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여행

지중해 여행 4일째(스페인:그라나다.론다.세비아 관광) 02월 06일 월요일

문수산 아래 2017. 3. 7. 22:37

*여행4일차 그라나다에서 하루밤을 보내고 오전에 알함브라 궁전.론다 이동

 누에보 다리.스페인 최초의 투우장 관람.세비아로 이동 하는 코스가 오늘의

 여정.오늘도 우리는 씩씩하게 일정을 소화합시다요.  화이  팅!!!

 

 

*울산팀의 알함브라 궁전 출입구 앞에서 기념으로 한컷.

 

(알함브라 궁전)

 

많은 건축가들은 인류가 만든 가장 아름다운 예술 건축물로 동양의 타지마할과 서양의 알함브라 궁전을 꼽는다. 둘 다 이슬람 건축물이다. 알함브라의 매력과 역사적 의미는 무엇일까?

시에나 산의 햇살을 받은 그라나다는 무척이나 환상적이다. 일곱 개의 언덕 위에 세워진 이 도시는 세련된 문화와 물질적 풍요로움이 어우러진 에스파냐의 고도(古都)이다. 도시 한가운데를 다로 강이 동서로 가로지르고, 강 건너편 언덕은 알함브라 궁전이 차지하고 있다. 그라나다를 알함브라의 도시라고 말한들 어느 누구 하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인류 역사의 획기적인 전환점이 된 사건이 그라나다, 그것도 알함브라 궁전에서 벌어졌기 때문이다.

1469년 카스티야의 여왕 이사벨 1세와 아라곤 왕 페르난도 2세가 결혼하면서 두 왕국은 합쳐졌고, 이는 알함브라를 정복하려는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무지막지하게 밀고 들어오는 에스파냐 군대에 이베리아 반도에 있던 마지막 이슬람 세력이던 나스르 왕조는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1492년 새해 첫날 밤, 마지막 왕 보압딜은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받는 조건으로 궁전을 바치고 항복했다.

알함브라 궁전


알함브라 궁전은 그라나다 시내 어디에서나 보이는 언덕에 지어진 요새다. 언덕 사이에 난 계단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알카사바 정상에 다다른다. 알카사바는 알함브라 궁전에서도 가장 오래된 성채로, 30여 개의 망루가 설치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벨라 탑에 오르면 그라나다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건물들 사이로 보이는 마을은 무척이나 환상적이다. 새하얀 건물들이 아기자기하게 터를 잡고 있는 이곳이 바로 그라나다의 정신과 영혼을 담고 있는 이슬람 마을 알바이신이다.

이슬람 왕조가 멸망하고 새로운 주인을 맞이할 무렵, 에스파냐 병사들은 이곳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해 주겠다는 페르난도 5세의 약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닥치는 대로 약탈하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잔혹한 살육을 저질렀다. 이교도를 소탕하고 신성한 하느님의 땅을 세운다는 그들의 종교적 사명 앞에 한 문명이 무참히 짓밟혔다. 그렇다고 무슬림들이 순순히 무릎을 꿇은 것은 아니다. 이교도의 지배를 받느니 차라리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은 처참한 역사를 잊지 않고 후세에 전하기 위해 그들의 피를 곳곳에 뿌렸다. 그 피는 하얀 벽면을 붉게 물들였고, 아직도 군데군데 그 흔적이 남아 있다.

가톨릭교가 이 땅을 휩쓴 지 이미 오래지만 알함브라 궁전은 여느 아랍 궁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랍어로 ‘붉은빛’이라는 뜻의 알함브라는, 겉으로 보면 붉은빛이 도는 견고한 돌 조각을 쌓아 만든 밋밋하고 조악한 궁전에 지나지 않는다. 특별히 눈에 띄는 건축 양식이나 화려한 장식도 없다. 큰 기대를 하고 온 관광객이라면 살짝 실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궁전 안으로 들어가면 실망은 순식간에 환희로 바뀐다. 이슬람 건축의 특징인 ‘투박한 껍질 속에 숨은 화려한 알맹이’가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지기 때문이다.

궁전 안으로 들어서면 아라야네스 정원이 가장 먼저 맞이한다. 분수가 있는 전형적인 아랍식 실내 정원을 중심으로 천국에서의 휴식을 표현한 시원한 공간 구조, 아라베스크 무늬의 벽면 장식과 마치 보석을 박은 듯한 화려한 조각품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 준다.

