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 여행 3일째
*이탈리아 피렌체
로마에서 북서쪽으로 약230km 떨어져 있는 이 시는 공화국,토스카나 공작령
의 수도,이탈리아의 수도(1865~71)등 다양한 지위를 누리며 긴 역사를 이어
왔다.B.C 1세기경 로마의 군사 식민지에서 비롯된 곳으로 14~16세기에는
예술을 비롯하여 상업,금융,학문 등의 분야에서 높은 위치를 점했다.
피렌체는 기원전 80년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가 아르노 강가에 자신의
병사들을 위한 정착지를 세울 때"두강 사이에 있는 마을"이란 뜻으로"플로렌
티아"로바뀌었다.그러나 술라의 퇴역병들은 곧 도시를 방기하여 이 때의 식민지 건설은 실패했고,기원전 59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새로 퇴역병을 이주
시켜 건설한 것이 현재 피렌체의 실제적인 시작이다.이후 피렌체는 4세기초
주교좌가 되었고 로마 제국 멸망과 10세기를 거쳤지만 그다지 중요하지는
않았던 도시였다.
하나 11세기부터 상업과 모직물 공업이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국력이 발전,
몰락한 항구 도시 피사를 내륙 도시인 자신들의 외항으로 접수하며 이탈리
아의경제 문화 중심지가 되었다.1152년 도시 국가인 피렌체 공화국이 수립
되었고 1252년에는 7세기 이래 유럽 최초의 금화 피오리노 도로 fiorino dor
o(플로린 금화라고도 부른다)를 발행하기 시작하였다.
13세기에는 교황과 신성 로마제국 황제중 누구 편을 들 것인가를 두고 구엘
프 (교황파) 와 기벨린(황제파) 양 집단이 사실상의 내전을 벌였다.이 때문에
본래 피렌체등 도시국가들의 콤무네(Commune,지방 자치)에서 점차 한 가
문에서 지도자가"시뇨리아(Signoria)라는 칭호를 달고 지배하는 구도로 가게
되었다.르네상스 시대에 여러 유력 가문이 정쟁을 벌이다 1434년부터 메디
치가가 완전이 정계를 장악하기 시작하였다.15세기 메디치 가문의 지배 시기
는 사실상 피렌체의 최전성기로 메디치 가의 강력한 후원책 덕에 무수한 학
자와 예술인이 발굴되었고 메디치가가 자랑하는 정예군 검은 군단등의 강력
한 군사력 또한 위용을 뽐냈다.더구나 이 시기는 피렌체 뿐 아니라 인근의
밀라노,나폴리,베네치아 등 북이탈리아 전체가 흑사병을 견뎌낸 이후의 견제
적 호황과 각지에서 몰려든 인재들의 역량에 힘입어 눈부신 발전상을 구가한
황금기였다.그러나 북쪽의 프랑스와 오스트리아가 내부를 추스러고 강대국
으로 변모하면서 사정이 달라진다.과거에는 피렌체를 포함해 각 도시국가별
로 제각각 방위에 어려움이 없을 만큼 유럽 본토의 상황이 혼란스러웠으나
그 양상이 두 강대국 체제로 정리되면서 불똥은 사이에 낀 이탈리아로 옯겨
붙었다.초기에는 그래도 양국에 적당히 옮겨 붙으며 실리를 취할수 있었으나
16세기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인 카를5세가 오스티리아,독일,스페인까지 아우
르는 유럽 최대 패자로 부상하면서 힘의 균형이 완전이 기울어 진다.
