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여행

북인도 여행 4일차

문수산 아래 2017. 6. 7. 21:58

*4일차:2017년 05월 02일 화요일

 코스 :아그라~카주주라호(열차이동 2/40분 소요)

*매일 높은 기온으로 모두들 고생을 하고 있어요.

 35~40도를 오르 내리는 날씨로 한낮에는 야외 활동이 힘드네요.



*아그라에서 기차로 카주라호 이동을 위해 아침을 먹고 잔시역으로 이동

 잔시역 도착.

*아그라시의 잔시 기차역 광장의 모습.

*아침이라 그런지 조용한 역앞의 모습.

*인도 기차역은 우리의 60년대의 모습이랄까.아직도 짐꾼이 있고 노숙자

 구걸을 하는 어린이 모두가 너무 연약한 모습이다.

*먹을것을 주니까 그래도 동생을 생각하고 떠돌이 개도 같이 먹어요.

*기차역은 온통 쓰레기로 몸살을 알고 있네요.환경이 너무 어렵네요.

*카주라호행 기차를 기다리면서 ...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

*아그라출발 2/30분을 달려 카주라호역에 도착 인도에서는 최고의 열차가

 우리나라 70년대 열차와 비슷.최고속도 130km라 네요.

*카주라호의 동쪽사원군을 보기 위해 이동중 거리의 모습.

위치 인도 중부 마디아프라데시 주
인구26,000명 (2013 추계)
면적59.8㎢
대륙 아시아
국가 인도
참고 유네스코 세계유산 (1986년)

요약 인도 중부 마디아프라데시 주 차타르푸르 행정구에 있는 유서 깊은 도시.
Khajrāho라고도 씀.




                                             

카주라호(Khajraho), Kandariya temple

분델칸드 지역에 왕국을 세운 칸델라라지푸트족의 왕들이 시바 신과 비슈누 신, 자이나교의 대사제들에게 봉헌한 85개의 유명한 카주라호 사원들 가운데 지금까지 20개가 남아 있다. 이 사원들은 몇 개를 제외하고는 모두 사암으로 지어졌으며, 건축 연대는 950~1050년경으로 추정된다.

사원들의 내부와 외부를 장식한 훌륭한 조각들은 모두 성적인 내용을 주제로 다루었다. 이들 가운데 돌출 현관과 작은 탑들이 모여 35m 높이의 뾰족탑을 이루고 있는 캉다리아마하데바(1000경) 시바 신전이 가장 유명하다.

카주라호는 오늘날의 분델칸드 지역에 있었던 제자카북티 왕국의 수도였으며, 따라서 이곳에서 발견된 비문들은 귀중한 역사자료로 이용되고 있다. 카주라호라는 이름은 이 지역에서 많이 나는 카주르(대추야자)에서 유래되었다.


*카주라호(영어: Khajuraho, 힌디어: खजुराहो)는 인도 마디아프라데시 주에 위치한 마을로, 뉴델리에서 남동쪽으로 62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중세 힌두교자이나교 사원들이 들어서 있으며 성적인 내용을 묘사한 조각이 특징이다. 1986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유산으로 선정되었다.

*카주라호시내의 모습 우리의 시골5일장과 비숫한 모습 각종 야채로 풍성함

 이 아직도 1차산업 농업이 주를 이루고 있네요.

*인도의 대표적인 교통수단 삼륜차로 택시 영업을 하고 있어요.

*우리가 타고가는 관광버스의 운전석 칸막이가 되어 있어요.외부온도가 35도

 이상으로 더운데 차안은 냉방으로 시원하지만 운전석은 엔진이 앞에 있는 관

 계로 찜통으로 운전자의 어려움이 연신 수건으로 땀을 닦고 있어요.그러고

 운전보조원도 한명있네요.

*야채는 풍성함을 볼수 있네요.


*앞에 보이는 사원이 파르바티사원


 

파르바티(산스크리트어: पार्वती, Pārvatī, 타밀어: பார்வதி, 칸나다어: ಪಾರ್ವತಿ, 텔루구어: పార్వతి, 말라얄람어: പാര്‍വതി Parvathy)는 데비(Devi), 즉 힌두교의 여신들 중 하나이다. 파르바티는 힌두교트리무르티(삼주신 · 三主神)의 배우자인 트리데비를 이루는 세 여신들 중 하나이다.

