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 제 = 01월 19일 수요일 맑음 종일 -2도~5도
*누구와 = 임무용,최현숙(부부)
*코 스 = 용장성~오일시사거리~죽제산 산림욕장~진도 기상대~아리랑비~운림산방~주차장 (4시간53분소요)
*울산에서 4시간을 달려 서해랑길7코스 출발지 진도 용장성 주차장에 오전11시도착 전국적으로 한파 주의보와
중서부지방의 대설주의보등 전국적인 날씨는 안좋은 소식인데 여기 진도는 추위와는 거리가 먼 영상의 기온을
유지하고 있어 오늘 7코스 거리가 비교적 짧은12.2km라 출발은 가볍게 출발합니다.
오늘도 진도의 진수를 열심히 즐기고 가슴에 담고 눈으로 담아 가겠습니다.
코스개요
- 첨찰산 임도 따라 오르고 호젓한 숲길 따라 진도 여행의 일번지이자 전통남화의 성지 운림산방을 만나는 코스
관광포인트
- 천혜의 자연을 갖춘 '죽제산산림욕장'
- 조선 말기 남화의 대가 소치 허련이 기거하던 '운림산방'
교통편) 진도공용터미널에서 벽파-연동 방향 농어촌 버스 승차 '용장'정류장 하차
- 종점: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 운림산방주차장
- 진도 여행의 일번지, 운림산방 근처를 지나는 길로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들리는 것을 추천함
*울산에서 4시간을 달려 7코스 출발지 용장성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11시20분에 걷기를 시작합니다.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서해랑길 코스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네요.
*서해랑길7코스 안내판앞에서 인증샷 하고 출발합니다.
*7코스 안내판이 코스에서 100m정도 떨어져 있어 7코스시작 패널 있는 곳에서 용장성 주차장 화장실앞에 있습니다.
무심히 코스만 따라가면 놓치기 쉬워요.
*여기 나무기둥에 7코스 시작패널이 있네요 여기서 도로따라 역방향으로 주차장 화장실앞에 안내판 설치되어 있음.
*뒤돌아 본 용장성의 모습.
*출발점에서 400m지점 표시 여기서 부터 용장마을로 진행.
*사각정자 지나 전봇대에서 좌측 마을 골목길로 진행.
*도로에서 좌측 골목길 진행 모습.
*용장마을 쉼터 화관과 정자.
*화관지나 골목길 끝에서 좌측으로 진행.
*용장마을을 지나 농로길따라 진행.
*여기 삼거리앞에서 좌측길로 진행 놓치기 쉬운 지점.
*임도길진행 첫번째 삼거리에서 우측 숲길로 진행 위에는 묘지가 있음.
*임도길에서 숲길로 진행 여름에는 어떤 모습일까 상상을 해봅니다.....
*낙엽 많이 있어 걷기에 조심을 해야 하는 구간 이네요.바닥에 움직이는 돌이 많아요.
*임도길에서 시멘트길 합류 오른쪽으로 내려가요.
*잠시 후 좌측으로 꺽어져 끝까지 직진으로 진행.
*농로길 끝에서 우측으로 꺽어 내려가 계속 농로길 직선길로 진행.
*앞에 하우스가 보이는 곳까지 직진.
*농로길 끝에 도로와 합류 건너 살짝 우측으로 진행 다시 좌측 농로길따라 진행.
*도로에서 좌측 수로위 농로길따라 직진.
*농로길 진행 잠시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보니 야산아래 평화로운 농촌마을이 마음을 포근하게 하네요.
*지금 우리는 서해랑길 7코스 진행중.
*농로길 끝에서 걷기는 좌측 방향전환.
*다시 농로길 끝에서 좌측으로 진행.
*진행길 좌측으로 폐수 처리장이 있네요 조금의 냄새가 나는게......
*페수 처리장지나 하천 둑방길따라 진행.
*둑방길 삼거리에서 직진으로 진행.
*다음 꺽어지는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진행 건너서 좌측으로 진행.
*농로옆 마을길로 진행.
*고성리 마을 골목길 진행.
*마을 골목길 벗어나 고군면 소재지 중앙로 통과 계속직진 진행.
*중심가 중앙도로 통과 시가지의 모습.
*오일시 사거리 통과 계속직진.
*진행길 오른쪽으로 진도관광여행사 앞 통과 계속 직진.
*계속직진 앞에 보이는 비닐하우스 끝나는 지점에서 우측으로 진행.
*도로에서 우측으로 진행 앞에는 겨울 배추밭이 끝없이 펼쳐지고 있네요.
