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여행

지중해 3개국 여행기 첫날(모로코.스페인.포르투갈)

문수산 아래 2017. 3. 7. 22:34

*일  정 : 2017년 02월03일~02월14일(10박12일)

*여  행 : 패키지 여행(하나투어 25명)

*코  스 : 모로코(카사블랑카~라바트~탕헤르).스페인(그라나다~론다~세비

            아).포르투갈(리스본~까보다로끼~오비두스~파티마).스페인(살라

            망카~마드리드~똘레도~세고비아~바르셀로나)

*회사의 공장개선 공사로 45일간의 장기휴가를 이용해 회사 동료3명의 부부

 동반으로 그동안 한번 가보고 싶어하던 지중해연안의 국가를 이번기회에 다

 녀 오기로 하고 우리는 구정연휴의 이어서 2월02일 울산에서 출발 인천공항

 2월03일0시50분 카타르 도하를 경유해 모로코 카사불랑카로 향한다.

 18시간의 장거리 비행에 우리는 많이 힘들어 하면서도 여행은 언제나 미지의

 세계를 탐험한다는 생각으로 이번에도 마음을 다잡아 본다.

 그러고 이번 여행팀에 아주 특별한 분들과 함께할수 있어어 더욱 기억에 남

 은 여행이 였다고 생각한다.

 한시대를 풍미했던 여배우 유지인씨와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할수 있어어 더

 욱 기억에 남은 여행 이였던것 같다.

 

*인천공항 출발 18시간 비행 후 카사블랑카 모하메드 5세공항에 내렸다.

 날씨는 우리나라 초가을날씨 정도로 약간은 바람이 불어 쌀쌀함이 느껴진다

 정오에 도착 곧 바로 오후의 여행일정에 들어 간다.

 지중에 연안의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조금은 세게 불어오는것 같다.

 (첫날의 일정:아름다운 대서양을 바라보는 해안가 구경~핫산2세 모스크~비

 들기 광장)

 

*인천공항 출발10시간에 비행끝에 카타르의 도하에서 환성을 위해 잠시 대기

 

*도하 공항의 모습

 

*우리가 모로코 카사블랑카행 출국 게이터 46번 (카타르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은 협력관계라 마일리지 적립도 가능하다네요 참조)

 

*도하 출발8시간 비행끝에 모하메드5세 공항도착 더디어 아프리카의 땅 모로

 코 제일의 도시 카사블랑카 도착.

 

 모로코(모로코 왕국, Kingdom of Morocco 다른 표기 언어 Morocco )

 

 

시대 현대
위치 아프리카 북서단
인구 3332만 2699명(2015년 현재)
수도 라바트
성격 국가
유형 지명/국가
면적 44만 6550㎢
언어 아랍어, 베르베르어, 프랑스어
정부/의회형태 입헌군주제, 양원제
종교 이슬람교, 기독교, 유태교

분야

 

 

정치·법제/외교

 

 

 

*차창밖의 모로코 풍경

 

 

정식 명칭은 모로코왕국(Kingdom of Morocco)이다. 국토 북서단의 해안선 길이가 1835㎞에 달하며, 면적은 44만 6550㎢, 인구는 3332만 2699명(2015년 현재)이다. 수도는 라바트(Rabat)이며, 행정구역은 9개 도로 이루어져 있다. 아랍족이 인구의 65%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원주민인 베르베르족이 35%이고 나머지는 흑인·유럽인·유태인 등이다.

종교는 수니파 이슬람교가 국교이며 기독교·유태교도 믿는다. 공용어는 아랍어이나 베르베르어·프랑스어도 통용된다.

인구의 57.3%가 농업에 종사하며, 주요 생산물은 밀·보리·올리브유 등이다. 인광석·석탄·철 등 지하자원이 풍부하며 세계 제1의 인광석 수출국이다. 2015년 현재 국민총생산은 1020억 달러이며, 1인당 국민소득은 3,045달러이다.

모로코의 정체는 국왕 중심의 입헌군주제로서, 의회는 상원(270석) 및 하원(325석) 의 양원제이며, 주요 정당으로는 헌정연합(UC), 독립국민연합(RNI), 민주국민당(PND), 인민사화주의연합(USFP), 인민운동(MP), 이스티크랄당(PI) 등이 있다.

