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 제 = 06월 08일 수요일 흐림 15~23도
*누구와 = 임무용,최현숙(부부)
*코 스 = 답동마을버스정류장~대초마을~영광대교~백제최초불교도래지~법성리버스정류장 16.3km(6시간35분소요)
*이번주도 우리부부는 울산에서 서해랑길 39~40코스 걷기를 위해 새벽에 울산에서 출발한다.
이제 날씨는 여름으로 향하여 기온이 갈때마다 올라 이제 한낮은 30도를 바라 보는데 서해랑길은 걷기내내
그늘이 없어 갈수로 어려움이 예상되고 방조제 걷기가 일상이되고 바다에는 매번 갯벌만 눈으로 감상 조금은 해파랑길이
나 남파랑길과 조금은 다른 모습을 보여 주네요.지금까지의 코스는 단조로운 걷기로 기억에 남는다.
코스개요
- 법성포 굴비와 맛깔나는 남도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코스
관광포인트
- 아름다운 야경을 자랑하는 '영광대교'
- 백제시대부터 자리 잡은 항구로 불교문화 도래지 '법성포'
여행자 정보
교통편) 영광고속버스터미널에서 2202-1버스 승차 후 '답동'정류장 하차
- 종점: 영광군 법성면 법성리 법성리버스정류장
- 그늘이 많지 않으므로 사전에 대비할 필요가 있음
- 코스에서 벗어나지만 대덕산에 오르면 서해로 흘러가는 와탄천의 물돌이 전경을 볼 수 있는 명소임
39코스 16.3km, 6시간, 답동마을버스정류장~77번 국도~허우재~해안로~대신길~정유재란열부순절지~레드힐커피~영광노을전시관~영광백수해안도로~365계단~대초경로당 입구~대신3교~해넘이펜션~목단교차로~영광대교~칠곡로~법성진내근린공원~백제불교최초도래지~숲쟁이꽃동산~법성진성~숲쟁이길~법성진길~법성1교~아미정~법성포로~법성리버스정류장
*오늘도 우리부부는 서해랑길 길위에 걷기를 시작합니다.
*서해랑길39코스 안내판앞에서 인증샷 출발합니다.
*백수해안도로가 엄청난 역활을 하고 있네요 대한민국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 자영경관 대산 수상 축하합니다.
*39코스 시작점 답동버스정류장 여기에 있습니다.
*답동버스정류장옆 39코스 시작점 확인 출발합니다.
*백수해안도로 볼거리 안내판 우리 걷기코스에 대부분 포함되어 있네요.
*시작점에서 도로따라 벗나무 터널을 향하여 진행.
*잠시 후 우측 등산로입구 안내판앞에서 등산로 따라 진행.
*제법 경사도가 있는 등산로 진행.
*능선부 도착 진행길은 열부순절지 방향으로 .......
*이곳은 조선시대 유적인 "영광 고도도봉수"입니다.
유적지 관리가 조금은 아쉬움을 보이고 있네요.
*봉수대에서 반대편으로 등산로따라 진행.
*봉수대에서 조금 진행 멋진 휴식처가 있어요.
*전망대에서 바라본 내륙쪽의 모습 운무가 시야를 흐리게 하네요.
*전망대에서 주위를 둘러보고 등산로따라 진행.
*이런 한적한 능선길을따라 한참을 진행.
*두번째 전망대 휴식처 도착.
*진행길은 가자봉 방향으로 진행.
*약간의 경사도가 있는 가자봉 오름길.
*등산로 반대편 도착 산에서 하산합니다.
*구수산 등산로입구 도착 여기서 우측으로 잠시 후 다시 좌측으로 굴다리 통과 열부순절지 방향으로 진행.
*도로에서 바라 본 열부 순절지 모습 양귀비꽃과 해안 경치가 멋지네요.
*도로에서 바라 본 구수산 등산로입구의 모습 우리가 저기로 내려 왔어요.
*비 건립기 소개글.
*정유재란 당시(1597년) 함평군 월야면 월악리 등에 살던 동래정씨와 진주정씨 문중의 부녀자들이 절개를 지켜
죽은 곳이다.이들은 전쟁을 피해 묵방포까지 피난왔으나.결국 왜적이게 잡히자 대마도로 끌려가 치욕을 당하느니
의로운 죽음을 결심하고 모두 칠산 앞 바다에 몸을 던졌다. 숙종7년(1681년) 나라에서는 후세에 귀감이 되도록
상을 주고 정려를 내려 이들의 정절을 기렸다. 현 두개의 비각은 1942년과 1946년에 세운 것으로 ,바다를 뒤로 하여 팔각 돌기둥 4개를 세우고 그 위에 팔작형의 지붕돌을 올려놓은 모습이다.
*도해문.
