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둘레길

지리산 둘레길 2코스(운봉~인월)9.9km

문수산 아래 2021. 11. 30. 22:25

*언    제 = 2021년 11월 24일 . 맑음 . 목요일 . 3~10도

*누 구 와 = 찰떡 부부

*코    스 = 운봉읍 – 서림공원(0.2km) – 북천마을(0.8km) – 신기마을(1.1km) – 비전마을(2km) – 군화동(0.8km) – 흥                 부골자연휴양림 (2.9km) – 월평마을(1.5km) – 구인월교(0.2km) – 인월안내센터(0.4km)

*어제 1코스 무사히 끝내고 저녁은 건강한 밥상 식당에서 산채 불고기로 해결을 하고 숙박할곳을 찾다가

 운봉읍 서림공원 주차장에 캠핑카 주차 주위에 화장실 수도도 있고 했어 여기서 1박을 하고 아침은 간단히

 해결 08시 정각에 2코스 출발을 합니다.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동천리와 남원시 인월면 인월리를 잇는 9.9km의 지리산길. 운봉-인월 구간은 오른쪽으로 바래봉, 고리봉을 잇는 지리산 서북 능선을 조망하고 왼쪽으로는 고남산, 수정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을 바라보며 운봉고원을 걷는 길로 옛 통영별로 길과 제방길로 구성된다. 9.9km 전 구간이 제방길과 임도로 되어 있어 길 폭이 충분히 넓어 여럿이 함께 걷기에 좋은 평지길이고, 황산대첩비, 국악의성지, 송흥록 생가 등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요소들을 골고루 즐기면서 걷기에 좋은 곳이다.

 

*2코스 출발지 서림공원에서 1박을 하고 아침08시 인월로 향하여 출발합니다.

*어제 1코스 완주를하고 오늘은 2코스 9.9km 짧은거리 인월까지 2시간30분 예정으로 우리부부는 출발합니다.

*서림공원에 있는 서림정의 모습.

*어제 저녁에 촬영한 서림공원에 있는 비석들의 모습 내용 파악은 못했음.

서천리 선두숲으로 불리었다. 서림공원에 들어서면 석장승이 눈에 먼저 띈다. 운봉전체를 지키는 방어대장군과 진서대장군. 운봉사람들이 각별히 아끼는 석장승들이다.

 

남원 서천리 당산

南原西川里堂山벅수
문화재 지정성격유형소재지분야
중요민속문화재 제20호
장승, 석장승
유적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서천리 348-1
종교·철학/민간신앙

요약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에 있는 한 쌍의 장승. 석장승. 국가민속문화재.

내용

중요민속문화재 제20호. 2기. 마을사람들은 흔히 벅수라고 부르며, 당산나무와 또한 지금은 없어진 솟대(짐대)와 함께 마을의 수호신으로 받들어왔다.

마을의 서쪽 길가 양쪽에 마주보고 서 있는데, 하나에는 방어대장군(防禦大將軍), 또 다른 하나에는 진서대장군(鎭西大將軍)이라는 글이 음각되어 있다. 그 위치와 진서(鎭西)·방어(防禦)라 표기된 것으로 보아 마을의 허전한 방향을 막아준다는 풍수신앙에 바탕해서 세워진 것이라 볼 수 있다. 재질은 양쪽 모두 화강석이다.

방어대장군은 높이 220㎝, 너비 50㎝이고, 벙거지를 쓰고 귀가 없으며 수염 한 가닥이 있는 남신상이다. 진서대장군은 방어대장군의 남쪽 맞은편에 서 있으며, 높이 195㎝, 너비 58㎝로 벙거지를 쓴, 그리고 귀가 달린 여신상이다.

이 한 쌍의 돌장승은 만든 이가 다른 듯 벙거지의 제작형식이나 표현수법 등이 다르다. 진서대장군의 경우 실제 인간의 모형에 가깝게 귀가 달리고 얼굴표정이 사실적이며 수수한 노인상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이 장승은 머리부분과 몸통부분이 떨어진 것을 접합시켰는데, 구전(口傳)에 의하면 이 부부장승이 어느 날 부부싸움을 하다가 여신상인 진서대장군의 목이 부러졌다고 한다.