 

*모로코의 역사

모로코는 8세기에 최초의 회교왕조를 건설한 이후 12세기에 이르러 알제리·리비아·스페인 남부지역에까지 세력을 확장한 적이 있었으나, 19세기부터 프랑스 등 유럽열강의 침략을 받아 1912년에는 프랑스의 보호령이 되었다가 1956년 3월 2일 독립하였다.

1961년 2월 국왕 하산 2세(Hassan Ⅱ)가 즉위하여 1962년 12월 입헌군주국을 선포하였다. 1972년 3월 헌법을 새로이 제정하여 시행한 이후 국왕이 삼권을 장악하고 있다. 그러나 사하라전쟁의 장기화와 열세로 인하여 야당의 불만이 누적된 데다가 1981년 5월과 1984년 1월에는 식료품가격 폭등과 노사분규 등이 겹쳐 대규모 유혈폭동을 겪기도 하였다.

1975년 11월 스페인이 서부사하라에서 철수하자 모로코는 서부사하라를 점령하였고, 그 뒤에 서부사하라 독립단체인 폴리사리오와 전쟁을 계속하였다.

아프리카단결기구(OAU)와 국제연합은 1983년 모로코와 폴리사리오간의 직접교섭과 서부사하라에서의 휴전 및 국민투표실시를 촉구하는 결의를 채택했으나, 모로코는 이에 응하지 않고 서부사하라문제의 군사적 해결에 집착함으로써 외교적 고립을 초래하기도 하였다.

한편, 폴리사리오를 승인하는 국가 수도 점차 증가하여 1984년 11월 아프리카단결기구 제20차 정상회의에는 폴리사리오가 정식으로 참가하게 되었는데, 이에 항의하여 모로코는 이 기구로부터 탈퇴하였다.

모로코는 폴리사리오를 군사적으로 지원하는 알제리와 1976년 외교관계를 단절하였고, 1979년 3월에 이디오피아와, 4월에는 이집트와도 단교하였으나, 1989년 2월 알제리·튀니지·리비아·모리타니와 아랍-아그레브연합(AMU)을 결성하고, 1991년 9월 폴리사리오와의 휴전협정을 체결하는 등 분쟁종식에 주력하고 있다.

모로코는 1956년 유엔에, 1961년에 비동맹회의에 가입하였으며, 대외적으로 우경중립의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마그레브연방의 건설, 아랍 및 아프리카의 단결을 외교정책의 기조로 삼고 있다.

 

*한국과의 관계

우리나라와 모로코간의 외교관계는 1962년 7월 6일에 수립되었고, 같은 해 9월 주 모로코 한국 대사관이 개설되었다. 모로코는 1988년 12월 주한 자국 대사관을 설치하였다.

모로코는 대외적으로 비동맹 중립정책을 표방함에도 불구하고 유엔 등 국제무대에서 한국을 지지하여 왔다. 1983년 3월 뉴델리 비동맹정상회의에서는 회의 최종선언문에 한국 관계 부분을 삽입하려는 친북한 국가들의 기도에 반대하였다.

1983년 4월 헬싱키에서 개최된 국제의원연맹(IPU) 이사회에서도 차기 국제의원연맹총회의 서울 개최를 방해하려는 친북한 국가들의 공작에 반대하고 한국을 지지하였다.

한편, 양국 간에는 1976년 어업 협정(2월)과 무역 협정(5월)을 체결한 이래, 1976년 5월에는 협정, 1977년 9월에는 문화과학협력 협정, 1990년 5월에는 체육 협정, 1993년 8월에는 사증면제 협정 등을 체결하였고, 최근에도 2001년에는 투자보장 협정, 2003년 4월에는 항공 협정, 2006년 6월에는 관광 협정을 체결한 바 있다.

2015년 현재 우리나라의 대 모로코 수출액은 3억 4900만 달러로 주종목은 자동차·가전제품·휴대전화·정밀화학원료·인조섬유 등이며, 수입액은 1억 5400만 달러로 주종목은 나프타·동·반도체·의류·인광석 등이다.