소재지지역
전라남도 영광군 백수읍 해안로 847-8 (대신리 818-3) |
영광 |
정유재란 열부 순절지(烈婦殉節地)는 정유재란 때 함평군 월야면 월악리에 거주하던 여러 문중의 부인(12명 또는 13명)이 침입해오는 일본군을 피해 1597년 9월 26일 이곳 영광군 백수읍 대신리 묵방포까지 피신했다가 바다에서 일본 함선을 만나게 되자 일본군에게 굴욕을 당하기보다는 의롭게 죽을 것을 결심하고 칠산 앞바다에 몸을 던져 순절한 곳이다.1)
나라에서는 부인들이 죽음으로 정절을 지켜 순절한 것을 기리기 위해 1681년(숙종 7) 후세에 귀감이 되도록 상을 주고 정려를 내렸다. 그들의 거주지였던 함평군 월야면 월악리에는 정렬각과 열녀순절비를 세웠고, 순절지인 이곳 묵방포에는 순절비를 세웠다.
이곳 순절지에는 두 개의 순절비가 나란히 서 있는데 바다를 바라볼 때 왼쪽은 정씨 팔열부 순절비이고 오른쪽은 밀양 박씨 순절비이다.2) 정씨 팔열부 순절비는 1942년에 건립했고, 밀양 박씨 순절비는 1946년에 세웠다. 두 곳 모두 8각 석주를 4개씩 세우고 그 위에 지붕돌을 올려놓았다.
열부는 모두 12명 또는 13명이지만 이곳에 있는 2개의 순절비 중 하나는 정씨 가문의 8열부, 다른 하나는 밀양 박씨 1열부를 기리고 있다. 동래 정씨 가문에서는 12명, 진주 정씨 가문에서는 13명으로 열부의 수를 다르게 파악하고 있다.(열부 중 함양 오씨는 동래 정씨 함평사람 정운길의 처이다. ‘팔열부 정각’의 내용 중 ‘동래 정씨 삼강비 입비 내력’에 정운길의 일본군 토벌 경과 및 순절, 그의 부인 함양 오씨의 피난 및 순절 내용이 적혀 있다.) 진주 정씨 가문의 밀양 박씨는 모열사 기적비에 적혀 있는 열부 명단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3) 따라서 밀양 박씨를 포함시키지 않으면 12명이 되고 포함시키면 13명이 된다.
당시 묵방포 칠산 앞바다에서 일본군에게 잡힌 피난민 중 13명의 여성이 정절을 지키기 위해 바다에 뛰어들었다. 이 중 진주 정씨 정박의 부인 밀양 박씨는 칠산 앞바다가 아닌 대마도 부근에서 투신한 것으로 보인다.(밀양 박씨에 관해서는 ‘정렬각’ 참조)
ⓒ 한국학술정보 | CC BY-NC-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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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열사
모열사(慕烈祠)는 바다를 건너 피난하다가 일본군의 함선을 만나게 되자 바닷물에 몸을 던진 12명의 여인의 정절을 기려 칠산 앞바다가 바라보이는 해안 언덕에 세운 사당이다. 모열사와 열부 순절소 비각을 묶어 정유재란 열부 순절지라고 부르는데 이곳은 1976년 9월 30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23호로 지정되었다.
ⓒ 한국학술정보 | CC BY-NC-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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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왼쪽 비닐하우스 옆에 열부 순절소 비각이 보인다.
ⓒ 한국학술정보 | CC BY-NC-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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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열사 사적비
임진왜란 5년 후 정유재란 때(1597년) 함평군 월야면 달악이(月岳里)에 거주한 동래, 진주, 양 정씨 친인척 12부녀가 작은 배를 빌려 타고 서울로 피난가다 음력 9월 26일 이곳 칠산해(七山海)에 이르렀을 때 난데없이 왜적들의 배가 쫓아오자 이들에 항거 나라와 가문을 위하여 바다에 몸을 던져 순절하였다.
12 정렬부의 표시(동국삼강행실록 기록순)
서울사람 심해의 처 동래 정씨, 서울사람 권척의 처 동래 정씨, 함평사람 정함일의 처 함평 이씨, 함평사람 정경득의 처 순천 박씨, 함평사람 정희득의 처 함평 이씨, 함평사람 정함일의 딸 진주 정씨, 함평사람 정운길의 처 함양 오씨, 함평사람 정주일의 처 함평 이씨, 함평사람 정절의 처 영광 김씨, 함평사람 정호인의 처 함평 이씨, 무장사람 오굉의 처 황주 변씨, 무장사람 김한국의 처 함양 오씨
위 사실이 당시 금상폐하 선조께 상조(上朝)되니, 선조께서는 12부녀에게 정문(旌門)의 포상을 내렸다.