‘사자의 정원’으로 발길을 옮기면 열두 개의 사자상이 떠받치는 분수가 중앙을 장식하고 있다. 둥그렇게 등을 맞대고 있는 사자의 입에서는 연신 물줄기가 품어져 나온다. 그렇게 흘러내린 물줄기는 홈을 따라 정원 구석구석까지 퍼져 나간다. 물이 부족한 곳에 사는 아랍 사람들은 물에 대한 애착이 무척이나 강했다. 황량한 사막에서 어쩌다 발견되는 오아시스는 그들에게 꿈이자 희망이었다. 그들은 오아시스에 대한 애착을 사자의 정원에 그대로 옮겨 담았다. 벽면마다 현란한 아라베스크식 서체로 신성한 《꾸란》의 글귀를 가득 새겨 그들의 꿈과 희망을 표현했다.

알함브라 궁전 안의 12사자상


알함브라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이사벨 여왕은 “내 생애보다 더 귀한 궁전에는 더 이상 손댈 게 없다.”며 그대로 보전하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이미 모스크를 헐어 버리고 그 자리에 성당을 지어 가톨릭의 상징적 승리를 충분히 새겨 두었다. 그러니 굳이 알함브라 궁전을 허물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 후 카를 5세가 르네상스풍으로 투우 경기장 같은 왕궁을 세운 것을 제외하면 알함브라는 원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카를 5세가 이 궁전을 싫어하거나 파괴하려 한 것은 아니다. 그 또한 알함브라 예찬론자였다. “알함브라를 잃은 자여, 불쌍하도다. 알함브라를 버리는 삶을 택하느니 차라리 알함브라를 내 무덤으로 삼을 테다.”라고 말할 정도로 그는 알함브라 궁전에 강한 애착을 보였고, 보압딜의 결정을 안타까워했다.

붉은 석양이 유난히 낮게 깔린 어느 날, 그라나다의 어느 무명 시인은 보압딜의 항복을 두고 목 놓아 울었다.

불운한 왕이여!
죽을 용기가 없어 그라나다를 떠나는 못난 왕이여!
남아 있는 인생이 무어 그리 대단할진대
그까짓 왕관 하나 벗어던지지 못하고
그라나다를 떠나 가느뇨.

이슬람 왕궁이 함락된 1492년, 이사벨 여왕의 후광을 입은 탐험가 콜럼버스(1451~1506)는 신대륙을 발견한다. 무적함대를 자랑하는 에스파냐의 전성시대가 막을 열었다. 한편 보압딜은 에스파냐에서 쫓겨나 지브롤터 해협을 지나 북아프리카로 건너왔다. 800년 전, 그의 선조가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하면서 의기양양하게 건넜던 바로 그 길을 거슬러 올라간 것이다. 모로코의 이슬람 도시 페스에 정착한 뒤 63세를 일기로 눈을 감을 때까지 보압딜은 꿈에도 알함브라를 잊을 수 없었다. 그의 초라한 페스 궁전이 알함브라를 닮아 있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한때는 이성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희생이 있을까 그때를 회상하면서...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

 

 

요약 색깔 때문에 아랍어로 '붉은색'을 뜻하는 이름이 붙은 듯하다. 그라나다 시 한가운데 솟은 고원에 위치하며 나스르 왕조의 후계자들이 1238~1358년에 걸쳐 건설했다. 1516~56년에 스페인의 카를 5세가 궁의 일부를 르네상스 양식으로 재건했고 이탈리아풍 궁전을 지엇으며 1821년 지진으로 많은 손실을 입었다. 1828년에 복원사업이 시작되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무어 왕조의 유물로 남은 가장 오래된 것은 알카사바라는 성곽으로 거대한 외벽과 탑, 방벽들만이 남아 있다. 알카사바 안쪽에 알람브라 궁전이 있고, 그 안쪽에 시종들이 살던 알람브라 알타가 있다.
이 궁전에서 으뜸가는 중정은 도금양중정과 사자중정이다. 13세기말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진 알람브라 외곽의 ‘건설자의 정원'이라는 별장이 유명하다.


알람브라 궁전(Alhambra)

아랍어 말 그대로 "붉다"라는 뜻을 지닌 궁전과 성곽의 복합단지다. 1238년부터 1358년 사이에 지어졌다.