*길은 배추밭 앞에서 오른쪽으로 꺽어지고 계속직진으로 진행.
*진행길 끝에서 다시 우측으로 진행.
*길은 오른쪽으로 산을끼고 왼쪽에는 농토가 이어지고 있네요.
*진행길 조금 후 길가에 앉아 점심을 컵라면과 달걀.우리가 수확한 꿀고구마딸기샌드로 해결합니다.
*30분 휴식 후 우리는 다시 걷기를 계속합니다.
*잠시 후 여기는 죽제산 산림옥장 입구 도착.
*죽제산 산림욕장 종합 안내도.
*산림욕장입구에서 우리는 오른쪽 시멘트 포장로 따라 올라갑니다.
*길은 완만하게 계속 오르막을 올라요 온몸에 땀으로 범벅이 얼굴에서는 땀방울이 연신 떨어지고 있어요.
겨울진도 날씨가 이런가 보죠.
*진행길 오른쪽으로 건강쉼터 휴계시설을 만들어 놓았네요 여름에는 시원하게 나무 그늘아래 멋진 휴식공간이
되겠네요.
*오름길은 계속되고 이마에는 연신 땀방울이 땅으로.....
*헬기장 도착 여기서 잠시 주위를 둘러보고 걷기를 계속합니다.
*오늘 코스가 12km거리에 5시간 걸린다고 안내판에 있어어 첨찰산 임도길 올라가는 것 때문에 시간이
많이 늘어 났네요.
*오른쪽으로 숲속에 정글을 이루고있는 넝쿨들의 모습 저 넝쿨이 나무를 고사 시키고 있네요 .
*음달에는 지난주에 내린 잔설이 아직도 길에 지장을 주네요.
*임도길 오름길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이런 모습 이네요
*여기서 임도길 합류 좌측으로 조금 진행 후 다시 오른쪽 대단한 경시길로 진행.
*여기서 걷기는 오른쪽 첨찰산 가는 길로 진행.
*길위에는 진도 기상레이더 관측소 400m위치.
*경사도 심한 오르막 모습.
*여기 삼거리에서 왼쪽은 진도 기상대 가는길 오른쪽으로 우리가 가야할 방향 첨찰산 가는 길.
삼거리에 설치된 방향 표지판.
*첨찰산 정상 봉수대가 보이네요.
*잠시 후 우리의 걷기 코스는 여기서 좌측 아리랑비 방향으로 진행.
*집사람은 여기에 잠시 대기 저는 앞에 보이는 첨찰산 정상까지 다녀 오기로 하고 데크 계단길 오름.
*첨찰산정상(485.2m)
*정상에서 바라 본 건너편의 진도 기상대의 모습.
*정상의 이정표뒤로 진도 앞바다가 보이네요.
*첨찰산 정상의 봉수대 모습.
첨찰산 봉수는 첨찰산정상(485m)에 위치하고 있으며,봉화산이라고도 불리는 첨찰산 봉수는 자연적인 바위산 위에
원형의 연대를 쌓아 만들어 졌다.연대는 대체로 30x20cm크기의 자연석으로 "난층쌓기"방식에 의해 만들어 졌는데
규모는 남북길이 9m,동서길이 8.5m 둘레30.3m정도로 일부 원형이 남아 있어 향토유산으로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첨찰산 정상왕복 10분이면 충분합니다. 조망도 좋고 다녀 오기를 잘했다 하네요.
*여기 내려가는길이 돌길이라 조금은 조심 구간이네요.
*돌뿌리가 많이 있어 걷기는 조금 불편하네요 조심구간......
*누군가가 여기 소원탑을 .....
*등산로 양쪽으로 동백나무가 푸르름을 보여주네요.
*이소원탑은 꽤 정성과 시간이 들어간 소원탑 .
*아리랑비 방향 계곡하산길 낙엽과 돌뿌리로 조심스럽게 내려갑니다.
*계곡 하산길에 이런 형태의 시설물이 두군데 한군데는 조성 중이고 궁금해 알아보니 옛날 숯가마터 복원중이네요
옛날에 이계곡에 숯가마가 많이 있었다네요.
*최근에 복원한 숯가마터.
*게곡하산길은 한참을 내려와도 끝이 안보여요.
*현 위치 표시.
*등산로 정비작업이 한창이네요
*등산로 낙엽과 흔들리는 돌뿌리등을 새로 보수하고 낙엽도 깨끗이 치워져 있어 한결 등산로가 안전하게
정비가 되었네요.