정유재란(丁酉再亂) 동주피적(同舟避賊) 추급십이절부(追及十二節婦) 개투수이사(皆投水而死) 금상조정문(今上朝旌門)(동국삼강행실록에서) 조선왕조실록에는 정십이절부지려(旌十二節婦之呂)······ 초개정문사재(初皆旌門事載) 동국삼강행실(東國三綱行實)이라고 기록.
한편 함평군에서는 1681년에 함평 달악이(月岳里)에 정렬각(일명 팔열각)을 세웠고, 그 밖에 정렬각은 각기 고향에 세워졌다. 전라남도에서는 1994년에 함평 정렬각을 문화재 제8호로, 이곳 묵방포에는 1976년에 12정렬부 도해 순절지 및 순절비를 제23호로 지정하였으며 영광군에서는 국 · 도비로 1981년에 본 모열사를 세웠다.
※ 참고: 1996년 편찬 전라남도지, 1998년 편찬 영광군지, 1999년 편찬 함평군사에 각각 등재되었음.
2001년 3월, 지방문화재 제8, 22, 23호 정사(正史) 시정추진위원회 근수
팔열부 순절비
1597년 정유재란 때 함평군 월야면 월악리에 거주하던 동래 정씨와 진주 정씨 문중의 부인들이 일본군을 피해 이동하던 중 지금의 영광군 백수읍 대신리 묵방포 가까운 바다에서 일본군에게 포로로 잡혔다. 선박에 태워져 먼 바다로 나아갈 즈음 굴욕을 당하기보다는 의롭게 죽을 것을 결심한 이들 부녀자들은 남해바다에 몸을 던져 순절했다. 이들의 순절을 기리기 위해 순절지 부근 해안 언덕에 순절비를 세웠다. 비를 보호하는 비각은 팔각의 돌기둥 4개를 세우고 그 위에 지붕돌을 올렸다.
팔열부 순절비는 앞면에 ‘정씨 팔열부 도해 순절소(鄭氏八烈婦蹈海殉節所)’라고 음각하고 뒷면에는 8명 열부의 이름을 적었다. 순절한 것은 12명 또는 13명이지만 이 중에서 함평사람 8명의 순절을 기리는 비석이다. 이들의 명단은 위의 ‘모열사 사적비’에 들어 있다.
ⓒ 한국학술정보 | CC BY-NC-ND
밀양 박씨 순절비
밀양 박씨는 진주 정씨 정박(鄭博)의 부인이다.4) 비석 앞면에는 ‘열부 박씨 순절소(烈婦朴氏殉節所)’라고 새겼고, 뒷면에는 ‘열부 박씨 정려기’를 적었다.
*열부순절지를 뒤로하고 해안가 데크길따라 진행.
*진행길에서 뒤돌아 본 열부 순절지.
*묵방포 칠산앞바다의 모습 한이 서린 곳이네요.
*백수해안도로 제1주차장 도착.
*영광 스카이워크 전망대 요즈음 백수해안도로의 핫플로 떠오르는 곳이라네요.
*영광 스카이워크 전망대 천사의 날개.
*인증샷 한컷 남기고 갑니다.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의 흔적이 없네요 너무 조용해 좋아요.
*해안가에서 도로따라 진행.
위치문화재 지정
전라남도 영광군 백수읍 해안로 957 |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선정 |
영광군 백수읍 길용리에서 백암리 석구미 마을까지 16.8km에 달하는 해안도로로, 기암괴석·광활한 갯벌·불타는 석양이 만나 황홀한 풍경을 연출하는 서해안의 대표적인 드라이브 코스이다. 특히 해안도로 아래 목재 데크 산책로로 조성된 3.5km의 해안 노을길은 바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걷기와 함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으며, 2006년 건설교통부의 한국의 아름다운길 100선, 2011년 국토해양부의 제 1회 대한민국 자연경관대상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등 각종 평가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국내 유일의 노을전시관을 비롯하여 다양한 펜션과 음식점 등이 갖추어져 있다.
*도로따라 진행 우측으로 대형건물 해수온천랜드 네요.
*해안가에는 등대가 좋은곳에 위치하고 있네요.
*잠시 후 영광 노을전시관앞 도착.
*전시관앞에 조미미 "바다가 육지라면"노래비가 있네요.
*365계단 방향으로 진행.
*진행길 300m전방에 노을종과 사랑에 자물쇠가 있다네요.
*영광 노을전시관 실내구경은 다음에 외관만 보고 갑니다.
*백수해안도로따라 해안쪽으로 넓찍한 데크길따라 진행.
*마법의 종 (노을종앞 도착).
"한번 치고 맥놀이를 <진동> 들으면.. 웃을 일이 생기고요" ~
"두번치고 맥놀이를 만지면.. 사랑의 감정이 찾아든다 하고" ~
"세번치고 맥놀이를 느끼면.. 행복할 일이 생긴다고 합니다" !!
