 준다.
등산로만 걸을 때는 산이 하나의 대상으로 여겨지지만, 둘레길을 걸을 때는 하나의 대상을 넘어서서 생활의 일부요
삶의 터전으로 더욱 가깝게 다가온다.
등산이라는 행위는 어쩔 수 없이 나와 산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을 가져다 주기 일쑤지만,
둘레길은 그같은 긴장감마저 풀어헤쳐 버리게 만든다.
오히려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격의 없는 대화 속에서 그들의 삶을 엿보고 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강둑길 들판길 숲길 고갯길 등을 완전 무장해제된 상태로 편안하게 걸으면서 산을 바라볼 때 높게만 여겨지던 산이
좀 더 낮은 곳으로 내려오고 더욱 편한 친구로 다가오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본지가 지난 1월 시작했던
'영남알프스 둘레길 열다' 시리즈가 지난 주 금요일(8월 26일자) 제20코스 답사기를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번 시리즈는 지금껏 없었던 길을 새로 내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존재하고 있던 길들을 하나로 이어서 새로운 이름의 '큰 길'로 열기위한 노력이었다.
그 결과 '영남의 척추', '영남의 허파'로 불리는 영남알프스는 좀 더 풍요롭고 친밀한 존재로 어느새 영남 사람들 곁에 성큼
다가오게 됐다. 그 의미와 앞으로 남은 과제들을 짚어본다.
■구슬 서 말 꿰니 보배…총348㎞ 명품길 연결
이미 지난해부터 본지가 '영남알프스 둘레길'을 열기로 계획하고 사전 답사를 거쳐
올해 1월부터 본격적인 개척에 들어간 이유는 사실 거창한 것이 아니다.
제주도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 등 걷기 좋고 아름다운 코스로 이름난 타 지역의 장거리 트레킹 코스들이 속속 열리고 있었지만
부산과 울산권에는 딱히 내세울 지역의 장거리 트레일이 없다는 안타까움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분명히 부산에서 그렇게 멀지 않고, 영남인들을 넘어 전국 산꾼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고 있기도 한 '영남알프스'라는
훌륭한 자연자원이 존재하는데도 그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아쉬움 또한 컸다.
이 2가지가 결합돼 비로소 '영남알프스 둘레길'이라는 장거리 트레일 개척 작업에 나서게 됐다.
그리하여 1월 첫 주 양산 통도사 입구에서 대장정의 첫 발을 내딛고 매주 3회 씩, 총 8개월에 걸쳐 전체 구간을 이음으로써
영남알프스를 크게 한 바퀴 도는 환형(環形) 종주길이 완성됐다.
취재팀은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이 담고 있는 진리를 수백번 되뇌면서 옛 사람들이 걸었던 길,
다랑이논의 들길, 한적하고 완만한 계곡길, 고즈넉한 산골 마을의 토담길, 수풀 우거진 묵은 길 등을 가리지 않고 이어나갔다.
그렇게 연결된 '길의 구슬'들은 튼튼한 '실'에 꿰어지고 꿰어져 총길이 348㎞라는 아주 긴 '보배 길'로 다시 태어났다.
이렇게 탄생한 둘레길을 통해, 최고봉인 가지산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연결돼 있는 총 9개의 해발1000m급 산봉들이 연결된
영남알프스 산군은 비로소 낮은 데로 임했고 그 넉넉한 품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통도사 운문사 등 거찰을 포함한 수많은 사찰과 암자, 월연정 박연정 만화정과 같은 옛 선비들의 자취가 밴 고풍스런 정자와
고택 서원들이 영남알프스의 품 속에서 빛을 발한다.
또한 천전리각석 반구대암각화와 같은 국보는 물론이고 수많은 국가지정 보물과 유형문화재, 사적지가 1000리에 가까운
이 길에서 중간 매듭 구실을 하면서 저마다 품고 있는 생생한 '느낌'을 전해준다.
수백년 묵은 은행나무와 느티나무 회나무 서어나무 소나무 등 고목들은 쉴만한 그늘이 돼 줄 뿐 아니라 편안한 친구가 되어 준다. 숨어 있던 크고 작은 폭포와 웅덩이는 목마른 둘레꾼에게 청량제 역할을 자임하기도 한다.
그 속을 걸으면서 둘레꾼들은 이런 많은 '매듭'들이 품고 있는 전설과 설화, 옛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순박하고 인정 넘치는 영남알프스 자락의 사람들을 만나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슬며시 오늘을 사는 자신의 이야기도
풀어낸다. 그런 과정을 통해 길은 더욱 아름답게 다가오고 스스로의 영혼은 정화된다.
348㎞에 달하는 영남알프스 둘레길은 경남 경북 울산 3개 시도의 5개 시군(양산시 울주군 경주시 청도군 밀양시),
17개 읍면 74개 리(동) 132개 마을을 거치는 방대한 코스다.
경남 전남북 등 3개 시도에 함양군 산청군 하동군 구례군 남원시 등 5개 시군 16개 읍면, 80여개 마을을 거치는 지리산 둘레길과 규모면에서 비슷하다.
하지만 부울경 주민들이 접근하기에는 지리산 둘레길에 비해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훨씬 유리한 잇점을 갖고 있다.
