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랑길(1,800km)

서해랑길 10코스(서망항~가치 버스정류소)15.9km

문수산 아래 2022. 1. 30. 18:22

*언   제 = 01월 27일 목요일 맑음 종일 -2~2도

*누구와 = 임무용,최현숙(부부)

*코   스 = 서만항~진도항~팽목방조제~봉암저수지~가치 버스정류장(4시간30분소요)

 

스개요

- 생동감 있는 바다의 숨결을 느끼며, 다도해의 풍광을 느낄수 있는 길
- 소박한 항구를 품은 마을을 잇는 길로 어촌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코스

관광포인트

- 진도 서남단에 위치한 어업 전진기지이며 국가어항 '서망항'
- 진도와 인근 섬을 이어주는 여객선 전용항구 '진도 팽목항'
 
여행자 정보
- 시점: 진도군 임회면 남동리 서망항
교통편) 진도공용터미널에서 팽목-서망 방향 농어촌 버스 승차 '서망'정류장 하차
- 종점: 진도군 지산면 가치리 가치버스정류장
- 코스에서 다소 떨어져 있지만 해질녁에 맞춰 코스 종점에 도착한다면 세방낙조 전망대에서 낙조를 관람해도 좋음

 

*국립남도국악원 주차장에서 하루밤을 보내고 어제 10코스 2/40분 추가로 걷고 마친 마사마을

 입구로 출발한다.

 오늘은 아침부터 날씨가 차갑다 바람도 불고 어제와는 많이 춥다 준비를 단단히 해야겟다.

 

*첫날 9코스를 시간40분에 끝내고 10코스 출발점 도착 오후3시 내일 일찍이 끝내기 위하여 두시간 더 걷기로 하고

 10코스 출발합니다.

*10코스 출발점에서 인증샷 합니다 그런데 코리아둘레길 (다시 걷는 대한민국) 스티커를 이제보니 꺼꾸로 들고 

 죄송합니다.

*10코스 안내판에서 도로따라 서망 교차로까지 직진.

*서망 교차로에서 좌측도로따라 진행.

*서망 교차로 언덕에 세워져 있는 전국 최고의 꽃게산지 서망항 표지석.

*서망 교차로에서 좌측으로 도로따라 진행 우측 언덕위에 대형 건물이 .....

 이건물은 세월호 추모관과 국민해양 안전관 건물이 세워지고 있네요.

*우리의 가슴에 영원히 지울수 없은 사건 세월호의 흔적.

*건편으로 지나 온 서망항 향로 표지 사무소 건물이 보입니다.

*팽목항(진도항) 도착.

진도항

위치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진도항길 101

진도군의 서남쪽 끝에 있는 연안항이다. 진도의 관문 역할을 하는 항구이다. 1996년 12월 해양수산부에 연안항 지정 신청을 내어 1998년 2월 24일 국가지정 어항으로 지정되었다. 과거에는 목포-팽목-제주도를 잇는 항구였으며, 현재는 진도 근해의 섬, 그중에서도 팽목과 조도군도를 연결하는 항로의 출발지가 되고 있다. 진도군은 진도항이 연안항으로 지정, 개발되면서 항구 다운 항구를 갖추게 되었다(진행 중). 한편 세월호의 아픈 기억이 새겨진 곳이기도 하다. 2016년 세월호 사고의 수습 항구로 사용되면서 그 영향이 아직 미치고 있다.

 

*해안도로따라 진행 여기는 팽목항(진도항)에 도착 세월호의 흔적.