이 종은 노을이 되어.. 어머니 곁을 맴도는 아들의 효심을 담은 "노을종" 이라네요..?
아주 먼 옛날 "도음소도" 에는.. 병든 어머니를 모시고 소금을 팔아 살아가는 젊은이가 있었는데 ~
매일 무거운 소금가마를 지고 나가 팔다.. 노을이 질 무렵에야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곤 했대요..?
아픈 어머니 앞에선.. 힘든 내색한번 하지않는 착한 아들인지라.. 어머니는 늘 안쓰럽고 걱정돼 ~
매일 아들이 오는 길목에서 기다렸는데.. 그때마다 아들은 노을을 등지고 환하게 웃으며 돌아왔다네요..?
비바람이 심한 어느날 어머니의 만류에도 소금가마를 지고나선 아들은.. 굵은 빗줄기에 소금이 녹아버려 ~
팔게 없자 어머니의 약값은 마련해야 하기에.. 며칠더 지체를하게 되었던 거죠..?
이런 상황을 모르는 어머니는.. 기다려도 아들이 돌아오지 않자 찾아나서다 바위에 걸려 넘어져 ~
어머니는 넘어진 그대로 돌처럼 딱딱하게 굳고 말았으니.. 며칠후 아들은 약을담은 노란 함지박을 지게에 지고 ~
돌아오다 쓰러진 어머니를 발견하고.. 아들은 다급하게 뛰어갔지만.. 모든건 허사..?
몇날 몇칠을 그렇게 울다.. 아들은 바람처럼 사라졌고.. 어머니가 걸려 넘어진 바위를 "궁글바위" 라 했다네요 ~
*노을종을 지나 데크길따라 진행.
*우측으로는 백수 해안도로가 있고 좌측으로 바다를 바라보면서 걷기를 계속합니다.
*도로가로 진행.
발행일발행량종수액면가격디자인우표번호인면천공전지구성용지인쇄 및 색수우표크기디자이너인쇄처
2021. 7. 15. |
672,000(전지 42,000장) |
4 |
380 |
영광 백수해안도로 |
3524 |
31.5 × 37 |
14 x 14 |
4 × 4 |
평판 원지 |
평판 / 5도 |
32.5mm × 37mm |
정은영 |
POSA(카토社) |
ⓒ 우정사업본부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는 동해, 서해, 남해 어디를 가도 아름다운 해안의 풍광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특히 해안을 따라 만들어진 해안도로는 자동차를 타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드라이브 코스로 제격입니다. 우정사업본부는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해안도로 4곳을 선정하여 ‘해안 경관도로’ 기념우표를 발행합니다.
유독 노을이 아름다운 코스로 유명한 서해안의 전남 영광군 백수해안도로는 백수읍 길용리의 원불교 영산성지에서 구수리, 대신리를 거쳐 백암리 석구미 마을까지 이어진 약 18.4㎞의 구간입니다. 아름다운 해넘이를 차 안에서 파노라마로 만끽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백암리부터 구수리까지 총 8개의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어 달리다가 멈추어 바다 풍광을 좀 더 가까이 즐길 수도 있습니다. 백수해안도로는 2006년에 국토해양부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되었고, 2011년에 개최된 제1회 대한민국 자연경관대상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국내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운 도로로 알려진 강릉 헌화로는 동해안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로 손꼽힙니다. 강릉시 옥계면 금진해변에서 북으로 심곡항을 거쳐 정동진항까지 이어지는 2.4㎞ 코스는 도로변 난간 높이가 낮아 강원도의 바다를 차 안에서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헌화로의 백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삼국유사 에 실린 ‘헌화가’의 배경이 이곳 풍경과 유사하다고 하여 이름 지어진 헌화로는 몇 해 전부터 서퍼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고, 이후 서핑 스쿨과 숙소, 카페 등이 빠르게 들어섰습니다. 백사장에 앉아 서퍼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제주도 서쪽 끝을 따라 연결된 신창풍차해안도로는 해상풍력단지가 조성되어 있어 도로를 따라 줄지어 서 있는 풍차를 만날 수 있습니다. 하얀 풍차와 에메랄드빛 바다, 저 멀리 보이는 차귀도 등 구불구불 해안도로를 중심으로 다양한 볼거리가 눈앞에 펼쳐집니다. 해안도로를 달리다 보면 생태체험장이라는 산책코스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는 ‘다금바리’라고도 부르는 대형 물고기상인 자바리상이 있고 제주 전통 낚시 체험이 가능한 원담체험장과 휴게 공간이 있어 다양한 풍경과 체험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습니다.