힌두교에서, 파르바티는 최고여신(最高女神)인 마하데비(Mahadevi)의 부드러운 측면인 것으로 간주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괴자 또는 변형시키는 자라고 불리는 시바의 부인이며 샥티 그 자체인 것으로 여겨진다. 파르바티는 때때로 지고한 신성한 어머니(Divine Mother)라고 여겨져서 모든 다른 여신들은 파르바티의 화신 혹은 현현이라고 말해지기도 한다.

파르바티는 명목상으로는 파괴 · 회춘 · 변형의 신인 시바의 두 번째 배우자이다. 그러나 파르바티는 시바의 첫 번째 배우자인 사티(Satī)가 재화신 또는 윤회한 것이기 때문에 사티와 파르바티는 사실상 동일한 신이라고 할 수 있다. 파르바티는 힌두교의 남신들 중 가네샤(Ganesha)와 스칸다(Skanda)의 어머니이다. 파르바티가 비슈누의 여동생 또는 누나인 것으로 믿는 힌두교 단체들 또는 그룹들도 있다. 또한 파르바티는 히말라야(雪山)의 딸이라고도 여겨지는데, 이 때문에 설산의 처녀[1] 또는 설산신녀(雪山神女)라고 불리기도 한다. 또한 사하나(Sahana)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순수하다는 뜻으로 힌디어의 파비트라(Pavitra)에 해당한다.

시바와 함께 있을 때는 파르바티는 두 팔을 가진 모습으로 표현된다. 반면, 혼자 있을 때는 네 개 혹은 여덟 개의 팔을 가졌으며 호랑이나 사자를 타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대체로 파르바티는 인자하고 온화한 여신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파르바티는 카트야이이니(Kathyayini) · 마하가우리(Mahagauri) · 카마라트미카(Kamalatmika) · 부바네스바리(Bhuvaneshwari) · 라리타(Lalita) 등의 여신들이 지닌 인자하고 온화한 속성 뿐만 아니라 두르가(Durga) · 칼리(Kali) · 시탈라 데비(Shitala Devi) · 타라(Tara) · 찬디(Chandi) · 마하비드야들(Mahavidyas) 등의 여신들이 지닌 무시무시한 분노의 속성도 함께 지닌 여신이다.



*요약 힌두 신 시바의 아내.


여신 샥티의 자비로운 측면이며 우마 여신과 동일시되기도 한다. 그녀의 혼인에 관한 전설에 따르면 그녀는 극도의 고행을 한 후 비로소 시바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고 한다. 이들 부부는 두 아들을 두었는데, 코끼리 머리를 한 가네샤와 6개의 머리를 지닌 스칸다이다. 조각품에서 파르바티는 시바와 함께 등장하는데, 시바를 수행하는 인물로, 또는 그가 기적적인 위업을 행하는 것을 바라보거나 산에 있는 왕궁인 카이라사에서 시바와 놀이에 몰두해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녀는 언제나 성숙하고 아름다운 여인으로 묘사된다. 시바 신을 숭배하는 종파의 경전 가운데는 파르바티와 시바 사이의 대화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탄트라 계통의 경전들이 다수 전해지고 있다.


*사원입구에 있는 오래된 보리수 나무.

*잠깐 보리수 나무를 배경으로...




락슈미 사원과 바하라 사원

락슈미 사원은 비슈누의 나애인 락슈미를 모셔 놓은 사원이고
바라하 사원은 비슈누의 세번째 화신인 멧돼지를 모셔 놓은 사원이다.

연꽃과 대지로 상징되는 비슈누는 행운과 번영을 가져다 주는 신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런 이유로 힌두교의 여신중에서 가장 인기가 있다 한다.

바라하는 멧돼지의 산스크리트어 표기로 
악마 히란약샤(Hiranyaksha)가 대지(땅)를 바다 밑으로 끌어내리자
비슈누가 멧돼지로 변신하여 1000 동안 싸워 히란약샤를 죽이고 대지를 다시 끌어 올렸다고 한다.