알람브라라는 말은 아랍어로 '붉은색'을 뜻하는데, 햇볕에 말린 타피아(토담)의 색이나 외벽 쌓기에 쓰인 자잘한 자갈과 점토로 만든 벽돌의 색 때문에 이 이름이 붙은 듯하다.

그라나다 시 한가운데 솟은 고원에 세워진 이 궁전은 나스르 왕조를 창시한 이븐 알 아마르와 그 후계자들이 집권한 1238~1358년에 대부분 건설되었다. 궁전의 화려한 내부장식들은 유수프 1세(1354 죽음) 때 만들어졌다고 추정되는데, 1492년 무어인들이 축출된 뒤 대부분의 내부장식이 없어졌으며 가구들은 파괴되거나 철거되었다.

1516~56년에 스페인을 다스린 카를 5세(카를로스 1세)는 궁의 일부를 르네상스 양식으로 재건했고 일부는 허물어 1526년 페드로 데 마추카로 하여금 이탈리아풍 궁전으로 짓게 했다. 1812년 나폴레옹 군대 침략 때 탑 몇 개가 파괴되었고 1821년 지진으로 많은 손실을 입었다. 1828년에 복원사업이 시작되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무어 왕조 때 지어진 부분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알카사바, 즉 성곽인데, 지금은 거대한 외벽과 탑, 방벽들만이 남아 있다. 알카사바 안쪽에 알람브라 궁전이 있고, 그 안쪽에 알람브라 알타(상부 알람브라)가 있다. 알람브라 알타는 원래 관리와 시종들이 살던 곳으로 정부 소재지인 국왕도시의 일부였다.

이 궁전에서 으뜸가는 중정은 파티오 데 로스 아라야네스(Patio de los Arrayanes 도금양중정)와 파티오 데 로스 레오네스(Patio de los Leones:사자중정)이다. 파티오 데 로스 레오네스는 중정 가운데 힘과 용기의 상징인 12마리 흰 대리석 사자상으로 떠받친 설화석고 수반인 '사자분수'가 있기 때문에 그러한 이름이 붙었다.

알람브라 궁전에서 가장 중요한 방은 널찍한 접견실인 살라 데 로스 엠바하도레스(Sala de los Embajadores:외국사절실)와 널찍한 대접견실인 살라 데 로스 아벤세라헤스(Sala de los Abencerrages)이다. 이 방의 이름에 얽힌 전설에 따르면 그라나다의 마지막 왕 보아브딜이 아벤세라헤 일족의 우두머리들을 초대하여 이 방에서 연회를 열고 그들은 몰살시켰다고 한다. 그밖에 빼어나게 아름다운 종유장식이 있는 살라 데 라스 도스 에르마나스(Sala de las Dos Hermanas:두 자매방)가 유명하다.

알람브라 외곽에 있는 건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헤네랄리페(Generalife:'건설자의 정원'이라는 뜻의 Jannat al ⁽Arῑf에서 유래)이다. 이 별장은 13세기말에 지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고성을 배경으로 ....

 

*외부는 사각형,내부는 원형으로 지어졌으며,신기한 것은 원형으로 된 건물

 내부의 정중앙에서 소리를 지르면 어느 위치에서나 똑같은 소리로 들린다는

 것이다.카를로스 5세 궁전에 방문했다면 중앙에서 소리를 질러 보는것도...

 

*정말 아름다운을 간직한 소중한 유산입니다.

 

*좋은 곳에서 소중한 추억을 간직하고 갑니다.

 

*우리 모두 이표정 오래오래 간직하면서 살아가요.행복합니다.

 

알람브라(아랍어: الحمراء, 스페인어: Alhambra)는 아랍어 말 그대로 "붉다"라는 뜻을 지닌 궁전과 성곽의 복합단지다. 1238년부터 1358년 사이에 지어졌다. 스페인 남부의 그라나다 지역에서 머물던 아랍 군주의 저택이었던 곳으로 그라나다 시의 남동쪽 경계에 있다. 현재에는 이슬람 건축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르네상스식 건물이 카를로스 1세 때 추가되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한국어로는 알함브라 궁전이라고 쓰는 경우가 많지만 알함브라는 영문 식으로 그냥 읽는 경우이다. 아랍어가 스페인어로 굳어져서 쓰이고 있는 Alhambra라는 이름은 스페인어에서 h가 묵음이므로 "알람브라"라 읽는 것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한국어로 옮겼을 때 공식명칭은 알함브라 궁전이 아닌 알람브라 궁전이다.