세월호

요약 안산 단원고 학생 325명을 포함해 476명의 승객을 태우고 인천을 출발해 제주도로 향하던 세월호가 2014년 4월16일 전남 진도군 앞바다에서 급변침을 하며 침몰했다. 구조를 위해 해경이 도착했을 때,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을 했던 선원들이 승객들을 버리고 가장 먼저 탈출했다. 배가 침몰한 이후 구조자는 단 1명도 없었다.
검찰이 수사를 통해 사고 원인을 발표했지만, 참사 발생원인과 사고 수습과정 등에 대한 의문은 참사 후 현재진행형이다. 세월호 인양작업도 정부는 당초 2016년 7월까지 완료하려 했지만, 계속 지체돼 인양작업은 2017년으로 해를 넘기게 됐다. 2017년 봄 인양작업이 급물살을 타 4월11일 마침내 인양작업이 완료됐다. 미수습자의 조속한 수습과 세월호 참사 원인 규명 등이 주요과제로 남아있다.

세월호

1994년 일본 나가사키의 하야시카네 선거1) 에서 건조돼 1994년 4월에 진수한 6825톤 여객선이다. 일본에서 ‘페리 나미노우에’라는 이름으로 18년이상 가고시마-오키나와 나하를 운항하다 2012년 10월 운항을 마쳤다. 이후 한국의 청해진해운이 중고로 도입해 2013년 3월부터 인천-제주 항로에 투입했다. 이처럼 ‘낡은 배’가 수입돼 취항할 수 있었던 것은 2009년 정부가 규제완화를 명분으로 여객선의 선령 제한을 20년에서 30년으로 늘린 때문이다. 더구나 세월호는 건조 직후 이미 589톤을 증축했는데, 국내로 들여온 후 객실을 또다시 239톤을 증축해 구조변경이 무리하게 진행됐다.

세월호 참사

2014년 4월15일 오후9시 세월호가 인천에서 제주도를 향해 출발했다. 원래 출발시각은 오후6시30분이었지만 악천후로 출발이 늦춰졌다. 탑승자는 제주도 수학여행을 떠나는 경기도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 325명을 포함해 교사14명, 인솔자 1명, 일반탑승객 74명, 화물기사 33명, 승무원 29명 등 모두 476명이었다.
4월16일 오전8시49분 전남 진도군 앞바다인 조류가 거센 맹골수도에서 세월호는 급격하게 변침을 했고, 배는 곧 중심을 잃고 기울어져 표류하기 시작했다. 8시51분 단원고 학생이 119에 구조요청 신고를 했다. 배는 침몰하고 있었지만 선내에서는 “이동하지 말라”는 방송이 연방 흘러나왔다. 9시35분 해경 함정 123정이 도착했다. 기관부 선원 7명이 승객을 버리고 탈출해 구조됐고 조타실 선원들도 뒤따라 탈출했다. 침몰전까지 172명이 구조됐지만, 10시30분께 침몰한 이후 단 1명도 구조되지 못했다. 현재까지(2015년 4월) 희생자는 295명, 실종자는 9명이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일부 언론은 ‘전원구조’라는 오보를 냈고, 해경 등 구조당국은 구조작업에 우왕좌왕해 희생자·실종자 가족들의 불신의 대상이 됐다.
검찰은 승객들을 버리고 탈출한 이준석 선장 등 세월호 선원 15명에 대해 살인, 살인미수, 업무상 과실 선박매몰, 선원법 위반 등의 혐의를 적용해 2014년 5월15일 구속기소했다.

검찰이 밝힌 사고 원인..그러나 여전히 의문 남아

검찰은 △2012년 일본에서 수입된 후 수리 및 증축에 따른 총톤수 증가(239톤)와 좌우 불균형 △사고당일 최대 화물 적재량(1077톤)의 2배에 달하는 과적(2142톤) △선체 복원에 필요한 평형수 등을 1308톤 감축 적재 △관계 법령에 따르지 않은 방법으로 차량과 컨테이너를 부실하게 고박함으로 인해 복원성이 심각하게 악화됨 △여기에 협수로를 통과할 때 조타할 의무가 있는 선장이 선실을 이탈하고 3등 항해사와 조타수가 과도하게 변침하는 등 선원들의 중대한 과실이 더해짐 등이 세월호 침몰 원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세월호가 왜 급변침을 하게됐는지, 구조당국은 세월호 침몰 후 왜 단 1명도 구조하지 못했는지 등에 대한 진상규명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란리본