총 24개 코스로 나눠져 있으며 코스 당 평균 거리는 14.5㎞로 당일 걷기 코스로는 아주 적합한 수준이다.
매주 한 코스씩 답사한다고 해도 꼬박 반년은 걸린다.
1코스부터 연결해서 걸어도 되지만 접근하기 좋은 곳, 또는 가보고 싶은 코스를 선택해서 편하게 걸어도 무방하다.
다만 영남알프스의 넓고 깊은 멋을 음미하면서 부산 울산권에도 이렇게 이야깃거리와 볼거리, 먹을거리가 풍부한 걷기 코스가
탄생한 기쁨을 함께 하면 좋겠다는 것이 취재팀의 바람이다.
■걸음마는 뗐지만…지자체 관심 협력 필수
국제신문이 영남알프스 둘레길 개척을 이뤄내긴 했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개척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아직은 길목 길목마다 표시된 길 안내 부착물이라고는 본지 취재팀의 노란색 안내리본이 유일한 수준이다.
이런 사정이다 보니 지난 8개월 동안 기사를 읽고 뒤따라 나선 많은 산꾼과 둘레꾼들이 취재팀에게 수많은 질문도 쏟아냈다.
이들이 던지는 질문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이 바로 '제대로 된 안내판이나 이정표 쉼터 등이 있느냐'는 것이다.
이들은 지리산 둘레길이나 북한산 둘레길, 제주도 올레길 등에서 봤던 통일된 형식의 이정표와 안내판 등을 떠올려서
던진 질문이지만 아쉽게도 영남알프스 둘레길에는 아무런 안내시설이나 편의시설이 없다. 말 그대로 야생의 길일 뿐이다.
굳이 전국 어디에 내놔도 손색 없는 명품 트레일을 열어보겠다는 국제신문의 의지는 제쳐둔다 하더라도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는 '영남알프스 둘레길'이 제대로 자리 잡게 하기 위한 인근 지방자치단체들의 관심과 상호협력,
통일된 의지가 필요한 시점이다.
물론 지난달 11일 울산시청에서 영남알프스 둘레길 개설을 목표로 한 울산 양산 밀양 경주 청도 등 5개 지자체 관련 공무원들이 모여 머리를 맞댔다는 소식은 반갑기 이를 데 없는 소식이다.
올 봄 울산시청에서 열렸던 전문가 세미나에서 본지 취재팀이 적극 권장했던 '관련 지자체간 협력을 통한 별도의 통합기구
설치'의 초기 실행단계로 읽혀져 더욱 고무적으로 다가온다. 이날 모임에서 참석자들은 우선 울산권역의 둘레길 구간 65㎞를
내년 말까지 개설한다는데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우려가 없는 것도 아니다.
자칫 용두사미가 되지 않을지, 또 둘레길 개설이라는 명분 아래 관 주도의 영남알프스 자연 훼손과 개발이 가속화 되지 않을지
우려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 그동안 사전답사와 본답사를 통해 총 24개 코스를 개척한 실질적 길잡이인 본지 영남알프스둘레길 개척단의 이창우 단장은 "행정기관에서 나서 주는 것은 더 없이 반가운 일이지만 자연스러움을 지키면서 불편한 구간을 보완하는 최소한의 시설 설치에 그쳐야 될 것"이라며 "코스 설정 등 세부적인 부분도 관 주도 보다는 외부 민간단체 및 전문가들이 망라된 별도 기구로 일원화하고 예산 배정과 사유지 경유 문제 조율 등의 부분을 관청에서 지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리산 둘레길과 제주 올레길 등도 모두 관이 주도한 것이 아니라 별도의 민간 법인체가 주도하고 예산 및 행정 지원을 관에서
맡은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결국 본지가 1단계 개척을 완성한 영남알프스 둘레길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뗐지만 이것이 전국의 둘레꾼들을 불러 모을 진정한
명품 트레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 주민들의 관심과 의지, 그리고 합리적인 행정관청의 지원이 맞물려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 영남알프스 둘레길 산행지도 (※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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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신문 영남알프스 둘레길 개척단 답사 코스 | ||||
코스 | 구간 | 거리 | 경유 | 특징 및 볼거리 |
1 | 통도사 | 14.5 | 5리 | 금강골 알바위 작천정,자수정동굴나라 |
2 | 울주 작천정 | 13.5 | 5리 | 인내천바위,언양 지석묘, 부로산봉화대, 굴암사 김취려장군묘 |