*비슈와나트 사원.

 시바 신을 모신 사원과 서부 사원군의 오른쪽에 락슈미나 사원의 북쪽에 자

 리 잡고 있다.동쪽 끝으로 시바 신이 타고 다닌다는 난디 사원이 ,서쪽으로

 시바 신의 배우자인 파르바티 사원이.바로 건너편 남쪽 비슈누를 모신 락슈

 나마 사원이 동쪽으로 비슈누의 화신인 바하라 사원과 배우자를 모신 락슈미

 사원 둔 것과 대칭적인 구도로 건설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시바 신의 배우자를 모신 파르바티 사원은 비슈와나트 사원의 서쪽에 있다.

 원래는 지성소와 현관을 갖추고 있었는데 지금 현재는 사카라와 성소를 가진

 사원만 남아 있다. 10세기 후반(950~1000)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

*파르바트 사원을 배경으로.

*서부 사원군 내부의 잘 꾸며진 정원의 모습 .





락슈마나 사원

락시미나, 바라하 사원 맞은편에는 
비슈누 사원을 모신 락슈마나 사원이 있다.

락슈마나 사원은 기단 가운데 중앙사원이 있고 
동서남북 네 귀퉁위로 작은 사원을 세워 놓은 구조이다.






*인도 여행중 카주라호에 가는 이유가 미투나를 보기 위해서라고들 하죠.

 예술적인 관점에서 우리는 바라 보지만 그때 그 시절에 과연 이런 표현이

 가능 했다는 것이 이해 하기가...

 

*정말 섬세하고 정교하게 조각이....

*언제 까지나 이자리에 있어 주기를....

*인도이 어머니 간디여사도 이사원 건물을 없애야 한다고 말한적이 있다네요

*지금은 5000명의 시골마을이 사원군의 개발로 생활의 활로를 찾고 있다네요

*잘정비된 사원군의 모습.

*우리 부부도 사원을 배경으로...

*날씨만 시원하다면 꼼꼼이 보고 싶은 곳이네요.

*아름다운 정원의 모습.

*기념으로 한컷.

*자세가 영......

*정말 아름다운 힌두교 사원.

*사원을 배경으로.

*서부사원군을 배경으로,

*

인도 카주라호 사원을 장식하는 〈미투나상〉도 난교의 흔적에 해당한다. 미투나는 남녀의 성적 교합을 소재로 한 조각을 의미하는데, 카주라호 지역에 있는 수십 개의 사원 둘레에 빽빽하게 새겨져 있다. 흥미로운 것은 조각 대부분이 다양한 성적 유희 장면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보통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일대일 성교만이 아니다. 세 사람 이상이 한데 엉켜서 성의 환희에 빠진 조각도 있고 여러 쌍이 동시에 성교하는 모습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심지어 말과 성교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사원 안에 남근의 상징이 모셔져 있기도 하다. 미투나상에 대해 마하트마 간디가 “모두 부숴버리고 싶다.”고 했을 정도로 노골적 난교 장면이 가득하다.

               

섹스를 통해 해탈에 이를 수 있다고 설명하는 탄트리즘의 영향을 짐작할 수 있다. 성생활은 천고 불변 조화의 법칙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남녀의 성적 화합은 인간이 추구하는 행복의 본질을 이루며, 따라서 성인(聖人)이나 성직자는 성교 기술을 적극 계몽하는 역할을 한다. 《카마수트라》는 이를 집약한 힌두교 경전 중 하나다. 이 경전의 반 가까이 되는 분량을 육체관계를 비롯하여 정신적, 감정적 결합에 이르는 사랑과 남녀 간의 완전한 결합에 관한 설명이 차지하고 있다. 성적 만족은 원초적 욕망을 충족시켜주며, 원활한 성생활이 이루어져야 정신적 수양은 물론 사회적 역

할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특히 성은 원초적이어서 아무런 준비가 필요 없기에 더욱 중요하다. 섹스는 식자나 무식자나,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모두에게 통용될 수 있으므로 모든 인간의 해탈 가능성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성적 자극과 육체적 욕망을 숨김없이 만끽하고 벌거벗는

 것을 즐겼던 원시사회의 난교 흔적이 종교를 통해 오랫동안 유지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유사》에 담긴 신라 헌강왕 때 처용이 지었다는 향가인 〈처용가〉 내용을 원시 난교의 흔적으로 해석하는 견해가 있다.