삼천포대교를 건너 남해에 이르면 물건리에서 미조리까지 이어지는 약 20㎞의 물미해안도로가 있습니다. 구불구불 굽이도는 길에 꽃과 단풍, 기암괴석, 그 아래로 펼쳐진 에메랄드빛 바다까지 어우러진 모습이 마치 비단처럼 곱고 아름답다 하여 ‘한려해상을 품은 비단길’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특히 하늘에서 내려다본 물미해안도로는 아름다운 풍경의 진수로 남해의 대표 12경 중 하나로 선정되었습니다. 도로 중간에는 남해바다를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어 푸른 산과 바다의 조화로운 모습을 편히 감상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가 장기적으로 이어지며 해외는 물론이고 국내 여행도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자연을 배경으로 시원하게 쭉 뻗은 해안도로를 주제로 한 이번 우표와 함께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우리 모두의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길 바랍니다.
*다시 도로에서 데크길은 좌측 해안가로 유도.
*평일이라 그런지 너무 한적합니다.
*여름에는 진행길이 그늘을 만들어 주어 걷기가 좋을것 같네요.
*뒤쪽 언덕위에 칠산정 정자가 보이네요.
*데크길따라 해안길 진행.
*다시 도로와 나란히 갑니다.
*진행길 우측으로 삼미랑 어촌문화 체험관 건물이 보이네요.
*진행길 내내 전망이 좋은 해안가 진행 자동차로 지나도 좋지만 둘발로 쉬엄쉬엄 걷는것도 권장합니다.
너무 아름다운 걷기 길이네요.
*백수 해안도로 8주차장 도착 .
*굉장히 넓은 공간을 만들어 놓았네요 전망도 좋고......
*백수 해안도로 제8주차장 도착 전망대에서 바라 본 해안가의 모습 잠시 후 우리가 지나가는 코스네요.
*전망대에서 해안가 내려가는 데크길 입구.
*작은 포구에 이쁜 빨강색 등대가 자리하고 있네요.
*등대를 지나 해안가 진행.
*잠시 후 해안가 데크길 입구도착 잠시 흔적을 남기고 갑니다.
*해안가 데크길에서 다시 도로와 합류 좌측으로 진행.
*해안가 데크길 옆에 구찌뽕 열매가 보이네요.
*바다는 밑물로 바닥을 보이고 우리는 해안가 데크길따라 진행.
*해안가 데크길에서 다시 도로와 합류 좌측으로 진행.
*해안가 데크길에서 도로와 합류지점에는 쉼터가 나무 그늘밑에 있네요.
*뒤돌아 본 모습 해안가 데크길 전경.
*진행길 도로 삼거리에서 영광대교 방향으로 진행.
*삼거리에서 약간의 경사도가 있는 오르막길 진행 인도가 좁아 조심구간입니다.
*작은 고개를 넘어 삼거리 도착 좌측으로 진행.
*삼거리에서 도로따라 진행 식당가앞 통과.
*잠시 후 영광대교입구 도착 .
*영광대교 준공 기념탑 앞으로 진행.
*영광대교를 건너 갑니다.
전남 영광군 백수읍과 홍농읍을 잇는 다리로 2016년 3월25일에 완공된 다리다. 주탑과 주탑 간 거리인 주경간장이 320m에 달한다. 영광대교 완공으로 지역간의 이동이 활발해 지면서 지역발전에 큰 도움을 주고 있으며, 인근 유명 관광지의 진입이 용이해져 관광 산업에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다리다.
*영광대교를 건너면 여기서 부터는 홍농읍으로 진입.
*영광대교를 건너 좌측으로 내려가 다시 좌측 굴다리 통과.
*굴다리 통과 우측으로 진행 지금은 풀밭으로 변한곳으로 진행.
*잠시 후 데크길 진행.
*데크길 끝에서 해안가로 내려감.
*맥목마을 버스 정류장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진행 .
*횡단보도 건너 데크길로 진입.
*도로에서 데크길로 진입 직진 건너편 도로 아래길로 진행.
*진행길 좌측으로 습지에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네요.
*도로아래 산책로 진행 좌측으로 습지가 형성되어 있네요.
*도로끝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진행.
*도로따라 진행 .
*진행길 도로 건너편에 백제최초 불교도래지 안내도.
*칠산갯길300리 안내도와 굴비길 생태탐방로가 소개되고 있네요.
*우측으로 칠산 앞바다와 함께 데크길 진행 시원한 바다바람과 함께 해요.
*백제불교최초 도래지입구 도착 서해랑길 39코스 걷기를 하면서 영광 법성포에 이런 역사적인 불교도래지가
있다는 사실 처음으로 접해봅니다.
*정문을 통과 광장에서 바라 본 본관 건물쪽의 모습.
*광장에 세워져 있는 해태상.
*광장의 해변쪽에 종각이.....
*여기는 간다라 유물관 건물.