 

전체 궁전은 해발 740m의 고원에 위치하는데 너비는 205m에 달한다. 서북서, 동남동의 방향으로 건물이 뻗어 있으며 전체 면적은 142,000 m²이다. 견고하게 쌓아진 벽이 있으며 주위에는 13개의 타워가 있다. 다로 강이 흘러가며 깊은 골짜기를 이루며 그라나다 지역을 양분한다. 아사비카 계곡이 있으며 주위에는 알람브라 공원이 남서 지역에 자리하고 있다.

 

*정원의 야생 오렌지가 주렁주렁 달렸네요.

 

무어인종과 스페인의 미술을 결합한 형태의 모습이 전체적으로 나타난다. 당시 아랍 계열 인종의 거주가 막바지에 치달을 무렵이었으므로 알람브라 궁전은 안달루시아 지방 미술의 절정기 하반부를 장식한다. 이슬람 왕국의 직접적인 영향권 밖에 있었으므로 예술가의 창작 배경이 더욱 자극될 수 있었던 점도 알람브라 궁전 내의 독특하면서도 왕궁의 위엄을 드높인 한 요소가 되었다. 우아한 기둥은 하늘을 향해 솟아 있으며 종유석이 솟아 있는 듯이 외부가 이뤄져있어 공기 중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이 가미된다. 웅장한 아랍 문화의 유적이 새겨져 있으며 수많은 왕이 이곳을 거쳤다. 1492년 기독교 세력이 재정복하면서 정복자들이 궁전을 개조하기 시작하였다. 흰 빛깔의 도료로 바뀐 것도 이때 이뤄진 일로서 도금과 회화 작업도 이 시기에 추가되었고 기존의 가구는 개보수되거나 혹은 없어졌다. 카를로스 1세(1516-1556)는 당대 르네상스 양식으로 궁전의 건축 양식을 수정하는 한편 겨울 궁전을 허물어버렸다. 펠리페 5세(1700–1746)는 주위 전각과 내부 방을 이탈리아 식으로 바꾸는 한편 무어 인의 양식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좀 더 완성도를 가미하였다.

수세기 동안 스페인의 지배 하에서 이슬람의 영향은 상당 부분 손상되었다. 1812년 프랑스의 세바스티앙 백작이 건물에 딸린 몇 개의 탑들을 철거하여 버렸다. 1821년 지진으로 더 많은 피해를 입기도 하였다. 복구는 1828년부터 이뤄져 1830년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페르난도 7세가 추진했던 이 계획은 이후 후대에 이르러서도 계속적으로 추진되었다.

 

 

 

*궁전을 배경으로...

 

*아라야네스 중정 배경이 어디서 많이 보던 배경이죠 인도의 타지마할 궁전의 축소판 같은데요 타지마할이 여기보다 늦게 건설되었니 여기를 참조하여

 

*나스리 궁전에서 가장 종요한 곳이 여기"메수아르의 방"이다.메수아르의 방

 은 왕의 집무실로 사용되었던 곳이며.화려한 내부 디자인도 눙에 띄지만,무

 엇보다 창밖으로 보이는 알바이신 지구의 모습이 일품이다.

 

*아라야네스 중정

 가로 7m,세로 35m의 직사각형 연뭇 양옆으로 잘 정돈된 조경이 굉장히 아름

 다운 곳이며 잔잔한 연못에 코마레스 탑이 비치는 반영샷은 일품이죠.

 

*소중한 추억 영원히.....

 

*정교하게 건립된 건물의 모습.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가 어렵죠 어떻해 그시대에 이런 건축물을 만들수 있었는지.

 

*건물 내부의 모습.

 

*창털의 조각상을 확대해 찍어 보니다.좋아 보이네요.

 

*궁전 내부에서 바라 본 지금의 그라나다 시가지

 

 

 

궁전은 수많은 음악 작곡에도 영향을 끼쳤다. 프란시스코 타레가의 기타곡인 레쿠에르도스 데 라 알람브라(스페인어: Recuerdos de la Alhambra)는 아주 유명한 곡이다. 클로드 드뷔시가 작곡한 라 푸에르타 델 비노(La Puerta del Vino)도 유명한 곡이다. 우리말로는 와인의 문이라는 뜻이다.