마을에서는 동짓달 초에 당산나무에 제사를 지낸 다음, 이들 돌장승에게도 간단한 제의(祭儀)를 행한다. 돌장승은 마을 수호의 부수적인 신이지만 당산나무·솟대·장승이 복합되어 마을을 수호한다는 민간신앙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제의를 행하는 것이다.

남원서천리당산

위치문화재 지정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서천리
[남원 서천리 당산] 중요민속문화재 제20호(1970.05.20 지정)

당산은 민간신앙으로 신이 있다고 믿고 섬기는 대상물이다. 서천리당산은 당산나무, 돌장승, 솟대로 구성되어 있으며 함께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셔지고 있다. 남녀 한 쌍인 돌장승은 운봉초등학교 서쪽 500여m 지점에 마주보고 서 있는 부부장승이며, 이 주변에 당산나무가 있다. 장승과 솟대를 함께 세워 제사를 지내는 것은 전라도 지방에 남아 있는 당산 신앙의 한 형태로 원래는 이곳에도 솟대를 함께 세웠던 것으로 보여지지만 마을 중앙에 있었던 솟대의 모습은 사라지고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다. 부부장승은 마을의 허한 곳을 방어하고 서쪽을 진압한다는 의미에서 각각 ‘방어대장군’, ‘진서대장군’이라 새겨져 있다. 방어대장군은 남장승으로 머리에 모자를 쓰고 튀어나온 둥근 눈에 주먹코와 아래로 쭉 뻗은 송곳니가 있다. 가슴에 수염이 있으며, 귀가 없는 것이 특이하다.

진서대장군은 여장승으로 머리에는 벙거지 모양의 돌모자가 씌워져 있고 둥근 눈에 주먹코와 귀가 있다. 다른 여장승에서는 찾아보기 드물게 속눈썹이 깊이 새겨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석장승들은 만든 이가 다른 듯 벙거지의 제작형식이나 표현기법이 서로 다르다. 구전에 따르면 장승이 부부싸움을 하다 진서대장군의 목이 부러져 마을 사람들이 붙였다고 한다. 현재에도 마을의 안녕과 복을 빌기 위해 음력 정월 초하룻날 당산나무에 제사를 지낸 다음에 석장승에게도 간단한 제를 행한다. 석장승은 마을 수호의 부수적인 신이지 주신(主神)은 아니다. 시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옛 모습이 잘 간직되어 있고 민간신앙을 보여주는 한 형태로서 가치가 있다.

*석양에 물들어 더욱 운치가있는 지리산 서북능선과 운봉읍의 저녁노을 멋져요.

*2코스 스템프함 인증샷.

*서림공원을 뒤로하고 우리는 하천변을 따라 진행합니다.

*지리산 둘레길 2코스 안내도.

*지리산 둘레길 시작과 종점을 알려주는 안내판과길안내 벅수도 같이 하고 있어요.

*일직선 하천 둑방길의 모습 도열해 있는 벚꽃나무와 함께 우리는 걷기에 속도를 내어 봅니다.

*협동교도 지나고 계속 둑방길 진행.

*눌눌라라 우리는 아침의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우측으로 지리산 서북능선과 오른쪽으로 백두대간 수정봉을

 바라보면서 여유있는 걷기를 이어갑니다.너무 좋아요....

*걷고걸어 신기교 도착 여기서 신기교를 건너 갑니다.

*신기교를 건너고 있어요.

*신기교위에서 바라 본 람천의 겨울풍경.

*신기교를 건너 우측으로 진행.

*신기교 건너 우측진행 곧바로 둑방길로 진행 우측으로.

*이번에는 람천의 좌측 둑방길로 진행 신기교 전에는 우측둑방길로 진행.