*한낮의 여인상.

*무더운 날씨로 사원 구경도 몹시 힘든여정.

*비슈와나트 사원.

*서부 사원군의 최대의 걸작 비슈와나트 사원과 난다상.

*비슈와나트 사원과 난다상을 배경으로...

*서부사원군을 구경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 중...


*다음으로 간 곳은 동쪽 사원인 자이나교 사원이다. 자이나교에 대해서는 전혀 들은 바가 없는 생소한 종교였지만, 이미 불교와 같은 시기 또는 좀 앞 선 시기에 생긴 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종교라고 한다. 작지만 강한 강소기업 같은 곳이라고나 할까? 
  

자이나교는 불교와 마찬가지로 브라만교에서 발생한 출가주의() 종교이다. 불교의 부처처럼, 득도한 사람을 지나(Jina:)라 부르고, 그 가르침이라 하여 지나교 또는 자이나교라는 호칭이 생겼다. 자이나교는 교조()의 출신과 인간형성, 지리적·문화사적 배경, 교단 성립의 경위도 불교와 유사한 점이 많다. 인도에서 하나의 종교로 성립된 이후 불교·힌두교와 더불어 커다란 영향을 미쳐왔으므로, 오늘날은 종종 힌두교에 포함되는 경우도 있지만, 인도의 전통적 문화와 그 유형 무형의 유산에 관해서 자이나교를 무시하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불교의 싯다르타의 비슷한 시대에 마하비라 불타가 있었다. 그의 본명은 바르다르마나이며, 마하비라란 말은 위대한 영웅이란 뜻으로, 그가 곳 자이나교의 창시자이다. 자이나교도들은 아힘사(비폭력)의 열렬한 신봉자여서 모든 생물에 대한 살생을 엄격히 배격하고 있다. 


  
재미있는(이상한) 것은 자이나교의 남자들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나체로 생활하는 반면, 여자들은 흰 옷으로 온몸을 가리고 산다. 거참... 반대였으면 좋았겠는데...ㅎㅎ
  
나체라고 해서 음란한 종교가 아니라, 이들은 철저한 금욕생활을 해서 남자의 그곳이 발기되면 안 된다고 한다. 그리되면 수양이 덜 되었다고 처벌을 받는다나? 그들은 하루에 두끼만 소식을 하고, 수행자들은 맨발로 수백 키로미터나 되는 거리도 걸어다닌다. 또한 경제적 욕심이 없기 때문에 여유가 있으면, 사람들에게 기부를 하며 사는 착한 사람들이라 한다. 
  
그래서 동시대에 만들어진 사원의 모습은 힌두교 사원과 비슷하나, 자이나교 사원엔 에로틱한 조각이 없다. 그들이 모시는 신들이 악을 벌하고 착하게 살자는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그 한쪽에 나체의 모습인 부처도 있다. 이걸 보면 불교의 사상도 이후에 자이나교에 흡수되어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인도의 불교는 힌두교뿐만 아니라 자이나교 속에도 살아 숨쉬고 있었다.




*카주라호의 동부사원군은 자이나교 사원이고 실제로 교인들이 기도를 하고 있었다.
자이나교는 고행을 주 교리로 삼아 옷을 입지않고 벗은채로 기도를 한다고 한다.
실제로 자이나교의 신들은 모두 나신이었다.
기도하는 교인들은 오슬 입고 있었지만 발은 맨발이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도 맨발로 사원내부를 둘러보았다. 사원 바닥이 돌로 되어있어 발이 많이 시려웠다.



*

[인도 카쥬라호] 동쪽사원 자이나교 인도방랑기 / 지구별여행기

2013.10.07. 14:37

복사 http://blog.naver.com/0003231/50180768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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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의 3일 째 아침,

먼저 카쥬라호의 동쪽사원군으로 향했다.