ⓒ Republic of Korea | CC BY-SA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

종료시점 논란 중 활동 강제 종료, 새 사무실에서 조사활동 이어가

오랜 진통 끝에 2014년 11월 ‘4.16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됐다. 세월호 참사의 발생원인·수습과정·후속조치 등의 사실관계와 책임소재의 진상을 밝히고 피해자를 지원하며, 재해·재난의 예방과 대응방안을 수립해 안전한 사회를 건설·확립하는 것이 제정 목적이다. 이 법에 근거해 여·야 추천 각 5명, 대법원장과 대한변호사협회장 지명 각 2명, 희생자가족대표회에서 선출한 3명 등 모두 17명의 위원(5명은 상임위원)으로 구성된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꾸려졌다.

특조위의 활동기간은 최대 1년6개월이다. 그런데 정부와 특조위 사이에 특조위 활동 종료 시점을 놓고 갈등이 빚어졌다. 정부는 특별법 시행일인 2015년 1월1일부터 활동 기간을 산정한 반면, 특조위는 실질적으로 활동을 할 수 있는 예산이 배정된 2015년 8월4일부터로 산정함으로써 2017년 2월4일까지 조사를 계속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부의 주장대로 2016년 6월30일 특조위의 활동기간이 종료됐고, 조사보고서 작성기한인 2016년 9월30일로 특조위의 활동이 강제 종료됐다. 정부는 이후 서울 중구 저동 나라키움 빌딩에 있던 특조위 사무실을 2016년 11월 초에 철거했다. 그러나 특조위 위원들과 조사관들은 2016년 11월14일 마포구 서교동 YMCA전국연맹 건물 4층으로 이사해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특조위 강제종료 공식화는 많은 논란을 불러올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특히 선체 인양작업이 지체돼 2017년으로 해를 넘기게 된 상황에서 침몰 원인에 대한 조사 주체에 대한 논란이 빚어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특조위가 없는 상황에서 인양된 세월호에 대한 조사는 해수부 산하기관인 해양안전심판원이 담당할 것이 유력한데, 이는 참사의 책임자인 정부가 참사 원인을 ‘셀프 조사’한다는 모순을 초래하는 등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을 빚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세월호 참사 일지