3 | 울주 지내리 | 18.5 | 6리 | 구량리은행나무 탑골 일명 '울산의 강원도' |
3-1 | 구량리은행나무~반구대 | 12.5 | 3리 | 천전리 각석, 반구대암각화, 공룡화석 |
4 | 내와리 | 12 | 2리 | 태화강발원지 탑골샘백운산 김유신 전설 |
5 | 경주 박달리 | 17.5 | 3리 | 상목골재 낙동정맥 |
6 | 경주 심천 | 13.5 | 2리 | 심원사 가슬갑사터 |
7 | 청도 삼계리 | 14 | 1리 | 나선폭포 양바위 |
8 | 청도 신원리 | 16 | 3리 | 방음동 용신소 무적숲 무적암 정거고개 쇠등 임당내시집 옛길 |
8-1 | 청도 방음 | 20 | 3리 | 운문호 일주, 호산,공암풍벽 운곡정사, 망향정 |
9 | 청도 임당리 | 17 | 3리 | 베틀바위 박곡지 대비사 |
10 | 청도 신지리 | 14.5 | 4리 | 선암서원 어성산성 봉황애 삼족대 장수골 |
11 | 청도 장연 | 17 | 5리 | 장연사지3층석탑 오대 마전암 박연정450년 은행나무 |
12 | 밀양 고정리 | 14 | 4리 | 약산 김원봉 고명학교보담산 숲촌 장씨정려 |
12-1 | 밀양 고정리 | 12.5 | 4동 | 기회송림 월연정 백송용평터널 금시당 용두보 |
12-1 | 밀양 영남루 | 9 | 2동 | 영남루 아랑각 밀양읍성 무봉사 추화산성 손씨고택촌 |
13 | 밀양 남기리 | 14 | 3리 | 혜산서원 모당샘 죽원재사 칠산정 칠탄서원 영원사지 |
14 | 밀양 미촌리 | 14.5 | 3리 | 법흥상원놀이 만어사 경석용소마을 |
15 | 밀양 감물리 | 17.5 | 2리 | 깨밭고개 보문사 무릉동자암서당 |
16 | 밀양 사연리 | 12.5 | 2리 | 사연교 정각산 반계정 아불교 범도연 벼락덤이 |
17 | 밀양 고례리 | 13 | 2리 | 낙주정 풍류동 가산마을 밀양댐 향로산 다람쥐골 |
18 | 양산 선리 | 12.5 | 2리 | 풍호대 석계시살등옛길 |
19 | 양산 내석리 | 16 | 2리 | 복호폭포 오룡골 연구대 |
20 | 양산 삼감리 | 12 | 3리 | 봉화등임도 법수사 |
*10시 통도사(영축 산문)앞에서 출발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로 해인사, 송광사와 함께 삼보사찰의 하나이다. 646년 자장율사가 중국 당나라에서 가져온 부처의 사리·가사·대장경 등을 금강계단에 봉안하고 창건했다.
규모가 작았으나 고려 선종대에 확장되어 금강계단 상부의 석종형 부도와 극락전 앞의 3층석탑·배례석·봉발탑·국장생석표 등이 건립되었다. 여러 차례에 걸쳐 중수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완전히 불타버리고 1603년 송운대사가 재건, 1641년 우운대사가 다시 중건하여 대가람이 되었다. 가람배치는 동서축을 중심으로 하여 남북으로 상로전·중로전·하로전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대웅전(보물 제144호)·국장생석표(보물 제74호)·은입사동제향로(보물 제334호)·봉발탑(보물 제471호) 등이 있다.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통도사로에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로 법보(法寶) 해인사, 승보(僧寶) 송광사와 함께 불보(佛寶)로 삼보사찰(三寶寺刹)의 하나이다. 646년(선덕왕 15) 자장율사가 중국 당나라에서 가져온 부처의 사리·가사·대장경 등을 금강계단에 봉안하고 창건한 절이다. 이와 같이 불사리와 대장경이 최초로 봉안된 사찰로 창건 당시부터 매우 중요한 절이었으며 이후 신라 율종(律宗)의 근본도량이면서 신라 승단(僧團)의 중심지가 되었다.
절의 이름은 승려가 되려는 출가자들이 모두 금강계단에서 득도하거나 모든 법을 깨달아 일체중생을 제도한다는 뜻, 또는 산의 형세가 부처가 설법하던 인도 영취산의 모습과 통한다는 뜻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절의 창건과 관련하여 자장율사가 이곳 연못에 사는 9마리 용을 항복시키고 대가람을 이루었는데 1마리 용만 머물게 하여 절을 수호했다고 하는 설화가 있으며 지금도 금강계단 옆에는 구룡지(九龍池)가 상징적으로 남아 있다. 처음에는 금강계단을 중심으로 한 규모가 작은 절이었으나 고려 선종대에 크게 확장되어 금강계단 상부의 석종형(石鐘形) 부도를 비롯하여 극락전 앞의 3층석탑 및 배례석(拜禮石), 봉발탑(奉鉢塔), 국장생석표(國長生石標) 등이 건립되었다. 그후 여러 차례에 걸쳐 중수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완전히 불타버리고 1603년(선조 36) 송운대사(松雲大師)에 의해 재건된 뒤, 1641년(인조 19) 우운대사(友雲大師)가 다시 중건하여 대가람이 되었다.