양국 간 경제기술협력은 어업분야에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어서 6개의 우리나라 원양어업회사가 합작투자형태로 모로코에 진출해 있고, 우리나라 선원이 모로코에 송출되어 있다. 또한, 우리나라는 모로코 어업연수생을 받아들이고, 수산전문가 파견지도 등을 통하여 어업기술협력을 제공해왔으며, 1979년 1월에는 양국친선협회가, 1982년 6월에는 의원친선협회가 각각 창설되었다.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에는 48명의 모로코 선수단이 참가하였으며, 2007년 현재 KOTRA를 비롯하여 대우전자·삼성전자·LG전자 등이 모로코에 진출해 있고, 태권도 사범 1명과 300명의 한국민 체류자가 있다.

한편 북한은 모로코와의 수교를 위하여 1961년 이후 여러 차례 사절단을 파견하고 1966∼1967년 사이에 모로코산 인광석을 수입하기도 하였다. 1975년에는 카사블랑카 국제박람회에 참가하여 무역협정을 체결하였고, 1989년 2월 13일 공식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카사블랑카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을 감상할수 있는 언덕에서 바라본 대서

 양 바다가의 모습

 

 

위치 모로코 대서양 연안
인구 3,359,818명 (2014 추계)
면적 387㎢
대륙 아프리카
국가

모로코          

요약 1468년 파괴된 토착민 베르베르족의 마을에 1515년 포르투갈인들이 새 도시를 건설하고 ‘하얀 집’이라는 뜻의 카사블랑카로 명명했다.
1755년 대지진으로 파괴되었다가 18세기말 재건되었다.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 상인들이 정착했으며, 프랑스인이 다른 유럽인보다 많아지면서 메종블랑슈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1907년 프랑스가 이곳을 점령했으며, 1912~56년 모로코 제1의 항구가 되면서 급속히 성장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이었던 1943년에는 이곳에서 연합군의 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카사블랑카는 모로코 대외무역의 대부분을 취급한다. 모로코의 은행거래와 공업생산의 절반 이상이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카사블랑카는 모로코 제일의 휴양지이기도 하다.

지도


하산 2세 사원

이 도시의 기원은 알려져 있지 않다. 12세기에 지금의 카사블랑카 자리에 안파로 불린 베르베르족의 마을이 있었다. 이 마을이 그리스도교국의 배들을 습격하여 약탈하는 해적의 기지가 되자 1468년 포르투갈인들이 이 마을을 파괴했다. 1515년 포르투갈인들이 이곳으로 돌아와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고 카사블랑카('하얀 집'이라는 뜻)로 명명했다.

이 도시는 1755년 대지진으로 파괴된 뒤 버려졌지만, 알라위의 술탄 시디 무하마드 이븐 아브드 알라가 18세기말에 도시를 재건했다. 이 도시를 카사블랑카로 부른 스페인의 상인들과 그밖의 유럽 상인들이 이곳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얼마 후 프랑스인이 다른 유럽인 정착자들보다 수적으로 능가하면서 메종블랑슈(프랑스어로 '하얀 집'이라는 뜻)라는 이름이 카사블랑카 못지 않게 널리 알려졌다.

카사블랑카는 1907년 프랑스에 의해 점령되었으며, 1912~56년 프랑스의 보호령이었을 때 모로코 제1의 항구가 되었다. 그때부터 이 도시는 급속도로 성장했다. 제2차 세계대전중이던 1943년에는 이곳에서 영국과 미국의 정상회담이 개최되었으며, 1961년 모로코의 국왕 무하마드 5세가 주재한 카사블랑카 회의에서는 아프리카 국가들의 카사블랑카 그룹이 창설되었다.

인공항구인 카사블랑카는 방파제에 의해 파도로부터 보호되며, 모로코 대외무역의 대부분을 취급한다. 유럽 선박들의 기항지이기도 한 이 항구로 통하는 한살리 대로(大路)에는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상점들이 늘어서 있다. 내륙에는 본래의 아랍인 도시인 구시가지가 있다. 지금도 여러 곳에 누벽이 둘려 있는 아랍인 구역에는 좁은 골목길에 흰 도료를 칠한 벽돌집과 석조 가옥이 미로처럼 얽혀 있다. 그 성벽 밖으로 반원형을 그리고 있는 시가지가 프랑스인들이 세운 도시구역이다.