*진행길 좌측으로 신기마을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이 보이네요.

*진행길 람천둑에 편백나무가 도열해 있어요.

*삼거리 좌측으로 가면 신기마을 방향 우리는 직진방향으로 진행.

*사반교도 좌측에 두고 지나가요.

*우리는여기서 우측으로 사반교를 건너 람천 우측 둑길로 진행.

*사반교 위에서 바라 본 상류의 모습 겨울 느낌이 나는 데요.

*사반교 하류의 모습 .

*사반교를 건너 좌측으로 람천 둑방길로 진행.

*람천 좌측에서 우측으로 이동해 둑길로 진행.

*람천 곳곳에 철새들의 모습을 자주 볼수 있네요.

어제 서림공원 주차장에서 캠핑카로 1박을하고 아침을

누렁지탕으로  해결을 하고 2코스 출발지 서림공원에서 스템프

인증샷 도장을 찍고 우리부부는 람천 둑방길 따라 아침의 시선한 공기를 

힘껏 쉼 호흡을 하고 물안개 피어오르는 람천을 따라 물과함께 하류로 발걸음을

옮긴다.람천은 벌써 겨울인가 보다 가끔씩 철새들의 모습이 보이고 갈대는 푸르름을 다해

갈색으로 변색을하고 오른쪼으로 고개를 돌리면 지리산 서북능선이 보이고 좌츠으로 돌리면 

백두대간의 수정봉이 자리하고 어디를 보나 지리산의 그늘이 시야에 들어온다. 추수가

끝난 들판은 휴식기에 들어 황량함을 보이지만 우리에게 양식을 제공한다고

1년을 고생 했는데 이제 봄까지 여유를 가지라는 뜻에서 들판에는 

아무것도 없다.

 

*진행길 좌측 하천 넘어로 황산대첩비를 모셔둔 공원이 보이네요.

*지리산 둘레길 2코스 안내도.

*동편제 마을입구 도착 .

*동편제 마을 안내센터앞.

 

*동편제 국악의 거리 소공원.

판소리 창제의 하나.

전라북도 운봉·구례·순창·흥덕 등지에서 많이 부른다. 우조의 한 계열로 송흥록의 법제를 표준으로 한 것이다. 특별한 기교를 부리지 않고 '목으로 우기는 소리'로 '막 자치기 소리'라고 한다. 섬세한 기교보다는 곧게 내리지르는 통성을 쓰기 때문에 거칠면서도 호방한 맛이 있다.

따라서 동편제 소리를 제대로 하려면 풍부한 성량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장단은 끌고나가는 속도가 빠른 편이고 전가락의 엇이 원박만 치는 '대마디 대장단'이 주축이 된다. 따라서 장단에 맞추어 말을 던지듯이 촘촘히 짜나가기 때문에 발림을 할 여유가 없다.

동편제의 표현성이 두드러진 대목은 〈춘향가〉에 송광록·박만순·김세종·장자백·김상국·성창렬·박녹주의 것이 있고, 〈수궁가〉에 송우룡·정춘풍·김찬업의 것이 있고, 〈심청가〉에 전해종·송만갑·진도성의 것이 있으며, 〈흥보가〉에 김도선·박기홍의 것, 〈적벽가〉에 김창록·서성관의 것 등이 있다.→ 판소리

*신명나게 놀아보세....

*동편제 마을 방문을 환영합니다 .좋은 구경하고 갑니다.

*동편제 소공원에서 다리를 건너 황산대첩비 방향으로 진행.

*황산대첩비 전경.

고려말 1380년(우왕 6) 9월에 이성계(李成桂) 등이 황산(지금의 전북 남원시 근처)에서 왜구를 크게 무찔러 승리한 전투.

왜구의 침입은 오래전부터 있어왔지만, 고려 말기에는 더욱 극심해졌다. 이때 왜구의 노략질이 격심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일본의 정치·정세가 극도로 혼란하여 변경지방민을 통제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 기간에 고려는 전국적으로 피해를 입었는데, 경상도·전라도·충청도 지역의 피해가 가장 심했다. 이 지역은 해안뿐 아니라 내륙지방까지 왜구의 발길에 짓밟혔다.