현재 가람배치는 독특한 형태로 되어 있는데 동서축을 중심으로 하여 남북으로 건물이 배열되어 있다. 즉 대웅전(보물 제144호)과 금강계단을 비롯하여 응진전·명부전 등의 상로전(上爐殿)과 관음전·용화전·대광명전·장경각·황화각·화엄전 등의 중로전(中爐殿), 영산전·극락전·약사전·만세루(萬歲樓)·영각(影閣) 등의 하로전(下爐殿)으로 구성되었다. 이러한 가람구조는 금강계단 중심에서 점차 대웅전 중심의 공간배치로 변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건물들은 모두 조선시대 이후에 건립된 것으로 주위에 회랑을 돌리지 않고 삼문(三門)을 두어 구분했는데 일주문(一柱門)은 완전히 절의 영역 밖에 있으며 천왕문(天王門)과 불이문을 들어서야 각 전각들에 이르게 된다. 중요문화재로는 국장생석표(보물 제74호)·은입사동제향로(보물 제334호)·봉발탑(보물 제471호) 등이 있다. 이밖에 석가여래가사·자장율사가사·고려감지금니화엄경·고려은입사동제향로·동판천문도·감로병·육환철장(六環鐵杖)·동자상·청동소탑·법라·화엄만다라·청동요령·금자법화경·구룡병풍·삼장서행노정기(三藏西行路程記) 등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많은 유물이 최근에 건립된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부속암자로는 극락암·비로암·자장암·백운암·축서암·취운암·수도암·사명암·옥련암 등이 있다.
통도사국장생석표
보물 제74호. 높이 166cm, 너비 60cm. 통도사의 경내를 표시한 것으로 동남방 약 2㎞ 지점의 도로변에 있다. 국장생이라는 말은 국명에 의해 건립된 장생이라는 의미로 보인다. 원래 장생은 절이나 마을 입구 및 길가에 세워진 마을의 수호신으로 벽사·비보(裨補)의 기능과 함께 거리를 알려주는 이정표의 역할을 했으며 마을 사람들의 소원성취를 기원하는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신라와 조선시대에 걸쳐 장생(長生)·장생표주(長生標柱)·목방장생표(木榜長生標)·석적장생표(石磧長生標)·석비장생표(石碑長生標)·국장생석표·황장생·장승(長承)·장생우(長栍偶)·장성(長性 또는 長城)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려졌다. 그러나 16세기 이후에는 장승이란 명칭이 일반화되었으며 입목(立木)·입석(立石)·입적(立磧) 등 민간신앙의 한 형태로 받아들여져 크게 유행했다. 〈통도사사리가사사적약록 通度寺舍利袈裟事蹟略錄〉에 의하면 통도사 주변의 산천 비보(裨補)를 위해 12곳에 장생표를 세웠다고 되어 있으므로 이것은 이정표의 역할 뿐만 아니라 풍수지리를 바탕으로 한 도참사상과도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예로는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도갑사 입구, 경상남도 밀양시 무한면 무안리, 경상남도 울산시 울주구 삼남면 상천리 등의 장생을 들 수 있는데 특히 밀양과 울산에 있는 장생은 통도사 장생과 같은 시기에 세워진 것이다. 이 장생은 앞면에 해서체로 새겨진 명문을 기초로 1085년(선종 2)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명문을 통해서 당시 사찰과 관청 간의 관계를 알 수 있으며 이두문(吏讀文)이 포함되어 있어 금석문 연구에도 좋은 자료이다.
통도사금강계단
국보 제290호. 높이 300cm, 너비 990cm. 646년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가져온 불사리를 경주 황룡사탑, 울산 태화사탑과 함께 봉안한 곳으로 매년 초하루와 보름날에 계(戒)를 설했다고 한다. 금강계단이라는 이름은 이곳에서 받은 계법이 금강(金剛)과 같이 단단하다는 뜻에서 비롯되었다. 〈삼국유사〉 권3 전후소장사리(前後所藏舍利)조에 의하면 사리가 도난당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금강계단의 석함 안에는 구렁이와 두꺼비가 있다고 했으나 1235년(고종 22) 김이생(金利生)과 경석(庚碩)이 군사를 시켜 석종을 들어 보았더니 작은 석함의 유리통 안에 사리 4개가 있었다고 한다.
〈양산통도사석가여래사리기 梁山通度寺釋迦如來舍利記〉에는 1379년(우왕 5) 왜구의 침입으로 주지 월송대사(月松大師)가 불사리를 송경(松京)으로 옮겨오자 왕과 왕비가 예를 다하여 공경하여 사리의 분신(分身)을 얻었다고 되어 있다. 임진왜란 때에는 통도사의 사리가 왜구에 의해 도난당했는데 백옥(白玉)거사가 적의 포로로 있다가 사리를 다시 찾아온 이야기는 유명하다. 또한 사명대사 유정(惟政)은 임진왜란을 피해 사리를 대소 2함(函)에 나누어 금강산에 있는 휴정(休靜)에게 보냈으나 자장의 뜻을 받들어 1함을 되돌려 보내어 1603년 통도사 계단을 중수한 뒤에 봉안했으며, 나머지 1함은 태백산 살나사(薩那寺 : 葛盤寺·淨岩寺)에 안치했다. 그러나 〈건봉사석가치상립탑비 乾鳳寺釋迦齒相立塔碑〉에 의하면 사명대사가 왜구로부터 다시 찾은 통도사의 사리는 금강산 건봉사와 대구(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면) 용연사(龍淵寺) 석조계단에 나누어 봉안했다고 한다. 특히 용연사의 경우 통도사 금강계단을 모방하여 조선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주목된다. 1652년(효종 3)에 정인대사(淨人大師)를 중심으로 중수되기 시작하여 1705년에는 성능대사(性能大師)에 의해 크게 중수되었고 그뒤에도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 구조는 정방형으로 된 2중 석단 위에 석종형 부도가 안치되어 있는데 그 안에는 과립 3매, 불아(佛牙), 정골지절(頂骨指節)의 사리가 봉안되어 있다. 석단 네 귀퉁이에는 사천왕상을 배치하고 기단의 상하 면석에는 비천상과 불상·보살상을 조각했는데 특히 1층 계단의 면석에는 총 32구의 불상·보살상이 부조되어 있다. 석종부도는 연화대좌 위에 놓여 있고 앞면에는 향로를, 좌우에는 비천상을 양각했는데 조각수법이 부드러운 편이다. 석단 주위에는 석조 난간과 석문이 있으나 모두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 금강계단은 몇 차례의 중수를 거쳤지만 창건 당시의 석조물로서 부처의 진신사리가 안치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사리를 정암사·건봉사·용연사에도 나누어 봉안했다는 점에서 불사리 봉안사찰의 원류가 되는 가장 오래된 불교 성지라 할 수 있다.