- 2014.4.16 사고 발생. 오전 8시 52분 전남소방본부 상황실에 첫 신고
- 4.18 세월호, 오전 11시 50분 선수 부분까지 물에 잠겨 완전 침몰
- 4.19 이준석 선장 등 승무원 3명 구속
- 5.19 대통령 담화에서 '해양경찰청 해체' 발표
- 10.28 295번째 사망자 시신 추가 수습
- 11.11 정부, 세월호 수색작업 종료 공식 발표. 미수습자 9명
- 11.18 세월호 3법 국무회의 의결. 세월호 범정부사고대책본부 공식 해체
- 11.19 세월호 3법 공포. 국민안전처 출범
- 2015.1.12 4·16 세월호 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 국회 통과
- 4.10 해수부 기술검토 TF "세월호 인양 기술적으로 가능" 발표
- 4.22 정부, 세월호 인양 결정 공식 발표
- 8.4 해수부, 세월호 인양업체로 상하이샐비지 컨소시엄 최종 선정 및 협약 체결
- 8.19 세월호 인양 수중조사 개시
- 11.12 대법원 전원합의체, 이준석 선장 '살인죄' 인정…무기징역 확정. 나머지 선원 14명 징역형 확정.
- 2016.1.12 단원고 생존 학생 졸업
- 3.31 해수부, 세월호 인양 위해 부력 확보해 선체 무게 줄이는 작업 시작
- 6.12 세월호 인양 핵심작업 선수 들기 공정 착수
- 8.29 해수부, 눕혀진 세월호 인양 후 객실 구역만 분리해 바로 세워 수색하는 '객실 직립 방식' 추진 결정
- 9.30 세월호 특조위 공식 활동기간 종료
- 10.31 해수부, 세월호 작업방식 변경 발표. 선미 들어 올려 리프팅빔(받침대) 설치
- 11.11 세월호 선미 들기 이후 인양 방식 변경 발표. '해상 크레인'→'잭킹바지', '플로팅 독'→'반잠수식 선박' 변경.
- 2017.3.7 김영석 해수부 장관 "4∼6월 세월호 인양 시작. 이달 말까지 준비 완료"
- 3.14 선체조사위원회 특별법 국무회의 의결
- 3.18 해수부, 19일 세월호 본체 인양 시도 발표했다가 3시간 만에 번복. "기상악화 탓"
- 3.19 세월호 인양전 최종점검 완료. 시험 인양은 보류
- 3.22 세월호 참사 1072일째, 시험 인양 성공, 본인양 시도
- 3.23 세월호 선체 물 위로 부상, 선미 램프 열려 인양 차질
- 3.24 램프 제거, 해수면 위 13m 부상, 반잠수선으로 이동
- 3.25 반잠수식 선박 화이트마린호에 선적
- 3.28 세월호 사고 원인 규명에 나설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 출범. 국회 선출 5명, 유가족 선출 3명 등 총 8명으로 구성. 선체조사위는 특별법에 따라 선체조사 활동, 미수습자 수습 점검, 선체 처리 의견 표명, 직접적인 사고 원인 조사 등을 담당.
- 3.31 세월호를 실은 화이트마린호 동거차도 인근 해역을 출발해 목포 신항에 도착.
- 4.9 세월호가 완전히 부두 위로 올라옴.
- 4.11 참사 1091일만에 세월호 인양작업 완료.
- 4.27 미수습자 박영인 학생의 교복 상의 1점 발견.
- 4.29 세월호 수색 12일째. 미수습자는 아직 발견 못함.
- 5.5 전남 진도군 세월도 침몰해역 수중수색 작업 중 특별수색 구역(SSZ-2)에서 유골 1점 발견, DNA 검사 의뢰.
- 5.10 이후 세월호 선체 내부 수색 과정에서 사람 뼈로 추정되는 유골이 다수 발견되기 시작.
- 5.15 문재인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기간제 교사 2명의 순직 인정 절차 진행을 지시.
- 5.17 세월호 침몰해역에서 수습하여 DNA 검사를 의뢰했던 유골의 신원이 단원고 고창석 교사로 확인.
- 5.19 3층 객실에서 수습하여 DNA 검사를 의뢰했던 유골의 신원이 단원고 허다윤 학생으로 확인.
- 5.25 4층 선미에서 수습하여 DNA 검사를 의뢰했던 유골의 신원이 단원고 조은화 학생으로 확인.
- 6.5 3층 선미 객실에서 수습한 유해의 신원이 이영숙 씨로 확인.
- 7.6 단원고 김초원, 이지혜 기간제 교사 순직 인정.
- 7.20 국민안전처 2년 8개월만에 해체
- 8.16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족 청와대 방문
- 10.12 청와대, 세월호 사고 당시 첫 보고시점을 사후 조작한 정황이 담긴 문서 발견.
- 10.16 검찰, 박근혜 정부 청와대의 세월호 참사 보고일지 조작 의혹 수사 시작
- 11.18 세월호 미수습자 5명(단원고 남현철, 박영인 학생, 양승진 교사, 권재근 씨, 권혁규 군) 가족 합동 추모식 진행.
- 2018.5.10 세월호 직립

세월호 인양 과정

2017년 4월11일 인양 완료

2015년 8월 세월호 인양업체로 중국 국영기업 상하이샐비지 컨소시엄이 선정됐다. 상하이샐비지는 중국 교통운수부 산하 업체로 중국 양쯔강에서 침몰한 유람선 인양작업에 참여하는 등 약1900건의 선박구조작업에 참여했다. 상하이샐비지는 한국업체인 오션씨엔아이와 지분을 7대3으로 나눠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인양 대금은 851억원으로 책정됐다.