등산로 위험구간 이렇게 낙엽까지 청소하는 지자체는 진도가에서 처음 보는것 같아요.
*동백꽃도 한두송이 보이기 시작 조금있으면 등산로 동백꼭 만발 하겠네요.
*지루한 한산길 더디어 끝이 나네요.
*여기에 아라랑비가 자리하고 있어요.
전라남도 진도 지방의 민요.
내용
부요적(婦謠的) 성격이 강한 서정민요이다. 현지에서는 ‘아리랑타령’이라고 부른다. 전라남도 진도에서 발생한 노래이나 전국적으로 불리고 있다. 사설은 기본적으로 남녀의 사랑과 이별을 주제로 하고 있다.
사설 내용에 욕·상소리·한탄·익살 등이 응집되어 부인네들의 야성을 거침없이 노출시키고 있으며, 또한 도서 지방의 지역성을 표출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사설의 형식은 2행 1연의 짧은 장절형식(章節形式)으로 이루어지는 분장체(分章體) 장가(長歌)이다.
가창 방식은 기존 사설을 바탕으로, 새로운 형태의 사설이 창자에 의하여 계속적으로 덧붙여질 수 있는 선후창 형식의 돌림노래[輪唱]이다. 돌림노래란 여럿이 부를 때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메김소리를 하고 나머지는 맞는소리(맞음소리)를 하는 것으로, 이러한 가창 방식은 집단 노동요의 전형적인 가창 방식과 일치한다. 대표적인 가사는 다음과 같다.
○ 서산에 지는 해는 지고 싶어 지느냐.
날 두고 가신 임은 가고 싶어 가느냐.
(후렴)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리라가 났네.
○ 문경새재는 왠 고갠고
구부야 구부구부가 눈물이로구나.
(후렴)
○ 니정 내정은 정태산 같은데
원수년의 탄광 모집이 니정 내정을 띤다.
(후렴)
○ 저 강에 뜬 윤선은 바람심으로 놀고
점방에 유성기는 기계심으로 논다.
(후렴)
○ 오동나무 열매는 감실감실
큰애기 젖통은 몽실몽실
(후렴)
○ 씨엄씨 잡년아 잠깊이 들어라
문밖에 섰는 낭군 밤이슬 맞는다.
(후렴)
○ 서방님 오까매이 깨벗고 잤더니
문풍지 바람에 설사가 났네.
(후렴)
창작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며 대략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로 추정된다. 이 때는 유교적 전통문화와 개화문명이라는 새로운 문화 사이에서 가치관의 혼란이 나타나고, 외세의 침탈로 피폐해진 현실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던 시대였다.
사설 중에는 유성기·윤선·자동차·자전거 등의 개화문물이 나타나고, 그 속에서 흔들리는 세태가 풍자되어 있다. 한편, 창작자는 진도 출신이며 신청(神廳)에서 작사·작곡했다는 설도 있다. 사설에 대한 기원설화는 두 가지가 전한다.
하나는 진도 총각과 경상도 처녀의 사랑에 얽힌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진도 총각이 경상도 대갓집에서 머슴살이를 하다가 주인집 딸과 사랑을 하게 되었는데, 두 사람은 밀애 끝에 쫓기는 몸이 되어 진도로 도망쳐 정답게 살다가 총각은 병으로 죽었다는 이야기와, 진도 총각과 혼약한 한 처녀가 총각이 육지에서 다른 처녀를 데리고 오자 원망하며 이 노래를 불렀다는 이야기로 나타난다.
다른 하나는 설이향과 소영공자의 이야기로, 설이향과 소영이 굴재를 오가며 사랑을 하였는데, 어느 날 소영공자가 떠나 버렸다. 슬픔에 찬 설이향은 소영공자가 육지 처녀와 결혼을 하게 되자 사생결단을 내려 했으나 죽지 못하고, 비수로 머리를 자르고 쌍계사의 중이 되었다는 설화이다.
장단은 세마치 장단이며, 육자배기토리를 바탕으로 한 선율구조로 장식음·비음(鼻音)의 사용이 많다. 일반적으로 중모리장단으로 부르나 때에 따라서는 느린 박자인 진양조나 중모리보다 약간 빠른 중중모리로 부를 수도 있다.
「진도아리랑」은 「정선아리랑」이 지니고 있는 비탄조와는 다르게 「육자배기」 가락에 판소리의 구성진 목청이 어우러진 진도 지방 특유의 정조(情調)를 지니고 있다. 혼자 부를 때에는 유장하고 슬픈 노래가 되어 신세타령과 같은 표출 기능이 두드러지지만, 노래판에서 여럿이 부를 때에는 빠르고 흥겨운 노래로 신명을 고양시키고 일체감을 조성·강화시킨다.