통도사대웅전
국보 제290호. 1961년 대웅전을 수리할 때 서까래에서 발견된 묵서명(順治二年甲申五月十一日立柱 同年八月初十日上樑 同年八月十八日椽)에 의하면 1645년(인조 23)에 중건했다고 한다.
평면구조는 앞면 3칸, 옆면 5칸으로 옆면이 앞면보다 긴 장방형의 건물이며 지붕도 T자형의 합각지붕으로 되어 있는 특이한 형태이다. 이러한 건물구조는 법당 안에 불상이 없는 대신 뒤쪽에 있는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을 예배하고 또 입구로부터 천왕문·불이문·탑을 잇는 직선상에 두기 위해 측면에도 합각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따라서 앞면인 남쪽에는 금강계단, 동쪽에는 대웅전, 서쪽에는 대방광전, 북쪽에는 적멸보궁이라는 편액이 각각 걸려 있지만 의미는 같다.
지대석 위에 있는 기단의 면석에는 우주와 탱주를 새기고 그 사이에 연꽃무늬가 조각되었으며 돌계단의 층계석과 좌우에도 매우 정교한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이러한 가구식 기단은 창건 당시 신라시대의 석조기단으로 보인다. 기둥은 배흘림이며 기둥 위에는 창방과 평방을 놓고 그 위에 공포를 짜올린 다포계 형식이다. 공포는 외3출목·내4출목으로 되어 있으나 살미첨차의 끝이 앙서로 되어 있어 조선 중기 목조건축의 특징을 보여준다. 앞면과 옆면에는 빗살무늬와 꽃살무늬로 된 분합문을 달았으며, 뒷면에도 금강계단을 예배하기 위해 벽으로 막지 않고 4분합과 2분합을 설치했다.
건물의 네 귀퉁이에는 추녀를 받치는 활주를 세웠으며 지붕 기왓골 수막새 끝에 박은 연봉 모양의 와정은 독특하다. 내부바닥은 우물마루이며 천장은 층단천장으로 국화·모란 등의 문양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으며 좌우의 끝부분은 우물천장으로 마무리했다. 불단에는 불상이 없는 대신 화려한 문양을 조각했으며 금강계단을 향하여 길게 설치되어 있다.
통도사봉발탑
보물 제471호. 높이 260cm. 하대석과 간석으로 구성된 대석 위에 발우형의 그릇을 얹어 놓은 특이한 형태이다. 절에서는 석호 또는 의발탑이라고도 한다. 이 봉발탑은 석가의 발우를 바쳐 장차 용화수 아래에서 성불할 미륵불의 출현을 기다린다는 신앙상의 의미에서 미륵불이 봉안된 용화전 앞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넓은 방형의 지대석 위에는 원형의 복련 하대석이 놓여 있는데, 옆면에 돌린 2줄의 선을 중심으로 아랫부분에 탱주 모양의 기둥을 8개 새겼으며 윗부분에는 4중의 중판복련을 조각했다.
하대석 윗면에는 3단의 얕은 굄이 간석을 받치고 있다. 간석은 부등변 팔각형으로 중앙에 융기된 테두리를 돌렸다. 상대석은 하대석과 마찬가지로 8엽의 앙련을 조각하여 서로 마주보게 했으며 윗면에는 3단의 얕은 굄이 있다. 상대석 위에 있는 석조발우는 뚜껑이 덮여 있고 그 밑에 굽받침이 새겨졌을 뿐 아무런 장식이 없다.
이 석조물은 불교의 교리를 배경으로 조성된 보기드문 예이며 간석의 형태나 연판의 양식 등으로 보아 고려 중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통도사은입사동제향로
보물 제334호. 높이 33cm, 입지름 30cm, 밑지름 24.7cm. 넓은 전이 달린 몸체와 나팔형의 받침대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고려시대 향완의 형태이다. 전체 표면에는 화려하고 복잡한 문양이 은입사되어 있다. 구연부인 전의 윗면에는 당초무늬가 장식되었고 뒷면에는 '通度寺上'이라는 명문이 음각되어 있다.