이에 당황한 메디치 가문은 카를5세를 견제 하고자 프랑스 편에 붙었으나
양측이 전면적으로 격돌한 파비아 전투에서 프랑스에 증원해준 검은 군단이
카를5세에게 캐박살당하는 굴욕을 당한다.그리고 프랑스를 꺽은 카를5세는
로마까지 침공하여 관광보내 이탈리아에서의 적대 세력을 완전히 찍어 눌러
눌렀고,즉시 피렌체는 메디치 가문을 쫓아내고 공화정을 복구시킨다.이후 피
렌체는 카트린 드 메디치를 프랑스 왕자(앙리2세)에게 정략적으로 시집 보낸
보람도 없이 상공업마저 독일 경제권에 빼앗겨 몰락 쇠퇴하고 만다.그러나
메디치 가문은 계속 피렌체 공작령의 주인으로 남았고 오히려 주변지역들을
흡수하여 1569년 토스카나 대공국을 세우기도 했다.1737년 메디치 가문이
끝내 단절되자 피렌체를 비롯한 토스카나 지방은 오스트리아의 속령이 되었
다.이러다가 19세기 중반 프랑스의 개입을 통해 합스부르크의 지배에서 벗어
났고,이탈리아 통일 과정에서 1865년 잠시 이탈리아의 수도의 지위를 로마
에 내준 후 현재에 이른다.2차 세계대전 후기,북이탈리아에서 영국군과 싸우
던 독일군은 피렌체에서 퇴각하면서 모든 다리를 끊으려 했었지만 히틀러가
베키오 다리 만큼은 건들지 말라고 지령을 내리기도 했다.또한 포격을 거의
받지 않은 도시라 다행스럽게도 많은 문화 유적들이 성한 채 남을 수 있었다
현재 인구는 36만여 명으로 건축가 브루넬레스키가 건설한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의 거대한 돔을 가진 두오모와 우피치 미술관 등 이탈리아 르
네상스의 본 고장으로 알려져 있는 관광 도시다.또한 세리에A 소속 축구팀인
ACF 피오렌티나가 이 곳을 연고로 삼고 있다.또한,북부 이탈리아 답게 많은
럭셔리 브렌드 하우스의 본사가 자리하고 있다.토즈,구찌,살바토레 페리가모
등의 브렌드가 이 도시에서 시작한 브렌드이다.르네상스 시대의 건축물이 잘
보존되어 도시 전체가 면품과 느낌이 날 정도이다.
*베키오 다리
1345년에 건설된 베키오 다리는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다.원래 이 자
리에는 로마 시대에 지어진 나무 다리가 있었는데,홍수로 휩쓸려가자 새로
건설한 것이다.다리의 설계는 지오토의제자인 타데오가다가 맡았으며,아르
노강의 가장 좁은 곳에 세워졌다.원래 이 다리 위의 상점에는 푸줏간 등이
많았어 늘 냄새가 고약했는데,가까이 궁전이 있었기 때문에 페르디난도 1세
는 궁전 주변에 어울릴만한 보석상들을 이 다리의 상점에 들어서게 하면서
기존에 있던 상점들은 철거했다.다리 한가운데 있는 흉상은 피렌체에서 가
장 유명한 금 세공인인 벤베누토 첼리니이다.이 다리에서 바라보는 아르노강
의 풍경이 아름다운 데다가,세기의 연인인 단테와 베아트리체가 만난 곳이기
때문에 더욱 낭만적인 장소로 유명하다.그래서 이 다리와 주변에는 자물쇠가
많이 채워져 있다.사랑의 징표인 자물쇠를 열쇠로 채우고,열쇠를강에 던져
버리는 연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바라본 피렌체 시가지의 모습
미켈란젤로언덕은 1871년 미켈란젤로 탄생 400주년 기념으로 조성했다합니
다.
*언덕에서 피렌체 시가지를 배경으로.
*본인도 흔적을 남겨요
*미켈란젤로 언덕의 모습
*아르노강을 배경으로 펼쳐진 피렌체의 모습
*미켈란젤로 광장의 조각품 앞에서
*여기도 흔적을 남기고 가요.
*미켈란젤로의 작품 다비드 조각상 앞에서
*언덕 광장에 세워진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청동상'(복제품이라 더군요)
*둘이서 한마음으로 이번여행을 만끽해요.