궁전은 집시 노래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곳으로 민속 음악이나 보통 음악 소재로도 자주 등장한다. 2006년 9월 캐나다의 가수이자 작곡자인 로리나 맥케니트가 궁전에서 라이브 공연을 가졌다.

 

 

무어 인 출신의 시인들은 궁전을 "에메랄드 속의 진주"라고 표현하였다. 건물의 반짝이는 광채와 고급스러운 배경 때문이었다. 여름에는 꽃과 잔디가 자라나며 대개 장미와 오렌지 나무 등 자민족이 좋아하는 작물을 많이 심었다. 그러나 1812년 웰링턴 공작이 영국산 느릅나무를 비롯한 다수의 종을 들여오게 되었다. 공원 주위에는 유럽산 지빠귓새인 나이팅게일이 노래하며 분수대가 많이 있다.

오랜 기간 동안 별다른 관심없이 많은 피해를 받았음에도 알람브라 궁전은 무어 예술의 극치를 가장 잘 표현하는 곳으로 남아 있다. 대부분의 건물은 폐쇄적인 건축을 지양하여 작은 전각도 중앙을 향해 드러나도록 하고 있다. 외부는 언덕의 굴곡을 없애어 평평하게 하도록 하였고 대신 내부에는 웅장함을 가미하기 위해 고도 차이를 이용하였다. 내부에는 대리석 기둥과 아치 형의 건물이 나타나기도 한다. 투명하게 드러나는 천정도 볼거리이다. 따라서 햇빛과 바람이 자유롭게 통하고 전체 공간을 밝고 우아하게 한다. 파란, 빨강, 금빛 노란색이 잘 어우러져 있어 시간과 빛의 노출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너무나 잘 정돈된 모든것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오랜 세월에 잘 간직된 소중한 문화유산 앞으로도 후세에 영원히 간직할수

 있으으면 합니다.

 

*파르탈 정원

 파르탈 정원은 과거 귀족들의 주택과 사원이 있던 곳으로,현재는 귀부인의

 탑만 남아있다.사막 생활을 하면서 물을 굉장히 중요시 여겼던 이슬람인들

 의 특징을 곳곳에서 볼수 있는 곳이다.

 

*이동 하면서 바라 본 알함브라 궁전 전경 어때요.오늘의 베스트 사진으로 선

 정 합니다.

 

*헤네랄리페 정원

 왕의 여름 별장으로 사용되었던 곳이다.왕은 여름에 이곳에서 산책을 하면서

 휴식을 취하곤 했다.수로 주변으로 물을 뿜어내는 분수들과 잘 정돈된 조경

 들이 어우려져 그림 같은 풍경을 연출하며,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전통 이

 슬람 정원으로 불리기도 한다.

 

 

*아세키아 정원은 길고 좁은 수로 양옆으로 십여개의 분수가 가느다란 물줄기를뿜어내고 있으며,물줄기가 수로로 떨어지면서 내는 소리가 매우 아름답

 다.

 

*여름에는 이길이 축복받은 길이 되겠죠.

 

*언제 다시 여기를 올수 있을끼가 구경 잘 하고 갑니다.

 

*차를 기다리면서....

 

*그라나다에서 론다로 향하면서 바라본 농촌 풍경 끝없이 펼쳐진 농경지.

 

*론다시 도착 시가지 구경

 

 요약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 말라가 주에 있는 도시. 지도


말라가 시 서쪽의 론다 산맥에 위치한다. 깊은 엘타호데론다 계곡이 도시가 자리잡은 두 구릉을 가르고 있는데 계곡으로 과디아로 강의 지류인 그란데 강이 흐른다. 다리가 계곡에 여러 개 가로질러 있으며 특히 1761년에 건설한 높이 90m의 아치형 구조물이 눈길을 끈다. 이곳은 원래 고대 이베리아인이 거주했던 장소이고 로마 시대에는 아키니포로 알려졌다.

론다(Ronda)

8~15세기에는 무어인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남아 있는 로마 시대 유적과 무어인 유적 가운데 로마식 극장과 전쟁 때 물 봉쇄를 막기 위해 무어인이 만든 도시에서 강에 이르는 지하 계단(1911 복원)이 있다. 1485년 5월 20일에 로마 가톨릭 군주들인 페르난도와 이사벨라가 정복하여 되찾았다. 포도와 곡물 등의 농산물 교역중심지이고, 밀가루·가죽·브랜디·옷·초콜릿을 생산한다. 인구 31,383(1981).