몸체의 4곳에는 범자가 새겨진 둥근 주석판이 못으로 고정되어 있고 주위에는 여의두무늬[如意頭紋]가 돌려져 있는데 이 주석판은 후보된 것이다. 주석판 사이에는 보상당초무늬가 빽빽하게 입사되었으며 문양의 바탕에 은판이 감입된 점은 다른 향로에서는 보기 어려운 특징으로 상감청자의 기법과 유사하다.
몸체 아랫부분에는 꽃무늬가 장식된 앙련을 표현했으며 그 밑에는 3단의 받침이 있고 표면에는 쌍엽무늬가 시문되었다. 받침대는 상단에 화문을 새긴 복련을 돌리고 그 아래로 여의두무늬·봉황·구름무늬 등이 표현되었으며 넓은 굽부분에는 당초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이 향완은 안정감있는 비례나 몸체 아랫부분의 약간 볼록한 형태, 3단의 받침, 화려하고 장식적인 문양 등에서 고려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통도사 정문앞 삼거리에서 우측포장도로를 따라 진행한다.
*갑자기 찾아온 한파로 완전무장을 하고 길을 걷는다.
*저멀리 건너편에 영축산이 너무나 또렷이 보이네요.
* 경관이 수려한 영남알프스, 영축산 *
가지산도립공원 구역 내에 있는 해발 1,059m인 영축산은 경관이 수려하여 영남알프스라 불리며 일명 취서산이기도 하다. 이 산은 가지산에서 남쪽으로 뻗은 줄기가 능동산에 이르러 두 줄기로 갈라진다. 남서진하는 줄기는 밀양의 천황산에서 제약산으로 이어지고, 동쪽으로 내려와 배내고개를 건너서 남진하는 줄기는 간월산, 신불산을 지난다. 특히 영축산의 첫머리과 연결된 광활한 능선은 억새밭의 천국을 이루고 있다.
산 아래 뻗어있는 계곡은 통도사 주변 암자와 연결되어 있어 산책하기 좋은 코스이기도 하다. 영축산 통도사는 양산8경의 제 1경이다. 그밖의 8경으로는 천성산, 내원사계곡, 홍룡 폭포, 배내골, 천태산, 오봉산 임경대, 대운산 탑골휴양림 등이 있다.
* 불교 화엄경과 관련 있는 영축산의 명칭 유래 *
영축산은 석가모니가 화엄경을 설법한 고대 인도의 마가다국에 있던 산 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자 표기는 '영축산(靈鷲山)'과 '취서산(鷲栖山)' 두 가지로 표기되지만 이에 대한 한글 표기는 영축산·영취산·축서산·취서산 등으로 표기되어 있어 혼동을 불러 일으켰다. 이 같은 현상은 한자 '취 또는 축(鷲)' 자에 대한 한글 표기의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일반 옥편에서는 '독수리 취'라고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축'으로 발음하는 것이 보편적이다.그리고 '취 또는 축' 자가 원래 '축'으로 표기되었다는 근거는 1463년(세조 9)에 간경도감에서 간행된 『법화경언해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산 이름 혼동의 원인은 불교에서 유래된 '축(鷲)' 자를 일반인들이 접하기 쉬운 한자사전의 표기 '취'로 읽기 시작하면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혼동을 피하기 위해 2001년 1월 9일 양산시 지명위원회에서 영축산으로 확정되었다.
*놀이공원 통도 환타지아주차장을 오른쪽에 두고 걷는다.
*통도 환타지아 지나 삼거리에서 지내마을 방황으로 진행.
*지내마을앞의 몀품 소나무
*10시 14분 영축산 등산 진입로앞의 등산로 안내도.
*2차선 도로를 따라 계속진행.
*가을 추수가 끝난 들판에는 소들의 먹이 벼짚동이 칼라풀 하네요.
*불교사찰 보광사앞을 통과 방기리 알바위 보러가요.
비구니 수행도량입니다.
*10시 41분 방기리 알바위의 모습.
울산 울주군 삼남면 방기리 마을에는 높이 15m 내외의 작은 동산이 하나 있는데 이곳에 화강암 종류의 자연석들이 흩어져 있다.
동산 전체에 퍼져 있는 이 암석들에는 둥글거나 또는 달걀 모양의 조각이 오목하게 조각되어 있는데, 바위의 크기에 따라 적게는 10여개 많게는 30여개 이상이 있다.
1997년 10월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10호로 지정된 방기리 알바위들이다. 알바위는 알(卵) 모양의 구멍들이 있는 바위라는 뜻이다.
'동뫼(洞山)'라고 부르는 15m 정도의 소나무 아래에 알모양의 바위구멍이 패여 있다고 '알바위'라 부른다.
알바위는 화강암계 자연석들이 타원형의 단으로 불규칙하게 분포되어 있으며 이 바위들은 큰 것은 둘레가 4~5m, 작은 것은 1~2m정도이다.
구멍들은 작은 돌로 문질러서 둥글고 오목하게 파인 것인데, 성혈(性穴)이라고도 한다.
성혈은 지석묘의 덮개돌에 많이 나타나는데, 여성 성기의 상징으로 풍요와 다산(多産)의 의미로 해석하기도 하고, 태양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부인들이 작은 돌로 성혈을 열심히 문질러서 그 돌이 바위에 붙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이야기가 널리 전하고 있다.