무하마드 5세 광장에서부터 방사상으로 뻗어 있는 가로들과 항만 양쪽의 해안에 이르는 순환도로들이 서로 교차되어 있다. 아랍인 구역 입구 근처에 있는 무하마드 5세 광장과 국제연합(UN) 광장은 이 도시의 상업 중심지와 행정중심지들로서 은행과 호텔 및 현대적인 대형 상점들이 있다.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아랍 연맹(Arab League) 공원이 내려다보이는 흰색의 사크레쾨르 대성당이 있다.

공원 서쪽의 해안에는 정원과 별장들이 늘어서 있는 안파와 같은 주택지역이 있다. 가난한 이슬람교도들은 시 외곽의 판자촌에서 살고 있다. 버스가 주된 대중 교통수단이며, 다른 주요도시들과 도로로 연결되어 있다. 북동쪽으로 알제리와 튀니지로 이어지는 철도도 있다. 남서쪽에 있는 카사블랑카-안파 공항과 시의 동쪽에 있는 카사블랑카-누아쇠르 공항에서는 국제항공편이 제공된다.

카사블랑카는 특히 항구로 성장하면서 급속한 상업 발전을 이루어 모로코의 경제수도라는 위치를 굳혔다. 모로코의 은행거래와 공업생산의 절반 이상이 카사블랑카에서 이루어진다. 카사블랑카의 공산품으로는 섬유제품·전자제품·가죽세공품·통조림 등이 있고, 맥주와 증류주, 청량음료도 생산된다. 대륙붕이 상당히 넓어 좋은 어장을 이루는 해안 수역에서는 어업이 중요한 산업이다. 혀가자미·노랑촉수·가자미류·바다장어·게·새우 등이 주요어획물이다.

카사블랑카에는 각급의 교육을 담당하는 아랍인 학교와 프랑스인 학교가 있다. 또한 괴테 인스티튜트·시립미술대학·시립도서관·선사시대연구협회·어업 연구소·원예협회 등 다양한 문화기관과 공공시설들이 있다. 모로코 제일의 휴양 중심지로서 수많은 해수욕장과 공원, 아름다운 해안 산책로가 있다.

지도
 
 
 

 

 

 

*현재의 모로코 통치자 모하메드6세의 모습

 

 

무함마드 6세(1963년 8월 21일 ~ , 아랍어: محمد السادس)는 1999년 7월 23일부터 모로코를 다스리고 있는 모로코의 현 국왕이다. 그는 1999년 7월 23일 그의 아버지의 죽음으로 왕위를 계승했다.

교육

그는 태어남과 동시에 왕위 계승자로 지목되었다.[1] 그의 아버지인 하산 2세는 그가 어릴 때부터 종교와 정치에 대하여 교육시키고 싶어했다. 그는 4살부터 왕궁의 코란 학교를 다니며 종교적이며 전통적인 교육을 받았다.

초, 중등 교육을 왕립 학교에서 마치고 1985년 라바트에 있는 모하메드5세대학교에서 법학 분야 문학사 학위를 받았다. 그의 연구 논문은 "아랍-아프리카 연합과 국제 관계에서 모로코의 전략"이었다. 그는 또한 왕립 대학과 라바트 대학에 자주 나타났다. 같은 해인 1985년, 그는 범아랍경기대회 의장과 모로코 군 중령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1987년 그의 첫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1988년 7월에는 공공법 분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8년 11월, 그는 브뤼셀에서 유럽 위원회의 의장이었던 자크 들로르와 함께 연수 받았다.

그는 1993년 10월 29일, 프랑스 니스 부근의 니스-소피아 앙티폴리스(Nice-Sophia Antipolis) 대학교에서 ‘EEC와 마그레브(Maghreb) 간 관계’라는 논문으로 심사위원단의 극찬과 함께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무함마드 6세는 1994년 7월 12일 소장으로 진급했고, 같은 해에 문화고등위원회 위원장에 취임했으며 1999년까지 모로코 군 총사령관으로 복무했다. 1999년 7월 23일, 그의 아버지가 서거하며 왕위를 이어받아 일주일 뒤 모로코의 국왕으로 등극했다.