황산대첩비

황산대첩비, 높이 4.25m, 전북 남원시 운봉면 화수리

왜구는 수도 개경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강화 교동과 예성강까지 나타났다. 이에 고려정부에서는 최영(崔瑩)·이성계·나세·최무선(崔茂宣)·박위(朴葳) 등으로 하여금 이들을 무찌르게 했다. 1375년(우왕 1) 대대적인 왜구의 침략에 맞서 최영은 홍산에서 적을 쳐부수고 대승을 거두었지만 침입은 계속되었다.

1380년 8월 왜구는 손시제(孫時制)를 우두머리로 하여 500여 척의 배를 타고 금강 어귀에 있는 진포(지금의 서천)에 상륙했다. 고려정부에서는 나세·심덕부·최무선을 지휘관으로 삼아 왜구를 치도록 했는데 최무선이 화약을 사용하여 적의 함선을 모두 불태워 대승을 거두었다. 이 싸움에서 왜구들은 배를 잃어버려 바다로 나갈 수 없게 되자 경상도 상주·구미, 충청도 옥천 등 내륙지방으로 들어가 더욱 잔인한 약탈과 살상을 자행했다.

이에 고려정부는 이성계를 최고 지휘관으로 삼아 쳐부수도록 했다. 왜구는 경상도 상주·선산·경산부(지금의 성주) 등을 차례로 노략질하고 지리산 근방의 사근내역(함양)에 집결하고 있었다. 이성계는 운봉을 넘어 황산 서북쪽의 정산봉으로 나아가 이지란(李之蘭)과 더불어 악전고투한 결과 왜구를 크게 무찔렀다. 이 싸움에서 고려는 왜구의 말 1,600여 필을 얻고 기타 무기도 많이 노획했는데, 이를 황산대첩이라고 한다.

이때의 전공을 기리기 위해 1577년(선조 10)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면 화수리에 황산대첩비를 세웠다. 비의 높이는 4.25m이다. 이 비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파괴하여 원상이 훼손되었으나, 남아 있던 귀부와 이수를 이용하여 1957년에 다시 세웠다. 비문은 김귀영(金貴榮)이 짓고 송인(宋寅)이 썼으며, 남응운이 전액을 만들고, 박광옥이 세웠다. 이 비문에는 황산대첩에 관한 사실과 비문을 세우게 된 목적·사정을 싣고 있다.

*황산대첩비 주변 가을의 끝자락.

*이곳은 고려 말 이성계가 왜구와 싸워 대승을 거둔 전적지이다.금강어귀에서 퇴로가 막힌 왜구는 이곳에 

 주둔하면서 장차 바다로 달아나려 하였다.고려군의 최고지휘관 이성계는 적장 아지발도와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이성계가 먼저 활을 쏘아 아지발도의 투구를 떨어트리고 뒤이어 이두란이 쏜 화살이 그의 머리를 

 맞혔다.이에 힘입어 고려군은 지휘자를 잃고 우왕좌왕하는 왜구를 섬멸하였다.선조 때 왕명을 받아 김귀영

 의글 송인의 글씨로 대첩비를 세웠으나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부수었다.광복 후 옛 비석을 복구하였다가

 1972년 신석호가 한글로 글을지어 새롭게 세웠다.우리 선조들이 왜구의 침탈에 맞서 꿋꿋하게 일구어낸 역사의

 향취가 물씬 풍기는 곳이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고려 우왕 6년(1380년)에 이곳 황산에서 왜구를 크게 무찌른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선조

 10년 (1577) 왕명을 받아 이곳에 황산대첩비를 건립하였다.

 현종 6년(1667) 비각을 세운 뒤 고종 19년(1882)에 다시 고쳐 지였으며 이때 어휘각을 창건하였다.그러나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은 비문을 쪼아 대첩비를 파괴하였다.1957년에 비문을 다시 새겨 본래의 좌대에 세우고 1973년에

 는 보호각을 세웠다.