이 곳 알바위는 자연 그대로의 여러 개 바위에 성혈이 새겨진 것이 특징이다. 동심원(同心圓) 모양으로 둥글게 성혈을 배치한 것도 있고, 성혈들을 선(線)으로 이은 것도 있는데, 이런 것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다. 하나의 바위에 보통 10개 이상이 새겨져 있고, 50여 개 이상이 새겨진 것도 있는데, 크기는 다양하다.
이미 발굴된 방기리와 신평의 청동기시대 마을 유적들과 함께 생각해 볼 때, 이곳은 당시 사람들의 제전(祭奠)이 이루어졌던 성스러운 장소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러한 것은 당시 사람들의 정신적·신앙적 세계와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생산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하여 만들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울주문화원 자료제공)
*방기리 알바위가 있는 작은 동산 주변이 사유지라 진입이 곤란하네요.
*방기리 알바위 구경하고 저앞의 방기뒷산을 넘어야 합니다.
앞에 보이는 흰색건물앞에서 산으로 진행.
*흰건물앞의 도로에 노랑은행잎이 바람에 운치있는 길이네요.
*영남알프스 11시 01분 (영축산의 청룡등과 백호등)에 대한 설명문 우측으로
산허리로 돌아가요.
*잘정돈된 이길로 돌아 산정상으로 진행.
*방기 뒷산 산불감시 초소 도착 잠시 쉬어갑니다.
앞에보이는 능선이 신불산에서 영축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이네요.
*방기뒷산의 산불감시 초소.
*영남알프스 능선을 배경으로....
*방기 뒷산을 내려 오면서 삼성SDI공장 건물이 보이네요.
삼성SDI(주)의 전신은 1970년 출범한 삼성-NEC(주)로 진공관, 브라운관, 방전 표시판 등의 전자부품을 생산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설립된 해 5월 최초의 제품인 진공관을 완성했다. 1974년 3월 삼성전관공업(주)으로 사명을 변경했고, 1975년 퀵 스타트 브라운관을 개발하여 판매했다. 1978년 수원공장을 건설하고 컬러 브라운관 사업에 뛰어들면서 컬러TV 시대를 열었다. 1980년대 중반부터 평판 디스플레이에 주목하고 발광다이오드(LCD, Light Emitting Diode), 진공 형광 표시관(VFD, Vacuum Fluorescent Display) 등과 같은 새로운 디스플레이를 연구했다. 이를 위하여 1987년 1월 종합연구소를 건립했고 이듬해 8월 차세대 디스플레이라 불리는 PDP(Plasma Display Panel)를 개발했다.
1991년 2월 첫 해외법인인 말레이시아 법인을 설립했고, 1992년 9월 독일의 전자회사 WF를 인수하여 독일 법인을 설립했다. 이어서 1994년 10월에는 미주시장에 교두보 역할을 할 멕시코 법인을 설립하는 등 1990년대 들어 생산거점을 다각화하여 독일·멕시코·중국·브라질을 잇는 세계 거점을 확보하면서 세계 시장점유율이 25%를 넘어섰다. 1995년 천안공장을 착공하고 2차 전지와 PDP 등 신규 사업을 추진하면서, 평판 디스플레이를 비롯하여 브라운관 이후를 대비하는 수종사업(스스로가 하나의 산업인 동시에 다른 산업의 원천이 되는 핵심산업을 의미) 육성을 본격적으로 진행했다.
1999년 11월 디지털 기업 이미지 제고를 위하여 상호를 삼성SDI(주)로 변경했다. 2002년 3월 휴대폰용 컬러 UFB-LCD를, 2003년 2월 2,400mAh 용량의 리튬이온 전지를 개발했다. 2003년 7월 42인치 PDP를 개발하고 양산에 들어가면서 같은 해 12월 PDP 생산 설비를 증설했다. 2004년 한 해 동안 80인치 PDP, 17인치 OLED, 디지털TV용 빅슬림(Vixlim) 브라운관, 26만 컬러 수동형(PM) OLED 등을 개발했고, 이후에는 AMOLED(Active Matrix Organic Light Emitting Diodes) 개발 및 양산에 주력했다. 2008년 8월 전지 증축동을 준공하고, 같은 해 9월 독일 보쉬와 자동차 배터리 합작사인 SB리모티브(주)를 설립했다. 2012년 9월 SB리모티브(주)의 지분을 전량 인수하고 독자경영을 시작했다. 2014년 1월 중국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 진출했다.
2014년 7월 제일모직(주) 소재 부문을 흡수합병하면서 소재•에너지 토털 솔루션 기업으로의 변화를 알렸고, PDP사업 부문의 사업 중단 계획을 발표했다. 같은 달 중국 시안(西安) 법인을, 2014년 12월 오스트리아 법인을 각각 설립했다. 2016년 1월에는 케미칼 사업 부문을 SDI케미칼로 분사한 뒤 롯데케미칼에 매각했다. 같은 해 4월에는 한국전력과 에너지 신사업 수출 협력 계약을 맺었으며, 12월에는 미국 스타트업 전기자동차 기업 루시드 모터스(Lucid Motors)와 전기자동차 배터리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한 바 있다.
*방기뒷산을 완전이 내려오면 영남알프스(사자벌 벌판)유래가 적혀있다.