인양방식은 상하이샐비지가 제안 한대로 선체에 구멍을 뚫지 않고 부력재와 철재빔을 이용하기로 했다. 세월호 인양은 ‘잔존유 제거->창문·출입구 안전망으로 폐쇄 등 유실방지 작업->선내 막대형(1.5m*30m) 부력재 30여개와 압축공기 주입->선수부분 와이어 감아 크레인 연결해 살짝 들어올림->세월호 아래에 3.5m간격으로 24개 철제 리프팅빔 설치->리프팅빔을 크레인 1대에 연결해 수심 23m까지 올려 동거차도쪽 2km 이동->플로팅독에 올려 목포신항까지 90km 이동’ 순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이때 목표 인양 완료 시점은 2016년 7월 이전이었다. 그러나 인양작업이 차질을 빚으면서 해를 넘겨 2017년으로 이어지게 됐다.

상하이샐비지 컨소시엄은 2016년 3월 인양작업에 본격 착수했다. 같은해 7월말 선수에 리프팅빔 18개를 끼우는 것은 성공했지만, 2016년 11월 현재 10개를 설치해야 하는 선미에는 3개만 설치된 상태다. 세월호 밑에 자갈과 뻘이 굳어져 리프팅빔을 끼우는 데 시간이 걸리고 있다고 해양수산부는 설명했다. 해수부는 당초 선미 들기를 2016년 11월말~12월 초에 시도한 후 후속 작업을 벌여 연내에 인양을 끝내려 했지만, 해저 토사 굴착을 통한 리프팅빔(받침대) 설치 등 일부 작업이 실패해 시간이 지연됐고 인양 작업은 해를 넘기게 된 것이다.

또 해수부는 기존 장비인 ‘해상크레인’과 ‘플로팅독’을 바람이 강해지고 파도가 높아지는 겨울철 작업을 위해 ‘재킹바지선’과 ‘반잠수식 선박’으로 바꾸기로 했다. 선체에 걸린 와이어를 공중에서 끌어올리는 해상 크레인과 달리 자체적으로 탑재한 유압잭의 힘으로 끌어당기는 재킹바지선과 날개벽이 없는 개방형 선체인 반잠수식 선박이 바람과 파도의 영향을 덜 받기 때문이다.

2014년 10월27일 전남 진도에 머물고 있던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들은 선체 인양을 추진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수중수색을 통해 미수습자를 발견할 가능성이 아직 남아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 이 결정 이튿날 295번째 희생자를 수습했다. 그러나 이후 성과가 없었다. 겨울이 오면서 더 이상 수색이 힘들어지자 2014년 11월11일 가족들은 수색 종료에 합의했다. 수색 중단 직후부터 가족들은 조속한 인양을 요구했다. 2015년 4월22일 정부는 선체를 인양하기로 결정했다.

2015년 8월 세월호 인양업체로 중국 국영기업 상하이샐비지 컨소시엄이 선정됐다. 상하이샐비지는 중국 교통운수부 산하 업체로 중국 양쯔강에서 침몰한 유람선 인양작업에 참여하는 등 약 1,900건의 선박구조작업에 참여했다. 상하이샐비지는 한국업체인 오션씨엔아이와 지분을 7대3으로 나눠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인양 대금은 851억원으로 책정되었지만 이후 916억원으로 불어났다. 목표 인양 완료 시점은 2016년 7월 이전이었다. 그러나 인양작업이 차질을 빚으면서 해를 넘겨 2017년으로 이어지게 됐다.