*황산대첩사적비

 이 비는 고종19년(1882) 운봉현감 이두현이 세웠던 화수산비각비를 1958년에 중건한 비이다.

 인제강점기 때 황산대첩비와 비각 등이 함께 파괴되었다.비문에는 황산대첩 전황과 비긱건립 취지가 기록되어있다.

*황산대첩 사적지 전경.

고려말 이성계가 왜구와 대승을 거둔 전투를 기념하기 위하여 조선 선조 때 세웠던 비석이다.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는 비문을 쪼고 비신을 파괴하였다.1977년에 비각을 건립하고 파괴된 비석 조각들을

 모아 안치하였다.

*비전마을의 유래.

*동편제마을(비전마을) 표지석.

 

*가왕 송흥록.국창 박초월 생가.

조선후기 판소리의 중시조 또는 가왕으로 꼽히는 판소리의 명창.

개설

8명창 가운데 한 사람이다. 판소리의 중시조 또는 가왕(歌王)으로 꼽히고 있다. 전라북도 익산시 웅포면 웅포리 양지편 마을에서 태어났으며, 판소리의 진양조를 창시한 김성옥(金成玉)은 그의 매부이고, 광록(光祿)은 동생이다.

그는 역대의 판소리 명창 가운데 기량이 가장 뛰어날 뿐만 아니라, 판소리에 그때까지 없었던 진양장단을 도입하여 소리를 짜고 평타령으로 일관되었던 원초적인 판소리 선율 우조(羽調)와 계면조(界面調)의 선율을 오늘날과 같이 발전시켰다.

계면조는 본래 남도무가(南道巫歌)나 민요에 있는 육자배기토리를 가리키는 것이며, 민요나 무가에서는 단순한 선율형태를 가지나 판소리에서는 매우 복잡한 선율이 많다. 계면조 선율에 이와 같은 정교한 선율형태를 도입한 것이 송흥록으로 보이며, 그가 잘하였다는 귀신의 울음소리, 즉 귀곡성(鬼哭聲)도 따지고 보면 계면조 선율의 교묘한 구성이라 할 수 있다.

우조는 가곡·가사에서 보이는 정가(正歌)의 선율을 판소리화한 것인데, 판소리에서 우조의 선율은 정가의 선율과 다른 판소리적인 특이한 선율이 구사된다. 이 판소리 우조선율의 특성이 송흥록에 의해서 확립된 것으로 보인다.

원초의 판소리는 중중모리·중모리·자진모리 장단으로 짜여졌던 것으로 보이는데, 송흥록이 판소리에 음악적인 변화를 주기 위하여 느린 진양장단을 도입하였다. 송흥록이 판소리의 속도 영역을 확대함으로써 속도의 변화를 더욱 다채롭게 하고, 우조와 계면조로 선법적(旋法的)인 변화 및 판소리 음악의 정조(情調)의 변화를 더욱 다채롭게 하였다.

이와 같이, 장단의 변화, 조의 변화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송흥록의 판소리를 두고 당시의 사람들은 ‘여산폭포(廬山瀑布)’·‘호풍환우(呼風喚雨)’·‘천변만화(千變萬化)’라 하였다. 신재효(申在孝)는 <광대가>에서 “송선달 흥록이는 타성주옥(唾成珠玉) 방약무인(傍若無人) 화란춘성(花爛春城) 만화방창(萬化方暢) 시중천자(詩中天子) 이태백(李太白)이라.” 하였는데, 만화방창하다는 것도 그의 변화무쌍한 판소리 기교를 두고 이른 것이라 하겠다.

기량이 출중하고 판소리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기에 독보건곤(獨步乾坤)이라는 칭호를 받았고, 신재효도 그를 시중천자로 꼽히는 이태백에 비유하였던 것이다. 모든 판소리에 뛰어났으나 그 중 <변강쇠타령>·<춘향가>·<적벽가>를 잘하였는데, 특히 <춘향가> 중 ‘옥중가’는 오늘날까지 전해지며 이 대목의 귀곡성이 유명하다.