 

익히 들어 알고있엇던 카쥬라호 서쪽의 에로틱사원 덕분에 동쪽사원에는 무지했는데..

마침 가이드아저씨가 자이나교 신자라서 엄청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동쪽 사원군에는 무소유와 작은 미물이라도 살생하지 않는다는 자이나교 사원이  많이 모여있다.

자이나교 사원으로 입장하기 위해서는 일단 신발은 물론 양말까지 벗어야 한다.

우리가 들른 사원은 산띠나르 사원(8hanti Nath Temple) 으로, 이 사원의 경우 자이나교 재단에 의해서 보존되고 있긴 하나, 현재도 사원으로 이용하고 있어 관리에도 철저하다.

이곳의 신상들을 살펴보면 부처님 상과 비슷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특이한 점은 가슴의 다이아몬드 문양과 모두 나체라는 것이다.

현재도 자이나교의 높은 승려들은 옷도 걸치지 않고 머리도 기르지 않는다고 한다. 

 

사실 자이나교는 크게 두 종파로 나뉜다고 하는데 한쪽은 최소한 옷은 입을 필요가 있다고해서 흰옷만 입는 백의파(vetmbara)와. 다른 한쪽은 공기만으로 옷을 입는다고 하여 공의파(Digambara)라고 한다. 이 곳의 사원은 후자에 속했다. (그래서 우리도 양말까지 벗어야했나... 나체 아닌 것에 감사를...)

 









 

마침 식사시간이었던 자이나교 사원 안

음식 자체도 굉장히 소박했고 많은 신자들이 소식하고 있었다 ..











 

화려하지 않지만 정갈하고 깔끔한 내부 건축양식



 

사원 뒤뜰로 나오면 다른 여러가지 사원들을 볼 수 있다.

 







 

자이나교 신상 (위에 설명한 것과 같이 나체임)





 

 

자이나교에 대해서 좀 더 상세히 설명하자면,
자이나교는 비정통 브라만교에서 발생한 출가주의 종교이다. 불전에서 니간타(Nigantha:尼乾陀)라고 전하는 종교를, 마하비라(Mahvra)가 재정비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최고의 완성자를 지나(Jina)라 부르고, 그 가르침이라 하여 지나교 또는 자이나교라는 호칭이 생겼다.

인도에서 하나의 종교로 성립된 이후 불교·힌두교와 더불어 커다란 영향을 미쳐왔으므로, 인도의 전통적 문화와 그 유형 무형의 유산에 관해서 자이나교를 무시하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전승에 의하면, 1세기 말경 공의파(空衣派)와 백의파(白衣派)로 분열되고, 다시 여러 지파가 생겨 오늘에 이르고 있다.

원시 경전에서는 비교적 상세한 교의가 정립되어 있으나, 그 이후로는 다채로운 발전을 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후세에 와서 인식론이나 논리학은 불교의 영향이 현저한데, 오랫동안 산일되어 있던 불교의 작품들이 최근 자이나교의 승원에서 많이 발견되고 있다.

현재 교도 수는 인도 전역에 걸쳐 180만 정도밖에 되지 않으나 상호부조적인 성격이 강하고 상인이나 금융업자가 태반을 차지하고 있어 경제적 영향력 또한 막강하다.

그 실천생활상의 특색으로서 승려를 통하여 살생하지 않는다는 의식(ahins)이 엄격하게지켜지고 있다. 교의로는 정신과 물질의 이원론을 주창한다. 즉 생명(jiva)과 비생명(ajiva)으로 이루어져 있고, 비생명은 다시 공(空:운동의 원리)·비공(非空:정지의 원리)·물질재료·허공·시간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본다.

 




*자이나교는 나체수행을 하며 생명존중이 기본이여서 밭갈아 엎을때 벌레가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농사도 짓지 않고 대부분 상공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단다.

*사원내부 관람시 현금이 필요 하다네요.

*건물의 형태는 서부사원군과 비슷하네요.

*자이아교 사원 구경을 마무리 하면서...


*오늘의 일정을 여기서 마무리 합니다.

 아침 아그라에서 기차로 카주라호 이동 서부사원군 관람 자이나교 방문으로 일정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