그는 2000년 6월 22일 조지 워싱턴 대학에서 모로코의 민주주의 발전에 이바지한 공으로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사회적 개혁과 자유화[편집]

무함마드 6세가 왕좌에 오른 직후, 그는 텔레비전으로 그의 나라에 연설하며 가난과 부패를 말소하고 일자리를 만들며 모로코인권을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그의 정책을 반대하였고, 그의 정책 중 몇몇은 근본주의자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그는 또한 '무다와나'라 불리는, 여성에게 더 많은 권한을 주는 새로운 가족 제도를 만들었다. 그 법은 2004년 2월 발효되었다.

2010년 12월, 위키리크스는 왕 자신이 고도의 부패 혐의가 있다는 외교 전문을 공개했다..[2]

무함마드 6세는 하산 2세 치하에서 자행되었던 인권 유린을 조사하는 위원회인 '공정화해위원회(IER)'[3]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 위원회는 무함마드가 왕좌에 오른 1999년까지의 인권 침해에 대한 보고를 할 수 없었다. 이러한 방침은 민주주의를 향한 진전이라는 점에서 많은 이들에게 환영받았지만, 인권 유린의 가해자를 밝힐 수 없기에 비판 받았다. 인권단체들에 따르면, 학대가 여전히 모로코에 존재한다. 2011년 모로코의 시위는 부패, 정치인들을 향한 일반적인 불만, 경제위기로 자극받은 더 나은 삶을 향한 열망으로 시작되었다. 왕은 시위대에게 대답으로 전진된 개혁을 약속했다.

2011년 3월 9일의 연설에서 왕은 사법부가 왕으로부터 독립되며 의회가 탄핵을 비롯한 견제의 능력을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왕은 개헌위원회를 구성하여 6월까지 신헌법의 초안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4]

7월 1일, 유권자들은 왕의 다음과 같은 정치 개혁안을 승인했다.[5]

  • 베르베르어를 아랍어와 더불어 공식어로 지정한다.
  • 국가는 소수부족의 문화를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한다.
  • 왕은 다수당으로부터 총리를 지명할 의무를 지닌다. 이전에는 어느 정당도 결정적인 우위를 점하지 않은 경우, 기술관료를 총리로 지명할 수 있었다.
  • 왕은 더 이상 신성하진 않으나 그의 온전함은 불가침의 영역이다.
  • 대사, 공기업 최고경영자, 지방단체장 등의 고위 공무원은 국왕이 주재하는 국무회의로 임명되던 과거와 다르게 총리가 임명에 개입한다.
  • 총리는 정부의 수반이며 국회해산권을 갖는다.
  • 왕을 대신하여 총리가 국가 정책을 결정하는 각료회의를 주재한다.
  • 의회는 왕이 갖고 있던 사면권을 갖는다.
  • 사법부는 행정부와 입법부로부터 독립된다. 왕이 독립을 보장한다.
  •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시민, 사회적 권리를 갖는다. 이전의 경우, 1996년 헌법으로 부여된 정치적 평등만이 보장되었다.
  • 왕은 군 통수권을 비롯하여 외교권, 사법권, 총리 지명 및 탄핵권, 종교 관련 권한을 갖는다.
  • 모든 시민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지닌다.

 

 

*이번 여행을 같이한 회사동료 부부의 모습

 

*우리도 모로코 여행의 첫발 대서양 해변가에서..

 

*거친 대서양의 바다를 배경으로.....

 

*바람도 거세고 파도도 거세게 밀려오는 날이다.

 

*현국왕 모하메드6세의 가족사진

 

*다음 여행지로 모스크 핫산 메스키다 도착.10만명 수용의 광장의 모습

 

 

모로코의 항만도시 카사블랑카에 있는 이슬람 사원.

 

하산2세 사원카사블랑카의 상징으로 시내 어느 곳에서도 보이는 하산2세 사원은 세계 3 번째로 큰 사원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 및 메디나에 있는 모스크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큰 모스크이다. 핫산 2세(재위 1961~1999)가 국민의 성금을 모아 1987년부터 1993년까지 7년에 걸쳐 심혈을 기울여 완성하였는데, 2만 5000 명이 동시에 예배를 볼 수 있고, 카사블랑카 시내 어디서나 웅장한 모습이 보인다. 