2017년 봄부터 세월호 인양을 급물살을 탔다. 3월19일 시험 인양이 줄꼬임 현상으로 실패했지만 3월22일 시험 인양에 성공한 뒤 오후 8시50분부터 본인양을 시작했다. 본인양 시도 하루만인 3월23일 새벽 4시47분 눈으로 확인 가능할 정도로 선체가 올라왔다. 선미 램프(자동차 등이 출입하는 통로의 출입문)가 열려 있는 것이 뒤늦게 발견돼 절단 작업을 벌이기도 했다. 3월25일 수면위로 올려진 세월호가 반잠수식 선박 화이트마린호에 선적됐다. 3월28일에는 동물뼈가 반잠수식 선박 갑판 위에서 발견되면서 유실방지책에 구멍이 뚫린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3월31일에는 세월호를 실은 화이트마린호가 참사 지점인 동거차도 인근 해역을 침몰 3년만에 출발해 목포 신항에 도착했다. 1만7000t 내외로 추정되는 세월호의 무게 때문에 육상 거치에 어려움을 겪었다. 4월9일 참사 1089일만에 세월호가 완전히 부두 위로 올라왔다. 4월11일 참사 1091일만에 세월호 인양작업이 완료되어 내부 수색이 진행되었다.

내부 수색 진행

5월 5일 침몰해역 수중수색 작업 중 미수습자로 추정되는 유골 1점이 발견되었다. 이후 진행한 선체 내부 수색 과정에서도 사람의 것으로 추정되는 뼈가 몇 차례 발견되어 현장수습본부가 국립과학수사원에 DNA 분석을 의뢰하였다. 참사 1127일 만인 5월 17일, 국과수의 DNA 검사를 통해 지난 5일 수중수색 중 세월호 침몰해역(SSZ-2)에서 수습한 유골의 신원이 미수습자 9명 중 한 명인 고창석 교사로 확인되었다. 이후 5월 19일 3층 중앙부 우현 에스컬레이터 자리에서 수습한 유골의 신원이 허다윤양으로 확인되었다. 5월 25일 4층 선미에서 수습한 유골의 신원이 조은화양으로 확인되었다. 6월 5일 세월호 3층 객실에서 수습한 유해의 신원이 이영숙 씨로 확인되었다.

6월 20일 세월호 객실 1차 수색이 마무리됐다. 이날 오전까지 선체 내부와 침몰 해역에서 발견된 옷, 휴대폰, 가방 등의 유류품은 약 4,101개로, 그중 370여 개가 유가족에게 돌아갔다. 6월 21일 세월호 객실부와 화물구역, 침몰해역에 대한 2차 수색이 시작됐다. 10월 24일 세월호 침몰해역에서 진행됐던 수중 수색 작업이 공식 종료됐다. 11월 16일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들이 기자회견을 통해 목포신항을 떠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11월 18일 세월호 미수습자 5명(단원고 남현철, 박영인 학생, 양승진 교사, 권재근 씨, 권혁규 군)의 합동 추모식이 진행됐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1313일 만이다.

2018년 5월 10일 낮 12시 10분 세월호가 직립됐다. 세월호 선체가 똑바로 세워진 것은 목포신항에 거치된 2017년 4월 11일 이후 394일 만이다. 세월호 참사일 기준으로는 1485일 만이다. 직립 작업은 세월호 하부에 수직 철제빔을 설치하고, 뒤편 부두에 자리 잡은 1만t급 해상크레인에 와이어(쇠줄)을 앞뒤로 걸어 선체를 뒤편에서 끌어당기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이후로는 선체가 누운 상태에서 살펴보기 어려웠던 세월호 좌현을 중심으로 미수습자 수색과 사고 원인 조사를 진행한다.

 
 

*진도항을 지나 좌측으로 팽목 기억관이 보이네요.

*진도항을 지나 도로따라 직진.

*팽목 버스정류소앞에서 좌측 팽목마을로 진행.

*도로에서 좌측으로 팽목마을 표지석을 지나 갑니다.

*앞에 보이는 팽목마을 입구에서 소나무 좌측으로 진행.

*해안도로따라 진행 팽목마을 작은 포구가 있네요.

*팽목마을지나 걷기길은 해안도로따라 진행 앞에 보이는 우측 산밑으로 난 길따라 진행.

*차 없은 도로따라 진행 인도가 끝나는 지점에서 우측 비포장길로 진행.

*도로에서 우측 비포장길 진행.