*석가모니는 보리수나무 아래서 께달음을 얻었는데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얻어 갈까요.
*영광 법성포가 인도 출신의 승려 마라난타 존자가 중국 동진에서 해로로 백제에 입국할때 최초로
도착한 곳이 영광 법성포 지금의 이곳이라네요.
*중앙에 계단을 통해 올라가면 부용루와 사면대사불상.
*영광 백제불교최초도래지는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종교를 떠나서 누구나 한번쯤 마음의 정화를 할수 있는
공간으로 특별한 불교신자가 아니라도 인도풍의 건물과 간다라양식의 여러가지 제단을 접할수 있어 어린
아이들과 손잡고 한번쯤 둘러볼만한 곳이네요
뒤쪽으로 보이는 사면대불상 높이가 23m나 되는 거대한 불상 지금은 공사 중이라 가까이에서 볼수 없어 조금은 아쉬움.
*부용루 옆으로 작은 연못에는 연꽃이 한두송이 보이고 주위의 이쁘게 이어지는 산책로 너무 아름답게 조성되어 있네요.
*간다라양식의 불상.
*보이는 건물이 부용루가 대웅전 아닌가 생각했는데 사실은 산다라 양식의 부조들이 벽면에 새겨져 있는 누각이라 ......
*여기는 탑원 중앙에 커다란 불탑이 있고 사방으로 여러 종류의 불상이 봉안된 감실형 불당으로 삼면에 걸처
각각의 특징을 가진 불상들로 색다른 형태의 모습으로 다가 오네요.
*탑원 좌측으로 능선길따라 진행.
*탑원에서 능선길 도착 좌측으로 주차장 방향으로 진행.
*주차장 가는길 꽃길만 걸어요.
*주차장 가는길에 내려다 본 법성포 시가지의 모습.
*불교최초 도래지 주차장 도착.
*주차장을 가로질러 전기차 충전기 쪽으로 진행.
*넓은 주차장에는 달량 몇대의 승용차가 전부.
*본 벽화는 2020년 12월부터 2021년 3월까지 진행된 공공미술 프로젝트(느루터)에 참여한 16명의 회화 예술인들이 완성
한 벽화작품입니다
작품의 전체적인 배경은 법성포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바다의 풍경이며, 불교 문화와 법성 진내리에 내려오는 설화와 역사
를 주제로 작품을 표현 했습니다.전통문회의 계승과 잊혀져가는 법성의 역사를 꽃피우고 싶은 작가들과 동네 주민분들의 염원을 담아 제작하였습니다.
*법성포 "법성진성"안내판.
진성은 지방의 각 진영에 성벽을 쌓은 방어 시설이다.
영광 법성진성은 전라도 일대 새곡을 모았던 법성창을 방어하기 위해 조선 중종 9년인 1514년에 돌을 쌓아 만들었다.
"신중동국여지승람" 과 "대동대지"에는 성벽의 둘레가 1,688척으로 기록돼 있는데, 이는 약800m로 추정된다.
현재 남아 있는 성벽의 길이는 460m이며, 북벽은 전구간이 서쪽과 동쪽은 일부구간만 확인된다.
1872년 만들어진 "법성진지도" 를 볼때 성 내부에서는 동현,객사등 관아시설 뿐만 아니라 세곡 수납과 관련된 창고 시설
도 확인된다.
성벽에서는 축성에 새겨져 있어.법성진성의 축성과 관련된 다양한 경로를 파악할 수 있다. 성 주변에서는 기와,자기, 토기
류 등의 유물이 출토 되었다.
*진행길 우측으로 성벽을 바라 보면서 숲쟁이 방향으로 진행.
*계단을 통하여 법성진 숲쟁이 내려가는 길.
*법성진에서 숲쟁이 가는길.
위치문화재 지정
전라남도 영광군 법성면 법성리 821-1 |
명승 제22호(2007.02.01 지정) |
법성에서 홍농으로 넘어 가는 산 허리의 능선에 조성된 느티나무를 위주로 하는 인공적인 숲을 말한다. 법성리 산 821-1번지, 진내리 산 28-1번지에는 느티나무, 개서어나무, 팽나무가 자라고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는 느티나무가 90%를 차지하고 있다. 나무의 높이는 19m~23m에 이르고, 줄기의 가슴 높이 둘레는 0.65m~4.20m에 이르고 있으나 1m~2.5m에 이르는 것이 가장 많아 71%를 차지하고 있다. 3m 이상인 것은 23%이며, 4m가 넘는 것은 2주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결과에서 볼때 10년생으로부터 300여년생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지만 100여년 생이 가장 많은 것은 1800년대의 보식을 많이 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이 수림은 중종 9년(1514) 법성진성을 축조할 때 심었다고 전해지고 있지만 나무의 크기로 볼 때 그 후에 심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 규모 : 8,829㎡ * 수령 : 100~300년 * 느티나무, 팽나무, 개서어나무 등은 모두 우리 나라에 자생하고 있는 낙엽활엽교목으로서 법성포 앞바다(서쪽)에서 불어 오는 센 바람을 막기 위해 집단적으로 심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이 수림은 일명 「숲쟁이」라고도 하는데 지금은 법성면민의 휴양림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매년 음력 5월 5일 단오날에 민속행사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느티나무는 크게 자라고 장수하기 때문에 정자목과 당산목으로 심어 보호하는 일은 적지 않으나 산지에 이처럼 많은 나무를 집단적으로 심는 예는 찾아 보기 어렵다.