또한 동편제 판소리를 확립하여 동편제 소리의 시조로도 꼽힌다. 그의 소리는 동생 광록과 수제자 박만순(朴萬順)에게 전승되었다.

 

*생가 주변에도 가을이 가고 겨울 분위기가 나네요.

이곳 공간은 가왕 송흥록의 업적을 기리는 곳으로 직선적인 길은 동편제 판소리의 미학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고.여러개의 둥근 조형물은  진양조의 24박을 상징하는 것이라 한다.

*생가앞 뜰에는 생전의 활동상을 재현해 놓았네요.

*생가의 모습(송흥록의 생가)

*박초월의 생가.

해방 이후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수궁가」의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보유자.

내용

본명은 삼순(三順). 아호는 미산(眉山). 전라남도 순천에서 태어나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면 갈계리에서 성장하였다. 김정문(金正文)·송만갑(宋萬甲)에게서 판소리를 배웠고, 임방울(林芳蔚)·정광수(丁珖秀)에게서도 배웠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좋은 목소리에 성량도 풍부하여 일찍부터 이름을 떨쳤다. 1930년 전주에서의 전국남녀명창대회에서 1등을 한 뒤 여러 음반회사와 계약을 맺고 「흥보가」·「심청가」·「춘향가」등을 취입하였다.

상경하여 조선성악연구회(朝鮮聲樂硏究會)에 참가하여 여러 선배명창들과 창극운동에 참여하였다. 광복 후 여성국극동지사(女性國劇同志社)를 창단하였고, 1955년에는 현재의 서울국악예술학교의 모체인 한국민속예술학원을 박귀희(朴貴姬)와 함께 설립하고 교사로서 많은 신인을 양성하였다.

1966년부터는 집에 당대의 명창 156위의 신주를 모셔놓고 매년 제사를 지내는 정성을 보였다. 1964년 10월에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춘향가」보유자로 인정되었으며, 1973년 11월에는 「수궁가」보유자로 재인정되었다.

장기는 「춘향가」와 「심청가」인데, 조순애(曺順愛)·한농선(韓弄仙)·성우향(成又香)·남해성(南海星)·조통달(趙通達)·전정민(全貞珉)·김봉례(金鳳禮) 등이 그의 소리를 계승하였고, 이 중 조통달·남해성·전정민·김봉례 등은 그의 후계를 담당하였다.

「춘향가」와 「수궁가」일부가 음반으로 남아 있다.

*이 5개의 사각기둥은 메나리조의 구성음을 표현한 것이라 한다.

*송흥록의 업적 표석.

*송흥록의 생가 정문에서 바라 본 모습.

*명창 박초월의 생가 정문에서 바라 본 모습.

*비전마을(동편제마을)을 구경하고 우리는 다시 람천 좌측둑방길로 걷기를 이어갑니다.

*비전마을의 노거수.

*진행길 우측으로 황산교를 지나갑니다.

*진행길 좌측으로는 비전마을(동편제마을)을 뒤로하고 람천 둑방길로 우리는 걷기를 이어갑니다.

*둘레길 2코스 긴급상황 발생시 위치 표시.

*둑방길 끝에서 도로와 합류 여기는 군화동 버스정류소 건너편 언덕에는 전원주택단지가 형성되어 있네요.

*군화동 버스 정류소.

*군화동을 지나 도로를 따라 진행 좌측 도로변에 종교적인 색채가있는 조형물이 있네요.

*도로 끝에는 삼거리 우리는 우측 다리를 건너 남원 노인복지센터 건물 방향으로 진행.

 

*다리를 건너 다시 좌측 노인복지센터 방향으로 진행.

*지금은 거의 페허 수준의 노인복지센터 건물 우리는 건물을 좌측에 두고 비탈길로 진행.