*진도 아라랑비를 뒤로하고 도로를 따라 내려오면서 좌측으로 사천2저수지가 제법 규모를 자랑하고 있네요.
*진행길 우측으로 운림산방이 보이네요.
*잠시 운림산방을 둘러보고 갑니다.
운림산방
명승 제80호 |
전남 진도군 |
진도에 가면 세 가지를 자랑하지 말라고 한다. 바로 글씨와 그림, 노래가 그것이다. 이중 글씨와 그림은 모두 운림산방(雲林山房)에서 비롯되었는데 이른바 남종화의 산실로 일컬어지는 운림산방이 진도에 있기 때문이다. 운림산방은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는 섬에 있는 산치고는 비교적 높은 485m의 첨찰산이 있는데 이 아래 안온한 위치에 운림산방이 있다. 운림산방은 그 이름처럼 자연경개가 아름다우며 운무가 깃드는 유현하고 그윽한 곳이다.
나무에 연녹색 이파리가 돋아나는 초봄의 운림산방이다. 뒤로는 주산인 첨찰산이 우뚝 솟아 있다. 진도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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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림산방은 조선시대 후기 남종화의 대가였던 소치(小痴) 허련(許鍊, 1808~1893)이 기거한 곳이다. 허련은 진도읍 쌍정리에서 허임의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그림에 재주가 많았던 그는 20대 후반에 해남의 두륜산방에서 초의선사의 지도 아래 공재 윤두서의 화첩을 보고 그림을 공부했다. 1840년 33세 때 초의선사의 소개로 평생 가장 소중히 모신 스승 추사 김정희를 만나게 되어 본격적인 서화수업을 받았다. 비록 남도의 섬에서 출생하기는 했지만 천부적으로 타고난 재질과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시(詩), 서(書), 화(畵)에 모두 능한 삼절을 이루게 되었다.
소치는 허유(許維)라는 이름을 쓰기도 했다. 중국 당나라 남종화의 효시로 알려진 왕유(王維)의 이름을 따서 허유라고 명명한 것이다. 당대의 명사였던 석파 이하응(흥선대원군), 민영익, 신관호, 권돈인, 정학연 등 권문세가의 고위 관리들과 교유한 그는 장안에 명성이 높았다. 소치를 일컬어 민영익은 묵신(墨神)이라 하고, 정문조는 여기에 더해 삼절이라고 평했다.
1856년(철종 7) 허련은 그의 스승 추사 김정희가 죽은 후 49세가 되던 다음 해에 고향인 진도로 내려와 초가를 짓고 거처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곳의 이름을 처음에는 운림각(雲林閣)이라 하고 마당에 연못을 파서 주변에 여러 가지 꽃과 나무를 심어 정원을 만들었다. 소치는 이곳에서 만년을 보내면서 그림을 그렸다. 남종화의 터전으로서 운림각이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이다. 허련은 이곳에서 1893년 85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불후의 명작들을 많이 남겼다. 그러나 허련이 사망한 후 그의 아들 허형이 진도를 떠나면서 운림산방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 예전의 모습을 거의 잃게 된다. 그 후 오랫동안 관리하지 않아 피폐된 이곳을 허형의 아들 허윤대가 다시 사들였고 또 다른 아들 허건이 1992년부터 2년에 걸쳐 옛 모습으로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운림산방은 경사지를 다듬어 세웠는데 맨 위쪽에는 허련의 화상을 모신 운림사(雲林祠)가 있고 오른쪽 후면에는 사천사(斜川祠)가 자리하고 있다. 사천사는 소치의 문중 제각으로 매년 한식날 소치 선생의 6대조 가문이 춘향대제를 봉행하는 건물이다. 그 아래에는 돌담으로 둘러진 터에 살림집인 안채가 지어져 있으며, 안채의 앞으로는 허련이 머물던 사랑채가 자리하고 있다.
맞배지붕으로 된 한옥 건물로서 소치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운림산방의 건축물 중 맨 위쪽에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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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림산방의 앞마당에는 커다란 연못이 조성되어 있다. 이 연못은 방지원도의 형태로 외곽은 네모나고 그 안에 동그라미가 있기 때문에 외방내원(外方內圓)의 형상이라고도 한다. 연못의 한가운데 위치한 섬에는 허련이 심었다는 배롱나무가 자라고 있다.