*삼성SDI건물을 오른쪽에 두고 포장도로를 따라 한참을 가면 신불산 사격장
팻말 앞에서 우측으로 진행.
*가을의 아쉬움을 달래고 있는 단풍잎의 애초로운 모습.
*11시 48분 오늘의 명품길 소나무 숲사이로 한참을 걸어요.
*소나무길이 끝나면 대나무숲 사이로 진행.
*앞에는 신불산을 가로 질러 터널공사가 한창이네요.울산에서 함양간 고속
도로 공사가 완공되면 지리산이 코앞이네요.
*가천마을 노거수(느티나무)수령이 100~150년 추정.
*노거수를 한참지나 가천마을회관 도착 여기서 좌측으로 진행.
*회관을 돌아 언덕에서 바라본 가천마을의 전경.
*회관지나 언덕에서 오른쪽 야산으로 진행 지금은 진입입구가 공사로 찾기가
힘들다 무조건 오른쪽 산으로 진행해야 합니다.계속 오솔길로 진행하면 보이
는 가천 저수지가 나옵니다.
*가천 저수지언덕에 아롱당(밀양박씨 부원군 파문회 재실-아롱당)
*영남알프스(신불제와 가천 저수지) 해설문.
*12시 45분 영남알프스(산신령 이야기) 설명.
*가천 저수지를 뒤로하고 산으로 진행.
*양지바른 몇군데의 묘지를 지나고...
*여기서 신불산 공룡능선(칼바위)들머리 이다.
*둘레길은 공룡능선 들머리에서 오름쪽으로 진행하면 폐건물이 보인다.
*영남알프스(옥산 자수정) 설면문.
*보이는 곳이 언양 자수정동굴나라 주차장이다.
보이는 뒷산이 우리가 넘어야할 백암산.
*13시 31분 여기서 바람없은 블록담벼락 밑에서 라면으로 점심을 해결.
*앞에 보이는 산이 신불산 공룡능선으로 가는 길이다.
*자수정 동굴을 폐광하면서 놀이시설과 동굴관광 유원지로 바뀌었다.
*백암산정상에서 바라 본 언양시가지의 모습.
*또 다른 방향의 언양 추수가 끝난 들판의 모습.
*오늘의 여정을 마무리 목적지 작천정 도착.
*작천정을 모습.
작천정계곡(작괘천)
위치 |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남면 작괘들길 67-16 일대 |
---|
해발 1,083m의 간월산에서 흘러 등억리를 지나면서 작천정 앞을 흐르는 시내를 작괘천이라 한다. 작괘천은 물이 맑고 풍경이 뛰어나서 일찍 언양 지방의 위안처가 되어 왔다. 언양에서 중남쪽으로 약 3㎞를 가다가 다시 서쪽으로 뚫린 도로로 꺾어 들어가면, 수령이 약 사십 년이나 되는 벚꽃나무 터널이 나타나는데, 아름드리 우거진 벚꽃나무 터널 밑으로 약 1㎞가량을 빠져 들어가면, 작천정이 눈앞에 보인다.
이 작천정이란 이름은, 수석이 청정 기이하여 마치 술잔을 주렁주렁 걸어 놓은 듯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입구에 마련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작천정으로 들어서면 계곡 좌우에 우람하고도 기괴한 암석들이 크고 작게 자리 잡고 있어 장관을 이루고 있다. 계곡에는 닳고 닳은 반석 위로 수정같이 맑디맑은 옥수가 얄팍하게 깔려 미끄러져 흐른다. 우선 여기서 세수하고 손발을 담그고 있으면 아무리 더운 날에도 곧 더위가 싹 가시고 만다.
조선조 세종 20년에 지방의 학자들이 세종을 생각하며 지었다는 작천정이란 정자는 주변의 절경 속에 깨끗한 물과 흰 바위가 잘 조화되어 하나의 선경지대를 이루고 있다. 더위를 식히고 나서 이 정자에 올라앉아 명승정경을 즐기고 있노라면 입에서 저절로 시가 터져 나올 것만 같고, 그 아름다움을 그림에라도 담아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또한 가을이 되면 이곳의 만산홍엽은 타는 듯한 풍경을 이뤄 감탄을 자아낸다. 그래서 작천정은 예로부터 많은 시인 묵객들이 찾아와 시를 짓고, 풍류를 즐겼다 한다. 그렇다고 언제나 낭만만이 있었던 곳은 아니다. 이곳은 3.1운동의 계획을 세우던 곳이기도 하고, 임진왜란 때는 많은 의병들이 순국하기도 했으며, 또한, 울산지방에 천도교, 천주교가 들어올 때 노천교회의 역할을 한 곳이기도 하다. 이렇게 볼 때, 이곳은 조국과 민족을 구하려는 우국지사들의 보금자리였는가 하면, 외래 종교들의 정착을 위한 싹을 틔운 곳이기도 하고, 시인 묵객들에 의해 이 고장 학문을 중흥시킨 곳이기도 하다.
*초겨울의 한파를 뒤로하고 우리 부부는 영남알프스 둘레길(20코스)시작1코
스를 14.5km(4시간45분)에 무사이 완주.
우리 부부의 새로운 걷기 도전이 시작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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