*비포장길 끝에는 팽목 배수장이 보이네요.

*진행길 끝에는 다시 도로와 합류 좌측으로 팽목방조제길 진행.

*1.9km의 팽목방조제길 진행.

*지나 온 방조제를 바라 보면서.

*팽목방조제 끝에서 우리는 좌측 죽도방향으로 진행.

*지나 온 팽목방조제의 전경 지겨운 방조제길 걷기 이런길과 농로길 직선길 정말 지루하죠.

*방조제에서 좌측으로 죽도방향 해안길따라 진행.

*해안길 끝에는 마사 선착장 도착 건너편으로 팽목항이 보이고 앞에 보이는 데크길을 따라 산으로 올라

 팽목 바람길과 같이 동행 걷기를 합니다.

*언덕에 올라 세월호의 흔적을 찾아 봅니다.

*산 허리를 돌아 걷기길은 이제 세월호의 흔적을 뒤로하고 해안길 끝에서 우측으로 진행.

*팽목항을 뒤로하고 우측으로 산허리길로 진행.

*걷기 길은 포근한 산길로 이어지고 해가 질려고 하는지 숲속은 어둠이 내리고 있네요.

*걷기길 중간중간에 이런 모양의 프라스틱 기구들이 보이는데 어떤 용도의 물건인지 몹시궁금....

*산길 걷기길은 여기서 우측으로 하산합니다.

*우측 아래에는 마사마을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반갑다 친구야 우리는 동행자 강화도까지 우리를 무사히 안내 부탁합니다.

*저녁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는 마사마을 골목길따라 진행.

*마사마을 골목길 끝에는 도로와 합류 여기가 마사마을 입구 표지석과 버스 정류소 도착.

 여기서 첫날의 걷기를 마무리 합니다.현재 시간이 5시40분 10코스 2시간40분 더 걷기를 했네요 내일은 일찍 마치고

 진도 5일장이라 구경 할려구요.

 여기서 택시를 불러 국립남도국악원 주차장으로 복귀합니다.

*어제 국립남도국악원 주차장에서 편안한 밤을 보내고 아침일찍 진도5일장으로 직행 시장에서 문어랑,대파,간재미,피꼬

 막등 시장을 보고 출발지 마사마을입구에 주차를 하고 9시40분에 걷기를 시작합니다.

*걷기길은 마사마을입구에서 좌측도로따라 진행 인도가 없어 걱정했는데 도로에 통행차량이 없어 조금은 안심.

 좌측 언덕위에 있는 진성교회도 지나고.....

*진성교회지나 도로 곡각지점 전봇대앞에서 우측 농로길로 진행.

*도로에서 우측 농로길따라 한참을 진행.

*농로길 진행 만나는 첫번째 다리입구와 지산양수장 입구에서 좌측으로 진행.

*지산양수장에서 좌측으로 둑방길따라 진행.

*황금빛 갈대가 바람에 춤을추고 있네요 .

*둑방길 진행 마사양수장앞 통과.

*걷기길은 둑방길 계속 직진 잠시 후 우측으로 마사교가 있고 우리는 직진.

*잠시 후 심동양수장앞 통과.

*둑방길 걷기 계속 앞에 보이는 바위산이 진도의 유명산 동석산 10년전에 등산한 기억이 나네요.

*오늘은 어제와 달리 메서운 겨울바람에 기온이 많이 내려가 추위를 느끼게 하네요.

*잠깐 동석산을 배경으로 한컷.

*진도의 유명 바위산 동석산 전경.