 

 

*여기가 론다시의 중심 캄피오 광장

 

 

말라가에서 북서쪽으로 113km 떨어져 있는 도시로 말라가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다. 세계적인 작가 헤밍웨이가 ‘사랑하는 사람과 로맨틱한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곳’이라 말했을 정도로 스페인에서도 전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다. 헤밍웨이가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이곳 론다에서 집필하였다고 한다.

안달루시아의 꽃이라고 일컫는 아름다운 마을 론다는 과달레빈강(Río Guadalevín) 타호 협곡(El Tajo Canyon) 위 해발 780m 고지대에 세워진 절벽 위의 도시이기도 하다. 론다 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스페인을 대표하는 경기 중 하나인 투우인데, 말을 타고 창으로 찌르던 전통 투우 방식에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빨간 천을 흔들어 소를 흥분시키는 방식의 투우를 창시한 곳이 론다이다. 예술가들이 사랑했던 낭만적인 협곡 도시 론다는 산책하듯 둘러보면 그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누에보 다리를 건너서 오른쪽에 있는 첫 번째 골목을 따라가면 캄피요 광장(Plaza del Campillo)이 나오고 광장 오른쪽 끝의 전망대까지 가면 누에보 다리와 협곡 위에 자리잡은 론다의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

 

 

*헤밍웨이가 여기서 많은 글을 남겼다네요.

 

*알라메다 타호 공원

 론다는 타호 협곡 위 해발 780m의 고지대에 세워진 절벽위의 도시인데 .

 헤밍웨이가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를 집필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협곱 주변에는 음식점과 숙박 시설들이 많이 있네요.

 

*저기 보이는 분지가 있는데 왜 여기 산꼭대기에 도시를 아마도 침락당하지

 않으려고 방어가 용의한 높은 곳에 도시를 건설한것 같은데요.

 

*마을 안에서는 잘 모르겠지만 외곽으로 나오면 정말 이곳이 절벽위의 도시

 실감할수 있습니다.

 

*다리 위에서 바라 본 계곡의 모습.

 론다의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다리를 기준으로 나눈다고 한다.

 

 

 

 

 

누에보 다리(스페인어: Puente Nuevo)는 스페인 론다에 있는 다리이다.

누에보 다리는 스페인 남부의 론다의 구시가지(La Ciudad)와 신시가지(Mercadillo)를 이어지고 있는 세 개의 다리 중 가장 나중에 만들어진 다리로, 과다레빈 강을 따라 형성된 120m 높이의 협곡을 가로지르고 있다.[1][2]

다리 건축은 1935년 펠리페V에 의해 처음 제안되었으며, 8개월만에 35m 높이의 아치형 다리로 만들어졌으나 무너져서 50여명의 사상자를 냈다.[3] 그로부터 몇 년 뒤인 1751년에 새로이 착공이 이루어져 1793년 다리 완공까지 42년의 기간이 소요되었다.[4][5] 건축가는 José Martin de Aldehuela이였고, 책임자는 Juan Antonio Díaz Machuca였다.[6] Juan Antonio Díaz Machuca는 다리 건축 시에 필요한 거대한 돌들을 들어올리기 위해서 획기적인 기계들을 고안해냈다.[7] 다리의 높이는 98m이며, 타호 협곡(El Tajo Gorge)으로부터 돌을 가져와 축조하였다.[8]

다리 중앙의 아치 모양 위에 위치한 방은 감옥부터 바까지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9] 1936년~39년에 일어난 스페인 내전 기간 중 양 측의 감옥 및 고문 장소로도 사용되었으며, 포로 중 몇몇은 창문에서 골짜기 바닥으로 던져져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는 주장이 있다.[10][11] 현재 이 방은 다리의 역사와 건축에 대한 전시장으로 사용되고 있다.[12]

 

 

*120m 높이의 타호 협곡 위에 세워진 론다의 구시가와 신시가를 이어 주는 다리로, 론다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랜드마크이다. 협곡 아래 과달레빈강이 흘러 옛날부터 두 지역의 소통의 어려움이 있었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건설한 3개의 다리 중 하나이다. 당시 아라곤 지역의 천재 건축가였던 마르틴 데 알데후엘라(Martín de Aldehuela)가 40여 년 동안 공을 들여 1793년 완성했는데, 3개의 다리 중 가장 늦게 완공이 되어 ‘누에보(새로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스페인 내전 당시에는 이곳에서 포로들을 떨어뜨려 죽였고, 다리 중간 아치에 있는 공간은 감옥으로 사용했었다는 슬픈 역사를 지닌 장소이기도 하지만 현재는 사진 촬영지로 전 세계 작가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누에보 다리를 배경으로 ....