*숲쟁이 가는길에 대형 그네가 우리를 유혹 하네요 .
*여기는 법성진 숲쟁이
전라남도 영광군 법성면 법성리에 있는 명승.
영광 법성진 숲쟁이는 법성포와 법성진성(法聖鎭城) 및 성 위에 조성된 숲을 이른다. 이는 법성포에서 흥농 방향으로 연결된 842번 지방도의 고개마루 좌우 측 산 능선을 따라 법성리와 진내리에 걸쳐 있다. 2007년에 명승 제22호로 지정되었다.
숲쟁이의 쟁이는 성(城)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숲쟁이는 일정한 규모로 조성된 숲을 의미하며, 다른 의미로는 인위적으로 조성된 마을숲에 대한 명칭인 숲정이의 방언으로 보기도 한다.
현황
법성포는 우리나라 서해안의 대표적인 항구로, 칠산 앞바다에서 들어오는 조기배로 파시를 이루었던 곳이다. 예로부터 파시로 몰려드는 보부상들이 이 숲에서 단오행사를 개최하였다고 한다.
법성포의 산세는 인의산(157m)에서 시작되어 좌측 능선은 남측의 대덕산(240m) 방향으로 이어지고, 서측 능선은 진내리 방향으로 뻗어 내린다. 진내리 방향으로 인의산의 자연림이 끝나는 남쪽 부분에서 시작되는 숲쟁이는 지방도가 가로지르는 부분까지 완만한 하향 경사면에 조성되어 있다. 또 도로 건너편으로 연결되어 오르막 경사로 이루어진 산 능선을 따라 길게 숲이 조성되어 있다.
숲쟁이는 본래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던 것인데, 지방도가 개설되면서 2개로 나뉘었다. 현재는 도로 위로 두 개의 숲을 연결하는 다리인 부용교가 놓여 있 다. 숲에는 300년 이상 된 느티나무가 중심을 이루면서 방풍림 역할을 하고 있다.
*법성진 숲쟁이에서 우측으로 진행 잠시 후 좌측 마을길 진행.
*마을 골목길따라 진행.
*골목길에서 이면도로와 합류 우측으로 진행.
*골목길 입구에 법성포 철비.
1800년, 정조 24년에 태어났다. 본관은 남양이며, 자(字)는 중구(重九)다. 1834년, 34세 때 갑오 무과 식연시 갑과에 응시하여 응시자 651명 가운데 1위로 장원급제하였다.
1851년, 51세이던 철종 2년 4월에 제42대 법성첨사로 부임하여, 1853년, 철종 4년 6월까지, 2년 2개월 재임하고 경흥부사로 전임하였다.
법성첨사 재임 때, 광주 등 열두 군(郡)·현(縣)의 세금을 거둬들이는 일에 지나침이 없었고, 고을백성들의 진휼(賑恤)에 힘썼다. 이와 같은 연유로 1853년 철종 4년 여름에 법성진의 열두 수세(收稅) 군(郡)·현(縣)과 우리고을 백성들이 뜻을 모아 이곳 비각거리에 각각 선정비를 세웠다. 열두 수세(收稅) 군(郡)·현(縣)에서 세운 선정비(철비)의 규모는 폭 4cm, 넓이 32cm, 높이 145cm이며, 고을 백성들이 세운 선정비(돌비)의 규모는 폭 43cm, 두께 15cm, 높이 103cm다.
두 동강 난 철비
이곳 비각거리에는 이 철비와 똑 같은 모양의 ‘충파비(忠蚾碑)’가 있었다. 홍대항(洪大恒) 첨사가 세운 보은(報恩)의 두꺼비 전설이 있는 이 철비(鐵碑)는 영험하여 “이 비를 끌어안고 입맞춤을 하면 하리거리(열병)가 낫는다.”는 속설이 있어 고을 사람들이 외경심을 가지고 정성껏 관리하였다.
1895년에 일본사람들이 법성포로 이주하여 처음으로 터를 잡았다.