석산(童石山 219m)은 전남 진도군 지산면 심동리에 위치하며 마이산처럼 기묘한 바위가 웅장한 산세로 시선을 끌어당긴다. 강렬한 바위의 인상은 섬산 중 최고로 꼽아도 부족함 없을 것이다. 바위가 많은 동석산은 산길이 험하다. 얼마 전만 해도 암벽 등반가들의 독무대였으며, 등반장비 없이 오르다 사고가 나는 경우도 있었다. 지금은 진도군에서 계단과 밧줄 등의 시설물을 설치해 일반 등산인들도 즐길 수 있는 산행지로 변신했다. 위험구간은 피해 갈 수 있도록 우회로가 잘 조성되어 있다. 산행 들머리는 심동리 종성교회, 남쪽 천종사나 북쪽 세방낙조전망대 주차장이다. 동석산 정상에서 암릉 동쪽으로 내려섰다 능선을 넘어 서쪽으로 크게 우회하면 지도상에 석적막산이라 표기된 가장 높은 봉우리에 오르게 된다. 평범한 숲길을 따라 큰애기봉 전망대까지 능선길이 길게 이어진다. 큰애기봉은 산행의 백미라 해도 좋을 명소다. 큰애기봉 정상에 널찍한 목조데크가 있어 그곳에 서면 진도 서쪽 해안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며 바다 풍광이 훨씬 입체적으로 조망된다.

▶산행코스 : 심동마을→종성교회옆→암릉→동석산정상→큰애기봉전망대→전망대→세방낙조/2018.12.13, 5km(4:00 소요)

 

*지나온 둑방길을 뒤돌아 본 모습 하천의 갈대밭 사이로 물길이 길을 열어주고 있네요.

*현재 우리는 서해랑길 10코스 걷기를 하고 있습니다.

*코리아둘레길의 길잡이 리본이 바람에 씩씩하게 역활을 다하고 있네요.

*심동마을 뒤로 동석산이 우뚝 ......

*둑방길 직진 우측으로 심동교도 지나 계속직진 진행.

*심동교 지나 한참 진행 삼거리에서 좌측 농로길로 진행 여기는 방향표시가 우측바닥에 있는데 누군가 쓰레기

 소각으로 방향 스티커가 훼손 관심 지점입니다.

*둑방길에소 좌측 농로길따라 진행 농로길 끝까지 진행.

*농로길끝에서 우측으로 진행 잠시 후 우측으로 봉암저수지가 보입니다.

*다시 걷기길은 도로와 합류 우측으로 봉암저수지를 끼고 도로따라 한참 진행.

*봉암저수지 전경 1979년도 축조 74,000톤의 저수용량 이 저수지로 397ha의 농토가 혜택을.....

 

*걷기길은 도로따라 진행 좌측으로 하봉암복지회관 통과.

*걷기길은 도로건너 보이는 상수농장 방향 좌측 농로길로 진행.

*도로에서 좌측 농로길따라 끝까지 진행.

*농로길 끝에서 우측으로 진행.

*우측으로 농로길 따라 보이는 마을앞까지 진행.

*마을길 입구에서 우측으로 방향전환.

*우측으로 잠시 진행 후 다시 좌측 마을을 보고 진행.

*다시 마을길과 합류 우측으로 진행.

*골목길 입구에서 다시 우측으로 진행.

*우측으로 진행 가치마을 공터에 11코스 안내판앞에서 10코스 걷기를 마무리 합니다.

*오늘도 무사히 서해랑길 한코스를 정복합니다.

*10코스 4시간30분 소요 현재시간이 오전11시20분 11~12코스가 둘다22km 장거리 거리라 우리는 여기서 11코스

 2시간 정도 이어걷기를 합니다 다음에 조금의 여유를 갖고자 이어갑니다.

 

출발.도착 차량 주행거리 = 마사마을 입구~울산 =426km(진도운행포함)

                                     

*누적 주행거리 =3,798km

 

*2차 통행료 = 진도~울산 = 14,700원

*누적 통행료 = 142,800원

*기타경비 = 1)차량회수 1일차 마사마을~국립남도국악원 주차장=17,920원

           2)차량회수 2일차보전항~마사마을=24,000원

           3)진도 5일장 구입=150,000원

           4)고속도로휴계소 호두과자=5,000원

*기타경비=196,920

*누적합산=322,670+196,920=519,590원

*10코스 거리 =15.9 km    .누적거리 = 155.3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