 

*사진 잘 나왔어요.

 

*언덕위의 론다 여기서 보니 실감이 나네요.

 

*전망대의 모습.

 

*전망대를 배경으로 인증.

 

*론다 투우장 입구의 모습.

 

 

1785년에 완공된 투우장으로 세비야 투우장 다음으로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투우장 중 하나이다. 내부는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졌고, 최대 6,000명 정도의 인원이 입장할 수 있는 규모로 오직 투우만을 위해 지어진 최초의 투우장이기도 하다. 1984년에는 내부에 투우 박물관도 만들어졌다. 이곳 론다 투우장에서 투우의 창시장 프란시스코 로메로에 의해 붉은색 천(케이프)을 흔들어 소를 흥분시키는 투우가 시작됐고, 그의 손자였던 페드로 로메로는 투우사로 지내는 동안 약 6,000마리의 황소를 단 한 번의 부상도 없이 쓰러뜨렸던 스페인의 전설적인 투우사로 기록되고 있다. 지금도 가끔 투우 경기가 열리고, 경기가 없을 때는 경기장 투어와 박물관을 둘러볼 수 있다.

 

 

*투우장 입구의 초창기의 경기복.

 

 

*론다 투우장 입장료는 매우 비싸다. ㅋㅋㅋㅋㅋ
1인당 무려 7유로.
상당히 비싼데 내부 볼거리는 좀 아쉽다는 평가들이 많다.

 

*투우장 내부의 모습

 

 투우는 스페인에서도 동물학대와 생명존엄성 논란으로 시끄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우는 여전히 스페인을 대표하고 스페인의 상징이자,
스페인 사람들이 너무나 사랑하는 유희인게 확실하다

 

 

*투우장을 배경으로 흔적을 남겨요.

 


*뭐! 여행의 묘미는 사진과 먹거리 저녁의 술파티 뭐 있나요.

 

*우리도 빠지면 섭하지.

 

*2층에서 바라본 모습.

 

*투우장을 나오니 투우사 조형물이 있네요.

 

*론다를 떠나 세비아 도착 플라밍고 공연 대기중

 

 세비야 플라멩코

동의어 화려한 열정의 춤 다른 표기 언어 Sevilla Flamenco

 

플라멩코의 시작이 그라나다였다면, 플라멩코를 무대에 올려 돈을 받고 지금의 화려한 플라멩코를 만든 건 세비야이다. 과달퀴비르강을 통한 무역이 활발했을 때 집시들이 강변에서 플라멩코를 추고 있으면 지나던 무역 상인들이 돈을 던져 주던 것이 하나의 공연으로 장착된 것이다. 그라나다의 플라멩코보다 세비야의 플라멩코가 더 화려하다. 그라나다는 온전히 손과 박수로만 박자를 맞춘다면 세비야에서는 캐스터네츠가 등장하고 부채 같은 소품을 이용한다. 또 다른 차이점은 여성 무용수인 바일라오라의 화려한 옷으로, 세비야의 의상은 더 화려하고 드레스의 꼬리 자락이 더 길다. 세비야에서 플레멩코 공연을 본다면 산타 크루즈 지구의 로스 가요스와 엘 아레날 지구의 엘 아레날이 가장 유명하고, 수준 높은 공연을 볼 수 있다.

세비야 플라멩코(Sevilla Flamenco)

 

세비야 플라멩코(Sevilla Flamenco)

 

 

 

 

*플라멩코의 3대 요소

바일레(Baile) : 무용수. 남자 무용수는 바일라오르(Baílaor), 여자 무용수는 바일라오라(Baílaora)라고 부른다. 플라멩코는 젊은 무용수들보다 나이 든 무용수들이 경험을 바탕으로 더욱 대접을 받는 춤이기도 하다.