*옥계저수지 둑길로 진행.

*저수지 방향 길에서 내려다 본 노인복지센터 건물 모습.

*임도길에는 솔잎이 향기와 함께 포근함을 선사 하네요.

*산중의 저수지 옥계저수지 규모가 제법 있네요.

*인적을 볼수가 없은 산중길 임도를 우리는 맑은 공기를 마음것 마시며 걷기를 ......

*여기서 잠시 간식 타임과 휴식을 하고 갑니다.

*이임도길은 흥부골 자연휴양림방향으로 이어집니다

*임도길 내리막 끝에는 흥부골 자연휴양림 입구가 보이네요.

*흥부골 자연휴양림 안내도앞 도착.

*여기서 지금 방영중인 tv n의 지리산 촬영도 했네요.

*흥부네가 박을 타고 있어요.

*남원시 관광안내도앞에서 우리는 도로 내리막길로 급 좌회전 진행길.

*조금 내려오면 바로 우측 계곡으로 길은 이어지고 계곡 입구에 무인점포 앞으로 진행.

*무인점포 메뉴판입니다.

*송죽과 전나무가 이어지는 오솔길을 따라 진행.

*벌서 전나무가 겨울준비를 다했네요 .

*길은 다시 도로와 합류 우측으로 도로따라 진행.

*도로따라 진행 과수원 입구에서 좌측에 건물이 있는 뒤쪽으로 도로에서 좌회전 합니다.

*주위의 모습.

*사과나무 과수원 규모가 엄청 크네요.올해는 풍년이 였으면 좋았을 텐데.

*이런길 어때요 너무 낭만적인 길을 우리는 지금 걷고 있어요.

*지리산 둘레길 2일차 너무 마음에 드네요 정말 아름다운 둘레길 앞으로 코스가 기대됩니다.

*인월 시가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제 산에서 하산합니다.

*길은 산에서 내려와 정겨운 골목길로 이어지고....

*우리 어릴적 동네 개구장이들의 모습이 벽화로 구성 정말 눈을 가게 하네요.

*골목길 벽화는 동네 골목 곳곳에 그려져 있네요.

*달오름마을회관 앞에서 좌측으로 진행.

*벅수가 길을 안내하고 있어요.

*여기가 인월 지리산 둘레길 민박집촌이네요 .

*골목길이 너무 아름답게 보여지네요.

*우리가 현재 벽화그림속의 이표정으로 지나고 있어요.

*도로를 따라 다리입구까지 진행 입구에서 둘레길은 우측방향 둑방길로 진행.

*다리입구에 달오름마을 표지석.

*달오름마을 유래 표석.

*다리 위에서 살짝 상류방향 풍경입니다.

*지리산 둘레길 한바퀴 21코스 안내도.

*2코스 출발(운봉) 2시간45분 소요 인월도착 우리는 여기서 3코스 계속 이어 걷기를 합니다.

 

*황산대첩비 이성계의 공적을 기리는 장소로 여기서 왜구 들과의 싸움에서 대승을 

거둔 장소를 기리는 "황산대첩비"둘러보고 동편제마을에 가왕 송흥록 생가.방문과 동편제

소공원에서 볼거리 구경을하고 우리는 다시 람천변을 따라 하류로 걷기를 진행 이번에는 람천을

버리고 노인복지센터앞을 통과 옥계저수지위로 흥부골 자연휴양림까지 임도길로 진행 길에는 솔잎이

양탄자를 만들어 발끝에 느껴지는 느낌이 너무 좋았다 .솔향과 가끔씩 불어오는 산바람이 아직은

춥다보다 시원함이 느껴져 임도길 내내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동행이 너무 좋았다.흥부골 자

연휴양림을 지나 우리는 임도길을 벗어나 인월시내로 진입 달오름마을의 담벼락의 

아름다운 벽화에 다시한번 걷기를 멈추고 한참을 둘러보고 갑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로 2코스 인월에서 마무리 합니다.