대지 8,100㎡에 세워졌으며 200m 높이로 모스크 중 세계에서 가장 높다. 건물 지붕은 약 6분에 걸쳐 개폐되도록 되어 있다. 규모나 실내장식에서도 세계 최고의 모스크로 꼽히는데, 모로코 최고의 실내장식 조각 기술자 3,300명이 6만 7000㎡의 석고, 5만 3000㎡의 목재를 사용하여 1만㎡에 달하는 모로코 전통조각을 완성해 세기의 걸작을 만들어냈다.

 

 

 

 

*

1986년 모로코 왕 하산 2세는 카사블랑카에 새로운 사원을 짓도록 주문했다. 그는 1989년 자신의 60번째 생일에 완공될 수 있기를 원했지만, 수많은 일꾼들이 밤낮으로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1993년에 이르러서야 문을 열 수 있었다. 이 사원은 신의 왕좌가 물 위에 지어졌다고 하는 코란의 구절에서 시작되었다. 프랑스 건축가 미셀 펭소(1924~1999년)는 왕의 요구에 따라 일부만을 절벽에 기대어 세우고 대부분이 대서양으로 확장되어 바다 위에 떠 있는 사원을 만들어냈다. 하산 2세 사원의 거대한 복합 건축물은 9헥타르의 면적에 펼쳐져 있고, 그 안에는 이슬람 학교, 여러 개의 공중목욕탕, 모로코 역사박물관, 도서관, 그리고 주차장이 들어섰다. 성전은 1만여 명의 신도들을, 그리고 정원은 8만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이다.

사원 바닥의 일부는 유리로 만들어져, 신도들이 바다 위에 바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바닥의 난방, 자동문, 자동 슬라이딩 지붕 등 하이테크 기술이 동원되었으며 미나렛에서는 레이저가 메카를 향해 쏘여진다. 6천 명이 넘는 장인과 예술가들의 손으로 놀라운 모자이크와 칼리그래프, 대리석 바닥과 기둥, 회반죽 몰딩, 나무 조각 천장 등이 실내를 장식한다. 메카의 사원 이후로, 이것은 세상에서 두 번째로 큰 회교사원이 되었다. 높이가 20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미나렛 역시 세상에서 가장 높은 종교 건축물로 기록된다.

 

 

*이번에 처음으로 여행을 같이한 회사의 후배 부부.즐거운 여행.......

 

*우리 부부 핫산탑(210m) 배경으로 ....

 

*울산에서 올라간 6명의 우리팀.

 

*예배시간이 끝나 실내모습의 구경을 못해 조금은 아쉽지만 큰 규모에

 다시한번 놀라움을 뒤로하고 우리는 다음코스로 이동.

 

*석양을 뒤로하고 .....

 

그 유명한 카사 블랑카의 영화에 나오는 릭 카페

한때 폐쇄 되었지만

미국인이 다시 구입하여 재 오픈했다고 하네요

 

건물만 하나 달랑 있어서 조금은 실망스러운 릭카페

그러나 영화속의 멋진 주인공 잉그리드 버그만과 험프리 보가트가

불쑥 나올것 같습니다

 

 

 

 

*모로코의 최대 상업도시, 카사블랑카의 중심에 있고, 반원형 돔이 길잡이가 된다. 여기서부터 여러 도로가 시작되고, 주변에는 고급 호텔과 대형 토산물 상점이 즐비하다. 시내 관광이나 쇼핑의 기점이 되는 광장이다. 프랑스 영사관이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다.

 우리은 공사중이라 차창으로 구경 조금은 아쉬움을 가지고 왔어요.

 

                           *전통복장을 하고있는 분이 물장사라고 하네요.

                            모로코는 물이 석회질이라 대부분 싸서 먹어야 한다네요.

 

                          *비행여정으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첫날의 여정을 무사히 마치고 숙소로 이

                           동 호텔식 저녁을 먹고 내일을 위하여 방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