칸테(Cante) : 노래를 하는 가수. 남자 가수는 칸타오르(Cantaor), 여자 가수는 칸타오라(Cantaora)라고 불리는데, 대부분 남자가 노래하는 경우가 많다. 집시들의 애환과 한을 노래하던 것이 현재는 연애 이야기를 노래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토케(Toque) : 기타리스트. 플라멩코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는 기타 연주 없이 오로지 박수와 노래로만 춤을 췄었고, 200년 전부터 반주로 기타가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기타 연주가 없으면 플라멩코를 추기 어려울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플라멩코 공연장에서 토케의 독주 연주는 꼭 포함되는 프로그램 중 하나다.

 

 

 

*플라멩코 용어

팔마(Plama) : 플라멩코 고유의 박수치기를 ‘팔마’라고 부른다. 플라멩코 초기엔 기타 연주가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팔마’와 노래만으로 플라멩코를 표현해 냈다. 여러 사람이 무대에 함께 올라 추는 단체 춤은 쿠아드로(Cuadro)라 하는데 이때 팔마로 분위기를 띄워주기도 하는데 춤을 추는 무용수 외에도 팔마를 전문으로 하는 팔메로(Palmero)가 등장하기도 한다.

피토스(Pitos) : 손가락으로 내는 소리를 뜻하는데, 플라멩코의 전통 방식인 그라나다 플라멩코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표현 방식이다. 세비야에는 캐스터네츠(팔리요스, Palillos)가 등장하면서 손가락을 사용해서 소리를 내는 방식은 점차 사라졌다.

사파테아도(Zapateado) : 플라멩코를 출 때 신는 구두로 바닥을 내리치면서 나는 소리를 사파테아도라고 한다. 보통 탭 댄스와 같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탭 댄스와는 전혀 다른 동작으로, 구두의 코끝과 굽에 못을 박아서 구두로 무대 바닥을 치면 소리가 나는데 앞창을 쳐서 소리가 나는 것은 플란타(Planta), 앞코를 쳐서 소리가 나는 것을 푼타(Punta), 뒷굽을 쳐서 소리가 나는 것을 타콘(Tacon)이라 한다.

파레하(Pareja) : 남녀 커플이 나와 추는 플라멩코

사파토(Zapato) : 플라멩코를 출 때 신는 소리를 내는 구두

만톤(Mantón) : 바일라오라가 걸치는 숄. 사이즈에 따라 가장 큰 숄을 만톤이라고 하며 그 다음 작은 숄을 만티야(Mantilla), 가장 작은 사이즈의 숄을 만톤시요(Mantónsillo)로 구분한다. 바일라오라가 보여 주는 기술 중 하나로 숄 하나로 다양한 표현을 연출해 낸다.

바타 데 콜라(Bata de Cola) : 세비야 타블라오에서 볼 수 있는 바일라오라의 꼬리처럼 길게 늘어지는 치마를 부르는 말이다. 긴 치마꼬리를 발 기술을 이용해 돌리는 고난도 기술로 경력에 따라 치마꼬리의 길이가 차이가 난다.

세비야 플라멩코(Sevilla Flamenco)

 

세비야 플라멩코(Sevilla Flamenco)

 

 

 

*세비야 플라멩코 공연

로스 가요스(Los Gallos)

1966년에 문을 연 세비야에서 가장 오래된 타블라오로 산타 크루즈 지구에 자리하고 있다. 가장 전통적인 플라멩코를 감상할 수 있으며, 수준 높은 무용수와 칸타오르의 노래는 로스 가요스를 지금까지 세비야에서 가장 유명한 타블라오라는 명성을 유지하도록 하는 비결 중 하나다.

소재지 : Plaza de Santa Cruz, 11, 41004, Sevilla(전화: 0954-216-981)
개관 시간 : 매일 20:15~22:00, 22:30~24:15(1시간 45분 공연)
가격 : €35(음료 1잔 포함)

 

 

 

 

*상당한 체력이 아니면 이 춤을 출수 없을 것 같은데 그래서 그런지 무용수들의 몸집이 통통한 글래머

*4일차 일정을 세비아에서 플라멩고 공연을 보면서 마무리 합니다.

 공연이 늦게 끝나 숙소에 도착이 10시가 넘어가네요.

 오늘도 수고 했어요 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