*시인 단테의 생가로 가는길의 골목길
*이탈리아 대표시인 단테의 집
단테(1265~1391)는 과거 교황파와 황제파가 싸우던 13세기 교황파의 정치
싸움에 휘말려 피렌체에서 추방당해 라벤나로 쫓겨났다.
단테는 르네상스 시대의 문예 부흥의 선구자로 불릴뿐만 아니라 현대 이탈리
아의 기초를 세운 사람이다.또한 그의 명작인 <신곡> 은 후일 많은 예술가들
에게 영감을 주었고 신곡에서 묘사한 지옥의 세계를 우리는 시스티나 예배당
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에서 찾아볼 수 있다.그는 상당한 귀족
집안 출신으로 베아트리체에 대한 끝없은 사랑의 시를 지었다.
*시인 단테의 흉상
*피렌체 두오모 성당
유럽에서 4번째로 큰 성당(성 베드로 성당,밀라노의두오모,퀠른 대성당)이다
캄파날레(종탑)는 1334년 지오토가 설계한 것으로 유명하다.높이85m로 돔
보다 6m가 낮다.흰색,연두색,분홍색등의 토스카나 대리석을 사용하여 만들
어 웅장하면서도 화려하다.
지오토가 죽은 지 22년이 지난 1395년 완공되었다.브루넬레스키가 로마의 판테온을 보고 모방하여 설게한 것이다.브루넬레스키의 돔은 1463년 완공
되었다.돔내부의 "최후의 심판"은 바사리의 작품이지만 추카피에 의해 완
성되었다.
*피렌체 두오모 성당의 웅장함
*두오모 성당을 배경으로...
*예술에 문외인인 우리가 보아도 감탄사가 절로 나오네요.
*우리 부부의 기념사진 한컷 남겨요
*길거리의 퍼머먼스 배경으로 한컷
*1유로를 주고 가까이에서 한컷 했어요
*코치모 데 메디치의 동상
*시뇨리아 광장
수세기 동안 피렌체의 정치.사회적 중심지였으며,현재는 케페 테라스가
있는 휴게장소이다.
광장 부근 베키오 궁전에 있는 종류의 종은 시민들을 공공집회에 불러모으는
데 사용하였다.광장에는 피렌체를 일으킨 코치모 데 메디치의 동상이 있고,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동상<다비드> 의 모조품과 메두사의 목을 벤 페르세우
스의 청동상인 <첼리니의 페르세우스>,잠볼로나의 <사빈 여인의 강간> 등
르네상스 시대의 걸작 모조품들이 있다.광장 중앙에는 한때 피렌체를 지배
했던 수도승 사보니롤라의 처형지임을 알리는 화강암이 서 있다.
*미켈란제로의 다비드상 복제품
*베키오 궁전
"옛날 건물,혹은 오래된 건물"이라는 뜻이다.베키오 궁전 앞이 시뇨리아 광
장이다.1294년에 지어졌고 나중에 부온탈렌티와 바자리에 의해 확장 건설되
었다.처음 만들때는 요새로 만들어졌지만 1540년 메디치 가문이 궁전에 들
어와 10년 정도 이 곳에 머물다가 피티 궁전으로 이사를 갔다.이때 사람들이
건물을 누오보,옛 건물을 베키오라고 부르게 되었다.이 건물은 정원이 유명
하며,500이의 방(Salone Cinquecento)2층에 있는 시뇨리아의 방(Cappela
della Signoria),우디엔자의 방(Saladell'Udienza)에 많은 미술품들이 보관
되어 있다.
*베키오 궁전을 배경으로...
*거리의 마차도 있어요
*시뇨리아 광장의 청동 거북이상
*포세이돈 과 물의 요정이 함께 모인 아름다운 분수
물의 도시 베니스로 이동 4시간 버스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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