운림산방은 남종화의 산실이었다. 남종화는 북종화와 구분되는 화법이다. 당나라의 문인화가이자 시인이었던 왕유를 비조로 하여 송나라를 거쳐 원나라의 사대가(四大家, 뛰어난 산수화가였던 오진, 황공망, 예찬, 왕몽을 이름), 명나라의 심주(沈周), 문징명(文徵明) 같은 오파(吳派)의 문인화가들에 의해 전해 내려온 화법이다. 남종화는 북종화보다 존숭되었는데 중국 명청시대에는 남종화가 전성기를 이루었다. 두 분파의 큰 차이점은 주로 대상을 어떻게 표현하는가에 있다. 북종화는 외형을 위주로 한 사실적인 묘사를 주로하고 남종화는 작가의 내적 심경, 즉 사의표출(寫意表出)에 중점을 둔다.
소치 허련은 이러한 남종화에 심취했다. ‘소치’라는 아호는 스승인 김정희가 내려주었는데 원나라 때 사대가의 한 사람이었던 대치 황공망을 본떠 지은 것이다. 추사는 소치의 화재를 두고 “압록강 동쪽에서는 소치를 따를 자가 없다”고 극찬했다고 한다. 옛날 선비들은 학문을 이르는 문사철(文史哲)과 문예를 통칭한 시서화를 소양으로 모두 갖추어야만 지식인으로 인정받았다. 소치는 시서화로 당대를 휘어잡은 대가였는데 특히 묵죽을 잘 그렸다. 김정희의 글씨를 따라 흔히 추사체를 썼다고 한다. 〈하경산수도(夏景山水圖)〉, 〈추강만교도(秋江晩橋圖)〉, 〈노송도병풍(老松圖屛風)〉 등 다수의 작품이 전해진다.
운림산방을 남종화의 산실로 만든 소치 허련의 기록을 새긴 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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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의 운림산방을 근거로 허련에 의해 풍미되기 시작한 남종화는 그의 가계에 의해 이어진다. 미산(米山) 허형(許瀅, 1862~1938)은 소치가 늦은 나이에 얻은 아들로 그의 화풍을 이어받아 산수, 노송, 모란, 사군자 등을 잘 그렸는데 아버지의 화격에는 이르지 못했다고 평가받는다. 미산은 남농(南農) 허건(許楗, 1907~1987)을 낳았다. 남농은 조선미술전람회에서 특선을 한 후 20세기 근대 화단에 한국화의 중심에 자리한 화가가 되었으며, 운림산방을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했다. 남종화는 소치, 미산, 남농 3대에 걸쳐 이어져 왔고 이러한 가풍에 영향을 받아 지금도 화가로 활동하는 후손들이 많다.
첨찰산 주위의 여러 봉우리가 어우러진 깊은 산골에 아침 안개가 구름처럼 피어오르는 모습은 소치가 그린 한 폭의 산수화를 떠올리게 한다. 운림산방이란 옥호가 바로 그러한 산수화를 연상케 하는 이름이다.
연못 앞에서 바라본 운림산방. 소치가 심었다는 배롱나무 꽃이 활짝 펴 한여름의 운치를 더하고 있다.
*운림산방 잔디밭에 조각상도 이쁘요.
*운림산방 주위의 모습.
*운림산방 최고의 경치 볼거리 제공. 겨울에도 볼만 하네요
*오래전에 새해 첫날을 가족들과 진도에서 보낸 기억이 나네요 그때도 겨울에 여기 운림산방에 들런 기억이 나네요.
*운림산방 흔적을 남기고 갑니다.
*운림산방 구경을 마치고 정문을 나와 우측도로를 따라 진행 주차장의 모습.
*주차장에서 조금 도로로 내려오면 삼거리에 7코스와 8코스 시작점이 있어요 여기서 7코스 종료합니다.
*오늘도 서해랑길 한코스를 지웁니다.
*거리는 12.2km 비교적 짧은 코스라 생각했는데 시간은 5시간 가까이 걸렸네요 첨찰산 오름길에 시간이
많이 걸렸네요 그래도 무사히 우리부부는 한코스 마무리합니다.
다음 8코스가 24km장거리 걷기라 오늘 조금더 걷기를 진행합니다 갈때까지 가볼려구요 내일을 위하여.....
출발 도착 차량 주행거리 = 울산~진도 용장성 =356km
*누적 주행거리 =2,511km
*2차 통행료 = 왕복 = 14,700원
*누적 통행료 = 98,700원
*7코스 거리 = 12.2km .누적거리 = 103.4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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