일본 ‘헌병분견대’와 함께 ‘법성포주재소’가 1906년에 들어서고, 포구 앞 해변을 막아 조성된 터에 ‘조선해운조합 법성포출장소’와 ‘법성포우편소’(1910년), ‘진량면사무소’(1911년)와 ‘법성포심상소학교’(1912년), ‘가와사키(川崎)농장 사택단지‘(1917년)와 ‘법성포금융조합’(1919년)이 자리를 잡았다.
이렇게 법성포가 일본사람들 세상이 되자, 이곳 비각거리에 세워진 조선시대 법성진 첨사들의 선정비가 수난을 당했다. 유석규 첨사 선정비를 일본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가와사끼농장 사택)으로 옮겨 다릿돌로 쓰는 횡포를 서슴없이 자행한 것이다.
이렇게 수모를 당하자 이에 분노한 ‘법성포노인회’ 회원들은 1925년에 비각거리에 있는 선정비들을 마을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숲쟁이’로 모두 옮겨, 일본사람들이 더 이상 횡포를 부리지 못하도록 서로 감시하였다. 그런데 영험한 철비를 옮겨 고을에 좋지 않은 일이 난다고 ‘충파비’를 원래의 위치인 비각거리로 다시 옮겨야 한다는 여론에 따라 ‘충파비’를 원래의 자리로 옮기다가 두 동강 나 버리는 사단이 났다. 영험한 ‘충파비’가 동강났으니 노인들은 노인들대로, 고을사람들은 고을사람들대로, 모두가 큰 재앙이 닥치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그래서 고심 끝에 ‘충파비’와 닮은 ‘홍대항첨사비’를 다시, 비각거리 원래의 자리로 옮기고 두 동강 난 ‘충파비’는 그 옆에 파묻었다.
공출된 충파비
1930년대 이르러 중일전쟁을 일으키며 침략성을 노골화하던 일제는 1940년대에 들어서 조선팔도 안에 쇠붙이를 거둬들이기 시작하였다. 쇠붙이를 녹여서 전쟁에 필요한 무기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순사들을 동원하여 집안의 놋그릇은 물론 절에 모셔진 불상까지 닥닥 긁어갔다. 철로 된 이곳 홍대항 첨사의 ‘선정비’가 무사할 리가 없었다. 결국 ‘법성포노인회’에서 나서 홍대항 첨사의 ‘선정비’ 대신 반 토막 나 땅에 묻혀있던 ‘충파비’를 공출하기로 타협했다. 두 동강 난 ‘충파비’는 이렇게 고을사람들의 정성에 보은하고 일제가 강제로 징발해 가 버렸다.
황학천 이장이 지극 정성 돌본 선정비
이렇게 ‘충파비’를 대신해 남아 있던 이 철비는 1960년대에 이르러, 마을 이장(황학천)이 원래의 위치에서 10여 메타 위 경사진 암벽에 보호각을 만들고 정성스레 옮겨 관리하였다. 2017년에 이르러 이 지역에 소방도로가 개설되었다. 이에 따라 이 철비는 도로변에 임시 보존되었다가 ‘법성진 독진승격 230주년’인 2019년에 ‘법성문화진흥원’에서 주관하여 지금의 자리로 옮겼고, 2020년 4월에 ‘법성포 역사·문화 탐방길’을 조성하면서 주변 환경을 정비하고 새롭게 단장하였다. 한편, 일본인들이 1925년에 옮겨 다릿돌로 쓴 유석규(柳錫圭) 첨사 선정비는 2005년에 수습하여 농장마을 이종길의 집에서 보존하다가 2019년 5월에 이곳 인근에 임시로 이설하였다가 이 역시 2020년 4월에 ‘법성포 역사·문화 탐방길’을 조성하면서 원래 있었던 비각거리 제자리로 옮겼다.
*골목길을 나와 철비를 구경하고 우측으로 도로따라 진행.
*진행길 우측으로 법성500주년 기념비.
*법성포 진성마을 표지석.
*골목길 벽화와 한몸이 되어.....
*진행길에서 좌측 소화전앞에서 좌측으로 진행.
*진행길은 앞에 보이는 법성1교를 건너 직진.
*법성1교를 건너 영광 수산물 유통센터 건물앞 도로따라 직진 해안가 까지 직진.
8도로따라 해안가 도착 여기서 좌측 도로따라 진행.
*해안가 도로따라 직진 법성버스 정류장까지 직진.
*39코스 종점 법성버스 정류장 도착.
*서해랑길 39코스도 여기서 마무리 합니다.
이렇게 우리 부부는 한코스를 무사히 완주 기쁨을 같이 합니다.
*출발.도착 차량 주행거리 =울산~정유재란 열부순절지=349km
*누적 주행거리 =12,676km
*1차 통행료 = 19,500원
*누적 통행료 = 583,600원
*39코스 거리 =591 + 16.3km = 607.3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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